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이 경계 유입 관리실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건물보다 문 앞의 안내판이었다.
‘허가 없는 출입 금지. 신고 접수는 오른쪽. 분실물 반환은 왼쪽.’
그 아래 누군가 연필로 조그맣게 써 두었다. ‘사람이 분실물이라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수현은 그 글씨를 한참 바라보았다. 예전에 서울의 사무실에서 상담하던 사람들이 종종 비슷한 말을 했다. 일하다가 다쳐서 자리를 잃거나 계약서 한 장 때문에 이름이 지워진 사람들이었다. 그때는 최소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돌아갈 집이라도 있었다.
“저 글, 원래 있었나요?”
“한동안 지워도 다시 쓰여서 포기했다더군요.” 세드나가 안내판을 지나며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분실물 신고가 아니라 기록 열람입니다.”
“알아요. 마음속으로만 따지고 있어요.”
“수현 씨가 마음속으로만 따지는 날도 있군요.”
루세가 고개를 숙여 웃었다. 그는 등 뒤에 도구 상자 대신 가벼운 가죽 가방 하나를 메고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기계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 자와 유리판, 봉인 번호를 옮겨 적을 종이만 들었다.
관리실은 왕도 중앙 회복·안전 서고의 부속 건물이었다. 바깥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가 있었고 안에는 대기표를 뽑는 작은 탁자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관리실이라는 말보다 민원실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창구 위에 걸린 나무패가 셋이었다. 물품, 사람, 미분류.
수현은 마지막 글자를 두 번 읽었다.
“사람도 아니고 물품도 아니라는 뜻이에요?”
“구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옆 창구의 남자가 말했다. “오늘 여기 오신 분입니까?”
남자는 푸른 실로 소매 끝을 꿰맨 회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이름패에는 ‘하웬’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록 열람 책임자였다.
수현은 세드나가 준비해 준 접수증을 내밀었다. 자신의 사전 동의 없이 이루어진 현장 확인 배정 사건, E-17의 일부 원장을 확인할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다는 심사 결과도 함께 제출했다. 하웬은 서류를 세 번 넘겼다. 마지막 장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열람을 허가한 곳은 왕도 공동심사반입니다. 우리 원장은 회복·안전 행정 소속이고요.”
“관할이 다르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보존 여부를 확인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신원정보까지 보여 드리려면 여기서 다시 범위를 심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죠. 지금 확인 가능한 것부터요.”
하웬은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창구에 오자마자 원본을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수현도 속으로는 그럴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급하게 확보한 위법한 자료는 자신에게도, 기록에 등장하는 낯선 사람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접수증에 새 도장이 찍혔다. ‘소장 목록 한정.’
***
원장실에 들어간 순간, 수현은 자신의 휴대전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만졌다. 오래전 방전된 기계였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는 그게 귀환을 증명하는 가장 뚜렷한 물건 같았다. 지금은 고향의 날짜도 알려 주지 못했다.
원장실 벽에는 커다란 표가 걸려 있었다. 왼쪽부터 ‘감지’, ‘임시 보호’, ‘신원 확인’, ‘인계’였다. 각 단계마다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고 구멍마다 색깔이 다른 나무핀이 꽂혀 있었다.
“그럼 감지됐다고 해서 사람이 들어온 건 아니겠네요.”
“맞습니다.” 하웬이 말했다. “차단망이 흔들리거나 기압의 특정 변화가 감지돼도 접수번호를 줍니다. 현장 직원이 확인할 때까지는 미분류죠.”
루세가 물었다. “신호만 들어온 경우도 있습니까?”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빛 반응, 온도, 이물질, 생체에 가까운 패턴까지. 생체에 가까운 패턴이라고 실제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을 차례였다.
하웬은 먼지 냄새가 나는 장부 한 권을 펼쳤다. E-17이 발생한 날에 대응하는 날짜를 찾는 데 꽤 오래 걸렸다. 해안 조수시계와 관리실의 일출 기준 날짜가 달라 추가 대조표가 필요했다. 세드나가 대조표의 작성 연도를 확인하고, 루세가 당시 교정 주석에 화살표를 그렸다.
마침내 세 칸이 나왔다.
‘경계 변동 감지: 1.’
‘현장 유입 대상 특정: 보류.’
‘보호대상 임시 접수: 0.’
수현은 마지막 숫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영이에요?”
“장부 원본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와 상관없는 사건일까요?”
