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62화
PAYLUA ORIGINAL · 제162화

162화. 북쪽 인계함의 빈 봉투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264자

오프라인 책장
북쪽 임시 인계함은 같은 건물 안에 있지 않았다. 왕도 북문에서 마차로 반나절 더 가야 하는 옛 검역 초소 뒤편에 있었다. 수현은 지도를 펼친 채 거리를 가늠하다가 접었다. 이 세계 지도에는 항상 적당히 생략된 산길이 있었다. 실제 마차 바퀴에는 하나도 생략되지 않는 산길이었다. “이번에는 제가 따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세드나가 먼저 말했다. “어째서요?” “공식 조사와 개인 귀환 조사의 비용을 분리하기로 했잖아요. 제 계약관리실 업무 범위 밖일 수 있습니다. 파견 여부 조회에 대한 공문만 보낼 수 있고요.” “제가 혼자 간다고 허가가 나는 건 아니죠.” “그것도 맞습니다.” 수현은 잠시 생각했다. 업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함정이었다. 도움을 주려던 사람이 고마워서 따라오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시간과 교통비를 공짜로 사용하게 된다. 한국에서 상담하던 현장도 그랬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무급 야근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럼 이동하지 말고 원격 목록조회부터 해요. 원본을 보려는 게 아니라 어떤 봉투가 있는지 확인할 차례잖아요.” “훨씬 빠를 겁니다.” “저도 배우고 있어요. 이천 걸음 가서 줄 한 줄 읽는 것보다 한 줄 먼저 읽고 가는 편이 낫다는 걸.” 세드나가 웃었다. 한참 뒤 루세가 서류를 받아 들고 투덜거렸다. “기술자들도 그걸 배우면 좋겠어요. 장비 여섯 개 들고 갔다가 도면에 없는 나사 하나 때문에 돌아오는 일이 좀 많거든요.” *** 북문 초소의 목록은 오후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관리 담당 소피아가 직접 작성한 짧은 회신이었다. ‘E-17 현장 출동 기록의 봉투 겉면은 보존. 내용물은 이관일 당시 미동봉으로 기재. 봉투 하단 인장 파손, 봉투 재봉합 이력 있음.’ 수현은 ‘미동봉’이라는 단어에 밑줄을 그었다. “아예 없었다는 뜻인가요, 옮기면서 빠졌다는 뜻인가요?” 세드나가 대답했다. “어느 시점부터 없었는지를 뜻하지 않아요. 이관받은 순간 안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루세는 봉투가 아니라 봉합 이력에 주목했다. “봉합 때 사용한 실의 종류가 기록돼 있을까요? 당시 공문서 실이면 어느 부서에서 봉합했는지 범위를 줄일 수 있어요.” “좋아요. 세드나 씨, 추가 질문은 세 개만 보내죠.” “세 개요?” “재봉합 날짜, 봉합 장소, 이관 사유. 한 번에 열 개씩 물으면 답도 열 개 중 하나만 돌아오더라고요.” 수현의 경험이 쌓이고 있었다. 복잡한 분쟁에서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진실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었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부터 묶어야 다음 질문이 정해졌다. 두 번째 회신은 저녁에 왔다. 재봉합은 북문 초소가 아니라 왕도 남문 회복안전 창구에서 했으며, 이관 사유에는 ‘개인정보 포함 별지 분리’라고 적혀 있었다. “별지는 있었네요.” 수현이 말했다. “적어도 당시 직원이 별지로 분류할 무언가를 보았다는 뜻입니다.” 세드나가 정정했다. 수현은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었다.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문구 하나 때문에 다시 반걸음 물러나야 하는 순간. 그러나 서둘러 두 걸음을 가면 어느 순간 절벽이 나오는 것도 이미 배웠다. *** 그날 밤 수현은 여관 복도에서 우는 아이 소리를 들었다. 손님 방이 아니라 부엌 뒤편이었다. 아이를 달래는 여인의 목소리와 그릇을 닦는 소리가 겹쳤다. 잠시 후 부엌문이 열리고 여관의 식모인 마라가 나왔다. 아이를 업은 채 세탁물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수현이 길을 비키자 마라가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잠을 깨웠죠?” “괜찮아요. 아이가 많이 아픈가요?” “아픈 건 아니고요. 젖니가 나서 밤마다 보채요. 안주인이 내일 아침 일찍 장을 보러 나가야 해서 제가 밤일도 맡았습니다.” 수현은 마라의 어깨가 한쪽으로 축 처진 것을 보았다. 부엌 청소에 아이 돌봄, 숙소 일까지. 누가 언제부터 그 일을 맡았는지 기록이 없을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은요?” “일 다 끝나면 쉬죠.” “그러니까 언제요?” 마라는 잠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조용히 웃었다. “그런 걸 물어 주는 손님은 드물어요.” 수현은 안주인을 곧바로 나무라지 않았다. 이 여관의 계약이나 근무 약속이 어떤지도 몰랐다. 대신 마라에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묻자고 했다. 