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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40화
PAYLUA ORIGINAL · 제140화

140화. 아무도 대신 돌아가지 않는다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654자

오프라인 책장
왕도 서쪽 표준연구실의 창고에는 가짜 문이 있었다. 벽에 문 모양을 그려 놓은 것이 아니라, 진짜 문이지만 뒤쪽에 아무 방도 없는 문이었다. 수현은 손잡이를 잡았다가 루세의 손짓에 멈췄다. “그건 시험용입니다. 열면 경고 종이 울립니다.” “왜 그런 걸 만들었죠?” “문 모양이 있다고 길이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가르치려고요.” 수현은 손을 거둬들였다. “이곳 교육 담당자는 제 마음을 읽는 사람 같네요.” 표준연구실 관리관 샤나는 제3검수대의 이관 장부를 가져왔다. 젊은 여성인 그녀는 모든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려는 습관이 있었다. 정확하지 않은 질문에는 잠깐씩 대답을 미뤘다. “네 번째 홈이 비상 분기 역송 확인용이라는 기록은 맞습니다.” “그럼 역방향으로 보냈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역방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식의 규격을 뜻합니다.” 수현은 이마를 짚었다. “이 문장 하나 때문에 기대가 얼마나 컸는데요.” 샤나는 미안한 얼굴을 했다. “그래도 중요한 진전입니다. 판별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들은 원본 판독 절차를 시작했다. 루세가 보존된 표식의 홈을 다시 읽고, 샤나가 과거의 규격표를 열었다. 원점에서 만든 표식과 종점에서 만든 표식은 네 번째 홈의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었다. 시각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정밀 측정을 하면 차이를 읽을 수 있었다. 수현은 한동안 침묵했다. 자신이 처음 이 세계에 나타난 순간을 떠올렸다. 사무실에서 진정서를 열었던 일, 갑자기 낯선 냄새가 났던 일, 메이가 울먹이며 자신을 바라봤던 일. 그때 자신은 어디서 온 신호를 받았을까. 누가 문을 열었고 누가 닫았을까. “이 표식이 E-17 사건에 실제 쓰였다는 증거는 있습니까?” 샤나가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검수대 목록에 같은 규격의 물건이 남았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동의 없는 제 이동을 일으킨 장치라고 단정하면 안 되는 거네요.” “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같은 벽에 부딪혔지만, 벽의 위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실험 대신 고정된 판독 계획을 작성하기로 했다. E-17 사건 당시의 운용판과 비상 분기 표식이 같은 규격을 썼는지, 표준연구실의 복제판에서 방향을 구분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보존자가 같은 값을 읽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실제 장치를 켜지 않고, 사람이나 물품을 이동시키지 않는 조건이었다. 샤나는 처음에는 연구 효과가 작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그러나 수현이 질문했다. “이번에 할 수 있는 걸 먼저 확실히 하면, 나중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하기 쉬워지지 않을까요?” 샤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판독은 실패했다. 홈의 마지막 방향이 서로 달랐다. 두 번째 판독에서는 표면의 녹을 보정하자 방향이 일치했다. 세 번째 판독에선 다른 기술자가 불일치라고 적었다. 연구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결과를 공개하면 혼란스럽겠습니다.” 누군가 말했다. 수현은 대답했다. “그대로 공개해야죠. 세 번 했는데 세 번이 다르면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겁니다.” 샤나는 세 번째 결과에 서명하고 ‘추가 검증 필요’ 도장을 찍었다. 점심 무렵 기술자 중 하나가 수현에게 다가왔다. 그는 과거 장치 사고에 가족을 잃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확한 사고 자료가 아직 봉인되어 있어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다 다쳤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당신은 언제까지 조사할 생각입니까?” 수현은 그 질문에 즉시 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지쳤다. 서울의 집, 먹고 싶은 김치찌개, 휴대전화로 아무 때나 연락할 수 있었던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멀어질수록 자신이 이 세계에 익숙해져 버릴까 두려웠다. “제가 돌아갈 가능성이 남아 있는 동안은요.” “그럼 여기에 남은 사고 피해자는요?” “그분들의 기록은 그분들에게 돌려줘야죠. 제 문제 때문에 묻혀선 안 됩니다.” 기술자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수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고 기록을 열람하고 싶으시면 가족에게 허용된 절차를 함께 찾아볼까요? 다만 제가 대신 결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대화로 수현은 자신이 왜 여기에서 자꾸 다른 사건에 마음을 쓰는지 조금 이해했다. 이곳에 남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이동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후 늦게 독립 판독자 두 사람이 추가로 도착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판독은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나 앞선 세 번째 결과와 충돌했으므로 최종 결론은 보류됐다. 샤나는 회의에서 “표식의 방향을 구분하는 규칙 자체는 재현 가능하지만, 사건 자료에 적용해 출발점을 특정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했다. 