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렌은 봉인 의료심사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세 번 확인했다.
첫 장에는 제7원정대 용사 카이렌. 둘째 장에는 환자 기록 열람 요청인 카이렌. 셋째 장에는 본인이 공개 범위를 결정하는 동의자 카이렌.
“제 이름이 이렇게 많이 적히는 건 처음입니다.”
담당 의사 페일이 말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했습니까?”
카이렌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지금까지는 감독관이 작전을 정했고 치유사가 그를 치료했다. 그는 강해야 할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답하는 것이 자신의 일인 줄 알았다.
“네. 대부분은요.”
페일은 탁자 위에 봉인 문서 세 묶음을 올려놓았다. 카이렌은 첫 번째와 두 번째만 보기로 했다. 세 번째는 소생 관련 분류와 보존 의뢰인 신원이 포함되어 있어 별도 심사가 필요했다. 그가 원하면 다음에 신청할 수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페일이 물었다.
“오늘 확인할 것은 두 가지면 됩니다.”
첫 번째 문서는 K형 안정 고리의 출고 원장이었다. 출고 건수는 셋이었다. 그러나 수령자 이름은 기재되지 않았다. 당시 응급실이 비상 상태라 재고를 묶음으로 내보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제가 썼다는 뜻은 아닌 거죠?”
“그렇습니다. 기록상 그 장치가 그 장소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문서는 카이렌의 의식 공백 기간 일부를 다뤘다. 그가 사흘 동안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출정 장부에는 그 사흘이 복무 시간으로 적힌 이유가 분리돼 있었다. 의료 기록에는 치료 및 관찰, 출정 장부에는 부대 대기 명령이라는 명목이 기재되어 있었다.
카이렌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출정한 기억이 없습니다.”
“의식이 없었다면 당연합니다. 그 장부가 실제 전투 수행을 뜻하는지, 편성 인원을 유지하기 위한 표기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군요.”
페일은 종이를 접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카이렌은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가슴에 남았다.
그는 손등의 흰 고리 흉터를 내려다봤다. 어릴 때 불에 덴 흔적처럼 둥근 자국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소생이나 특별한 성역의 흔적이라고 추측했지만, 정작 누구도 원인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 자국이 K형 장치 때문일까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치는 반드시 같은 자국을 남기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다른 치료용 고리도 비슷한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확인할 방법은요?”
“당시 피부 진료 기록이나 장치 개별 번호가 필요합니다. 오늘 서류에는 그 둘이 없습니다.”
카이렌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 또 하나 미뤄졌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누군가 ‘영웅에게 필요 없는 질문’이라며 그의 손을 덮어 버리지 않았다.
의료심사실을 나서자 오르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왼팔에 남은 부상 흔적 때문에 여전히 무거운 방패를 오래 들 수 없는 기사였다. 카이렌은 멋쩍게 웃었다.
“어떻게 됐느냐고 묻지 않습니까?”
“말하고 싶을 때 말해.”
오르카의 대답에 카이렌은 걸음을 멈췄다.
“라비엔도 그렇게 이야기했습니까?”
“응. 자신의 진료나 계약 이야기는 자기가 선택해서 말하겠다고. 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둘은 서고 앞 계단에 앉았다. 카이렌은 자신이 확인한 것 중 공개해도 괜찮은 부분을 골랐다. 부대 출정 장부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사람의 의식이 없었던 시간을 전투 성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의료 정보나 흉터의 원인은 자신의 것으로 남겼다.
“그것만으로도 부대 기록을 고칠 수 있겠어.” 오르카가 말했다.
“저 하나만 고치면 소용없습니다. 다음에 다친 사람이 또 전장에 있었다고 적히면 안 되니까요.”
오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작업을 맡을 사람을 정해야겠지. 네가 영원히 장부를 보고 있을 순 없으니까.”
그 말에 카이렌은 웃었다.
한때 그는 모든 적을 자신이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야간 경계도, 부상자 구조도, 감독관의 민원 응대도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 방식이 전장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대로 돌아온 뒤 카이렌은 브레그 감독관에게 출정 기록 정정 요청서를 제출했다. 감독관은 종이를 보고 말했다.
“예전에는 이런 일에 관심 없지 않았나?”
