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는 그날 새벽 치유실 창고 앞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
환자는 기다리지 못했다. 짐수레에서 떨어진 운반 노동자의 어깨가 부어오르고, 젊은 견습병은 호흡이 가빴다. 메이는 자신의 마력을 아껴 쓰면서 응급 처치를 했고, 남은 지혈 약초를 네 묶음으로 나누었다.
창고 담당자가 늦게 도착해 말했다.
“치료비 정산이 끝나기 전엔 추가 약재를 내줄 수 없어요.”
메이는 천천히 손목의 금속 고리를 들어 보였다. 고리에는 아직도 분쟁 중이라는 붉은 글씨가 떠 있었다.
“그건 제 치료비 분쟁입니다. 오늘 부상자를 위한 현장 약재 예산하고는 다른 항목이잖아요.”
“서식이 같은 창구로 떠서요.”
“그럼 창구의 문제지, 환자의 잘못은 아니겠죠.”
담당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메이는 한동안 그 사람을 바라보다가 미리 준비해 온 긴급 출고 승인서를 꺼냈다. 지난번에 자신이 직접 만든 서식이었다.
“이쪽은 제7원정대 긴급 치료용입니다. 승인권자는 당직 감독관, 수령자는 실제 치료 담당자. 개인 청구랑 섞이지 않게 따로 기록하기로 했어요.”
상대는 서류를 살피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게 언제부터 됐죠?”
“지난달부터요. 당신에게 인계가 안 됐나요?”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메이는 그가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새 서식을 모르는 채 혼자 창고를 열어야 하는 사람도 과연 충분히 보호받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우리 둘 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 전달을 못 받은 거군요.”
그 말에 담당자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낮에 메이는 동부 정산실로 향했다. 동행은 세드나가 아니었다. 같은 원정대 궁수 젠이었다. 젠은 치유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었지만, 메이가 혼자 여러 층의 관공서를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도록 짐을 들어 주기로 했다.
“수현 씨 없이 괜찮겠어?” 젠이 물었다.
“당연하지. 내 이름으로 청구된 비용인데 내가 제일 먼저 알아야지.”
정산실 직원 키아는 지난번에 제출한 C-47의 잔여 부분 심사 결과를 안내했다. 예비 적립금은 개인 청구 산정에서 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실제 사용된 마석과 긴급 봉합 약재 중 일부는 누가 부담해야 할지 결정되지 않았다.
메이는 먼저 종이에 숫자를 적었다.
“이것이 실제 쓴 양이에요?”
“출고 원장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
“현장 수령 기록이 있나요?”
키아가 다른 장부를 펼쳤다. 그중 두 건은 수령자가 ‘제7원정대 치유실’로만 적혀 있었다. 메이는 그 날짜를 보았다. 한 건은 자신이 카이렌 곁을 떠나지 못했던 날이었다.
“제가 받은 게 아니라면 누가 썼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 빚이 되는 건 아니죠.”
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 때문에 계속 심사 중입니다. 그때의 현장 보급은 일괄 처리됐습니다.”
“그럼 실제로 다친 사람과 물건을 받은 사람부터 다시 확인해 주세요. 저는 기꺼이 제가 직접 사용한 건 설명할게요. 그런데 동의하지 않은 개인 부담까지 받아들일 순 없습니다.”
메이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겁이 안 나는 건 아니었다. 금속 고리가 밤마다 붉게 빛날 때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것과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정산실의 다른 직원이 창문을 열었다. 긴 대기 줄에서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젠은 슬쩍 메이에게 귓속말했다.
“우리가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냐?”
“내 차례에 내 일을 묻는 거야. 뒤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 차례에 충분히 물을 수 있어야지.”
그 말은 젠에게 낯설게 들렸다. 용사 파티의 치유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먼저였다. 메이는 자신을 돌볼 시간이 생기면 그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달랐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기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었다.
키아는 수령 불명 항목 두 건에 대해 개인 징수 중단 유지와 별도 원장 대조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기존 잔액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손목 고리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메이는 기뻤다. 적어도 의문이 적힌 공식 서류가 남았다.
