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에 보냈다는 음형 변경 통지는 세 번 접혔다 펴진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받은 사람이 있었다는 표시는 없었다.
“발송했으면 받은 거 아닙니까?” 왕도 통신분관의 실무자가 물었다.
이수현은 종이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그 질문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요. 보내는 건 보내는 사람의 일이고, 받는 건 받는 사람의 일이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들은 산 아래 중계지소에 내려와 있었다. 관측막사의 교정값 표가 원본이라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통지가 실제 어느 회선으로 전달됐는지는 별도 장부를 찾아야 했다. 중계지소는 바람 많은 고개 아래에 지은 낮은 돌집이었다. 전선 대신 음형을 전달하는 관 속에 공기가 지나갈 때마다 둔탁한 울림이 났다.
루세는 입구에서부터 기계에 손대지 말라고 했다. “여기는 지금도 구조 요청을 전달하는 곳입니다. 옛 기록 때문에 현행 회선을 방해하면 안 됩니다.”
수현은 그 말에 익숙하게 대꾸했다. “비작동 열람만 하겠습니다.”
지소 책임자 필로는 장부가 얼마나 무거운지부터 설명했다. 수신 대장은 한 권이지만 중계 대장은 세 권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 기준을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자신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날짜에 표시를 해 두고 나머지는 담당자 이름이 가려진 사본만 보여 주었다.
첫째 대장에는 산지 교정표 발송 접수가 있었다. 둘째 대장에는 중앙으로 보낼 목록에 같은 문건이 올라 있었다. 하지만 셋째 대장, 즉 실제 중계 요청이 처리됐는지 확인하는 곳에는 별도의 기호가 붙어 있었다.
‘대기. 상대 종점 확인 없음.’
수현은 숨을 내쉬었다. “예전에도 똑같은 말을 봤어요.”
“거기서 확인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필로가 물었다.
“네. 발송 접수와 실제 전달을 같은 것으로 처리했더군요.”
필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처리하면 서류는 빨리 닫힙니다. 그런데 상대가 못 받았을 때 책임질 사람이 사라지죠.”
수현은 그 말을 적었다. 그가 사라졌다고 한 건 사람이 아니라 책임의 경로였다. 그러나 책임이 사라지면 실제 사람들은 문제를 떠안게 된다.
중계 대장을 대조하던 세드나가 이상한 항목을 발견했다. 원래 종점으로 보내던 음형 교정 통지가 그날 밤 ‘임시 주회선’으로 전환되었다. 주회선은 왕도로 향했지만, 폭우로 파손된 뒤 비상 회선을 거쳤다. 비상 회선 수신자는 개인이 아니라 당시 야간 담당실이었다.
“그 담당실의 접수 기록이 있나요?”
“일부는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수신확인은 아니에요. 자동으로 대기함에 들어갔다는 표식입니다.”
루세가 종이를 살폈다. “경고를 받아야 할 현장에는 전달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요.”
필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담당실 대기함에 들어가는 건 현장으로 전달되는 것과 다릅니다.”
그때 종점에서 작은 경고음이 났다. 현재 사용하는 회선 하나가 미응답이었다. 필로는 몸을 일으켰다가 수현 일행을 바라봤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수현은 그가 상황을 처리하는 동안 현장에 손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필로는 기계를 살피다 한참 뒤에야 다른 직원에게 전화문을 보냈다. 이미 그 직원은 외부 순찰 중이었다. 중계실 안에 누가 남아야 하는지 정한 교대표가 없었다.
“지금은 누가 장치를 맡고 있나요?” 수현이 물었다.
필로가 놀라서 돌아봤다. “제가요. 다른 직원이 돌아오면 바꿀 겁니다.”
“그럼 필로 씨가 다치거나 쓰러지면요?”
“그럴 일은 없겠죠.”
루세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운영하다 사고가 난 기록을 우리는 오늘도 보고 있습니다.”
필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수현은 그가 실수했다고 몰아세우지 않았다. 현장에선 사람 한 명이 모든 일을 책임지도록 만들어 놓고, 사고가 나면 왜 책임을 다하지 않았냐고 묻기 쉽다. 그녀는 우선 현행 구조 요청 전달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필로는 본부에 보조 인력 배치 요청을 보냈다.
“지금 당장은 못 오겠군요.”
