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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68화
PAYLUA ORIGINAL · 제168화

168화. 젖은 기록과 살아 있는 사람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16자

오프라인 책장
서쪽에 비가 많이 내린다는 소식은 전날 저녁에 들었다. 수현이 실제로 비의 무서움을 알게 된 것은 보존실 바닥으로 찬물이 들어왔을 때였다. “문 앞쪽에서 물이 올라옵니다!” 관리실 직원 페른이 복도 끝에서 외쳤다. 원장실의 문턱 아래로 검은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오래된 배수로가 막혔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복구 예산 때문에 처리가 늦어졌다고 했다. 수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선반의 서류를 들어 올리려다가 멈췄다. 그것은 자신이 함부로 만져도 되는 자료가 아니었다. 원본에는 봉인과 보존 규칙이 있었다. 더 중요한 건 좁은 통로에 사람들이 몰리면 무거운 선반이 쓰러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부터 밖으로요. 기록 옮기는 사람은 지정돼 있죠?” 하웬이 소리쳤다. “계획은 있는데 지난주에 담당자가 바뀌었습니다. 새 담당 명단이 아직 안 올라왔어요!” 수현은 속으로 욕을 삼켰다. 어디에서나 계획이 있다는 말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위험하게 했다. 계획이 종이에만 있으면 그 계획을 실행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루세가 물길을 보더니 문턱 바깥쪽에 모래주머니를 쌓으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 혼자 힘으로 무거운 자루를 옮기지 않았다. 시설 책임자와 보존 감독자가 위험 범위를 정하고, 사람을 둘씩 배치한 뒤에야 움직였다. 누구도 기록보다 먼저 다쳐서는 안 됐다. *** 정오 무렵 물은 발목에 닿을 만큼 차올랐다. 하웬은 개인 기록 보존함을 먼저 위층으로 올리려 했지만 계단이 미끄러워졌다. 수현이 제안했다. “우선 물이 닿기 전인 상단 선반은 그대로 두고, 가장 아래쪽의 봉인함만 지정 인원으로 옮기죠. 모든 걸 한꺼번에 꺼내다가는 사고 나겠어요.” “그렇게 하면 기록 일부가 젖을 수 있습니다.” “일부가 젖는 걸 막다가 사람이 다치면 안 되잖아요. 어느 것이 절대 물에 닿으면 안 되는지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요.” 하웬은 짧게 생각한 뒤 동의했다. 그는 시설 대피 계획의 위험 등급을 다시 확인했고, 감독관이 정식으로 작업 범위를 좁혔다. 그때 젊은 기록원 페른이 두꺼운 상자를 혼자 번쩍 들었다. 며칠 전 다른 직원이 같은 계단에서 다쳤다는 말을 수현은 기억하고 있었다. “페른 씨, 내려놓으세요!” “괜찮습니다. 이것만 올리면 돼요!” “괜찮은지 확인할 시간이 없어요. 미끄러우니까 사람을 더 부르세요.” 페른은 상자를 놓았다. 그 직후 위층에서 내려오던 다른 직원이 미끄러져 벽에 부딪혔다. 천천히 움직여도 다치는 날이었다. 구조 담당이 즉시 사람을 부축하고 계단의 이동을 중단시켰다. 수현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 자신이 상자를 든 채 그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 오후에는 비가 잦아들었다. 원본 몇 장의 가장자리가 젖었지만 보존 담당자는 함부로 말리지 않았다. 젖은 자료를 뜨거운 난로 옆에 두면 잉크가 번지거나 봉인이 변형될 수 있었다. 루세는 종이 사이의 습도를 천천히 조정하는 방법을 설명했고, 기록원들은 손상 여부를 일괄 서명하지 않고 한 건씩 기록했다. “젖었다는 사실을 숨기면 나중에 누군가 고친 흔적처럼 보일 수 있어요.” 수현이 말했다. 하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의 보존 조치도 원본과 함께 남길 겁니다.” 모든 사람의 이름과 작업 시간, 이동한 상자의 번호가 기록됐다. 누가 무엇을 만졌는지 남겨 두는 일이 서류에겐 귀찮아 보였지만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의심을 막는 보호막이었다. 페른은 작은 상처를 치료받고 돌아왔다. 그는 수현 앞에서 머쓱하게 웃었다. “아까 상자를 놓으라고 하셔서 화가 났어요. 제가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하시는 줄 알았거든요.” “못한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혼자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알겠습니다. 다음엔 먼저 사람을 부를게요.” “그 말을 저한테가 아니라 옆 동료한테도 하세요.” 페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저녁이 되자 원본 보존 절차를 지켜야 했던 사람들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관리실 앞의 작은 식당에서 직원들은 따뜻한 수프를 나눠 먹었다. 수현도 한 그릇을 받았다. 