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25화
PAYLUA ORIGINAL · 제125화

125화. 치료비와 약재는 다른 계산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57자

오프라인 책장
메이는 치료비 심사 통지서를 받던 날 오후에 환자를 세 명이나 더 봤다. 이수현은 왕도에서 돌아와 야전 진료소 앞에 섰다. 메이는 문 앞의 돌계단에 앉아 금속 고리를 만지고 있었다. 눈 밑에 그늘이 짙었지만 그날의 표정은 이전과 달랐다. 지친 얼굴이기는 해도 누군가에게 답을 기다리며 움츠린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심사 결과가 왔어요?” “예비 적립비는 뺐고, 나머지는 실제 치료에 사용된 마석인지 확인 중이에요.” “그럼 아직 끝난 건 아니네요.” “네.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따로 신청서를 냈어요.” 메이는 접힌 종이를 보여 줬다. ‘긴급 보급 지급과 개인 정산의 분리 요청’. 수현은 제목을 읽고 웃었다. “누가 이렇게 어려운 표현을 가르쳤죠?” “어떤 여자가 제가 모르는 문장을 마구 들고 왔거든요.” “그 여자 참 피곤하겠네요.” “엄청요.” 둘은 잠시 웃었다. 메이는 웃음을 멈춘 뒤 자신의 손목을 봤다. “예전에는 고리가 빨개지면 제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았어요. 지금은 그 글씨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수현은 그 말이 반가웠다. 법과 계산에 관한 이야기를 수십 번 반복한 것보다 훨씬 큰 변화였다. 진료소에서는 젠이 팔에 붕대를 감고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어린 심부름꾼 하나가 발목을 잡고 절뚝거렸다. 메이는 환자를 확인하고 약재 목록을 적었다. 그런데 보급 담당은 이틀 뒤에나 다음 약품이 온다고 답했다. “오늘 필요한 약재가 있는데요.” “제7원정대의 개인 청구 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담당이 말했다. 메이의 얼굴이 굳었다. “개인 청구 심사 중인 것과 응급 물품 지급은 별개입니다. 지난번 회의에서 확인했잖아요.” “전달받은 내용이 없습니다.” 수현은 끼어들지 않고 옆에 섰다. 메이는 스스로 가져온 접수증을 펼쳤다. 날짜, 접수 담당자, 보급 범위가 적혀 있었다. “그러면 담당실에 확인해 주세요. 환자는 서류가 올 때까지 출혈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 말에 보급 담당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위쪽 사무실로 전령을 보냈다. 기다리는 동안 메이는 환자의 발목을 고정하고 젠에게 얼음물 대신 식혀 둔 깨끗한 천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냥 마법을 쓰면 되는 거 아니에요?” 심부름꾼이 물었다. “쓸 수 있지만 모든 걸 해결하진 못해. 지금은 상처에 이물질이 없는지 먼저 봐야 해.” 메이는 침착하게 답했다. 마법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설명은 수현에게도 익숙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상태를 보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오후에 정산실 직원 키아가 도착했다. 그녀는 보급 담당의 잘못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전달 서식이 서로 다르고, 새 지침을 받은 부서와 받지 못한 부서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했다. “그럼 적어도 오늘은 약재를 내줄 수 있나요?” 메이가 물었다. “응급 지급은 가능합니다. 다만 사용 내역은 별도 기록하겠습니다.” “당연하죠. 환자 치료에 무엇이 들어갔는지는 남겨야죠.” 키아는 메이의 손목을 봤다. “고리가 꺼지지 않은 것이 불편하겠군요.”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이걸 보고 제가 물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문제를 기록하겠습니다.” “기록만 하지 말고 누구에게 언제 답이 오는지 알려 주세요.” 키아는 잠깐 놀란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흘 안에 담당실 회신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강제 징수는 그대로 중단돼 있죠?” “네. 그 부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수현은 그 대화를 옆에서 들었다. 예전의 메이였다면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라고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메이는 이미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 *** 해 질 무렵 카이렌이 야영지에 돌아왔다. 그는 훈련 갑옷 대신 가벼운 셔츠를 입고 있었다. 수현은 그 모습을 보고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님, 혹시 옷장에 그런 옷도 있었습니까?” “원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옷이 피부인 것처럼 지내셨어요?” “그건…….” 카이렌은 대답하다가 웃었다. 메이도 웃었다. 