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 운용실의 열쇠는 셋이었다.
문 열쇠, 기록함 열쇠, 그리고 기록을 읽어도 된다는 허가서. 이수현은 그중 세 번째가 가장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오늘은 문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운용실 관리인 레오가 말했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었고, 왼손에는 오래된 기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낡은 작업복의 단추가 서로 달랐다. 수현은 그가 급하게 옷을 고쳐 입었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사람의 외형에서 그 사람의 사연을 마음대로 읽지 않기로 오래전에 결심했다.
“기록은요?”
“정식 권한이 승인되면 보실 수 있죠.”
“승인을 누가 하나요?”
“현재 책임자는 행정분관입니다.”
“그곳에서는 관리인이 확인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레오가 어깨를 움츠렸다.
“행정이랑 기술이 서로 책임을 맡으라고 하는 일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업무 절차가 있지요. 다만 여기선 서로 던지는 공이 마법으로 움직이더군요.”
세드나가 피식 웃었다. 레오는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기가 비난받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는 눈치챈 듯했다.
운용실 외벽에는 희미한 금색 원이 그려져 있었다. 원 안쪽은 서로 맞물리는 두 개의 문양으로 나뉘었다. 레오는 왼편이 ‘요청 경로’, 오른편이 ‘실행 경로’라고 설명했다. 한쪽의 문양은 거의 지워졌는데 다른 쪽은 먼지 속에서도 선명했다.
“이렇게 보면 실행 경로만 많이 사용된 것처럼 보이는데요.”
“도색한 시점이 달랐습니다. 그걸로 사용량을 판단할 수 없어요.”
수현은 메모했다. 레오에게도 ‘단정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의외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
문만 확인하겠다는 방문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바닥에 그어진 안전선과 출입기록을 대조하다가 세드나가 낯선 표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날 야간 작업자는 두 명이네요.”
“네. 한 명은 운용 담당, 한 명은 안전 확인자였어요.”
“그런데 둘째 사람의 출입 시간은 비어 있습니다.”
레오가 서류를 봤다.
“구형 장치에서는 종을 치면 전체 조원 출근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출입과 서식상의 출근도 구분해야겠네요.”
“맞아요.”
레오는 잠깐 침묵하더니 선을 하나 더 그었다.
“과거 그날 밤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이상하게 한 사람을 찾습니다. 누가 마지막 손잡이를 당겼는지요. 하지만 손잡이만으로 사람이 이동하는 게 아닙니다. 어느 요청을 받을지 지정해야 하고, 종점이 응답해야 하고, 장치가 안정되는지도 봐야 합니다.”
“사람이 여럿 관련되어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한 사람한테 잘못을 덮어씌우거나 반대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만들 수 있죠.”
수현은 레오의 말투에서 오랫동안 설명하지 못한 일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질문을 급히 밀어붙이지 않았다. 기억의 빈칸을 질문자의 기대대로 채우는 순간 증언은 망가진다.
“오늘은 구형 운용서 목록과 승인 절차만 받겠습니다. 레오 씨가 직접 본 일과 들은 이야기는 나중에 구분해서 말씀해 주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금 말이 많아지는 사람에게는 질문보다 시간을 주는 편이 나았다.
***
돌아가는 길, 마차 바퀴가 좁은 돌길 틈에 빠졌다. 데런이 말고삐를 잡고 바퀴 아래에 쐐기를 끼웠다. 한때라면 수현이 얼른 내려 함께 밀었을 것이다. 그러나 데런은 단호하게 손을 들어 막았다.
“손대지 마세요. 짐이 한쪽으로 쏠렸습니다.”
“저도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는데요.”
“당신은 발을 다칠 수 있어요. 쐐기만 받치면 됩니다.”
데런은 가까운 역참에서 긴 지렛대를 빌려 왔다. 두 사람이 힘을 나눠 가하자 마차가 조금씩 올라왔다. 일을 마친 그는 쐐기에 남은 흠집을 보며 말했다.
“예전에는 그냥 온몸으로 밀었습니다.”
“왜 지금은 안 그래요?”
“그렇게 하다가 허리를 다친 사람이 있었거든요. 결국 마차도 늦게 도착하고, 그 사람은 석 달을 쉬었습니다.”
“배운 사람이네요.”
“누군가 계속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봐서요.”
데런은 자연스럽게 말했다. 수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런 변화가 자신이 돌아간 뒤에도 남을 수 있다면, 오래 머문 시간이 전부 낭비는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지워 주지는 않았다.
