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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33화
PAYLUA ORIGINAL · 제133화

133화. 교정된 소리의 주인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60자

오프라인 책장
왕도 보존위원회는 나흘을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닷새째 아침에도 별관 책임자를 정하지 못했다. 수현은 접수 창구에서 같은 대답을 두 번 듣고 세 번째에는 질문을 바꿨다. “누가 반대하고 있습니까?” 직원은 굳은 얼굴로 문서를 다시 보았다. “반대라기보다 개인 인장 소유자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개인 인장이면 사람 이름이 있을 텐데요.” “옛 장치 관리규칙에는 실명 대신 등록 음형을 쓰기도 했습니다.” 수현은 머릿속으로 그 말을 번역했다. 신분증 대신 목소리. 다만 기계가 알아듣는 목소리라면 지금 그 사람을 찾는 일이 더 까다로워질 수도 있었다. “음형이 뭔가요?” 루세가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크기가 다른 금속 조각 다섯 개가 매달려 있었다. 그가 가운데 조각을 두드리자 낮은 소리가 났다. “개인의 음성을 그대로 저장하는 게 아닙니다. 승인받은 인장의 진동 패턴을 저장하는 방식이죠. 소리를 낸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등록 원장에 따로 남겨야 합니다.” “설명은 어렵고 결론은 간단하네요. 장치를 속일 수도 있고, 사람도 확인해야 한다.” “대체로 맞습니다.” 세드나는 개인 인장의 사본을 요구하는 대신 등록 원장에 접근할 권한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 사이 수현은 보존위원회 복도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손등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는 여성은 서류 상자를 혼자 끌고 있었다. 상자가 문턱에 걸리자 안의 종이가 한꺼번에 기울었다. “도와드릴까요?” “들어 올리는 건 괜찮아요. 상자 밑을 받쳐 주실래요?” 수현은 시키는 대로 했다. 여자는 상자를 바로 세우고 몸을 폈다. “감사합니다. 요즘 젊은 직원이 다 나가서요.” “빈자리 충원은 없고요?” “보존할 종이는 자꾸 늘어나는데 사람은 줄어듭니다.” 여자의 이름은 세필라였다. 오래전 측량소 별관의 장비 기록을 정리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수현이 이중 잠금에 관해 묻자 세필라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그건 사람 출입을 막으려던 문이 아니었어요.” “그럼요?” “교정판을 새로 기록하는 행위를 막는 장치였습니다. 첫 번째 열쇠는 문을 열고, 두 번째 인장은 기록 수정을 허가하는 용도였죠.” 수현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건 두 번째 인장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읽기만 한다면.” 세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원문을 손상하지 않고 볼 수 있다면 두 번째 권한은 필요 없을 수도 있죠. 보존위원회가 그 구분을 잊은 모양이네요.” 수현은 즉시 신청서를 수정했다. 원판 수정·재교정 권한을 제외하고, 보존 책임자의 감독 아래 사진 없는 육안 열람과 비파괴 촬영만 요청했다. 다시 며칠 걸릴 줄 알았던 심사는 그날 오후 통과됐다. “계약서의 작업 범위를 좁히니 문이 열리는군요.” 세드나가 말했다. “문이 아니라 오해가 풀린 거죠.” 별관 안에는 먼지가 쌓인 금속 판이 있었다. 루세는 작동을 시도하지 않았다. 판 아래의 유리면에 조그만 흠집들이 있었다. 각 흠집은 음형과 출발 경계의 짝을 나타냈다. 그러나 한 부분만 색이 달랐다. “여기 보수한 흔적이 있습니다.” 루세는 오래된 수리일지를 찾았다. 날짜는 E-17이 발생하기 석 달 전이었다. 부품 하나가 교체됐고 새로운 음형 교정값이 입력됐다고 적혀 있었다. “이게 문제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품 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정상적으로 교정하려고 바꿨을 수도 있습니다.” 수현은 사건 당일의 표식과 일지의 교정값을 나란히 썼다. 하나는 본래 소리, 하나는 교정 후 소리였다. 같아 보이던 곡선이 끝에서 미세하게 갈라졌다. “두 가지 음형을 혼동하면 어떻게 되죠?” “문서상 같은 분기 번호가 서로 다른 출발 경계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서울일 수 있다는 말인가요?” “아뇨. 아직 그런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예상했던 답이라도 듣기 괴로웠다. 수현은 창밖을 봤다. 수도의 지붕 너머로 흐린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 하늘에도 구름이 떠 있었고 비가 내렸다. 