정산실을 나서자 젠이 물었다.
“이거 승리야?”
“아직 아니야.”
“그런데 표정이 좋아졌네.”
“오늘은 내 이야기가 내 이름으로 기록됐거든.”
그날 저녁 수현은 메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수현이 먼저 쓴 조언 없이도 메이가 실제로 신청서를 제출하고 담당자를 설득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줄은 평범했다. ‘참, 요즘은 물약 창고 앞에서 밤새 안 기다려도 돼. 당직 명단을 새로 붙였어.’
수현은 편지를 읽으며 입가를 가렸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요?” 루세가 물었다.
“대단한 결과가 나왔거든요.”
“빚이 사라졌습니까?”
“아니요. 사람을 기다리는 창구가 줄었어요.”
루세는 어리둥절했다. 수현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법과 계약은 숫자나 도장으로만 바뀌는 게 아니었다. 새벽에 약이 필요한 환자 앞에서 직원이 문을 열 수 있는가. 그 일을 바꾸는 것 역시 커다란 성과였다.
밤에 메이는 치유실의 빈 침대를 둘러봤다. 오늘 다친 견습병은 회복했고 운반 노동자도 병동으로 옮겼다. 자신은 아직 피곤했다. 그러나 다른 치유사가 늦은 교대를 맡아 주기로 했으니 집에 가서 잘 수 있었다.
금속 고리가 한 번 희미하게 반짝였다. 메이는 손목을 문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종이에 또박또박 적었다. ‘분쟁 중 금액은 아직 해결되지 않음. 치료실 약재 지급은 별도 운영. 오늘 야간 치유사는 교대 완료.’
수현의 소환 사건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기계와 정교한 마법은 멀리 있었다. 메이는 오늘 밤 그것과 상관없이 자기 잠자리를 고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동부 정산실에서는 메이가 떠난 뒤에도 C-47 회의가 이어졌다. 키아는 보급 창고와 치료실의 장부를 서로 비교하면서 두 항목이 같은 돈으로 처리되는 오류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찾은 의문을 확정 결과처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정산 조정 후보’라는 작은 표를 만들었다.
다음 날 메이는 다시 호출받았다. 호출장에는 낯선 용어가 적혀 있었다. ‘인적 비용 계정 대체 가능성 검토.’ 그녀는 문서를 읽고 한숨을 쉬었다.
“이건 또 무슨 뜻이야.”
젠이 옆에서 말했다. “그냥 어려운 말을 쓰면 우리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럼 뜻부터 물어보자.”
키아는 메이 앞에 두 장의 계산표를 놓았다. 하나는 원정대의 치료 활동 전체를 위한 예산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인이 계약상 부담하도록 예정된 항목이었다. 예전에 부서가 합쳐지면서 양쪽의 항목이 같은 화면에 표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든 항목이 잘못 이관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어느 항목을 개인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 원래 승인 기록을 확인해야 해요.”
메이는 계산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럼 왜 지금까지 제 손목 고리에 총액이 떴습니까?”
키아의 얼굴이 굳었다. “통합 표시 규칙이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규칙을 만든 사람이 이 숫자를 하루 종일 보고 살아야 한다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메이는 손목의 고리를 보여 주었다. 부상자 앞에서 마력을 쓸 때마다 이 고리가 빛났다. 치료를 위해 움직일수록 빚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어떤 비용이 합당하게 발생했는지와 상관없이 몸에 찍힌 숫자는 사람을 압박했다.
“제가 부당한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건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환자도 살리고, 제 삶도 지키고 싶다는 뜻이에요.”
키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리의 총액 표시 중 심사 중인 항목을 확정 채무로 보이지 않도록 표기 변경 신청을 접수했다. 금속 고리를 떼어 내거나 잔여 청구를 없애는 결정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메이는 조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창구 바깥에서는 다른 치유사 둘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불안해했고, 다른 사람은 치료용 장갑을 끼고 있었다. 메이는 자신의 심사가 끝나자 그들에게 먼저 물었다.
“급한 환자가 있나요?”