***
다음 날 받은 허가서는 예상 밖으로 엄격했다. 장비를 작동하지 않고, 원본을 반출하지 않으며, 의료 정보가 포함된 구획은 당사자 동의 없이는 열 수 없었다. 루세가 마지막 조항에 크게 동의했다.
“저걸 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꼭 나중에 ‘실험 중 사고’라고 써 놓죠.”
“실험이 아니라 조사예요.”
수현이 말했다.
“그래도 조사는 서류에 갇히지 않잖아요. 방에 들어가는 사람부터 위험할 수 있습니다.”
루세는 장갑을 벗고 작은 목제 상자를 보여 줬다. 안에는 지름이 다른 유리 원판 세 장이 있었다. 원판은 과거 종점 장치와 연결됐던 부품의 모형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승인판이 아니라 분리판이에요.”
“분리판?”
“요청 내용과 이동 대상자의 신원을 따로 확인하는 장치요. 두 값이 다르면 작동 경로를 막아야 합니다.”
“그럼 저를 데려온 날에는 그 확인이 실패했나요?”
“확인할 기록이 부족합니다. 고장이었는지, 우회됐는지, 애초에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는지 모르죠.”
수현은 원판 두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둘의 차이를 누가 판단하나요?”
“원래는 장치와 독립 확인자가 함께합니다.”
“그럼 한쪽이 공백이면?”
“작동을 멈춰야죠.”
“서류에서는 공백이 승인으로 바뀌었고, 장치에서도 그랬다면요?”
루세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가설입니다. 하지만 조사할 가치는 있겠네요.”
그는 수현이 만든 두 장의 종이를 한참 봤다. ‘확인된 사실’과 ‘아직 모르는 일’. 루세는 자기 이름을 아직 모르는 일 쪽에 쓰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
운용실 출입 허가가 정식으로 나온 날, 레오는 과거에 사용하던 장갑과 지금 지급하는 장갑을 나란히 놓았다. 오래된 것은 손목 끝이 해져 있었고 지금 것은 두툼했다. 그러나 새 장갑도 모든 사람의 손에 맞지 않았다.
“설비가 오래됐으면 도구를 먼저 바꿔야 하지 않나요?”
수현이 묻자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도구를 새것으로 바꿔도 잘못된 절차는 남습니다. 예를 들어 안전 확인자가 없는데 두 사람의 서명을 한 사람이 대신 적는 일이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예전엔 관행처럼 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본 사례를 특정해야 하면 별도 조사해야죠.”
루세는 레오에게 장갑 대신 비가동 시험표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낡은 표에는 ‘동력 유입 금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현은 그 문구를 소리 내어 읽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는 글씨가 기록실에서 이렇게 작게 보인다는 것이 이상했다.
“크게 써 붙이면 좋겠네요.”
“괜찮은 의견입니다.”
레오가 답했다.
그들은 운용실을 방문하는 외부인에게 사전에 보여 줄 안내문을 새로 적었다. 출입 동의는 관찰 허가이고, 장치 작동이나 인체 시험에 대한 동의가 아니다. 안전 중단을 요청하면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멈추고, 이후에 상황을 확인한다. 수현이 추가한 문장은 단 하나였다. ‘거절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기술 문서 같지 않네요.”
루세가 말했다.
“사람이 사용하는 기술인데 사람 이야기부터 있어야죠.”
레오는 안내문을 한동안 읽었다. 낡은 건물의 작은 벽에 새 종이를 붙이는 일에 많은 권한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부정확한 안내가 아닌지 관리관의 승인을 받았고, 수현은 자기 이름을 작성자로 남기지 않았다. 이곳의 제도는 이곳의 직원들이 고쳐야 오래갈 것이다.
***
출입을 기다리는 동안 수현은 운하 근처의 작은 식당에 들렀다. 테이블 두 개가 비어 있었는데도 주인이 주문을 받지 않았다. 잠시 뒤 주인은 혼자 불을 끄고 뒤쪽으로 갔다. 가게 문에는 ‘식사 시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손님이 있는데 장사 안 하세요?”
수현이 물었다.
“먹고 나서 해야죠.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잘 만들 수 있겠습니까?”
주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수현은 그 말에 잠깐 멈췄다. 이 세계에 도착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규정일지도 몰랐다. 주인은 자신의 밥을 다 먹은 다음 수현에게 따뜻한 파이를 내줬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운용실에서 일하던 젊은 기술자들이 가끔 밤새 식사를 못 하고 온다고 말했다.