어느 때는 서울의 하늘과 거의 같아 보였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닮았다는 사실은 연결됐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오후에 세필라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부품 교체 후 교정 작업자 중 한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는 기록을 찾아왔다. “그분 이름이 뭔가요?” “아란. 당시 보조 기술자였습니다. 지금은 성 밖에서 종을 만듭니다.” “종이라고요?” “음형 교정에 쓰던 기술을 다른 일에 써 먹는 거죠.” 수현은 웃었다. 마법 기술자가 퇴직하면 종을 만든다.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진로였다. 아란의 공방은 작은 광장 끝에 있었다. 수십 개의 종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아란은 얼굴보다 손이 먼저 늙은 남자였다. 루세가 오래된 음형을 두드리자 그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 소리, 어디서 들었습니까?” “측량소 별관 교정판입니다.” 아란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망가진 걸 고쳐 놓고 욕을 엄청 먹었던 물건인데.” 수현은 질문을 서두르지 않았다. 아란이 종 하나를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정확한 소리가 나니까 문제가 됐어요. 옛 값에 익숙한 사람들이 새 값을 오류라고 불렀죠. 교정값 변경 통지서를 보냈는데 회신이 없었어요.” “누구에게요?” “종점 운용실과 공동기술서고입니다.” “회신 없는데 계속 사용했나요?” “우리는 변경 사실을 등록했습니다. 사용하는 쪽이 바꿔야 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책임을 두 부서가 서로 미뤘습니다.” 아란은 자신의 옛 개인 보관함에서 낡은 청색 영수증을 찾아냈다. 수령 확인란은 비어 있었다. 표면에는 ‘교정값 갱신 통보’라고 적혀 있었다. “원본은 여기 있나요?” 수현이 물었다. “아니요. 이건 보낸 사본이고 원본은 측량소에 있습니다.” 수현은 사본의 가장자리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이런 종이를 소중히 보관해 온 사람에게, 낯선 여자가 갑자기 집어 가는 일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사진 대신 제가 확인 사실을 적고, 아란 씨가 내용에 동의하는지 직접 확인해도 될까요?” 아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대 위에서 작은 종이 한 번 울렸다. 수현에게는 그 소리가 문 열리는 소리보다 분명하게 들렸다. 이 사건에는 세상을 넘나드는 장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읽지 않은 공지, 전달되지 않은 변경값, 두 부서 사이에서 멈춘 책임이 있었다. 수현은 아란의 공방을 떠난 뒤, 그를 만나기 전 거쳤던 보존위원회의 긴 면담도 보고서에 자세히 적었다. 수현은 보존위원회에서 교정 기록의 공개 범위를 놓고 긴 면담을 했다. 담당자는 기술 표식이 왕립기관의 보안 정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안 정보라면 공개를 제한할 수 있겠죠.” 수현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요청하는 것은 기계의 상세 배치도가 아닙니다. 구형 값에서 신형 값으로 변경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통지한 날짜만 확인하려는 겁니다.” “그것도 시스템 구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날짜만 별도로 알려 주시는 방안은요? 신형 값의 숫자 자체는 가리고요.” 세드나가 옆에서 의견을 보탰다. “계약관리실에서도 필요한 건 E-17의 담당실 배정 당시 어느 판본을 참조했는지입니다. 실제 작동값은 기술 관리자의 허가 후에 대조하도록 분리하겠습니다.” 담당자는 한참 종이를 넘기다가 임시 허가를 내주었다. 허용된 부분은 숫자 없이 기록된 변경 사실과 이관 부서였다. 수현은 그 결정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얻지 못한 자료를 누군가 억지로 가져와 주는 것보다 나았다. 회의실에서 나오자 루세가 말했다. “지금 같은 회의가 열리기만 해도 진전입니다. 옛날에는 장치 기록을 모두 한 명이 관리했습니다. 원본을 보관하는 사람과 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사람이 같았어요.” “검증하는 사람도요?”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럼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었죠?” 루세가 씁쓸하게 웃었다. “결과가 사고로 드러난 뒤에야 말할 수 있었겠죠.” 수현은 그 대답을 오래 곱씹었다. 이름을 쓴 서류가 많다고 기록이 안전한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권한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세필라가 상자를 끌고 나타났을 때는 한낮이었다. 그녀는 별관의 기계 교정표를 보관하려다 몇 번이나 다른 창고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 시절엔 누가 문서 주인인지 정해지지 않았거든요. 