마라는 오래 망설이다가 다음 날 오전 두 시간만이라도 아이를 보며 눕고 싶다고 했다. 마침 다른 조리 담당이 오후에 근무를 시작해 시간 조정 여지가 있었다. “제가 대신 말하면 더 곤란해질까요?” 수현이 물었다. “처음엔 같이 가 주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제 얘기는 제가 할게요.” 이튿날 아침 마라는 안주인 앞에 섰다. 수현은 그 옆에서 말없이 기다렸다. 안주인은 처음에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했지만, 마라가 지난밤에 맡은 업무를 하나씩 적어 보이자 입을 다물었다. 근무 시간이 문서에 나타나자 말로 듣던 것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장보기 시간을 나누고, 밤 근무 뒤에는 오전 휴식을 주기로 약속했다. 왕국 법령을 바꾼 것도, 세상이 뒤집힌 것도 아니었다. 아이를 업은 사람이 앉아 쉴 의자 하나가 생긴 것뿐이었다. 수현은 자신의 일터가 아닌 곳에서도 자꾸 그 일을 하게 되는 자신에게 조금 웃음이 났다. 그래도 이번에는 돈도, 권한도 없는 사람이 대신 결정한 게 아니었다. 마라가 직접 이야기했고 안주인이 응답했다. *** 소피아의 첫 회신을 읽은 뒤 수현은 북문 초소의 옛 배치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곳은 원래 병든 사람이 지나가던 검역 통로였다고 했다. 사람의 삶이 오가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오래된 봉투와 도장만 보존하고 있었다. 여관 안주인은 저녁상을 치우며 북문 초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 해 전까지 초소 주변에는 가족이 만날 수 있는 작은 대기 마당이 있었다고 했다. 전쟁 뒤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이들이 종종 그곳에서 밤을 보냈다. 반송과 실종의 구분을 묻는 수현을 보더니 안주인은 따뜻한 물을 내왔다. “관공서는 없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죠. 사람도 없고 물건도 없고 기록도 없다고요.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겐 없다는 말도 설명이 필요해요.” 수현은 찻잔을 손에 쥐었다. “그렇겠죠.” “누군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도장 하나만 보여 주면 속이 상하잖아요.” 안주인이 보리차를 따라 주며 말했다. “예전 초소에선 그래서 직원 한 명이 마당에 나와 설명을 했대요. 일한 대가가 적어서 오래 버티지 못했지만.” 수현은 다시 노트를 폈다. 사람에게 설명할 책임을 문서만으로 떠넘기는 곳에서는 민원이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신이 이 세계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도 카이렌의 잠을 지키고 메이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그때 옆 탁자에 앉은 여행 상인이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북문 초소의 옛 봉투를 찾으십니까? 제 아버지가 그곳에서 편지를 배달했습니다.” 수현은 반갑다고 아무 말이나 묻지 않았다. 상인이 공적인 기록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옛 우편 운반 절차를 일반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상인은 소금에 절인 견과를 집으며 대답했다. “병사들의 편지는 초소에 도착하면 외피와 속지를 따로 옮길 때가 있었어요. 겉봉투에는 발신 번호만 남기고 편지 내용은 관할실로 보내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 겉봉투만 찾아낸 사람은 내용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경우엔 속지를 옮긴 기록이 남았겠군요.” “제대로 했다면요.” 수현은 그 ‘제대로’라는 단어가 좋았다. 누군가 규칙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실제로 지켰다는 사실은 다르다. 하지만 규칙조차 없다면 어느 단계에서 잘못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줄어든다. 상인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작은 도장 통을 보여 주려다가 멈췄다. “아니, 이건 개인 물건이니 보여 주실 필요 없겠죠.” “맞아요. 도장을 만져 보면 유혹이 생기니까요.” 수현이 웃었다. “구경만 하고 근거처럼 취급하지 않을게요.” 그들은 한동안 왕도의 저녁 시장 이야기를 나눴다. 소문은 자료보다 빠르게 돌아다녔지만 조금만 다르게 전해져도 전혀 다른 사람이 잘못을 뒤집어쓰게 만들 수 있었다. 수현은 그날 상인의 이야기를 ‘일반적인 옛 절차 증언’이라고 별도 표시했다. E-17의 직접 증거처럼 인용하지 않았다. 밤에는 마라가 아이를 업고 나와 안주인과 약속한 오전 휴식이 지켜질지 걱정했다. 안주인은 다른 조리 담당에게 업무를 넘겨 주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수현은 옆에서 서식 하나를 함께 정리해 주었다. 