그는 지난 일주일 동안 실제로 예정된 휴무를 지켰다고 말했다. 긴급 출정이 생긴 날에도 젠과 데런이 먼저 상황을 확인했고,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연락을 했다고 했다. “제 부재 중에 문제 없었습니까?” 수현이 물었다. “작은 문제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없어서 문제가 된 건 아니었습니다. 저만 알고 있던 보급창고 열쇠 위치가 문제였죠.” “그럼 어떻게 했어요?” “열쇠를 담당자 두 명이 교대로 관리하도록 바꿨습니다.” “훌륭하네요. 영웅의 성장 서사가 열쇠함에서 시작되다니.” 카이렌은 진지하게 말했다. “어쩌면 검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수현은 웃으려다가 그 말이 정말이라고 생각했다. 전투는 한 번의 승패가 있지만, 안전한 직장은 다음 날에도 같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 진료소에서 가장 늦게 돌아간 사람은 심부름꾼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아이의 발목을 감싼 붕대를 몇 번이나 만지더니 메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돈은 다음 장날에 드려도 될까요?” “치료비는 길드가 부담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해요. 오늘은 돈을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메이는 조용히 설명했다. 어머니는 믿기 어렵다는 듯 다시 물었다. 이전에 비슷한 부상을 치료받았을 때는 사용한 마석 값에 보관료까지 더한 청구서를 받았다고 했다. 메이는 그때의 청구서를 보여 달라고 할 뻔하다가 말을 바꿨다. 오늘의 환자와 다른 사건이었다. 기록을 확인하더라도 당사자의 의사를 먼저 물어야 했다. “오늘 치료에 관한 영수증은 제가 드릴게요. 이전 청구서는 원하시면 별도로 문의해 보세요.” 수현은 그 모습을 보며 새삼 놀랐다. 메이는 이제 자기 고리에 붙은 숫자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의 불필요한 두려움도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의사나 정산 담당자의 역할까지 빼앗으려 하지는 않았다. “수현 씨, 오늘 도와주신 건 여기까지예요.” 메이가 말했다. “제가 뭘 도왔다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셨잖아요. 제가 스스로 말할 수 있게요.” “그게 도움이 된다면 제 특기 목록에 넣을게요.” 둘은 웃었다. 진료소 문을 닫을 때 메이는 마지막 환자가 돌아갔는지 확인한 뒤 자신의 휴식 시작 시각을 적었다. 예전의 메이라면 휴식표를 쓰다가 급한 환자가 올까 봐 눈치를 봤을 것이다. 이제는 누구에게 연락을 넘기는지 표시한 뒤 문을 닫을 수 있었다. *** 이튿날 키아는 보급 담당자들을 모아 작은 교육을 했다. 원래는 메이의 사건에서 발생한 청구 구분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참석한 사람들은 다른 문제도 꺼냈다. 한 사람은 물품을 재고 없이 지급한 뒤 나중에 개인 부담으로 돌리는 관행을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밤에 온 응급 요청을 다음 날 접수했다가 날짜가 달라진 사례를 설명했다. “그럼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나요?” 수현이 물었다. 키아는 난감한 얼굴이 됐다. “전부 확인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전부를 당장 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현재 가장 위험한 일이 무엇인지 먼저 정할 수 있잖아요.” 그들은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할 위험, 실제 지급되지 않은 물품이 지급된 것으로 처리될 위험, 개인에게 승인되지 않은 비용이 청구될 위험을 따로 적었다. 수현은 우선순위의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현장의 사람들은 스스로 위험도를 평가했다. 교육이 끝나자 젊은 보급 담당자가 조용히 다가왔다. “저도 메이 씨 이름으로 지급됐다고 적힌 약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수령자를 못 봤어요.” “그 기록을 본 날짜가 언제인가요?” “반년 전입니다. 당시에는 규정대로라고 생각했어요.” 수현은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지만 섣불리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약속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몰랐는지 분리해 적도록 권했다. 그 직원은 처음에는 떨렸지만, 나중에는 자기 목소리로 정정 요청을 읽었다. 메이는 옆에서 듣다가 말했다.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저는 계속 제 이름으로 된 빚을 보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말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 말에 직원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 저녁 식탁에서 카이렌은 보급 개선 이야기를 듣고 젠에게도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젠은 창고 업무에 관해 누구보다 많은 경험이 있었지만, 매번 용사에게 말을 올려야 하는 제도에서는 그 경험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작은 회의에서 젠이 직접 발언하도록 했다. “요청을 받으면 누가 확인하고, 물건을 내주면 누가 적는지 구분해야 합니다.” 