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렌이 자리를 비운 제7원정대에는 놀랍게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것이 카이렌에게는 가장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 출동은 젠이 지휘했고, 데런이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오르카는 다친 팔 때문에 후방에서 보급표를 확인했고요.”
감독관 브레그가 보고서를 넘겼다. 카이렌은 의자에 앉아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흰 고리 모양의 흉터가 조용히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저 흉터가 죽음에서 돌아온 증거라고 속삭였다. 어떤 사람은 구형 안정 장치가 닿았던 흔적이라고 했다. 카이렌은 어느 쪽인지 몰랐다.
“문제가 없었다니 다행입니다.”
“별로 기쁘지 않은 얼굴인데.” 브레그가 말했다.
“제가 없으면 원정대가 곤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정말 그랬고요.”
“지금은 네가 하던 일을 나눠 맡을 줄 아는 사람이 생긴 거다. 그게 나쁜 일이냐?”
카이렌은 대답 대신 손바닥을 폈다. 검을 오래 쥐어서 단단해진 손이었다. 그가 용사가 된 이유는 아무도 자신처럼 다치지 않게 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동료들이 스스로 움직일 기회를 빼앗은 것은 아닐까.
브레그는 낮게 말했다. “내가 너를 부려 먹었다는 점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라도 쉬는 법을 배워라.”
카이렌은 감독관을 올려다봤다. 브레그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
그날 오후 카이렌은 의사 리벨이 있는 진료소로 갔다. 이번에는 종이에 직접 질문을 적어 왔다. 자신의 의식이 끊긴 사흘 가운데 둘째 날의 치료 기록을 어디까지 확인할 수 있는지, K형 안정 장치가 실제로 자신의 몸에 사용됐는지, 그리고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치료를 강제로 받아야 하는지.
리벨은 질문지를 한 장씩 읽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기록 검증 문제이고, 세 번째는 치료 선택 문제군요.”
“한꺼번에 설명해 주셔도 됩니다.”
“그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결정은 따로 하셔야 합니다.”
카이렌은 조금 웃었다. “이수현 씨가 할 법한 말이네요.”
“그분이 다녀간 뒤 여기서도 환자 동의서가 달라졌습니다. 다만 환자가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했다면 종이가 몇 장이든 소용없겠죠.”
리벨은 진료기록 표의 한 부분을 보여 주었다. 둘째 날 새벽, K형 안정 장치 하나가 치료실 대기 상태로 표시돼 있었다. 이어 ‘열 손실 보존’이라는 의학적 처치 항목이 있었다. 카이렌의 이름은 환자 명단의 다른 페이지에 있었지만 두 기록을 연결하는 사용 확인란이 비어 있었다.
“이 장치가 저를 위해 대기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당시 치료실에는 다른 환자도 있었고요.”
“그럼 왜 제 손에는 이 흔적이 남았을까요?”
리벨은 그의 손을 받아 자세히 살폈다. “흉터의 형태만으로 원인을 특정하는 건 위험합니다. 어떤 장치를 썼는지보다 먼저 피부와 신경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를 권할 수 있어요.”
“검사를 받으면 기억이 돌아오나요?”
“그건 보장할 수 없습니다.”
카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같았으면 반드시 해내야 한다며 의사에게 해답을 요구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듣는 일이 사람을 구할 때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
리벨은 선택 가능한 검사 방법을 설명했다. 통증 감각만 보는 간단한 검사, 마력 반응을 측정하는 검사, 과거 의식 공백과 관련된 장기 관찰. 카이렌은 첫 번째 검사만 선택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당장 원하지 않는 것을 구분해 보겠다고 했다.
“다음 기록은 언제 열람하고 싶으세요?”
“일주일 후요. 젠이 다음 보급 정산을 마친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본인 일정으로 정하면 됩니다.”
의사는 날자를 적었고 카이렌은 확인했다. 그 한 줄이 이상하게 귀했다. 용사가 자신의 진료 날짜를 고르는 것. 한때는 전장에서 쓰러진 뒤에도 다음 날 출정을 명령받았던 사람에게는 작은 혁명이었다.
진료소를 나오자 젠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용사님, 원정대 보고서 올렸습니다.”