“오늘 오후 치료에 필요한 약재 지급 확인을 받으러 왔어요.”
“그럼 제 서류는 여기 두고 먼저 처리받으세요.”
키아는 새 긴급 출고 절차를 설명했다. 다른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런 규정이 생겼다면 왜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죠?”
메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이제 알아서 전하죠.”
세 사람은 출구 앞에서 서로의 이름을 적었다. 같은 부서의 사람이 아니었고 사용하는 약재도 달랐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끼리 겪는 문제는 놀랍게 비슷했다. 메이는 원정대 치유실에만 새 서식을 붙이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왕국 전체의 제도를 고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배운 바로는 그렇게 큰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실제로 필요한 한 사람의 치료 시간을 놓치곤 했다.
“각자 자기 창고에서 지급 거절을 받으면 날짜와 이유를 기록해요. 그다음 담당 부서에 정식으로 물어보죠. 필요한 사람들끼리 자료를 나누면 좋겠어요.”
젊은 치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을 먼저 해 주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요.”
메이는 웃었다. “나도 예전에는 몰랐어.”
저녁에 젠은 치유실의 문을 닫으며 메이를 불렀다. “오늘은 더 안 할 거지?”
“응, 내가 다음 담당자에게 환자 상태를 인계했어.”
“그럼 우리 저녁 먹자.”
“너도 오늘 교대 맞아?”
“오늘은 내 휴무야. 궁수라고 식당에서 활 쏠 일은 없으니까.”
메이는 한바탕 웃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뜨거운 밥을 천천히 먹었다. 아무도 수현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수현이 멀리서 위험한 기계를 조사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하루는 별개로 움직였다. 그것이 수현이 처음 원정대 천막에 들어왔을 때 가장 바라던 일이었는지 모른다.
식사 뒤 메이는 오늘의 정산 결과를 짧게 적었다. 예비 적립비는 제외 유지. 잔여 청구의 승인 근거 확인 중. 긴급 약재 지급은 별도 처리. 고리의 분쟁 표시는 변경 요청 접수. 누락된 사실 없이 적고 나니 생각보다 긴 편지가 됐다.
그녀는 마지막에 사적인 한 줄을 적었다.
‘오늘은 내가 다른 치유사에게 도와달라고 말했어. 그러니까 내일도 무너지지 않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며칠 뒤 메이는 정산실에서 두 번째 통지를 받았다. ‘분쟁 중’이라는 표현 대신 ‘결정 보류’라는 낯선 표기가 고리에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두 표현이 같은 의미인지 키아에게 직접 물었다. 키아는 손목 고리의 표시 방식만 바뀐 것이며 강제 징수 보류와 잔여 청구의 미확정 상태는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바꾸면 빚도 줄어드는 줄 알았네요.” 메이가 말했다.
“그런 뜻으로 보일 수 있겠어요.” 키아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는 표시 변경과 채무 판단을 각각 알려 드릴게요.”
메이는 동의했다. 사람을 안심시키려는 표현이라도 실제 판단과 다르면 오히려 불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치료 결과를 알려 줄 때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곧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말을 쉽게 했다가 상태가 더 나빠졌을 때, 환자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 경험이었다.
메이는 고리에서 반짝이는 숫자를 다시 살폈다. 예전처럼 숫자 하나가 자기 존재 전체를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결정을 기다리되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오늘의 약재 지급표와 내일의 교대표가 그 증거였다.
돌아온 메이는 환자에게 약초 처치 과정을 설명하는 시간을 따로 정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좋은 결과를 장담하지 않고, 지금 확인한 상태와 다음에 관찰할 증상을 구분했다. 견습 치유사는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러면 환자들이 더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우리는 환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줘야 해.”
견습 치유사는 작은 수첩에 그 말을 적었다. 메이는 그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졌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자신은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약속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혼자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환자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치유실 벽에는 새 근무표가 붙었다. 메이, 견습 치유사, 외부 지원 치료사가 각각 맡은 환자와 교대 시간을 확인했다. 휴무가 있는 날에는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까지 적었다. 메이는 그 표를 보며 처음으로 자신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치료실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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