젠이 말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더 걸리지 않나?” 데런이 물었다. “처음에는요. 하지만 나중에 누가 받았는지 찾느라 전원이 뛰어다니는 시간보다 짧을 겁니다.” 수현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젠은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들었던 말과 비슷한 것을 이제 자기 언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럼 일주일 시험해 보죠.” 카이렌이 말했다. 메이는 자신이 그 기간 동안 휴무인 날을 먼저 표시했다. 아무도 왜 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대체 담당자 이름을 적었다. 수현은 창밖을 바라봤다. 자신의 사건을 쫓는 동안 원정대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들은 누군가 명령했다고 생긴 일이 아니었다. 각자 자기 말을 갖기 시작한 결과였다. 길드의 모든 계약이 고쳐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식탁에서는 이전과 다른 내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 밤이 되자 메이는 자신의 손목 고리를 새 헝겊으로 감쌌다. 계속 붉게 빛나던 문구가 옷감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 고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평생 그것만 보고 살 수는 없었다. “고리의 글씨를 아예 가리고 싶진 않아요.” 메이가 수현에게 말했다. “왜요?” “누군가 제가 빚을 갚지 않았다고 말할 때, 제가 지금 무엇을 다투고 있는지 알려 주고 싶거든요.” 수현은 메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당한 표시가 달려 있다는 사실과 그 표시가 맞다는 사실은 다르다. 고리는 여전히 계약 기간 동안 풀리지 않았지만, 메이가 자신을 보는 눈은 이미 달라졌다. “언젠가 해제 결정이 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손목을 한번 크게 흔들어 보려고요. 가벼워졌는지 확인하게.” 메이는 웃었다. 수현도 웃었다. 그러다 그녀는 슬쩍 말했다. “그런 날에는 제가 여기 없을 수도 있어요.” “알아요. 그러면 편지로 알려 줄게요. 보내는 길만 있으면.” 그 말에 수현은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이 돌아간 뒤에도 이곳에서 온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직은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메이는 그 가능성을 너무 쉽게 부정하지 않았다. 둘은 잠깐 창밖의 별을 바라봤다. *** 그날 밤 메이는 키아가 남긴 치료비 분개표를 수현에게 보여 줬다. 표에는 두 가지 비용이 적혀 있었다. 실제 사용한 약재와 마석, 그리고 그 물품을 보관했다는 이유로 붙는 관리비였다. 관리비 일부에는 과거 B-13 비용 위임 인장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 관리비도 제가 내야 하는 거예요?” “아직 근거가 없습니다. 비용을 누가 지출했는지와 개인에게 부담시킬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죠.” “알아요. 저도 그래서 질문했어요.” 메이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수현 씨보다 먼저 이상한 걸 찾을 때도 있어요.” “좋네요. 저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원래 돌아가시려고 했잖아요.” 짧은 대화가 끝나자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메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돌아갈 길을 찾으면 정말 바로 가실 거예요?” 수현은 손끝으로 찻잔을 돌렸다. “안전한 길이라면요. 그런데 떠날 때 인사는 하고 싶어요.” “그 정도는 저희도 기다릴 수 있어요.” 메이가 웃었다. 수현은 그 미소를 오래 바라봤다. 자신이 이곳에 없었으면 메이는 여전히 빚을 죄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메이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구했다. 그날 밤 수현은 기록 노트의 한 구석에 적었다. ‘메이: 긴급 보급과 개인 채무 분리 지급 확인. 잔여 금액 미결. 고리 유지.’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을 덧붙였다. ‘오늘은 메이가 나 없이도 말했다.’ 마지막 문장은 공식 서류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수현에게는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25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2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