“예전엔 걔들이 좋은 일 한다니까 그냥 보내곤 했죠. 근데 어느 날 손이 떨리는 걸 봤어요. 그래서 이제는 외상이라도 먹이고 보냅니다.”
“돈은 어떻게 받으세요?”
“월말에 받습니다. 못 받으면 다음 달에 받고요.”
수현은 주인의 말에 위험할 만큼 낭만적인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안전이었다. 그녀는 기술 관리청이 식비를 어떻게 지급하는지 나중에 확인해야겠다고 메모했다. 그리고 식당에 음식값을 정확히 지불했다.
저녁에는 레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노아가 떠난 뒤로 그 방을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소. 한동안 사고가 날까 봐 잠겨 있었고, 그다음에는 열쇠를 가진 사람도 바뀌었지.”
“그래서 사용 장부가 여러 곳에 있을 수 있겠군요.”
“맞소. 내가 바라는 건 이걸 열다가 다른 사람 다치게 하지 않는 거요.”
수현은 진심으로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돌아갈 길이 위험한 장치밖에 없다면, 그 길은 아직 길이 아니니까요.”
***
저녁에 기술 관리청에서 보낸 답장이 도착했다. 출입 허가는 확인됐지만 무허가 장치 재가동을 막기 위해 열람 인원의 수가 제한된다는 내용이었다. 수현은 제한 자체보다 제한의 근거를 살폈다. 방문자가 많아서 위험하다는 설명만 있고, 실제 누가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는 없었다.
“이 규정은 사람 수를 줄이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나요?”
루세는 장치 구조도를 펴 보였다. 오래된 복도는 폭이 좁고 출입구가 하나뿐이었다. 네 명이 동시에 빠져나가면 서로 밀릴 수 있었다. 수현은 규정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불편하지만 지켜야겠네요.”
“이럴 때는 다행히 규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죠.”
세드나가 말했다.
출입 인원을 정한 뒤 남은 사람들은 옆 건물의 보존 창구에 배치됐다. 수현은 자신이 못 들어가는 구역의 내용까지 대신 확인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자료 열람에 각자의 권한이 있는 것처럼 현장 안전에도 각자의 위치가 있었다.
***
종점 운용실 내부는 오래된 시계점 같았다. 벽마다 작은 톱니가 붙어 있고, 안쪽 방에는 유리관이 수십 개 걸려 있었다. 작동은 중지되어 있었지만 일부 관에서는 은은한 열기가 느껴졌다. 루세는 온도만 기록하고 만지지 못하게 했다.
“이 유리관들이 사람을 옮겼다고요?”
“사람을 옮길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있었죠. 공식 성공 기록은 없습니다.”
“그럼 제 이동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E-17은 이 시설에 요청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요청이 실제 장치 작동으로 이어졌는지는 이곳의 운용 로그를 확인해야 합니다.”
문서함에서 나온 접이식 장부에는 두 개의 열이 있었다. ‘작동 준비’와 ‘작동 접속’. 그런데 이수현 사건이 발생한 밤의 접속란은 놀랍게도 비어 있었다.
“기록이 없네요.”
수현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아뇨. 다른 글씨가 있어요.”
세드나가 손전등을 비추었다. 접속란 옆의 작은 여백에 검은 잉크로 ‘현장 계열 복귀 보류’라고 쓰여 있었다.
“복귀를 보류했다는 뜻이에요?”
“어느 물건이나 사람의 복귀인지 모릅니다.”
“제가 돌아갈 길과 관계가 있을까요?”
“그건 아직 모르죠.”
수현은 이번에도 당장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움직였다. 돌아간다는 말이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 것이다. 그 말의 주인이 자신은 아닐지라도.
레오가 장부를 덮으려다가 멈췄다.
“잠깐. 저 글씨를 쓴 사람을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드나와 수현이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그날 밤의 담당자는 아니에요. 그다음 날 장비를 봉인한 사람입니다. 오래전에 남부 수리소로 전출됐죠.”
“이름이 있나요?”
“네. 이름은 노아입니다.”
수현은 이름을 적었다. 이제 그녀는 빈칸의 이름을 채우기보다, 이름이 가리키는 행위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노아 씨에게 확인할 게 생겼네요. 저 문장을 왜 적었는지.”
“그리고 뭘 봉인했는지도요.”
루세가 덧붙였다.
기계를 멈춘 사람이 어쩌면 그 기계가 무엇을 했는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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