“예전에는 제가 뭘 모르는지도 몰랐습니다.”
“기록을 정정하면 지난 성과 숫자가 줄어들 수 있다.”
“거짓 숫자가 줄어드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브레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대원들 앞에서 영웅의 전과가 줄어드는 걸 좋아할 지휘관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과거처럼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당사자 확인과 의료기록 보호 범위를 먼저 검토하겠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저녁에 젠이 훈련장에서 돌아와 물었다. “쉬는 날을 제대로 썼어?”
“병원에 다녀왔으니 쉰 건 아니지.”
“그럼 다음 휴무를 다시 잡자. 몸 상태를 확인하는 건 휴가랑 다르니까.”
카이렌은 깜짝 놀랐다. 젠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지난해만 해도 부대 휴가를 신청하면 자신이 미안하다고 먼저 말했을 사람이었다.
메이가 치유실에서 나와 말했다. “오늘부터는 야간 치료 담당을 한 사람씩 나눠. 카이렌도 내가 쉬는 동안 알아서 처리해야 해.”
“걱정 마세요. 데런에게도 말했습니다.”
“데런이 다 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이번에는 모두 나눴습니다.”
메이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근무표를 보았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밤 카이렌은 자신의 방에서 빈 종이를 꺼냈다. 수현에게 편지를 쓰려다가 첫 줄에서 멈췄다. 그녀는 이제 원정대의 직원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서운하면서도 기뻤다. 수현이 떠나야 이곳에서 배운 일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은 의료기록 두 묶음만 읽었습니다. 세 번째는 제가 아직 준비되지 않아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그는 그다음 문장을 오래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 생명을 책임졌다고 말하는 대신, 내가 내 삶을 조금씩 책임지는 중입니다.’
글을 마친 카이렌은 마지막으로 적었다.
‘그리고 쉬는 날은 다시 신청했습니다.’
편지를 봉한 뒤 그는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이전이었다면 해가 뜰 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적은 문서를 읽었을 것이다. 지금은 내일 읽어도 되는 서류를 구분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카이렌은 의료심사실에서 받은 사흘의 기록을 다시 펼쳤다. 그러자, 가장 먼저 그를 괴롭힌 것은 날짜였다. 첫날에는 고열, 둘째 날에는 의식 저하, 셋째 날에는 안정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에 ‘현장 지휘 유효’라는 표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내가 의식이 없었다면 누가 지휘했지?”
오르카는 예전 일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시기 그는 다른 부상자를 호송하고 있었다. 기억만으로 답할 수 없었다.
“그때의 부관이 누구였는지 장부를 찾아야겠어.”
“그 사람에게 무조건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아.”
“알아. 사실이 뭔지 먼저 확인하자는 거겠지.”
둘은 인사 담당 사무실을 찾았다. 담당자는 카이렌의 요청서에 봉인 의료 정보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난감해했다. 카이렌은 의료 내용 공개를 요구하지 않았다. 의식이 없던 동안 누가 지휘 서명을 했는지 그 기록만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장을 적으면서 한 번 더 확인했다. ‘본인이 수행하지 않은 전투를 수행했다고 인정하는 취지가 아님.’ 다른 사람이라면 의미 없는 문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카이렌에게는 자기 삶을 돌려받는 문장이었다.
사무실 문을 나서자 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활줄을 손질하다가 카이렌을 보았다.
“오늘 훈련에 빠지는 거야?”
“원래 휴무인데.”
“아, 맞다. 습관적으로 물었네.”
카이렌은 웃었다. 처음 휴가를 신청했을 때 부대 전체가 어수선했다. 누가 야간 출고에 서명할지, 병사를 누가 배치할지, 젠의 활줄이 끊어지면 누구에게 보고해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런 일들을 정해 놓고 나니 이젠 자신 없이 돌아가는 시간이 생겼다.
“너 정말 안 불안해?” 젠이 물었다.
“불안하지. 그런데 내가 없어서 일어날 사고가 있다면, 그건 내가 하루 더 일한다고 없어지는 문제가 아닐 거야.”
젠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뒤 말했다. “그 말 메이한테도 해 줘. 아직도 다친 사람 보면 자기 마력을 끝까지 쓰려 해.”
