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일지의 별지에서 발견된 접점 반응 검사는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어떤 신호가 어디까지 도달했는가. 루세는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제0종점과 제2차단함의 운용 원장을 나란히 놓아야 한다고 했다.
“둘이 같은 기관의 자료 아닙니까?” 수현이 물었다.
“같은 계열이죠. 하지만 따로 적힌 기록이 항상 독립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쪽 내용을 다른 쪽에서 베꼈다면 두 장이 있어도 증거는 하나예요.”
“그럼 무엇을 찾아야 하나요?”
“서로의 내용을 미리 모르고 측정한 시각과 신호 형태요. 그리고 실제로 신호를 받았다는 장치 자체의 흔적.”
수현은 이제 그런 말을 들어도 지나치게 설레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독립', '원점', '외부'라는 단어가 자신을 여러 번 실망시켰다.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제2차단함 기술 기록은 왕도 남쪽 보존실에서 볼 수 있었다. 그곳 관리자는 여전히 칼든이었다. 그는 수현을 알아보고 말했다. “이번엔 또 어떤 종이를 찾으십니까?”
“종이만이 아니라 종이를 작성한 기계의 흔적을요.”
칼든은 잠깐 웃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 일이 더 많아집니다.”
“지금까지도 많으셨죠.”
칼든은 위험 장치에 접근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부 비파괴 표면 측정을 허가했다. 원본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금속판 표면의 미세한 굴곡을 읽는 방식이었다. 장치에 마력을 공급할 필요는 없었다.
***
측정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제0종점 일지에 적힌 접점 반응 형태는 짧은 점 두 개와 긴 선 하나였다. 제2차단함 판에는 긴 선 하나와 짧은 점 두 개가 있었다. 순서가 거꾸로였다.
“역방향 송신이요?” 수현이 물었다.
루세가 고개를 저었다. “기록판을 어느 방향에서 읽느냐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 있어요. 지난번 네 번째 홈도 그 문제였죠.”
“이번에는 읽는 방향을 통일했나요?”
“확인 중입니다.”
칼든은 오래된 장치 모형을 가져와 두 판의 위치를 서로 맞춰 보았다. 한쪽은 원점을 기준으로, 다른 한쪽은 수신 쪽을 기준으로 방향을 표시했다. 뒤집어서 놓자 형태가 거의 일치했다.
“거의라는 말이 걸리네요.” 수현이 말했다.
“마지막 점의 깊이가 다릅니다. 동일 신호일 수도, 같은 규격으로 만들어진 두 표식일 수도 있어요.”
루세는 해당 자료를 당장 연결 성공으로 발표하면 안 된다고 했다. 수현은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장치 운용판 두 개에 같은 계열의 실제 반응 흔적이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었다.
그들은 표식이 만들어진 시점도 조사했다. 두 판의 날짜는 같았지만 사용한 시계가 달랐다. 정확한 선후를 결정할 교정 원장은 아직 전부 복원되지 않았다.
***
기술실에서는 관리인들이 낡은 금속판을 옮기느라 분주했다. 작업자 하나가 혼자 장판을 들려 하자 루세가 멈췄다. “두 사람 배정이었잖아요.”
“다른 사람은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럼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지금 안 옮기면 일지가 밀릴 텐데요.”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사정도 생각했다. 자신이 오늘 결과를 얻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위험하게 일하도록 압박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녀는 작업자에게 시간을 더 써도 괜찮다고 말했다.
칼든은 기록 열람 예약을 오후까지 늘릴 수 있다고 했다. 대신 기술실이 정기적인 환기 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중간에 방을 비워 달라는 조건이었다. 수현은 즉시 동의했다.
쉬는 동안 그들은 정원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루세는 수현에게 원점과 수신 표식이 서로 닮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고 물었다.
“기쁘죠.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또 기대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요.”
“기대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기대를 결론으로 쓰지 말자는 거죠.”
수현은 식은 빵을 씹었다. 서울이었다면 이 시간에 사무실에서 상담 전화가 왔을 것이다. 대신 지금은 왕도 정원에서 오래된 마법 장치의 표식을 비교하고 있었다. 현실감이 없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도시락 값을 누가 냈는지 계산하려면 모든 일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
오후 재검사에서 두 판의 표식은 동일 계열의 비상 정지 요청 규격과도 닮아 있었다. 사람을 이동시키는 작동 신호일 것이라는 추측에는 결정적인 반례가 생겼다. 오히려 경보 또는 중단 요청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되는 동안 어느 단계에서 처리되지 않았는지를 살펴야 했다.
