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수리소로 가는 마차 안에서 수현은 처음으로 노아에게 쓸 질문을 열두 개나 지웠다.
‘당신이 소환했습니까?’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누가 조종했습니까?’도 지웠다. 그런 질문은 답을 정해 놓고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남긴 질문은 단순했다. ‘그날 어디에 있었습니까?’와 ‘직접 본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기록에 남긴 복귀 보류가 무엇을 뜻합니까?’
“질문이 줄었네요.”
세드나가 말했다.
“생각이 늘어서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모를수록 질문을 길게 쓰게 되더라고요. 아는 것이 많아지면 오히려 짧아져요.”
“아는 게 아직 많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수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세드나의 농담 솜씨가 날로 늘고 있었다.
남부 수리소는 마을 끝 운하 옆에 있었다. 작은 다리 아래에 부러진 톱니와 녹슨 철관이 쌓여 있었고, 건물 앞에는 낡은 목패가 걸렸다. ‘접수 후 수리, 안전 확인 후 반환.’ 수현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서류가 아니라 실제 물건에 붙어 있어서 더욱 그랬다.
노아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었다. 예전의 사고로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수현은 자리를 오른편으로 옮겼다. 노아가 그걸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신문 기자인 줄 알았소.”
“아니요.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제가 겪은 사건과 관련된 옛 기록을 확인하고 있어요.”
“그러면 더 조심해서 말해야겠군.”
그는 책상 아래에서 오래된 도구 상자를 꺼냈다. 아끼던 물건인 듯 손잡이를 닦은 뒤 열었다. 안에는 작동판의 모형과 스프링 세 개, 그리고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당직이 아니었소. 다음 날 새벽 고장 신고를 받고 운용실에 갔지. 그러니 누가 마지막에 무얼 눌렀는지는 못 보았소.”
수현은 첫 질문 옆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직접 본 일은 새벽의 상태뿐이다.
“복귀 보류는요?”
“기계가 돌아왔어야 할 신호의 확인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오.”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아니. 그걸로 사람 얘기를 할 순 없소.”
노아는 유리 스프링 하나를 들었다. 길쭉한 원통 안에는 은색 구슬이 박혀 있었다.
“요청 경로에서 접속 신호를 보내면 종점이 응답을 돌려줘요. 내가 본 것은 종점의 답이 누락됐다는 사실뿐이었소. 어떤 대상이 이동했는지는 구형 장치의 다른 판을 봐야 하지.”
“그 판은 어디에 있나요?”
“당시 내가 봉인했소.”
“왜요?”
노아는 잠시 창밖을 봤다.
“수리를 요구하는 공문이 도착했을 때 이미 안전 시험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오. 고친 뒤 다시 켜라고 했지만, 나는 못 하겠다고 했지.”
수현이 물었다.
“거절해도 괜찮았습니까?”
“괜찮지 않았소. 나는 수리소로 좌천됐고, 같이 일하던 기술자는 퇴직했지.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장 잘한 일이오.”
***
노아의 말에서 세드나는 별개의 사실을 찾아냈다. 노아가 작업을 거부한 기록은 있었지만, 그가 봉인한 판이 E-17과 같은 장치인지 증빙 문서가 없었다. 노아도 그것을 인정했다.
“봉인 번호만 기억하오. 모양은 제 손으로 그릴 수 있지만 그게 지금까지 보관됐는지는 알 수 없소.”
“증언을 정리하고 실물 대조를 요청해도 될까요?”
“그러시오. 다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대로 적어 주시오.”
그는 오래된 잉크병에서 펜을 꺼냈다. 수현은 문구를 천천히 읽어 줬다. ‘본인은 다음 날 새벽 고장 통지를 받고 종점 응답 미수신을 확인하였다. 전날 밤 사람의 이동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노아는 그 문장을 듣고 긴 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내가 뭘 감추는 줄 알더군.”
“모르는 걸 모른다고 쓰는 건 감추는 일이 아닙니다.”
“그 말을 오래전에 들었으면 좋았겠소.”
