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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63화
PAYLUA ORIGINAL · 제163화

163화. 관찰하지 못한 사람의 기록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13자

오프라인 책장
수현은 두 서류의 제목을 밤새 생각했다. ‘유입 대상 관찰 요청’과 ‘관찰 실패 통지.’ 흔히 회사에서 사고가 나면 사고 발생 시각과 최초 보고 시각이 달랐다. 두 시각 사이의 빈칸에 누군가의 고통이 들어 있었고, 그 빈칸은 종종 서류 작성자의 실수라고만 설명됐다. “오늘은 먼저 별지가 사람에 관한 기록인지 확인합니다.” 세드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그래서 아침부터 거울을 보는 대신 접수증을 보고 있습니다.” 수현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세드나는 웃지 않았다. 자료의 결론이 어떤 것이든 수현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수현 역시 겁이 났다. 서류가 자신과 관련 없다면 또 다른 먼 길을 돌아야 한다. 관련 있다면 왜 자신이 여기에 남겨졌는지 더 무서운 질문이 기다릴 것이다. 하웬은 열람 승인이 가능한 범위를 설명했다. 이름은 보이지 않게 가리고, 날짜와 종류 및 원장 간 대응 관계만 제공할 수 있었다. 개인 진료 내용이 있다면 본인 확인이나 적법한 대리 근거가 필요했다. “저는 제 기록인지 모르기 때문에 왔는데 제 기록인지 확인하려면 먼저 본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거군요.” “그 모순을 압니다.” 하웬이 말했다. “그래서 본인 관련성 심사라는 절차가 따로 있습니다. 보호받아야 할 정보가 다른 사람 것이면 접근을 제한하지만, 내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전박대하지는 않습니다.” 수현은 그 말을 적었다. 이곳의 제도가 다 잘못된 건 아니었다. 어떤 규정은 사람을 억누르는 도구로 쓰이고, 또 어떤 규정은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녀가 가려야 하는 것은 규정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는지였다. *** 두 서류의 비식별 표면에는 같은 시각 기호가 보였다. 그러나 둘은 같은 날 작성된 것이 아니었다. 관찰 요청은 E-17이 발생한 밤, 실패 통지는 그다음 날 오전으로 표시돼 있었다. 다시 시간 문제였다. 루세는 날짜 옆 기호를 보고 손을 멈췄다. “관찰 요청은 산지 교정 기준으로 적혀 있고 실패 통지는 왕도 기준이에요. 같은 종이 묶음이라고 시계까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수현이 물었다. “두 문서의 작성자는요?” “신청자는 가렸고, 실패 통지는 기관명만 볼 수 있습니다. 북문 임시 관측대.” “관측대에서 아무것도 못 봤다면 왜 실패했는지 기록했을까요?” 하웬은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가 있었다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망에 이상이 있다는 통지를 받아 나갔는데 이상이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검토할 수 있는 범위에는 비고 한 줄이 있었다. ‘현장 도착 시 대상 확인 불가. 인접 장소에서 미분류 생활 흔적 발견. 수거 금지, 현장 표식만 설치.’ 수현은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생활 흔적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물건을 찾았다는 뜻인가요?” “그런 가능성이 있죠. 그러나 무엇이었는지는 원본을 봐야 합니다.” “왜 수거하지 않았을까요?” “다른 사람의 것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현장에 위험한 반응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요.” 루세가 말했다. 하웬은 ‘수거 금지’ 표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 아래에는 작은 판정 부호가 따로 있었다. 왕립길드의 의료 기록이 아니라 경계 관측 규정이었다. 기술상 위험이 있을 때 실물을 옮기지 말고 좌표와 목격자 진술을 남기라는 뜻이었다. 수현은 휴대전화를 떠올렸다. 만약 그곳에서 자신의 휴대전화 같은 물건을 찾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시에 그 생각이 부끄러웠다. 낯선 세계에 현대적인 물건이 하나 더 있었다는 이유로 바로 자신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자기중심적인 판단이었다. *** 첫 조사가 끝난 뒤 세드나는 메이에게서 온 소식을 전달했다. 메이가 긴급 치료 약재를 따로 받아 낸 뒤 길드 안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했다. 치유사가 물약을 빼돌리려고 기록을 요구한다는 말이었다. “사실과 정반대네요.” 수현이 말했다. “메이가 직접 반박했습니다. 