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짜리 시험 규칙이 시행된 지 나흘째 되는 아침, 제7원정대의 보수 지급표가 도착했다.
수현은 기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조금 들떴다. 기록이 실제 돈으로 이어지는 첫 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카이렌이 아침을 먹으며 웃었다.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급여 명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거를 볼 수 있다면요.”
“수현 씨는 꼭 마지막에 조건을 붙이는군요.”
“직업병이에요.”
그러나 봉투를 열어 본 뒤 수현의 얼굴은 굳어졌다.
[근무 효율 조정금: 마이너스 은화 세 닢.]
이유는 ‘출정 중지 및 치료 대기 시간 누적’이었다.
“휴식 시간을 기록했더니 급여를 깎았다고요?”
젠이 목소리를 높였다.
데런은 자기 몫도 확인했다. 마차 점검 시간은 ‘비전투 대기’로 분류돼 있었다. 전에는 근무 기록이 없으니 공제될 일도 없었다. 이제 기록이 생기자 누군가 숫자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면 차라리 안 적는 게 낫겠어요.”
젠이 말했다.
수현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느끼는 건 이해해요. 그런데 기록을 없애면 실제로 일한 시간도 사라져요. 먼저 계산식부터 보죠.”
카이렌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제가 휴식하자고 한 탓입니다.”
“아니요. 우리가 합의한 시험 규칙대로 기록했는데, 그 기록이 어떤 항목에 반영되는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거예요.”
“결과는 같습니다.”
“당장은요. 그 결과가 정당한지는 별도 문제죠.”
수현은 지급표를 펼쳐 공제 항목에 밑줄을 그었다.
***
브레그는 예상보다 쉽게 서류를 보여 주었다. 놀랍게도 공제는 그가 직접 지시한 일이 아니었다.
“중앙 정산실이 계산했어. 새로 들어온 업무 기록 양식을 기존 성과표에 맞춘 모양이다.”
“출정 대기와 실제 휴식이 같은 항목으로 잡혔네요.”
수현이 말했다.
브레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기록이 없을 땐 통째로 출정일로 계산했지. 지금은 네가 시간별로 적으라고 했잖아.”
“시간별로 적는 목적은 사실을 보기 위해서였죠. 쉬었다는 사실을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내가 만든 규칙이 아니라고.”
브레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현도 잠깐 숨을 골랐다. 브레그를 악당으로 몰아간다고 계산식이 바뀌진 않는다.
“네. 그래서 감독관님이 승인한 시험 운영 규칙과 중앙 정산 방식이 충돌한다고 보고하려고요. 보고서에 같이 서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현장을 관리하는 사람이잖아요. 중앙에서 우리 상황을 모르고 계산했다면 현장 의견이 필요하죠.”
브레그는 마치 처음으로 자신이 해결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멍하니 바라봤다.
“나도 그 공제가 타당하다고 보진 않아.”
“그럼 그 사실을 적어 주세요.”
그는 한참 고민하다 펜을 들었다.
***
수현은 브레그의 서명을 받아 들고 나오는 길에 젠을 만났다. 그는 급여표를 손에 쥔 채 보급창고 앞에 서 있었다.
“왜 쉬었는지까지 다 보고해야 하는 거라면, 아픈 걸 그냥 숨길까요?”
“그러면 안 돼요. 부상 때문에 일을 못 했다면 그 사실이 보여야 필요한 지원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돈이 깎였잖아요.”
“그래서 바로잡아야죠. 쉰 시간을 감추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다음 사람도 같은 일을 겪어요.”
젠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수현 씨는 열흘만 일하면 나갈 수 있잖아요. 우리는 여기 계속 있어야 해요.”
수현은 말문이 막혔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자신의 위험과 그들이 감당할 위험은 달랐다.
“맞아요. 그건 제가 잊으면 안 되는 부분이에요.”
“그럼 우리가 계속 기록하길 바라세요?”
“제가 바란다고 결정할 수는 없어요. 여러분이 위험을 알고 선택해야죠. 대신 저는 기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공제가 확정되지 않도록 가능한 절차를 확인하겠습니다.”
젠은 급여표를 접었다.
“그럼 조금 더 해 볼게요. 한 번만 더 믿어 보죠.”
수현은 그 말을 쉽게 감사하다고 받을 수 없었다. 누군가의 월급을 걸고 받아낸 신뢰였다. 그녀는 자신의 수첩에 ‘기록 참여자의 불이익 방지’라고 크게 적었다.
잠시 뒤 젠이 돌아왔다.