“그럼 오늘 기록 열람은 중단하겠습니다.” 수현이 말했다. “지금 처리해야 하는 일이 먼저죠.”
필로는 미안해했지만, 수현은 이미 지나간 사고의 장부를 읽느라 현재의 사고 가능성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 선택을 기록에 남겼다. ‘현행 구조 중계 업무로 인해 열람 중단. 자료 미이관.’
오후에는 비상 회선 담당자가 지소로 돌아왔다. 이름은 레하였고, 왼쪽 손에는 오래된 화상 흉터가 있었다. 그녀는 음형 교정 통지의 구형 예시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장치 변경 경고를 받아야 할 사람이 확인하도록 만든 서식이에요. 단순한 정보 통지가 아니죠.”
“그럼 수신확인 없이 변경했다고 하면?” 수현이 물었다.
“옛날엔 그렇게 돌아간 날도 있었습니다. 인력이 적어 밤새 교대하기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안전 측면에선 곤란합니다.”
“실제로 그날 밤 누가 받았는지 기억하나요?”
“제가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수현은 웃고 말았다. 오래된 사건을 추적하다 보면 생기는 우스꽝스러운 질문이었다. 레하는 자신이 아는 범위만 진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설명은 규정의 뜻에 대한 것이지 E-17 당일 직접 목격은 아니었다.
저녁 무렵 필로와 레하는 현행 중계실의 미응답 처리 절차를 손보기로 했다. 서로 다른 장부에 같은 신청을 중복 적을 필요 없이, 발송·중계·상대 확인을 분리 표시하는 간단한 표를 만들었다. 수현은 예시를 하나 적었다.
‘접수됐음. 아직 상대는 받지 않았음. 따라서 완료 아님.’
레하가 웃었다. “길죠.”
“길어도 오해하기 어렵잖아요.”
“그럼 보고서에는 짧게 쓸게요. ‘상대 미확인’이라고.”
수현은 만족했다. 현장에서 쓰는 사람에게 불편한 문구는 오래가지 못한다. 짧더라도 정확해야 했다.
중계지소의 오래된 창고에는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때 사용하던 종이 봉투가 한 상자 있었다. 봉투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밧줄에 매달 수 있었다. 관을 통한 음형 전송이 실패하면 사람을 보내던 시절의 유물이었다. 수현은 그 봉투를 보자 처음 자신을 이세계로 끌어온 민원 봉투가 떠올랐다.
“혹시 이 봉투를 왕도 밖으로 보내면 다른 세계까지 가나요?”
필로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비가 오면 젖고, 길이 막히면 못 갑니다.”
수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죠. 사실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필로는 그제야 질문의 맥락을 이해했다. 이수현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세계에 도착했는지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황해서 봉투를 뒤집어 보였다. 구형 표식과 소환 봉투의 유사한 문양이 있었지만, 이 세계에서 일반 우편에도 오래 사용하던 무늬라고 했다.
수현은 그 무늬를 멀리서 보고 기록했다.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건 흥미롭지만 충분한 증거는 아니었다. 그보다 봉투 안쪽에 찍힌 작은 발송인의 확인란이 더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실제로 수령할 때까지 '도착'이라고 찍을 수 없도록 만든 서식이었다.
“왜 이런 방식을 그만뒀나요?”
“너무 느렸죠. 어떤 편지는 배달원이 산을 두 번 넘었습니다.”
“느려도 확실했을 것 같은데요.”
“그것도 아닙니다. 마을이 없어져 버리면 받는 사람이 없었고, 때로 배달원이 대신 서명했어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기술이나 제도든 완벽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실패했을 때 누가 그것을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느냐였다. 중계 대장에 '대기'라고만 쓰인 항목이 왜 점점 '완료'처럼 읽혔는지 그 배경이 조금 이해됐다.
필로는 옛 미도달 봉투 처리 장부를 꺼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조치가 있었다. 다시 전달, 발신인에게 반송, 안전 보관. 어느 것도 수신 완료를 뜻하지 않았다. 수현은 그 구분이 E-17의 현장 확인인 배정 기록에도 있었어야 한다고 느꼈다.
“수신인이 없으면 원래대로 돌려보낼 수 있어야 하는데요.”
“사람을 말입니까?” 필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경우엔 그렇죠. 물론 사람을 봉투처럼 취급해선 안 되고요. 돌아갈지 말지는 제가 결정해야겠지만요.”