자기가 구입한 약재와 길드에서 지급한 약재를 구분해 제시했다고 해요.” 수현은 짧게 웃었다. “제가 없어도 잘하고 있네요.” “그렇죠.” “조금 섭섭할 정도로요.” 세드나는 그제야 웃었다. “좋은 섭섭함이군요.” 수현은 저녁에 메이에게 편지를 썼다. 해결해 주겠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어느 기록을 보았는지, 다음 주에 돌아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메이의 분쟁을 도와주겠다던 처음의 약속을 잊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메이가 직접 움직이는 동안 뒤에서 기다릴 줄도 알아야 했다. 답장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제 걱정은 너무 하지 마세요. 아직 청구서가 끝난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제가 회의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카이렌은 드디어 낮잠을 잤어요. 누가 깨우려 해서 젠이 막았답니다.’ 수현은 편지를 읽고 피식 웃었다. 전장에서는 그 어떤 용사가 마왕 앞에 서는 것보다 대장을 낮잠 재우는 일이 어려울지도 몰랐다. *** 다음 날 하웬은 별지의 원본에서 개인 신원이 아닌 기술 판독 가능한 부분만 추가 공개할 수 있다고 알렸다. 거기에는 거친 먹색으로 그린 사각형이 있었다. 사람 얼굴이나 발자국이 아니라, 흙 위에 남아 있던 얇은 판의 윤곽이었다. 크기는 손바닥보다 조금 작았다. 그 아래에는 ‘금속? 얇은 유리? 재질 미확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휴대전화 크기와 비슷하긴 하네요.” 루세가 말했다. 수현의 어깨가 굳었다. “제가 말하기 전부터 그걸 생각하고 있었죠?” “네. 하지만 물건이 확인된 건 아닙니다. 모양이 비슷한 물건은 많으니까요.” “제 전화는 여기 있어요. 제가 도착할 때부터 주머니에 있었고요.” 루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그 흔적이 수현 씨 물건의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죠.” 수현은 손바닥을 펴 보였다. 물건 자체가 아니라 압흔만 남은 곳. 그곳에 정말 누군가 있었다면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유일한 단서가 흙 위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면 누구라도 억울할 것이다. 하웬이 마지막 줄을 읽어 주었다. ‘현장 근처에서 방한천 조각 회수 요청 있었으나 대상 확인 없이 보류.’ 그때 루세가 고개를 들었다. “회수 요청은 있었다고요?” “네. 누구의 요청인지는 가려져 있습니다.” “그 요청 날짜와 요청 대상, 회수 금지 경고를 누가 발행했는지만 볼 수 있나요?” “목록으로는 가능합니다.” 수현은 부탁을 거듭하지 않았다. 질문을 줄이자 길이 보였다. 관찰 실패 통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의미였을 수도 있었다. 문 밖으로 나오는 길, 수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날 서울 사무실에서 봉투를 열었을 때부터 누군가 자신의 선택을 대신했다. 이제 그녀는 무엇을 보았는지부터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날 받은 회수 요청의 목록에는 낯선 한 줄이 있었다. ‘현장 흔적 인계 희망: 별도 기술안전팀 1건. 승인 보류.’ 그 기술안전팀의 명칭 아래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제0종점 사후 점검반.’ *** 하웬이 관측대의 옛 지도 보관 표를 찾아 주는 동안 수현은 복도 전시실에서 낡은 경계석 조각을 보았다. 돌에는 작고 얕은 홈이 났고, 옆에는 각 시대의 방향 기준을 설명한 문장이 붙어 있었다. 지금의 북쪽과 오래전 관리실 장부의 북쪽이 왜 달랐는지 알 것 같았다. 전시실 담당자 미르는 조각 앞에서 멈춰 섰다. “처음 이 경계석이 놓였을 때는 강이 지금과 다르게 흘렀어요. 사람들이 돌을 옮긴 게 아니라 강물이 방향을 바꿔 놓은 거죠. 나중에 새 돌을 세우고 번호를 다시 붙였습니다.” 수현은 웃었다. “강물한테 기록 변경 신청서를 받았으면 좋았겠네요.” “강물은 대답도 안 하겠죠.” “회사에서도 그런 상대를 많이 만났어요.” 미르는 잠시 웃다가 옛 지도 두 장을 보여 주었다. 한 장에서는 경계석이 다리 밑에 있었고 다른 장에서는 다리보다 한참 서쪽에 놓여 있었다. 두 지도 모두 그 시대에는 맞았을 것이다. 문제는 어느 지도를 사용했는지 쓰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럼 옛 사고의 위치를 지금 지도에 그대로 찍으면 완전히 다른 곳이 되겠네요.” “그럴 수 있어요. 특히 비가 많이 오던 해에는요.” 수현은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사건 당일에는 폭우가 있었다는 옛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정확한 시간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위험 구역이 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미르는 지도 아래에 적힌 범례를 보여 주었다. ‘현장 위험 반경’ 표시와 ‘관측 가능한 반경’ 표시가 서로 달랐다. 