“그리고 하나만 더요. 오늘 저녁에는 다 같이 밥 먹어요. 수현 씨도.”
“왜요?”
“어제도 보고서 쓴다고 늦게 드셨잖아요. 우리한테만 쉬라고 하고 본인은 안 쉬면 반칙이죠.”
수현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젠은 그제야 활을 메고 훈련장으로 돌아갔다. 수현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말이 사람을 돕는 도구인지, 또 다른 명령이 되는지는 상대의 표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정오가 되자 마을에서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북쪽 수로의 둑이 무너져 농부들이 외딴 제방에 고립됐다는 소식이었다. 비는 계속됐고 임시 다리는 한 사람씩 건너기도 위험했다.
젠은 활을 챙겼다. 카이렌도 검을 들었다. 수현은 어제 정한 출정 확인표를 펼쳤다.
“목적은 고립자 이동 지원, 위험은 범람과 추가 붕괴. 현장 지휘는 카이렌 씨. 철수 기준은 둑 균열이 더 벌어질 때.”
“마물이 나타나면요?”
“그때는 별도 판단이 필요하겠죠. 지금 구조 중인 사람을 우선 살려야 해요.”
카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카는 팔이 완전히 낫지 않았기 때문에 후방 보급을 맡았다. 데런이 마차에 로프를 싣고, 메이는 다른 의무병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수현은 현장으로 가더라도 싸우지 않고 안전 구역에 머무르겠다고 다시 확인했다.
현장에는 이미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둑 위쪽에서는 물이 흙을 깎아 내리고 있었다. 카이렌은 처음엔 직접 뛰어들려 했다. 그러나 강가에 선 데런이 외쳤다.
“저쪽 바닥이 비었어요! 한 번에 여럿이 오르면 무너집니다!”
카이렌은 멈췄다. 잠깐뿐이었지만 그 멈춤이 중요했다.
“그럼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
데런이 건너편의 오래된 물레방아를 가리켰다. 수로 위에 남은 돌기둥을 이용하면 긴 밧줄을 고정할 수 있었다.
젠이 화살 끝에 가벼운 줄을 묶어 쏘았다. 반대편 주민이 줄을 받았고, 데런이 그 줄로 굵은 로프를 당겼다. 카이렌은 사람들을 하나씩 도왔다. 그는 검보다 팔로 더 많은 사람을 살렸다.
***
수현이 있던 뒤쪽 임시 대피소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한 농부가 어린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아이는 추위에 떨었다. 메이는 마력을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처치부터 했다. 젖은 옷을 벗기고 따뜻한 담요로 감싼 뒤 호흡을 살폈다.
“마법을 쓰면 더 빨리 낫지 않나요?”
농부가 물었다.
“필요하면 쓰겠습니다. 지금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게 먼저예요.”
메이가 답했다.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안심했다. 메이도 모든 문제를 자기 마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고 있었다.
“의무병이 곧 도착할 거예요.”
수현은 농부에게 말했다.
그는 수현의 옷차림을 유심히 보더니 물었다.
“당신은 마법사입니까?”
“아뇨. 계약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왜 구조하러 왔소?”
“다들 다치지 않고 일할 방법을 찾는 게 제 일이거든요.”
농부는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마을 둑도 계약을 좀 봐 주시오. 고치는 사람들이 매번 돈도 못 받고 사라져.”
수현은 웃으려다가 멈췄다. 농부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 일은 제 계약 범위 밖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어디에 물어봐야 하는지 같이 찾아볼 수는 있겠네요.”
실망시키지 않으면서도 할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 것. 이곳에서 수현이 매일 배우는 기술이었다.
***
구조가 끝났을 때 마을 사람 스물한 명이 안전지대로 옮겨졌다. 누구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데런의 손에는 물집이 잡혔고 젠은 활줄에 어깨를 긁혔다. 카이렌도 허리가 아파 잠시 주저앉았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럼 괜찮은 이유를 적어 주세요.”
수현이 농담처럼 답했다.
카이렌은 웃다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자기 상태를 말했다. 걸을 수 있고, 큰 출혈은 없지만 무거운 물건을 들면 통증이 있다고 했다.
수현은 기록을 메이에게 넘겼다. 진료와 업무 제한 판단은 치유사가 할 일이다.
“오늘은 무거운 장비를 들지 마요.”
메이가 말했다.
“명령입니까?”
“치유사의 판단입니다.”
카이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선 그럴수록 팀이 더 빨리 움직였다.