“메이도 이제 자기가 멈출 때를 정하고 있어.”
카이렌은 약초 냄새가 나는 복도를 떠올렸다. 처음 만났을 때 메이는 두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고, 치유술이 끝나면 바닥에 쓰러지곤 했다. 지금은 동료 치유사에게 환자를 나누고 자신도 진료를 받았다. 한 사람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날 오후 브레그는 카이렌을 불러 예전 근무 원장의 사본을 보여 주었다. 의식 공백 사흘 중 한 날의 부대 대기 명령은 실제 작전을 수행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일괄 적용됐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날의 ‘용사 승인’ 표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 표식을 누가 찍었는지 조사하겠습니다.” 카이렌이 말했다.
브레그는 눈썹을 올렸다. “예전 같으면 내가 조사하겠다고 했을 텐데.”
“감독관님이 하셔도 됩니다. 다만 제가 당사자라는 점은 잊지 말아 주세요.”
그 말에 브레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결국 문서에 두 줄을 추가했다. ‘당사자 열람 범위 확인’과 ‘명령 서명자 대조’. 카이렌은 결과가 나오면 본인에게 먼저 통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데런은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휴가 대체표를 보여 주었다. 부상자 호송이 생기면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람과 다음 날까지 기다려도 되는 일을 구분했다. 카이렌은 아직 수정할 부분이 많은 표라고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이 표가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 기뻤다.
“이대로면 내가 며칠 쉬어도 되는 거야?”
“며칠 정도야 문제없지.” 데런이 말했다. “대신 말이 아프면 네가 대체 마부를 구해 주진 말고. 그건 내가 할 일이야.”
젠이 웃었다. “용사님이 못 하는 일 목록이 자꾸 늘어나네.”
카이렌도 함께 웃었다. 그 목록은 무능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가 맡을 일을 분명하게 만드는 목록이었다.
밤에 카이렌은 사흘간의 의료기록을 다시 열려다가 멈췄다. 자신이 정한 열람 범위는 이미 끝났다. 오늘 밤 더 읽는다고 없던 기억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봉투를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빈 종이에 다음 진료일을 적었다. 별다른 비밀이 밝혀지지 않은 하루였지만, 오늘은 사흘 동안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죄책감 없이 말할 수 있게 된 날이었다.
다음 날 카이렌은 제7원정대의 구형 출정 기록을 스스로 정리해 보았다. 누가 얼마나 용감했는지보다 누가 언제 치료를 받았고 실제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젠은 오래된 표를 보고 불평했다.
“이때는 모두 출정했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세 명이 야영지에 남아 있었어.”
“그러면 그 세 명을 무능했다고 적을 셈이었나?”
“아니. 나머지가 싸울 수 있도록 치료 물품을 준비했지.”
“그럼 그 일도 기록돼야겠네.”
둘은 야영지 지원과 전투 수행을 별도 항목으로 구분했다. 카이렌은 그 목록에 자신의 이름을 특별히 앞세우지 않았다. 그는 아직 사흘의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 다만 그 기간에 누군가가 자신을 돌봤다면 그 사람의 노력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다.
카이렌은 오늘 모른다고 답한 질문을 수첩에 그대로 적었다. 기억을 되찾기 위해 무리해서 밤을 새우거나 치료를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의료 심사에는 담당 의사에게 필요한 자료를 먼저 요청하고, 그 자료가 자신의 것인지 확인한 뒤 읽을 생각이었다.
오르카는 기록을 살피다가 작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출정 인원 중 한 명의 이름이 흐려져 있었다. 오래된 물자 운송 표와 대조하니 단순한 전사 표시가 아니라 행정상 소속 변경 표식 같았다. 오르카는 라비엔에게 물어보고 싶어 했지만 카이렌은 서두르지 말자고 했다.
“그 사람의 기록을 열람하려면 그 사람에게 먼저 물어야겠지.”
“동료였는데도?”
“그래서 더 그래야지.”
오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둘은 라비엔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을 요구하는 대신 확인하고 싶은 자료의 범위를 설명하고, 원하지 않으면 거절해도 된다고 적었다. 그들이 새로 배우는 원정대 운영은 단지 휴무표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자기 삶을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을 매일 확인하는 일이었다.
제13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