“결국 신호가 오갔을 수는 있지만 목적을 모른다는 거군요.” 수현이 말했다.
“맞습니다.” 루세가 답했다. “그래도 이제 아무런 흔적도 없던 단계에서 벗어났어요. 다음엔 표식을 만든 전원 기록을 볼 수 있겠죠.”
칼든은 원본 서랍을 닫고 인계 수를 확인했다. 세드나도 열람 종료 서류에 사인했다. 수현은 자신이 기록 보존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멋진 장면을 발견했다고 서류를 들고 떠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복도에서 세드나가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넸다. 오래된 운용 교범에서 확인한 문장이다. '중단 요청 수신 확인은 접점 차단 완료와 분리 기록한다.'
수현은 웃었다. “오늘의 결론을 한 줄로 만든다면 이거네요.”
“아주 옛날부터 써 있던 말이죠.”
“그런데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요.”
“그래서 기록을 찾는 겁니다.”
그날 밤 수현은 세 가지 사실을 정리했다. 서로 다른 보존판에 닮은 반응 흔적이 있다. 비상 경보와 중단 신호의 표식이 혼동될 수 있다. 아직 어떤 사람의 몸이 두 경계 사이를 지나갔다는 기록은 없다.
마지막 문장을 적을 때 수현의 손이 잠시 멈췄다. 자신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특정 기계를 통해 왔다는 증거를 저절로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집에 가고 싶네요.” 그녀가 혼잣말했다.
세드나가 책을 덮었다. “그 말을 안 하셔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하고 싶어요. 조사 보고서가 아닌 사람 말로요.”
“그럼 오늘은 보고서 쓰는 걸 여기서 멈춥시다.”
수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오래전 누군가 요청한 중단 신호가 실제로 어디까지 갔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지금 자신의 휴식 요청부터 인정할 필요가 있었다.
***
두 보존판의 표식을 확인한 다음 날 루세는 수현을 다시 기술실로 부르지 않았다. 대신 왕도 바깥의 작은 중계소를 방문하자고 했다. 그곳은 오래전 제2차단함의 시험 신호를 수동으로 기록하던 시설이었다. 지금은 지역 경보를 점검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관리인 메르투는 기록실에 들어오기 전 손을 씻게 했다. 오래된 잉크가 기름에 번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수현은 씻고 나서도 아무 종이나 잡지 않았다. 메르투는 시험 당시의 소리와 빛 표식에 관한 견본을 보여 주었다.
“이게 실제로 수신한 기록인가요?”
“실제 사건 기록이 아니라 훈련용 견본입니다. 먼저 이걸 봐야 원본을 오해하지 않아요.”
견본에는 같은 표식이 서로 다른 세 이유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장치가 진짜 경보를 받았을 때, 이전 경보의 잔류 반응이 남았을 때, 검사자가 직접 표식판을 시험했을 때였다. 겉으로는 닮았지만 기록의 가장자리에는 작은 차이가 있었다.
수현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오래된 원본에서는 그 작은 차이가 지워졌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호 자체와 검사자의 행동을 함께 기록해야 했죠.”
메르투는 옛날 근무자의 수첩을 꺼냈다. 원본은 사생활 보호 때문에 일부만 공개됐다. 그날 수첩에는 '제2차단함 확인 요청, 현장 독립 수신 여부 보류'라고 적혀 있었다.
루세는 그 문구를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이건 당시에도 독립 수신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본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군요.”
“적어도 기록자는 그렇게 적었습니다.” 수현이 말했다.
그녀는 누가 더 옳았는지 단정하지 않았다. 중앙 보고서가 완료라고 적었다고 당시 모든 사람이 동의한 건 아니었다. 또한 현장 수첩에 보류라고 적었다고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증명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현재 중계소의 작업 방식도 확인했다. 긴급 경보가 발송되면 송신 담당이 자신의 장부에 시간을 적었다. 수신 담당은 상대의 장부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를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제삼자가 두 기록을 대조했다. 옛날에는 한 사람이 세 역할을 맡기도 했다고 했다.
