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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58화
PAYLUA ORIGINAL · 제158화

158화. 라비엔의 서명 앞에 놓인 의자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92자

오프라인 책장
라비엔이 서명하기로 한 날, 북방 회복소의 창문에는 밤새 내린 눈이 붙어 있었다. 오르카는 이른 아침부터 장갑을 벗었다 꼈다 했다. 싸움터에서 방패를 잃는 순간에도 이런 긴장은 느끼지 못했다. 오늘은 오래전 동료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자리였고, 오르카는 그 선택을 지켜보러 온 사람이었다. 카이렌이 동행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라비엔은 전 원정대장이 아니라 현재 계약을 검토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르카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고, 서류를 대신 읽어 달라는 부탁만 받았다. 면담실에는 라비엔, 행정실장 베라, 계약 담당 세드나가 입회했다. 세드나는 이번 회의에 수현이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이수현은 현재 제7원정대의 유급 자문이 아니고 북방 계약에 대한 자동 대리 권한도 없다. 라비엔이 직접 서류를 검토하며 필요한 경우 별도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베라가 세 종류의 문서를 펼쳤다. 옛 제7원정대 전출 통지, 북방 회복소 기록 협력 계약, 그동안의 치료·숙식 정산표. 라비엔은 이를 보자 천천히 숨을 쉬었다. “전에 한 번 다 읽으려고 했습니다.” “오늘은 끊어서 보셔도 됩니다.” 베라가 말했다. “네. 먼저 제가 일한 시간부터 보겠습니다.” 기록 협력 계약에는 하루 네 시간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 야간 호출이 있었다. 라비엔은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보관하던 별도 기록을 내밀었다. 서고의 온도를 확인하고, 급히 들어온 환자 인계 서류를 옮기고, 병동 명부가 잘못됐을 때 직원에게 알려 준 날짜들이었다. “이 시간을 모두 근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까?” 계약 담당이 물었다. 라비엔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제가 실제로 일을 한 시간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침대에서 기다리기만 한 시간은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따로 설명해 주세요.” 오르카는 놀랐다. 예전의 라비엔이라면 모두 참거나 모두 싸우려고 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르겠는 부분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 숙식 정산은 더 복잡했다. 회복소는 치료 중인 환자에게 숙소를 제공하면서 기록 협력 계약자에게는 일부 비용을 공제했다. 문제는 라비엔이 환자였던 기간과 기록 협력자로 일했던 기간이 정확히 나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베라는 입원실 번호와 계약 개시일을 따로 확인했다. 어떤 날은 치료실에 누워 있었는데도 야간 기록 협력자로 표시돼 있었다. 라비엔은 그날 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급 내역에는 같은 날 소액의 협력 수당이 적혀 있었다. “당시 다른 사람이 제 이름으로 대신 일했을 수도 있어요.” 라비엔이 말했다. “확인해야겠군요.” 베라가 대답했다. “그걸 근거로 제게 비용을 청구하진 말아 주세요. 누가 일했는지 모르는 상태잖아요.” 베라는 공제 여부를 심사 보류로 돌렸다. 일부 야간 업무 수당은 당사자 기록과 부서 일지가 일치해 지급 대상임을 인정했다. 지급 금액의 최종 계산은 다음 심사까지 남겨 두었다. 오르카는 의자 손잡이를 꽉 쥐었다. 동료에게 당장 축하해도 되는지 고민했다. 라비엔은 그의 표정을 보고 낮게 웃었다. “끝난 게 아니야. 그래도 예전보다 낫지.” “네가 직접 말하고 있으니까.” “그게 제일 어렵더라.” *** 점심 뒤 라비엔은 오르카와 작은 뜰을 걸었다. 다리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추운 날엔 절었다. 오르카는 팔을 내밀었지만 라비엔은 잠깐만 혼자 걷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원정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오르카가 물었다. “오늘은 없어. 내일은 모르겠고.” “그 정도만 알아도 돼.” “예전엔 제7원정대가 집이라고 생각했어. 지금도 그 사람들이 소중해. 그렇지만 여기서 환자와 기록을 돕는 것도 내 선택일 수 있잖아.” 오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네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르면 안 되겠지.” “가끔은 보고 싶다고 불러 줘.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친구로.” 오르카는 웃었다. “그건 언제든 가능해.” 그날 기록 협력자들이 모인 작은 회의에서는 야간 서고 호출을 어떻게 배분할지 논의했다. 