수현은 그 문장을 받아들였다. 귀환하고 싶은 마음과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는 서로 적이 아니었다. 표준연구실에서 독립 판독을 기다리는 동안 수현은 샤나가 정리해 놓은 실패 사례 목록을 살폈다. 실패 사례에는 화려한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다. ‘표식 방향 불일치’, ‘장치 정지 상태에서 잔류 경고 반복’, ‘외부 판독자의 재현 실패’. 그러나 어떤 항목 옆에는 부상자가 있었다. 수현은 그 이름들을 보며 웃지 못했다. “사고를 처음부터 실패 사례로 적었습니까?” 샤나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성과 보고서에서 제외했습니다. 실패가 많으면 연구비가 줄어든다는 이유였죠.” “그럼 부상자는 어디에 적혔나요?” “별도 의료비 장부요. 연구 보고서는 계속 성공으로 남았고, 치료비만 늘어났습니다.” 수현은 어쩐지 익숙한 구조라고 생각했다. 용사 파티의 치료비가 개인의 빚으로 넘어갔던 상황과 닮아 있었다. 누군가는 성공을 기록하고, 누군가는 그 성공의 비용을 혼자 감당했다. “실패 기록을 모으기 시작한 계기는요?” “예전 작업자 한 명이 자기 손을 다치고 나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 사람이 적은 첫 문장이 유명해졌죠.” 샤나는 오래된 표지의 글을 읽어 주었다. ‘보고되지 않은 실패는 다음 작업자의 몸으로 다시 나타난다.’ 수현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을 많이 보았다. 사고가 나면 당장 눈앞의 처리에 바빠 재발 방지 기록을 남기지 않는 조직.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문제를 적어 두어야만 다음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샤나는 수현에게 연구실의 과거 사고 피해자 명부를 모두 열어 주지는 않았다. 공개 허가가 없는 개인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가족이 제출할 수 있는 열람 신청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 정도만으로 충분합니다.” 수현이 말했다. “누구의 삶인지도 모르는 기록을 사건 해결의 재료처럼 다루고 싶지는 않아요.” 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 검토라는 말 안에 당사자들의 존엄까지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는 얼굴이었다. 점심 이후 연구실의 새 직원이 수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장치 연구가 왕국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거라고 믿었다. 병원에서 중환자를 멀리 보내거나 위험한 전선의 사람을 빠르게 구조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였다. “만약 당신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증명되면 수많은 사람도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현은 물을 마시다 말고 대답했다. “제 귀환이 가능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이동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닐 거예요.” “그렇지만 기술의 미래를 위해선 위험을 감수해야죠.” “그 위험을 누가 감수하는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게 해 놓고 미래를 말하는 건 쉬운 일이에요.” 젊은 직원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수현은 그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꿈이 큰 사람을 보는 것은 좋았다. 다만 그 꿈의 크기 때문에 주변 사람의 권리가 작아지지 않았으면 했다. “기술이 사람을 돕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이 먼저 동의할 수 있어야 하죠.” 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가 되자 샤나는 표식 검증표의 난해한 표현을 다시 정리했다. ‘방향성 계수 편차’라는 문장은 ‘두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읽었음’으로 바뀌었고, ‘원판 적합 미확정’이라는 문장은 ‘원본과 같은 물건인지 아직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다. 수현이 웃었다. “이제 제가 이해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 전문용어를 너무 좋아한 모양입니다.” “전문용어가 필요한 곳도 있죠. 그런데 결정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뜻을 설명해야 해요.” 샤나는 여러 장의 자료를 봉투에 넣으며 물었다. “이 자료가 서울과 관계없다고 나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 질문은 밤마다 자신에게도 했다. 돌아갈 문이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다음 날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이 세계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자신의 일상을 어찌해야 할까. “아마 울겠죠.” 샤나는 뜻밖의 답에 놀라 웃었다. 수현은 계속 말했다. “실망하면 실망할 거고, 화나면 화낼 거예요. 하지만 그때도 제 동의가 없었던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아요. 그리고 다른 조사 방법이 있는지도 다시 찾아볼 거예요.” “그래도 계속하실 겁니까?” “지금까지는 계속할 생각이에요. 다만 아무도 제 삶 대신 결정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은 기술적 증명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권리를 선언하는 말이었다. 샤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수현에게 봉투의 수령 범위를 확인받았다. 서류에는 주소도, 휴대전화 정보도 없었다. 수현은 자신이 필요한 것만 건네받았다. 