***
마을에서 야영지로 돌아오는 길에는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농부 하나가 수레를 끌고 그들을 따라왔다. 수레에는 삶은 감자와 거친 빵이 가득했다.
“여기, 구해 준 사람들 먹으라고 가져왔소.”
데런이 반색했지만 수현은 먼저 카이렌에게 물었다.
“이런 선물은 받아도 되는 거예요?”
카이렌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마을 사람들이 감사하다면….”
브레그가 없는 자리에서 수현이 대신 규정을 정할 수는 없었다. 카이렌은 길드의 마을 지원 규칙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그동안 농부는 빵 하나를 메이에게 내밀었다.
“그 애가 열을 내렸다고, 어미가 꼭 이걸 전하라더구먼.”
메이는 망설이다 두 손으로 받았다.
“잘 먹겠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우리가 해야지.”
수현은 선물의 가치가 크지 않은지, 개인적으로 받은 것인지 기록만 남기기로 했다. 모두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일이더라도 나중에 오해가 생기면 곤란할 수 있었다.
젊은 농부 한 명이 뒤에서 머뭇거리다 말을 걸었다.
“혹시 우리 제방 수리 인부들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습니까?”
“자세한 조사까지는 제 역할 밖일 수 있어요. 무슨 문제가 있는데요?”
“일을 마친 뒤 준다고 한 돈이 자꾸 늦어요. 흙자루 값이 부족해서라는데 그럼 왜 처음엔 다 준다고 약속했는지 모르겠어요.”
수현은 길드 임시 계약서를 떠올렸다. 금액만 적고 지급일이 없는 계약은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만든다.
“그때 정한 지급일이 있었어요?”
“공사가 끝난 날이라고 했어요.”
“언제 끝났죠?”
“엿새 전에요.”
“완료됐다는 걸 확인한 사람은요?”
“마을 촌장과 관리소 사람입니다.”
수현은 가능한 범위에서 담당 기관에 지급을 문의할 내용을 적어 주었다. 정식 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설명했다.
“계약 원본을 가지고 계시면 본인이 보관하세요. 내가 가져가지는 않을게요.”
“이 종이를 내면 받을 수 있습니까?”
“확답 못 해요. 그래도 누가 언제 얼마를 주기로 했는지 정리해서 물어볼 수는 있어요.”
농부는 종이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 정도만 해도 좋소. 지금껏 누가 질문할 순서도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카이렌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용사님’이라는 말 대신 누군가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건 검만으로는 안 되는군요.”
그가 말했다.
“검이 필요한 순간도 있죠. 오늘은 그랬잖아요.”
“그렇지만 여섯 달 뒤에도 그 제방에서 사람들이 안전하려면 다른 일이 필요하겠죠.”
수현은 그를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녀의 말을 따라 하는 대신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카이렌은 웃었다.
“그러면 내일 감독관에게 마을 제방 점검 주기를 물어보겠습니다.”
“그것도 좋은 질문이네요.”
야영지에 도착하자 데런은 감자 하나를 손에 들고 선언했다.
“어쨌든 오늘은 다들 제시간에 식사해야 합니다.”
젠이 손을 들었다.
“찬성!”
메이도 웃으며 동의했다. 수현은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확인표보다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밤에 돌아온 수현은 급여 공제에 관한 회신을 받았다.
[시간별 기록 도입에 따른 공제액 산정 방식 재검토. 결산 전까지 공제 확정 보류.]
“돈이 돌아온 거예요?”
젠이 물었다.
“아직 아니에요. 깎겠다고 확정한 상태가 멈춘 거예요.”
“언제 끝나요?”
“결산 전에 답을 달라고 다시 요청했어요.”
젠은 영 못 미더운 얼굴이었다. 수현도 그 마음을 알았다. 서류를 믿으라고 하는 동안 사람들은 오늘 밥값을 내야 했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오늘 구조 활동에 실제로 들어간 시간과 비용도 같이 청구해 봅시다. 공제만 막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한 일을 제대로 남겨야죠.”
데런이 웃었다.
“밧줄도 닳았는데 그것까지요?”
“네. 밧줄이 공짜로 생기나요?”
“아니죠.”
“그럼 적어야죠.”
모두가 웃었다.
다만 수현은 모닥불 옆에 도착한 작은 전령 봉투를 보고 웃음을 거뒀다.
[제7원정대 시험 규칙 중간 평가 참석 통지. 평가관: 에드갈.]
에드갈. 최초 편성 당시 감독관으로 기록된 이름이었다.
수현은 봉투를 뒤집었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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