수현은 그가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기록은 늦게 시작될 수 있지만, 늦게 시작됐다는 이유로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
수리소 뒤뜰에서 다친 기술자가 목발을 짚고 걷는 모습이 보였다. 동료 둘이 그를 대신해 무거운 톱니를 운반했다. 수현이 바라보자 노아가 설명했다.
“지난달에 미끄러졌소. 출근은 했지만 위험한 일은 못 해.”
“급여는요?”
“규정을 검토 중이라는구먼. 일을 안 했으니 못 준다는 말도 있고, 다친 채 출근했으니 줘야 한다는 말도 있고.”
“사고 신고는 됐나요?”
“현장 책임자가 사흘이나 늦게 적었소.”
수현은 문제를 듣자마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자신은 이 수리소의 고용 전문가로 위촉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당사자에게 원한다면 기록을 정리하는 방법을 안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목발을 짚은 기술자에게 먼저 허락을 구했고, 그가 동의한 뒤에야 사고 당시 시간, 치료 지시, 대체 업무 여부를 함께 정리했다.
“제가 결정해 드릴 순 없어요.”
“그래도 해야 할 말을 알겠네요.”
기술자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제가 실수해서 다쳤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바닥이 젖어 있다는 걸 여러 번 보고했는데 아무도 고치지 않았거든요.”
“그 사실을 본인이 말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억도 확인하세요.”
노아는 바닥의 낡은 배수구를 보며 찡그렸다. 당장 수리가 필요한 건 과거의 마법 장치만이 아니었다.
***
노아가 그린 봉인 견본은 완벽한 그림이 아니었다. 원의 크기가 조금씩 달랐고, 한쪽 구멍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았다. 수현은 그 모양을 복사해 붙이지 않고, 그림 아래 ‘기억에 따른 재현’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쓰면 신빙성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남부 수리소의 젊은 기록원이 물었다.
“원래 그런 그림이에요. 정확하지 않은 것을 정확하다고 쓰는 것보다 낫죠.”
“그럼 원본과 다르면요?”
“어디가 다른지 확인하면 돼요. 틀린 부분도 때로는 중요한 단서가 되니까요.”
노아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안경을 벗었다. 그는 오래전 한 사건에서 기술자 한 명이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가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만 말하기보다, 누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골라 말하게 됐다.
“내가 그날 밤을 못 봤다는 말은 언제나 약점이 되었소.”
“그게 약점은 아니에요. 다음 날의 상태를 보셨잖아요.”
수현은 대답했다.
노아가 작업대 위에 그림을 다시 그렸다. 이번에는 자신이 확실히 기억하는 자국만 남겼다. 두 개의 구멍, 경고 표식, 그리고 아래쪽의 숫자 세 자리. 다른 것은 비워 두었다. 수현은 새 그림과 옛 그림을 나란히 찍어 두는 대신 각각 다른 날짜의 진술이라고 적었다. 자료는 카이렌의 의료기록과 뒤섞이지 않도록 별도 봉투에 넣었다.
***
그날 점심 무렵 수리소의 사고 당사자가 다시 찾아왔다. 목발을 짚은 기술자는 자신이 왜 위험한 바닥에서 계속 일했는지 설명했다. 부상을 입은 전날에도 비가 새는 곳에 임시 판자를 놓아 달라고 보고했지만, 담당 부서가 바쁘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저는 사람들이 제가 게으르다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더 무리하셨군요.”
“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죠.”
수현은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보고가 실제로 전달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기술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할 때마다 작은 나무 패를 한 개씩 발급받는 관행이 있었고, 자신이 그것을 몇 개 모아 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패 세 개를 꺼냈다. 서로 다른 날짜가 찍혀 있었다.
노아의 눈이 커졌다.
“그걸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수현은 패를 책상에 줄지어 놓았다.
“이건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관리자 잘못을 확정할 순 없어요. 보고가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기술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복수인지, 다시 같은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수현은 그 답을 대신 정해 주지 않았다. 대신 그가 원하는 조치를 스스로 적을 수 있도록 빈 종이를 내줬다.
‘치료비 정산’, ‘작업장 배수 개선’, ‘부상 기간 무리한 작업 배정 중지’. 기술자는 세 줄을 쓰고 천천히 서명했다.
“이렇게 적으면 좀 달라질까요?”