측량소는 기계가 책임이라 하고, 기술서는 도면만 책임이라 했고, 종점은 실제 결과만 책임진다고 했죠.” “그럼 교정표는 누구 것이었나요?” “아무도 안 받는 종이였어요.” “이런 종이가 제일 중요할 때도 있는데요.” 세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는 놀랍도록 평범했다. 서로 모르는 두 부서가 종이를 되돌려 보내며 시간을 보냈고, 한 명의 직원이 사본을 개인 서랍에 넣어 두었다. 그 직원은 이후 퇴직했다. 지금은 사본이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운이 좋았다고 해야 했다. 수현은 세필라에게 물었다. “그분이 어떤 의도로 보관했는지 아세요?” “그냥 자기 일에 필요해서였겠죠. 숨기려는 것보다 기억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말이 수현의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오래된 기록에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범인을 찾는 일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보호하려고 남긴 기록도 있을 것이다. 공방에서 나온 뒤 아란은 수현에게 종 하나를 무료로 주겠다고 했다.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귀한 물건이면 값을 치를게요.” “시험할 때 잘못 만든 거라 상품으로 팔 수 없소.” “그럼 그냥 기록에 남겨 두세요. 오늘 들은 내용을 증언해 주신 것만으로 충분해요.” 아란은 웃었다. “낯선 여자가 이상하군. 대부분은 뭔가를 가져가려고 하던데.” “저도 돌아갈 걸 찾으러 왔어요. 다만 다른 사람의 것을 그냥 가져가고 싶진 않아요.” 아란의 표정이 잠시 진지해졌다. 그는 손바닥을 펼쳐 보여 주었다. 검지 한쪽이 굽어 있었다. “이 손가락이 그렇게 된 것도 그 시절 사고 때문이오. 그때 사람들이 제 말을 안 믿었지. 교정된 소리가 더 정확하다고 했더니, 오류를 만들어 내는 사람 취급을 했어요.” 수현은 남자의 손을 보다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진료나 보상을 신청하셨어요?” “서류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소.” “지금 제가 그때 일을 해결해 드릴 권한은 없어요. 하지만 당시 사고 진료기록이 남아 있다면, 어떤 절차가 있는지 확인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아란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옛날 이야기를 들어 준 것만으로 됐소. 나중에 생각해 보겠소.” 수현은 그 답을 존중했다. 자신의 도움을 거절할 권리 역시 상대의 권리였다. 나오는 길 루세는 공방의 오래된 종이 울린 횟수를 물었다. 아란이 재생해 준 소리는 세 번이었다. 처음은 낮고 길었고, 둘째는 짧고 날카로웠으며, 마지막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약했다. 루세는 소리를 직접 장치에 연결하지 않고 손으로 간격만 메모했다. 음형을 그대로 복제해 기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게 정말 사건 당시 쓰인 신호라면요?” 수현이 물었다. “그때도 먼저 원장과 대조해야 합니다. 소리가 같아도 같은 신호원이라고 단정할 순 없어요.” 수현은 웃었다. 이곳에서 누군가가 처음으로 그녀의 기대에 확실하게 대답해 주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오면 자신은 아마 그 사실보다 그 말을 몇 번 검증했는지를 먼저 물을 것이다. 수현은 음형을 적은 메모를 접기 전에 마지막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아란이 기억하는 변경 시점과 장부의 기록은 아직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그 불일치가 단순한 기억의 차이인지 실제 전달 누락 때문인지는 다음 자료를 찾아야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어느 쪽도 사실로 단정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 세드나는 말했다. “교정값 누락이 E-17에 영향을 주었다면 기술 원리의 일부는 설명될 수 있겠죠.”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일부일 뿐이에요. 사람을 강제로 움직이게 한 결정은 누군가가 따로 했을 테니까.” 그녀는 수첩 끝에 썼다. ‘소리가 맞지 않는 건 장치의 문제. 듣지 않은 건 사람의 문제.’ 공방 문을 닫으려던 아란이 멀리서 외쳤다. “옛 종점에서 밤마다 울리던 마지막 종은 다른 음형이었소! 그 소리는 교정표에 없었지!” 수현은 발을 멈췄다. 두 번째 소리. 장치의 경고음인지, 누군가 보내려던 연락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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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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