“그건 이 원장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관리실이 어떤 유입을 접수했다면 그 숫자가 맞고, 접수하지 못했다면 영인 채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
“기록이 없다는 게 사람이 없었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하웬은 손가락을 한 줄 아래로 옮겼다. 거기에는 ‘후속 조사 지시: 보류, 담당실 응답 대기’라고 쓰여 있었다. 수현은 그 문구를 듣자마자 오래된 제0회신함을 떠올렸다. 보내지 않은 답장, 받지 못한 통지, 기다리는 사람에게 완료라고 찍힌 도장. 세상은 정말로 서류 한 장만큼 잘못될 수 있었다.
***
복도에서 소란이 났다. 두 청년이 커다란 천 꾸러미를 들고 올라오다가 좁은 계단 모퉁이에서 부딪힌 것이다. 한쪽이 균형을 잃었고 나무상자가 돌계단을 구르다 수현의 발끝에서 멈췄다.
“괜찮으세요?” 수현이 상자보다 먼저 사람에게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청년이 대답했지만 오른팔을 펴지 못했다.
하웬이 급히 뛰어나왔다. “이런, 또 운반조 인원이 둘뿐이군. 위층 보존함은 원래 세 명이 옮겨야 하는데.”
수현이 물었다. “상자 하나에 세 사람이 필요한 이유가 무게 때문인가요, 통로 때문인가요?”
“무게도 무게지만 계단이 굽어 있습니다. 뒤에서 방향을 잡아 주는 사람이 꼭 필요해요.”
“그런데 두 명만 배정한 거예요?”
청년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세 번째 사람은 지난주부터 다쳐서 쉬고 있습니다. 인원을 보충해 준다고 했는데 오늘도 안 왔어요.”
수현은 상자의 모서리를 만지지 않았다. 괜히 돕겠다고 들었다가 증거물을 파손하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대신 통로를 비우고 사람을 부르는 데 손을 보탰다. 간호 담당이 올라와 청년의 팔을 살피는 동안 하웬은 운반을 즉시 중단시켰다.
“제 기록을 보시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괜찮아요. 팔이 먼저죠.”
청년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손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부끄럽네요. 우린 늘 상자부터 확인하라고 배웠는데.”
“상자는 도망가지 않잖아요.” 수현이 대답했다. “사람은 다치면 원래 하던 일을 못 하고요.”
그날 오후 관리실은 운반 기준을 다시 적었다. 세 명 배정 규정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사람이 없을 때 작업을 멈출 수 있다는 문장이 없었다. 세드나는 담당자의 동의를 받아 중단 절차와 대체 운송 일정부터 만들었다. 수현은 이곳의 노동 규정을 대신 정하지 않았다. 그저 일하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던 위험을 말로 꺼낼 시간을 주었다.
***
그날 점심 무렵 하웬은 별도의 열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관리실에서 쓰는 ‘대상’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 오해를 부르는 일이 많았다는 설명이었다. 새 직원들은 무생물 반응부터 부상자 보호 요청까지 같은 창구에서 취급했지만, 잘못 분류된 뒤에 회복이 어려운 사건들이 있었다.
수현은 교육실에서 낡은 사례집을 펼쳤다. 첫 장에는 겨울날 얼어붙은 하수관에 비친 빛이 사람의 체온으로 감지됐던 사건이 있었다. 두 번째 장에는 실제 실종된 등산객이 낙엽 아래에서 발견됐지만 처음에는 장비 고장으로 처리됐던 사건이 있었다. 결과가 정반대인 두 사례에 똑같이 ‘경계 변동’ 도장이 찍혀 있었다.
“왜 사례집 제목이 고장 보고서가 아니라 수신자 보호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교육을 맡은 늙은 기록원 베르트가 대답했다. “물건인지 사람인지 몰라서 생기는 사고가 더 큽니다. 물건이면 한 번 더 확인하면 되지만 사람이라면 목숨이 걸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확인 전에 사람이라고 쓰면 다른 사람이 그 숫자 때문에 피해를 봅니다.”
“그래서 미분류가 필요한 거군요.”
“그렇죠. 하지만 미분류라고 적었다면 끝까지 확인하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수현은 공책을 꺼냈다. ‘미분류는 책임 면제가 아니라 확인할 책임의 시작.’ 누가 쓴 격언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남는 문장이었다.
베르트는 오래된 주황색 카드를 보여 주었다. 미분류 사고 뒤에는 누구든 긴급 후속 확인을 신청할 수 있었다. 다만 같은 사건에 여러 기관이 신청했다면 서로의 기록을 섞지 않고 첫 관찰을 따로 보존하도록 권고했다. 과거 E-17 사건에는 그 권고가 적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엔 그 규칙이 없었나요?”