서식에는 시작과 끝 시각, 아이 돌봄 업무가 포함되는지, 쉬는 동안 누가 손님을 받는지가 적혔다. 어떤 일들은 거대한 정책보다 서로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 나아졌다. 마라가 말했다. “제가 쉬면 다른 분이 더 힘들지 않을까요?” “그럼 나눌 방법을 같이 정해야죠. 한 사람이 쉬려면 다른 한 사람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전제를 버려야 해요.” 두 사람은 한참 표를 살폈다. 안주인은 아침 장보기를 하루 걸러 진행하는 방법을 제안했고 다른 직원은 낮 시간 창고 정리를 맡겠다고 했다. 수현이 정한 것은 없었다. 각자가 자기 일을 설명하면서 비어 있는 시간을 함께 찾았다. 수현은 방으로 돌아와 창밖을 보았다. 마라가 아이를 재운 뒤 처음으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수현에게는 그 장면이 작은 결말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소피아에게 보낼 추가 조회서를 다시 읽었다. ‘봉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의 기록, 비게 된 경위의 기록을 구별해 달라.’ 이번만큼은 정확히 묻고 있었다. *** 수현은 소피아에게서 받은 목록을 세드나와 다시 확인했다. 겉봉투가 재봉합된 날짜는 당시 담당 직원의 교대 기록과 하루 차이가 있었다. 서류를 만든 시간과 실제로 봉합한 시간이 다를 수 있었다. 세드나는 날짜를 바로잡지 않고 각 원장의 날짜 기준을 나란히 적었다. “틀린 날짜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어떤 날짜인지 구분하는 거군요.” “그렇죠. 간단한 수정이 더 큰 오해를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루세가 서류 봉합용 실의 사진을 살피며 말했다. “여기 쓰인 회색 실은 봉인에 사용하는 붉은 실과 달라요. 내용을 숨기려고 묶은 게 아니라 운송 중 찢어진 봉투를 보강했을 수도 있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흔적은 범죄의 증거로 보이지만 사실은 평범한 수리의 흔적일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해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 찢어졌는지와 무엇을 분리했는지는 여전히 확인해야 했다. 그녀는 조회서 마지막에 ‘봉합 방식의 일반적 용도’라는 말을 추가했다. 특정 직원의 이름을 바로 공개해 달라는 요구는 넣지 않았다. 업무를 수행한 사람의 행위와 개인적인 삶을 구분하는 일이 필요했다. *** 오후에 회복안전 창구에서 온 답변은 한 장이었다. ‘개인정보 포함 별지 분리’는 실제 개인 정보를 담았다는 판단이 아니라, 유입 대상이 사람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할 때 사용하는 예방적 표식이었다. 루세가 물었다. “실제로 사람을 본 직원이 있었다는 거죠?” “아니요.” 수현은 먼저 대답했다. “사람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겠죠.” 세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신의 뒷면에 작은 안내가 붙어 있었다. 분리 별지가 왕도 중앙 회복·안전 서고의 ‘비식별 임시 확인함’으로 이관됐다는 것. 동일한 곳에 있지만 더 높은 접근 제한을 가진 보존함이었다. “그럼 먼저 실제 서류가 있는지만 물어야겠네요.” “그리고 접근 사유를요.” 수현은 메이가 처음 쓴 민원 원문에서 시작된 자신의 소환 이의 접수번호를 확인했다. 어떤 잘못된 배정 때문에 여기에 왔는지 아직 몰라도, 자신의 기록을 보려는 이유는 충분히 분명했다. 그녀가 공식 신청서의 이유란에 적은 문장은 길지 않았다. ‘사전 동의 없이 현장으로 이동된 당사자로서, 그 이동이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문의 존재와 본인 해당 여부만 확인하고자 함.’ 루세는 옆에서 종이 끝을 손으로 눌렀다. “정말 이름만 확인하고 멈출 겁니까?” “이름이 맞으면 그다음에 할 일을 정할 거예요. 남의 이름이면 거기서 멈추고요.” “실망할지도 모르잖아요.” “실망은 제가 감당하면 됩니다. 남의 정보까지 가져갈 이유는 없죠.” 해가 질 무렵 하웬의 새 통지가 도착했다. 비식별 임시 확인함의 목록에는 같은 사건일로 분류된 서류가 두 건 있었다. 하나는 ‘유입 대상 관찰 요청’이었다. 다른 하나는 ‘관찰 실패 통지’였다. 한쪽에는 신청자의 이름이 가려져 있었고 다른 쪽에는 신청자란 자체가 비어 있었다. 수현은 두 제목을 나란히 놓았다. 무언가가 현장에 나타났다고 해서 누군가 그것을 보았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 보러 갔다고 해서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제 그녀는 그 두 서류가 왜 따로 남았는지 알아야 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62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6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