수현은 지금껏 두 기록을 하나로 읽었던 자신의 실수를 발견했다. 어떤 직원은 직접 걸어가서 표식을 세웠을 수 있고, 다른 직원은 멀리서 위험 구역의 가장자리를 적었을 수 있었다. “현장을 보았다라는 말도 경우가 다르겠네요.” “네. 직접 만졌는지, 멀리서 본 건지, 다른 사람 말을 받아 적은 건지 구분해야 하죠.” 수현은 또 하나의 질문을 메모했다. ‘현장 출동자의 관찰 거리.’ 오후에는 관측소 퇴직자의 구술 자료 목록을 검토했다. 그중 한 사람은 사고 당일 직접 출동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음 날 위험 구역을 점검했던 직원이었다. 수현은 본인의 동의가 있다면 일반적인 업무 절차를 여쭙고 싶다고 신청했다. 기관은 그를 불러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직접 사건 증언을 제공할 수 있는지는 장담하지 않았다. 얼마 뒤 작은 답장이 왔다. 퇴직자는 기억이 흐려 구체적인 사건 날짜에 대해 증언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신 오래된 교육 자료를 기증할 수는 있다고 했다. 수현은 그 선택을 존중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모든 기억을 요구할 권리는 없었다. 수현은 기증 자료의 표지에 적힌 문장을 옮겼다. ‘관찰 실패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절차가 아니라, 관찰 범위의 한계를 적는 절차이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가장 큰 위로를 받는 문장 중 하나였다. 자신이 아직 돌아갈 길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길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루세는 전시실의 구형 지도에 종이 화살표를 붙여 방향 기준을 다시 그렸다. 수현은 옆에서 숫자를 읽어 주었다. 두 사람은 계산을 세 번 다시 했다. 처음에는 관측대 위치가 기술청 위치보다 서쪽이었고, 그다음에는 남쪽이었다. 세 번째 계산에서는 기준석 이동을 반영하자 두 위치가 같은 위험 구역 안에 들어왔다. “아직 실제 지형에 대한 추정이죠?” 수현이 말했다. “네. 하지만 이제 어떤 지도 판본을 비교해야 하는지는 명확해졌습니다.” 세드나는 이 결과를 ‘사전 좌표 대조’로 기록했다. 정식 결론은 원본 지형표를 확보한 뒤에만 제출하기로 했다. 밖에서 아이들이 물웅덩이를 건너뛰며 놀고 있었다. 수현은 그들 중 한 아이가 작은 돌을 옮겨 길을 만든 모습을 바라봤다. 지도를 만드는 사람도, 경계석을 옮기는 사람도 결국 누군가였다.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경로가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그 경로를 설명할 자료를 남긴 사람들의 흔적은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 저녁 식탁에서 수현은 세드나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제가 왜 자꾸 물건 흔적에 집착하는 걸까요?” “고향과 연결된 물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제 휴대전화가 여기 있다는 걸 알면서도 비슷한 윤곽만 보면 마음이 먼저 움직여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수현 씨는 그 마음과 기록에 쓰는 결론을 구분하고 계시잖아요.” 수현은 웃었다. “이 세계에 와서 제일 많이 배운 게 자기 생각을 바로 믿지 않는 방법인 것 같아요.” 세드나는 따뜻한 차를 마셨다. “저도요. 예전엔 규정에 이름이 있으면 그 사람이 동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당사자에게 물어보게 됐죠.” “처음엔 귀찮으셨겠네요.” “매우요.” 두 사람은 웃었다. 세드나는 현장 직원들에게 의견을 묻는 일이 느리고 어려워도, 나중에 잘못된 결정으로 돌아오는 서류가 줄었다고 했다. 시간을 조금 더 쓰면 결국 시간을 아낄 때도 있었다. 창밖에서는 시장 종이 울렸다. 수현은 고향에서 휴대전화로 알람을 끄던 습관을 떠올렸다. 아직도 가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꺼진 화면을 만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물건 하나를 고향의 전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서울에는 분명히 자신을 기다리는 삶이 있을 것이다. 그 삶에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만큼은 기록의 도움 없이도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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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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