“규칙은 있었지만 기록원들이 매년 바뀌었어요. 업무를 인수하는 교육도 제각각이었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악의가 있어야만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력 부족, 애매한 규정, 바뀌는 분류표가 한데 얽혀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로 책임을 흐려서도 안 됐다.
교육실 뒤편에서 졸던 젊은 직원이 벌떡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교육에 참석한 사람이었다. 베르트가 얼굴을 찌푸리려는 순간 수현이 조용히 물었다.
“야간 근무를 마친 뒤 바로 교육받게 하는 게 원래 일정인가요?”
“원래는 교대 뒤 휴식이 있는데, 이번 주에 교육 대상자가 많아서요.”
“그럼 학습한 내용을 실수 없이 적용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늙은 기록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교육 담당자에게 연락해 야간 직원은 다음 교육으로 옮겼다. 청년은 얼굴을 붉히며 감사를 표했다.
수현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제게 고마워할 일 아니에요. 졸음 때문에 실수하면 곤란한 건 여러분이잖아요.”
청년은 가방을 챙기면서 웃었다. “저희 관리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이름을 잘못 옮기는 겁니다. 오늘은 차라리 집에 가서 자는 편이 낫겠네요.”
그 말이 수현에게 오래 남았다. 자신도 한 번 잘못 분류된 사람으로서 몇 달을 살아왔다. 이름 하나 잘못 옮기는 일이 사소해 보일 수 없었다.
오후에 베르트는 수현에게 당시 제0종점과 관리실이 서로 다른 시간표를 사용했다는 낡은 교본을 건넸다. 사건 당일이 같은 날인지조차 확정하기 어렵다는 앞선 문제와 연결되는 자료였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분명히 표시했다. “이건 보존 자료일 뿐, 실제 그날 현장에서 모두 이대로 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수현은 교본 첫 장에 ‘방법 설명과 실제 실행은 다르다’고 적었다. 수현에게는 그 말이 꼭 필요한 경고였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간절해서 모든 단서를 집으로 가는 길처럼 읽어 버릴까 두려웠다.
관리실 계단을 내려오는 길, 베르트가 뒤에서 불렀다. “한국에서 오셨다면서요. 그곳에도 이런 실수들이 있습니까?”
“이런 마법 기록은 없죠. 하지만 사람의 이름과 숫자를 바꾸는 실수는 많아요.”
“그럼 다른 세계라고 아주 다르진 않군요.”
수현은 웃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할 말이 좀 남아 있는 모양이에요.”
***
늦은 점심은 차가운 보리죽이었다. 세드나는 숟가락을 놓고 오늘 기록을 정리했다. 루세는 비상 분기 기록과 유입 원장을 종이 위에 두 줄로 그렸다. 한 줄에는 장치 반응 한 번, 다른 줄에는 경계 변동 감지 한 번. 사이에 연결되는 선은 그리지 않았다.
“연결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연결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이에요. 두 기록의 시계가 달라요. 같은 날의 비슷한 시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줄을 잇기엔 부족합니다.”
“그럼 무엇을 찾아야 하죠?”
“관리실이 변동을 감지했을 때 누가 현장에 나갔는지, 무엇을 보고 돌아왔는지요. 그 확인 보고는 별도로 있어야 합니다.”
세드나가 고개를 들었다. “후속 조사 지시가 보류였잖아요.”
“보류되기 전의 최초 현장 통지는 남아 있을 수도 있어요.”
하웬이 돌아온 것은 해 질 무렵이었다. 그는 수현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원장을 바로 열 수는 없지만 관련 접수번호의 목록을 추가 조회할 수 있다는 승인서였다.
“현장 파견 기록은 따로 보관합니다. 누군가 다쳤거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면 본인 외에 열람할 수 없는 부분도 많겠죠. 대신 당시 파견이 있었는지 여부는 회신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첫날부터 모든 답을 얻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웬은 미묘하게 웃었다. “모든 답은 못 드리지만, 적어도 틀린 답을 덜 드리도록 해 보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석양이 짙었다. 수현은 방전된 휴대전화를 꺼내 보려다가 다시 넣었다. 서울의 거리에는 지금쯤 누군가 횡단보도 앞에서 퇴근길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기는 지구와 닮은 것이 너무 많고 또 너무 달랐다.
그날 밤 받은 추가 조회 회신에는 새 한 줄이 있었다.
‘E-17 대응 현장 출동: 기록 1건. 결과 보관 위치: 북쪽 임시 인계함.’
수현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이제는 적어도 누군가 직접 현장을 보러 갔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를 보았는지, 무엇을 보았는지는 다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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