저녁 무렵 수현은 오래된 기계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떠올렸다. 서울 사무실 책상 위에 두었던 가족사진이었다. 휴대전화가 꺼졌으니 그 사진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잊은 것도 아니었다. 목소리와 표정은 종종 오히려 또렷하게 떠올랐다. “수현 씨, 괜찮습니까?” 세드나가 물었다. “네. 그냥 돌아가면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어요.” “무엇을 말하실 건가요?” “미안하다고요. 갑자기 사라져서 놀라게 했을 테니까.” 세드나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원해서 사라진 게 아니잖아요.” “알아요. 그래도 걱정했을 사람들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건 다른 일이죠.” 수현은 감정을 정리하려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차가웠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원래 세계에서는 얼마나 흘렀을지 모른다는 사실도 그녀를 괴롭혔다. 그 시간의 차이를 알아내지 못하면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돌아간 뒤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수 있었다. 그녀는 수첩에 썼다. ‘귀환 목적지의 확인뿐 아니라 시간 동기 확인 필요.’ 샤나가 그 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기술적으로도 중요합니다. 같은 장소처럼 보이는 표식이 다른 시간의 기록을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오늘 얻은 판독 결과는 아직 출발점일 뿐이군요.” “네. 하지만 출발점을 잘못 잡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얻었습니다.” 수현은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돌아가야 할 사람을 골라 주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로, 언제,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가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아직 그날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이 요구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연구실 밖에는 가느다란 비가 내렸다. 수현은 잠시 우산처럼 쓸 천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젖은 돌길을 걸으며 이곳에 처음 도착하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칼을 든 사람에게 서류를 보여 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지금도 무섭지만, 그 무서움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생겼다. ‘내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생겼다. ‘아직 모릅니다.’ 두 문장은 서로 반대되는 말이 아니었다. 하나는 이미 확인된 자신의 의사였고 다른 하나는 확인되지 않은 기술의 상태였다.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다면, 언젠가 정말로 안전한 귀환을 선택할 기회가 올지도 몰랐다. 그날 저녁 메이와 카이렌의 편지가 동시에 도착했다. 메이는 잔여 치료비 심사가 계속되는 대신 당직 약재 지급이 안정됐다고 알렸다. 카이렌은 휴가를 재신청했고, 라비엔은 북방의 계약 정산표를 본인이 확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세 사람의 소식은 모두 미완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수현에게 대신 결정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수현에게는 이상하게 위안이었다. 샤나가 마지막 검토 서류를 가져왔다. ‘다음 단계: 장치의 비작동 상태에서 출발 표식과 수신 표식의 출처를 구분할 독립 원장 검색.’ 그 아래에는 새 주소 하나가 붙어 있었다. 오래전 기술자들이 검증 실패 자료를 따로 모아 놓았다는 동쪽 산지 관측막사였다. “또 멀군요.” 수현이 말했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폐쇄됐습니다. 실제 기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요.” 수현은 작게 웃었다. 폐쇄된 곳, 누락된 서류, 어긋난 시계.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이제 익숙한 길이었다. 그녀는 지원 신청서 아래에 또박또박 적었다. ‘본인은 귀환을 원한다. 다만 안전하지 않은 인체 접속과 개인 정보의 무단 공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서명이 마르기도 전에 샤나가 한 장을 더 내밀었다. 최근의 점검표였다. 연구실 창고 안에서 우연히 발견된 다른 규격의 네 번째 홈이 표기되어 있었다. “이건 왜 지금 주시는 거죠?” “이번에는 먼저 보여 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요. 보고서가 완성된 뒤에 통지했다간 또 늦어질 수 있잖아요.” 수현은 그 작은 변화를 보았다. 그들은 이제 완료된 서류만 내미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불확실한 것도 불확실한 상태로 전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수현은 가짜 문을 지나 진짜 출입문을 향해 걸었다. 자신이 돌아갈 문이 어떤 모양일지는 여전히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문처럼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손잡이를 당기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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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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