베라는 라비엔에게 기록 담당자가 많은 시간을 홀로 지키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도 밤마다 호출을 받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라비엔은 자신의 일을 줄이자는 요구가 누군가의 일을 무조건 늘리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직원들은 주간 확인 가능 서류와 즉시 처리해야 할 야간 문서를 분리해 보기로 했다. 호출 횟수를 기록하고, 실제 쉬지 못한 시간을 다음 근무와 조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즉시 모든 규정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 시험을 해 보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 같은 시간 서쪽 항만에서 수현은 라비엔의 짧은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근무 시간 일부가 인정됐습니다. 아직 최종 정산은 아니지만 제가 한 일을 제 이름으로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북방에 남기로 했습니다.' 수현은 편지를 읽고 웃었다. 그리고 곧 자기 수첩에 쓰려던 문장을 고쳤다. '라비엔 정산 해결' 대신 '일부 근무 시간 인정, 숙식 공제와 나머지 지급 심사 중.' 그녀는 마치 병처럼 이 표현 차이를 신경 쓰게 되었다. 세드나가 물었다. “그분이 돌아오지 않는 게 아쉽지 않으십니까?” “아쉽죠. 다들 함께 모이면 좋을 테니까요. 그래도 라비엔이 원하지 않으면 그건 좋은 결말이 아닐 수도 있어요.” “당신도 돌아가고 싶어 하면서 말이죠.” 수현은 잠시 침묵했다.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존중받고 싶다면 남고 싶은 사람의 마음도 존중해야 했다. 귀환과 체류가 서로 다른 방향의 같은 권리처럼 느껴졌다. 저녁 무렵 오르카는 남쪽으로 돌아갈 마차에 올랐다. 라비엔은 길 끝까지 배웅하지 않았다. 눈이 깊어 걷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작은 창문에서 손을 흔들었다. “다음 편지는 내 근무 정산표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쓸게!” 라비엔이 외쳤다. “좋아! 나도 훈련 보고 말고 그냥 안부를 적을게!” 오르카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종이 속 사람은 오래전 전출된 방패 기사일지 몰라도, 창문에서 손을 흔든 사람은 오늘 자신의 삶을 결정한 동료였다. 그날 수현은 자신의 수첩에 한 줄을 더 남겼다. '돌아오지 않는 선택도, 정당한 선택일 수 있다.' 그녀는 그 문장을 보며 자신이 떠나게 될 날의 마음을 조금 상상했다. 이곳을 떠나는 것이 이곳 사람들을 버리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 라비엔은 면담을 시작하기 전 자기 책상에서 두꺼운 장부를 꺼냈다. 그 안에는 북방 회복소에 처음 왔을 때부터 적은 간단한 생활 기록이 있었다. 그날 먹은 음식, 걸을 수 있었던 거리, 맡은 문서 작업, 그리고 실제로 잠든 시간. 누군가에게 제출하기 위해 만든 자료는 아니었다. 기억이 흐려지는 날을 견디기 위해 적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베라는 그 장부를 보며 물었다. “그걸 전부 심사 자료로 사용하길 원하십니까?” “아뇨. 제가 맡은 업무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요. 나머지는 제 생활이에요.” 세드나는 필요한 자료 범위를 표시하는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라비엔은 자신의 기록에서 업무 시간과 호출 내용만 골라 사본으로 작성했다. 그는 처음에 하나라도 빠뜨리면 자신의 주장이 약해질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밤마다 얼마나 아팠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까지 모두 공개해야 자신의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르카는 그 과정을 보며 한동안 말을 잃었다. 전투 중에는 서로의 부상을 드러내야 치료할 수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기록 협력 계약에서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공개해야만 일한 시간을 인정받는다면 그건 다른 종류의 위험이었다. 그들은 근무 중인 직원 두 사람에게 확인 가능한 업무가 있는지 물었다. 한 사람은 라비엔이 새벽에 서고 열쇠를 전달한 일을 기억한다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은 환자 이관 서류의 날짜를 확인해 준 일을 기억했다. 둘의 기억은 모든 날짜와 일치하지 않았다. 라비엔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합치지 않았다. “제가 매일 서고에 있었다고 쓰지 말아 주세요. 어떤 날은 몸이 아파 쉬었습니다.” “쉬었다는 기록 때문에 불이익이 생기면 어떡합니까?” 오르카가 물었다. “그게 걱정되긴 해. 그래도 쉬었다는 사실을 없애고 일했다고 쓰는 건 더 싫어.” 베라는 실제 근무와 치료 대기를 분리해 계산하겠다고 했다. 협력 계약의 효력과 환자로서의 권리 역시 별도로 검토하기로 했다. 라비엔은 면담이 끝난 뒤 잠시 복도에 앉아 쉬었다. 다리가 아팠다. 오르카가 물을 가져오자 그는 고맙다고 했다. 자신의 몸이 원하는 것과 타인이 기대하는 역할이 어긋날 때에도 이제는 쉬어도 된다는 사실을 배우는 중이었다. 