그녀는 먹는 동안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젊은 직원이 먼저 말했다. “오늘 상자들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대개 침수가 나면 밤새 문서만 말리거든요.” “오늘은 밤새 안 하려고요.” 하웬이 말했다. “위험 작업은 끝냈고, 나머지는 내일 교대조가 할 겁니다.” 수현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자신이 여기 오기 전에도 사람들은 일하고 있었고, 자신이 돌아간 뒤에도 일할 것이다. 다만 일하다 다치지 않도록 멈출 수 있는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이다. 세드나가 종이를 내밀었다. “오늘 기록 이관표예요. 개인 자료는 가려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수현의 눈이 한 줄에서 멈췄다. 침수 대비로 옮긴 상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들이 찾던 북측 경계석 보존실의 현장 표식 원본이었다. 이관 전에는 다른 선반에 보관됐으나 오늘 임시 이동 목록을 통해 실물이 확인됐다. “하웬 씨, 이게 원래 여기 있었나요?” 하웬이 목록을 확인했다. “별동 보관고가 보수 중이라 임시로 가져온 모양입니다. 원본을 옮긴 것 자체는 적법하게 기록됐어요.” 수현은 상자를 열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봉인이 상하지 않았는지와 열람 신청을 어디에 해야 하는지 물었다. 하웬은 대답했다. “내일 정식 보존 심사를 넣으시면 됩니다. 오늘은 젖은 자료를 안정시키는 게 먼저예요.” *** 관리실에 물이 들기 전, 하웬은 여러 차례 배수로 점검 예산을 요청했다고 했다. 수현은 침수 보고서가 만들어지는 자리에서 그 말을 들었다. 책임을 따지기 위해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그동안 접수된 보수 요구가 어디까지 전달됐는지 확인하자는 논의였다. “작년에도 배수로 공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웬이 말했다. “하지만 예산을 심사하는 곳에서는 피해가 발생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미뤘어요.” 루세가 물었다. “피해가 없을 때 예방을 하는 게 맞는데 피해가 없어서 예산을 못 받았다면 이상한 일이네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서 산업재해 상담을 할 때도 종종 들은 말이었다. 아직 다친 사람이 없으니 안전 예산을 쓸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 그러다가 누군가 다친 뒤에는 왜 위험을 미리 알리지 않았느냐고 묻는 말. 하웬은 낡은 요청서를 가져왔다. 날짜와 접수번호는 모두 있었다. 문제는 최종 검토 결과란이었다. ‘차기 분기 재심사.’ 같은 문장이 세 번 반복돼 있었다. 수현은 말했다. “이제 침수가 생겼으니 예산을 받는 게 아니라, 애초에 위험을 보고한 기록이 있었는지부터 남겨야겠네요. 앞으로 누가 다치면 담당자가 몰랐다고 해선 안 되잖아요.” 관리실 감독관은 이를 사고 원인 분석에 포함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현은 그 문장이 자신에게 권한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녀는 외부 이해관계인으로 참석했고, 시설 보수 책임은 관리실에 있었다. 점심에는 직원들이 함께 젖은 물품을 분류했다. 원본 문서는 보존 담당만 만졌고, 일반 집기는 다른 직원들이 옮겼다. 페른은 수현에게 손상된 장갑을 보여 주었다. 오래전부터 쓰던 장갑은 손바닥 쪽이 갈라져 있었다. 원장실을 지키는 데에는 세심한 봉인이 필요하지만 그 봉인을 드는 직원에게는 새 장갑이 없었다. “신청했는데 아직 안 왔습니다.” 페른이 말했다. 수현이 대답했다. “그럼 이 장갑으로 계속 작업하는 건 위험하겠네요.” “오늘은 다른 작업을 할게요. 관리자한테도 이야기했어요.” 수현은 웃었다. 페른이 스스로 중단을 선택한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와서 모두를 구한다는 이야기보다 누군가가 위험을 보고 멈출 줄 알게 되는 이야기가 더 좋았다. 침수 현장과 분리된 작은 휴게실에서는 직원들이 교대로 식사를 했다. 예전에는 사고가 나면 새벽까지 전원이 남아서 봉인함을 정리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우선순위를 정해 최소 인원만 남고 나머지는 교대했다. 근무 기록에는 누가 밤에 남았는지와 대체 휴무를 어떻게 줄 것인지 적었다. “서류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에게 서류도 중요한 것 아닙니까?” 한 직원이 물었다. “당연히 중요하죠. 그래서 서류를 지키는 사람도 지켜야 해요. 사람이 다치면 다음 날 그 서류를 누가 보존하겠어요.” 직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뜨거운 수프 한 그릇을 더 가져와 동료에게 건넸다. 저녁에는 인근 상인들이 모래주머니를 치우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왔다. 하웬은 무턱대고 자원봉사자를 받지 않았다. 무거운 장비 이동은 계약된 작업자와 시설 담당만 수행하고, 방문자는 통로 정리와 물품 전달 정도만 도울 수 있도록 했다. 수현은 그 판단에 동의했다. 