“쉬는 날인데 왜 여기까지 왔나?”
“제 휴식은 오늘 저녁부터예요. 그리고 업무 전달은 제가 맡았습니다.”
카이렌은 웃었다. “그럼 오늘 저녁부터는 연락하지 않겠네.”
“말씀만이라도 지켜 주세요. 지난번엔 야간 담당한테 괜찮으냐고 세 번이나 물어보셨잖아요.”
“그건 습관이다.”
“습관도 고칠 수 있다고 메이가 그랬습니다.”
카이렌은 반박하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에게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신이 배울 차례가 된 모양이었다.
***
카이렌은 자기 의료기록의 사본을 허가받은 범위 안에서만 보관했다. 빈칸이 많은 서류였지만 그 빈칸을 없애 달라고 무작정 요구하지 않았다. 의식이 없던 시간을 전투 기록에 넣은 이유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리벨은 과거 기록을 살폈다. “치료실의 행정 대기 명단과 출정 명단은 부서가 다릅니다. 나중에 자료를 합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럼 제가 그날 싸웠다고 적힌 기록을 바로 정정할 수 있습니까?”
“직접 전투했다는 증거가 없다면 정정 심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 기록 담당자가 무엇을 근거로 작성했는지도 확인해야겠죠.”
카이렌은 종이를 한참 들여다봤다. 예전에는 출정 횟수가 많으면 자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이 누워 있었던 날까지 공로로 계산되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기록은 결국 자신이 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날 저는 병상에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누군가 제 이름으로 전투 수당을 계산했겠군요.”
“그래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카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출정 기록 정정도 신청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제가 치료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동료들이 제 공로를 낮게 보지 않도록 설명하겠습니다.”
리벨이 웃었다. “용사가 병상에 누워 있는 건 흉이 아닙니다.”
카이렌은 문득 수현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에게 확인해 달라는 대신 자신이 신청서를 냈다고 알려 주면 충분할 것이다. 그는 또 하나의 작은 선택을 했다.
***
같은 시간 왕도에서 수현은 카이렌의 짧은 보고서를 읽었다. 그는 의료기록을 일부 열람했고, 더 깊은 검사는 나중으로 미뤘다고 했다. 메이가 덧붙인 메모가 있었다. ‘그분이 스스로 다음 진료일을 정했어요.’
수현은 편지를 접었다. 과거의 카이렌이라면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을 전부 내놓았을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기억과 몸도 지켜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드나가 물었다. “무슨 좋은 일입니까?”
“용사가 휴가를 다 쓰고도 안 죽었대요.”
“그걸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 원정대에선 아주 큰 일입니다.”
루세가 옆에서 차를 뿜을 뻔했다. 그날 저녁 수현은 카이렌에게 특별한 격려 문장을 쓰지 않았다. 그냥 ‘원하시는 만큼 확인하시고, 원하지 않는 건 당장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적었다.
***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카이렌은 제7원정대의 훈련장으로 가지 않고 작은 마굿간 뒤편에 앉았다. 오후 햇살이 지붕 끝에 걸렸고 말들이 건초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자리가 낯설었다. 예전이라면 쉬는 날에도 창을 들고 훈련장 한쪽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데런이 다가와 물통을 내려놓았다. “여기 계셨군요.”
“내가 없어도 알아서 하게 두기로 했네.”
“좋은 결정입니다. 다만 말을 봐 주시면 더 좋겠네요. 저 녀석은 낯선 사람만 보면 울거든요.”
카이렌은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말은 조용히 눈을 깜박였다. 용사에게 기대했던 싸움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데런은 최근 말 관리 업무를 나누게 된 사정을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자신이 모든 마차를 준비했다. 원정대가 출정하면 늦은 밤까지 장비를 정리해야 했고, 다음 날 새벽에는 다시 먹이를 챙겨야 했다. 이제 젠이 화살 운반을 돕고 다른 대원이 마구간 교대를 맡았다.
“제가 쉬는 날에 마차가 멈출까 봐 걱정했는데, 처음엔 정말 좀 멈췄습니다.”
“그랬나?”