필로는 장부를 조용히 닫았다. 한참 뒤에 말했다. “저라면 무서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데 돌아갈 길을 찾는다니.”
“무서워요. 매일 무서운 건 아니지만, 갑자기 아주 무서운 날이 있어요. 자고 일어나면 서울에서 제가 하던 일을 누가 하고 있을까 생각하거든요.”
수현은 그런 말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봉투 더미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입 밖에 나왔다. 필로는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나라 사람의 사연을 듣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하가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 “중계 일을 오래 하면 기다리는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시험에 붙었다는 소식도,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도 여기서 지나가요. 우리에게는 한 줄의 수신 정보인데 그 사람들에겐 삶이죠.”
수현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따뜻했다. 처음 이세계에 도착했던 날 메이가 내밀어 준 물 한 잔이 떠올랐다. 지금 여기서 받을 수 있는 건 귀환 기술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이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들어 준다는 사실뿐이었다.
중계실의 젊은 견습생이 용감하게 물었다. “그럼 우리가 장부를 잘 고치면 수현 씨도 집에 갈 수 있나요?”
“그것만으로는 어렵겠죠. 하지만 잘못된 답을 믿고 위험한 기계를 켜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견습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일부터 담당할 작은 업무는 야간 대기함의 수신 확인 여부를 따로 표시하는 것이었다. 별난 영웅담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그래도 수현에게는 그의 다짐이 어느 장치보다 믿음직해 보였다.
해가 지자 마을 경비대에서 연락이 왔다. 산길을 내려오던 가족의 마차가 늦어졌다는 보고였다. 필로는 무턱대고 '수신 완료'를 찍지 않았다. 출발지에서 보냈다는 소식만 확인한 뒤, 실제 마차가 통과했다는 확인을 기다렸다. 그 사이 경비대는 마지막 위치를 조사하고 안전한 길로 구조대를 보냈다.
수현은 그들이 만든 새 표가 첫날부터 쓰이는 모습을 보았다. 기다리는 가족에게는 '마차가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거짓 위로보다 '어디까지 확인됐고 지금 누가 찾고 있다'는 말이 필요했다. 책임을 끝난 것으로 처리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를 더 오래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 불안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잊게 하지는 않았다.
늦은 밤 마차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필로는 그때서야 완료 도장을 찍었다. 견습생은 그 장면을 보고 조용히 웃었다. 도장이 찍힌 뒤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류와 현실이 일치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작은 안도를 줬다.
레하는 구형 대장 한구석에 새 의견을 남겼다. ‘발신과 상대 확인을 함께 완료로 판정하지 말 것.’ 오래전에 있었어야 할 문장이었다. 그녀는 그 문장을 현행 장부에서도 지키겠다고 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사건을 조사하는 일이 현재 사람들의 안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너무 쓸쓸할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도장이 아니라 실제 돌아온 전령의 얼굴이었다. 늦게라도 누군가 집에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이곳의 일은 끝났다. 수현은 그 단순한 절차를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세드나에게 왕도에서 온 회신이 도착했다. 중계지소가 발견한 음형 변경 통지는 중앙의 야간 대기함에 실제 입력됐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기함에서 현장 운용실로 전달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었다.
“다시 한 칸이 비었군요.” 수현이 말했다.
“이번에는 어느 칸인지 정확히 알게 됐어요.” 세드나가 답했다.
수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별이 한 개 보였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별을 보는 사람들도 그 빛이 언제 출발했는지까지는 모른다. 눈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언제 어디에서 생긴 빛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중계실에는 새로운 표가 걸렸다. ‘대기함 저장은 상대 전달이 아니다.’
루세는 그 표 앞에서 작게 말했다. “옛날에 이 문장만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있었다고 사고를 막았을지는 모르죠.” 수현이 답했다. “그래도 없었던 것보다 나았을 거예요.”
그녀는 보고서 결론을 고쳤다. ‘교정 변경 통지: 발송 및 중앙 대기함 저장 흔적 확인. 최종 현장 수신 여부 미확인. 안전 정지 명령과 기술 재가동의 직접 인과관계 미확정.’
이 문장은 서울로 가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 문을 열면 안 된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어느 구간에서 멈췄을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수현은 그것을 다음 조사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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