선의로 나온 사람이 다쳐 버리면 사고가 더 커지기 때문이었다. 비가 그친 뒤 관리실 마당에는 작은 수로를 임시로 만들었다. 물이 다음번에도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조치였다. 안전은 ‘다시는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선언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날 때 사람을 어떻게 지킬지 준비하는 일 같았다. 루세는 수현에게 젖은 종이에서 원본 잉크를 보존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완전히 예전 모습으로 되돌리진 못해요. 하지만 어디가 손상됐는지를 정확히 남길 수는 있죠.” 수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도 비슷할까. 시간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더라도 지금 여기서 겪은 일을 사실대로 남길 수는 있었다. 침수 보고서가 정식 접수될 때 하웬은 모든 직원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날 밤 위험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도, 참여하지 않고 대피했던 사람도 자기 선택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별도로 적었다. 수현은 밖으로 나오며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은 계속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만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전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조금 더 안전하게 내일 일할 수 있다면 적어도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은 것 같았다. *** 다음 날 아침 바깥 마당에는 물이 거의 빠져 있었다. 수현은 침수 기록과 원본 보존함의 이관표를 나란히 놓고 신청서를 작성했다. 두 기관의 현장 표식이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지, 설치 날짜와 누가 보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비파괴 열람이었다. 하웬은 신청서 맨 위에 중요한 조건을 적었다. ‘원본의 신원 관련 부분은 비공개, 사건 좌표와 표식 형상 및 설치 경위만 제한 열람.’ “그걸로 충분합니다.” 수현은 서명했다. 그녀는 어젯밤 축축해진 구두를 손에 들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기록이 살아남은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원본이 젖지 않도록 뛰어다닌 사람들 역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열람 날짜는 이틀 뒤로 잡혔다. 그때 수현은 처음으로 E-17 당일 현장 표식 두 개를 직접 비교하게 될 예정이었다. 사건은 이제 말과 날짜가 아니라 실제 남겨진 위치의 문제로 옮겨 가고 있었다. *** 침수 다음 날 하웬은 관리실 직원들에게 짧은 회의를 열었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각자 기억하는 대로 적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수현은 회의록을 보고 멈춰 섰다. “모두가 같은 내용을 적어야 하는 건가요?” “아니요. 각자 본 것을 따로 적게 하려고요.” “그럼 잘됐네요.” 페른은 물이 계단 아래에서 먼저 들어왔다고 적었고 다른 직원은 창고 뒤쪽에서 처음 물소리를 들었다고 적었다. 두 말이 달라도 틀렸다는 뜻은 아니었다. 각자가 있던 위치와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수현은 그 장면을 보며 오래된 E-17 현장 기록을 떠올렸다. 누군가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위치에서 보았다면 서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거짓말의 증거라고 취급하면 진실은 오히려 멀어진다. 하웬이 말했다. “한꺼번에 같은 보고서를 베끼게 하면 보기에는 깔끔하지만 나중에 누가 어디서 무엇을 봤는지 알 수 없겠군요.” “네. 조금 지저분하게 남겨 두는 게 더 정확할 때가 있어요.” 회의 뒤 직원들은 각자의 진술을 봉인했다. 사고 원인 조사에는 자료가 더 필요했지만 적어도 오늘은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지우지 않게 되었다. 수현은 잠시 창문을 열었다. 젖은 흙냄새가 들어왔다. 비가 그친 뒤의 공기는 늘 이상하게 새로웠다. 하지만 기록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다음 근무는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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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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