“그럼 과거에 이런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게 바꾼 거군요.”
“큰 사고 뒤에 바뀌었습니다.” 메르투가 말했다. “기록 담당이 틀렸을 수도 있고 기계가 망가졌을 수도 있는데, 누가 무엇을 확인했는지 알 수 없으면 아무것도 바로잡을 수 없었어요.”
수현은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의 소환 사건을 떠올렸다. 민원을 보낸 메이, 소환을 당한 자신, 그 일을 배정한 담당실, 실제로 작동했을지도 모를 장치가 하나의 '완료' 도장으로 묶여 있었다. 기록을 역할별로 나눌 때마다 비로소 질문이 가능해졌다.
점심 무렵 메르투는 수현 일행에게 기술실 식당을 소개했다. 벽에는 긴급 점검 때에도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교대 시간이 적혀 있었다. 수현은 그 종이를 가리켰다.
“이건 잘 지켜집니까?”
메르투는 웃었다. “가끔 안 지켜져요. 그래서 누가 못 쉬었는지도 적습니다. 전에는 일정을 어기면 기록을 없애려 했거든요.”
그는 직원들끼리 정기적으로 기록을 확인하고 필요한 인원을 요청한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책임자가 완벽해서 굴러가는 제도가 아니었다. 작은 어긋남을 숨기지 않아서 유지되는 제도였다.
오후에는 수신판 견본을 이용한 비작동 대조를 했다. 루세는 실제 구동 마력을 공급하지 않고 빛을 비춰 표면 깊이만 읽었다. 수현은 기록을 보면서 경보 표식이 정상 송신과 얼마나 닮았는지 직접 확인했다. 서류를 읽으며 떠올렸던 명확한 차이는 현미경 아래에서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았다.
루세가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표식 하나가 아니라 연결된 기록 묶음입니다. 송신자의 사전 기록, 수신자의 독립 측정, 두 사람의 결과를 대조한 검토서요.”
“그 셋을 찾으면 정말 다른 세계와 통신했다는 게 증명될까요?”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동일한 계열 안의 통신인지, 다른 외부 기원인지도 검증해야죠. 사람을 이동시키는 건 또 별개의 문제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 하나에 답을 얻으면 그 답이 새로운 질문을 만든다. 그러나 질문이 많아진다는 사실이 조사가 헛되다는 뜻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위험한 장치에 넣지 않고도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뜻일 수 있었다.
돌아오는 마차에서 세드나는 현재 중계소의 안전 규정을 왕도에 공유하겠다고 했다. 규정에는 중단 요청을 누구든 할 수 있고, 그 요청을 받은 사람이 실제 차단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는 시험을 재개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수현이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오래전에도 있었죠.” 세드나가 답했다.
“그럼 이번에는 서류에만 남지 않게 해야겠네요.”
그들은 제0종점 수리일지에 남은 경보 흔적과 중단 요청을 어떤 순서로 대조할지 정했다. 수현은 또 여러 기관에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지만, 자기 뜻과 남의 동의를 섞지 않는 이상 멈출 이유는 없었다.
마차가 왕도 성문에 닿을 때 수현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바라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연했지만 오늘처럼 출처가 다른 기록을 구별할수록 위험한 지름길은 하나씩 줄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잘못된 '성공 사례'가 되는 대신, 제대로 확인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메르투는 수현에게 오래된 수신판 한쪽에 붙은 짧은 경고문을 보여 줬다. '동일한 그림을 보았다고 동일한 원인이라고 말하지 말 것.' 당시 작업자가 직접 남긴 말인지 후대 교육 문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조사의 취지와 맞았다. 수현은 그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되 작성 시기는 미확정이라고 덧붙였다. 루세는 좋은 문장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수현은 웃으면서도 자신이 듣고 싶은 답을 만드는 데 그 문장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참인 문장이라고 해서 그것이 특정 사건의 모든 증거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계소 출입문을 나서며 수현은 한 번 더 뒤돌아보았다. 누군가 장치를 멈추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곳에도 완벽하지 않은 업무가 남아 있었지만, 최소한 실수를 발견하면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절차는 만들어져 있었다.
제15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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