“바로 달라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분명해집니다.”
그는 서류를 품에 넣었다. 노아는 부상자가 문밖으로 나간 뒤 작업대의 낡은 부품들을 한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수리소의 오래된 배수관부터 점검하겠다고 했다. 멀리 떨어진 왕도의 기계가 왜 고장 났는지 모르는 사람도, 자신의 작업대 아래 물이 새는 이유는 조금 더 빨리 고칠 수 있었다.
수현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큰 사건을 생각했다. 아직 돌아가지 못했지만, 오늘 여기서 누군가 목발을 짚고 더 안전하게 일할 방법을 찾는 데 보탬이 됐다. 그 사실을 승리라고 크게 부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기로 했다.
***
떠나기 전 수현은 노아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때 작동을 멈추자고 했는데, 동료들은 어떻게 생각했나요?”
노아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기계가 멀쩡하다면 누군가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어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동의 없이 끌어오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소. 동료들은 그 질문을 불편해했지.”
“그렇군요.”
“그 뒤로 나는 안전한 수리라는 말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소. 사람들은 내가 기계를 잘 고치는 기술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때 처음 고치지 않는 것이 맞는 일도 있다는 걸 배웠지.”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휴대전화가 떠올랐다. 고장 난 물건도 아니고, 단지 연결할 수 없는 장소에 온 물건이었다. 억지로 켜 보겠다고 분해하면 정말 중요한 자료를 잃을 수도 있었다.
“저도 고칠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고치지는 말아야겠네요.”
노아가 웃었다.
“당신은 기술자가 아니면서 기술자보다 더 조심스럽구려.”
“제가 겁이 좀 많거든요.”
“그 겁을 부끄러워하지 마시오. 겁이 없는 사람 때문에 다치는 이들도 많으니까.”
그의 말은 수현에게 오래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용기는 위험을 모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이해하고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일지도 몰랐다.
노아는 한 번 더 그림을 살폈다. 기억을 더듬다가 지운 선 하나가 있었다. 수현은 왜 지웠느냐고 묻지 않았다. 노아가 먼저 말했다.
“저 선이 정확한 위치에 있는지 자신이 없소. 그래서 남겨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하지 못하는 선을 지울 수 있는 사람이,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동까지 마음대로 승인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추측조차 사실이라고 적지는 않았다.
***
돌아올 때 노아는 수현에게 작은 금속 조각을 건넸다. 봉인된 판을 재현한 견본이었다. 진짜 증거가 아니므로 원본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여기 보시오. 봉인 번호 아래 작은 구멍이 둘이지?”
“네.”
“하나는 경로를 끊었다는 표식이고, 다른 하나는 재가동 전에 안전 확인을 받으라는 표식이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다음 해에 발행된 수리 지시서야. 봉인된 판이 다른 부서에서 작동 가능한 장비로 등록됐더군.”
“그럼 봉인을 풀었다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다른 장비를 같은 번호로 적었을 수도 있소. 내게는 원본이 없지.”
수현은 조각을 받아 들었다. 손바닥에 차갑게 닿았다.
“재가동을 주장한 사람이 있군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기 전에 지시서부터 확인하시오.”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고치지 않은 기계에 대해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진 않소.”
수현은 그 말을 기억했다.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진실을 빌려 쓰거나 함부로 고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그녀가 강제로 이동한 그날 이후, 누군가는 안전하지 않은 기계의 재가동을 요구했다.
남부에서 돌아온 수현은 세드나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재가동 지시서가 필요해요.”
“조회할 권한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조회를 거부했다는 이유부터 기록하죠.”
세드나는 미소 지었다.
“당신의 고향에서도 그렇게 했습니까?”
“매일은 아니고요. 아주 피곤한 날에요.”
수현은 숙소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식사를 했다. 배고픈 채로 하는 추리는 종종 음모보다 저녁 메뉴를 더 많이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날 밤, 노아가 준 견본의 두 구멍을 그림으로 옮겼다. 하나는 멈춤, 하나는 다시 시작하려면 확인하라는 뜻.
그녀에게 필요한 것도 그 순서였다. 먼저 멈추고, 확인한 뒤, 돌아갈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
제12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