오후에는 회복소의 다른 기록 협력자들이 모여 일주일간의 야간 호출표를 살폈다. 직원들은 호출이 필요했던 경우와 다음 날까지 기다려도 됐던 경우를 나눠 적었다. 놀랍게도 후자에 해당하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어떤 기록은 단지 상급자가 밤에 일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새벽에 전달되었다. “밤에 받으면 더 빨리 처리되는 것도 아닌데요.” 젊은 직원이 말했다. “그러면 다음 날 첫 업무로 넘기는 규칙을 만들 수 있겠군요.” 베라가 답했다. 직원 하나는 환자의 상태가 급변할 때는 예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라비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을 정리하는 사람보다 환자의 안전이 먼저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 대신 긴급하지 않은 장부 정리를 위해 누군가의 잠을 깨우는 관행은 줄이자고 했다. 그날 저녁 작은 기념 식사가 열렸다. 라비엔의 계약이 해결된 걸 축하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일주일간의 교대 개선을 시작하기로 한 직원들의 모임이었다. 라비엔은 빵 한 조각을 들고 잠깐 망설였다. “오늘 저는 전출된 기사도, 환자도, 기록 협력자도 아닌 그냥 친구로 앉아도 되겠습니까?” 옆자리의 노엘이 웃었다. “그게 가장 환영받는 자리예요.” 라비엔은 천천히 웃었다. 그는 옛 부대에서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여러 역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중 어느 하나가 자신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오르카는 출발 전 라비엔에게 물었다. “다음에 우리가 너를 찾을 때 어떤 이름으로 편지를 써야 할까?” “그냥 라비엔 앞으로 써 줘. 직함은 없어도 돼.” 그들은 오래 웃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서류가 필요할 수는 있어도, 만나고 싶다는 마음까지 직함으로 증명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북방을 떠난 뒤 오르카는 수현에게 편지를 썼다. 오늘 확인된 일과 미결인 일을 분명히 나눴다. 일부 업무시간 인정, 숙식 공제 재심사, 최종 보수 액수 미확정, 북방 계속 체류는 라비엔 본인 선택. 그리고 문서 끝에 따로 적었다. '라비엔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소식은 어떤 심사보다 먼저 전하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 베라는 라비엔에게 일주일 시범 운영의 중간 확인에 참여할지를 물었다. 라비엔은 참여하겠지만 자신이 모든 사람의 대표로 서명하는 건 거절했다. 야간 호출을 많이 받은 직원과 주간 보급을 맡은 직원의 사정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기록을 보고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했다. 회복소 직원들은 짧은 회의를 열었다. 누구도 처음부터 완벽한 해결책을 알고 있지 않았다. 한 사람은 실제 환자 상태에 따라 긴급성을 판단할 담당자가 필요하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야간에 문서를 받아 놓고 다음 날 처리할 수 있도록 별도 수신함을 두자고 했다. 라비엔은 두 의견을 모두 기록했다. 그리고 무엇을 일주일 동안 시험하고 어떤 지표를 확인할지 정하자고 했다. 그들은 야간 호출 횟수와 근무 뒤 쉬었던 시간을 각각 세기로 했다. 관리자는 기록이 늘어난다고 걱정했지만 라비엔은 원래도 누군가가 그 시간을 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종이에 남겨 보자는 뜻이었다. 오르카는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싸움터에서 라비엔은 방패 뒤에 있는 사람을 지키는 데 익숙했다. 북방 회복소에서는 서류를 정리하며 사람들이 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두 모습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라비엔은 계약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일하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건강 상태에 따라 업무를 조정하겠다고 했다. 그 선택도 기록으로 남겼다. 향후 계약을 종료할지 갱신할지는 그 뒤에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오르카는 그 결정이 옛 동료들에게 실망을 줄까 걱정했다. 라비엔은 한참 웃었다. “내가 북방에 남는다고 우리가 함께 싸웠던 시간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너희가 잘 지내는 동안 나도 여기서 잘 지내면 되잖아.” 그 말을 듣고 오르카는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에 보낼 편지에는 원정대 식당의 새 요리 이야기를 적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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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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