“네. 새 담당자가 말안장을 거꾸로 놓기도 했죠. 그래도 두 번 배우더니 바로잡았습니다. 이제는 저보다 훨씬 깔끔하게 하는 일도 있습니다.”
카이렌이 웃었다. “그걸 듣고 서운하지 않았나?”
“조금요. 그런데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니까 덜 서운했습니다.”
그 대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용사는 자신이 없으면 모두 위험해질까 봐 두려워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가 모든 일을 맡아 버릴 때보다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뒤 오르카가 편지 한 통을 들고 왔다. 라비엔에게서 온 소식이었다. 북방 회복소에서 야간 기록 협력 시간을 일부 인정받았지만 숙식비 공제 문제는 아직 심사 중이었다.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은 쉬기로 했어. 방문을 열어 두지 않으니 갑자기 오진 마.’
카이렌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답군.”
오르카도 웃었다. “예전에는 우리가 라비엔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만 했는데, 정작 자기한테 쉴 시간이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지.”
“이제는 물어야겠네.”
“물어볼 거라면 답을 들을 준비도 해야 해. 돌아오라고만 하지 말고.”
카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자신에게 강요했던 의무를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해 질 무렵 카이렌은 치료 기록을 하나 더 펼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진료소에서 적어 준 다음 예약 날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기록은 도망가지 않지만 자신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책상에 앉아 원정대 운영 일지를 작성했다. 의료기록을 보지 못한 사실을 부끄러움처럼 적지 않았다. ‘오늘은 열람하지 않기로 선택함.’ 이어서 ‘현재 확인된 사실: 둘째 날 치료실 대기 기록 존재. K형 장치 실제 개인 착용 불명. 소생 여부 불명.’이라고 적었다.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자신이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다.
밤이 되자 바깥에서 북이 울렸다. 긴급 출동이 아니라 근무 교대 신호였다. 예전에는 북소리가 날 때마다 몸이 먼저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한참 지나도 누가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기뻤다.
다음 날 카이렌은 젠을 불러 물었다. “어제 교대는 어땠나?”
“별일 없었습니다. 다만 새로운 전령이 장비 창고 위치를 몰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다음엔 창고 위치를 알려 주도록 하게.”
“이미 했습니다.”
“그럼 내가 할 일이 없군.”
젠은 장난스럽게 경례했다. “용사님이 쉬는 게 오늘의 일입니다.”
카이렌은 할 말을 잃었다. 그 문장은 처음 이수현이라는 이상한 여자가 그의 침대 옆에서 하던 말과 너무 닮아 있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카이렌은 빈 훈련장에 서서 손등을 내려다봤다. 흰 고리의 정체를 알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 그 정답이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었다. 그는 살아 있는 오늘의 동료들과 해야 할 일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날 메이에게 보낸 보고서 마지막에는 짧게 적었다. ‘오늘은 쉬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잠시 뒤 관리실에서 온 기술 회신이 그 조용한 시간을 끝냈다. E-17 경계 관찰 실패의 대상 분류에는 ‘사람형 흔적’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대신 ‘사람의 생활 물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 미묘한 차이가 중요했다.
수현은 자신의 수첩을 펼쳤다. 카이렌의 흉터도, 자신의 소환도, 모두 빈칸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빈칸 때문에 지금의 삶을 멈춰 둘 필요는 없었다.
“루세 씨, 그때 경계 관리실이 설치한 위험 표식을 지금 확인해도 문제가 없나요?”
“장비를 켜지만 않으면 직접 손대지 않는 방법은 있어요. 원장에 표식의 모양을 남겼다면요.”
“그럼 우리가 봐야 할 건 표식 자체가 아니라 그 표식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네요.”
“그렇죠.”
수현은 새로운 질문서를 작성했다. ‘경계 관측대 현장 표식과 제0종점 사후 점검반 표식의 독립 작성 여부 및 인계 경로 조회.’
질문서는 조금 길었지만 이번에는 막연하지 않았다. 답변이 오면 그녀가 실제로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른다. 다만 카이렌의 보고서를 읽고 난 뒤라 그런지 겁이 조금 줄었다. 모든 답을 한 번에 얻지 않아도 사람은 다음 날을 살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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