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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21화
PAYLUA ORIGINAL · 제121화

121화. 집행 후보는 사람이 아니다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11자

오프라인 책장
제4독립보존고에서 돌아온 다음 날, 이수현은 여관 주인에게 종이 두 장을 빌렸다. 한 장에는 ‘확인된 사실’, 다른 장에는 ‘아직 모르는 일’이라고 적었다. 두 장의 크기는 같았지만 글씨가 차지한 면적은 달랐다. 모르는 일 쪽은 이미 종이 아래까지 빽빽했다. 수현은 잠깐 고민하다 맨 아래에 작은 글씨를 하나 더 넣었다. ‘오늘도 집에 못 감.’ “이건 증거입니까, 감상입니까?” 문간에서 세드나가 물었다. “일일 업무보고에 가깝죠. 저를 고용한 회사는 없지만요.” “당신은 이제 길드 자문 계약도 끝났잖아요.” “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퇴근하고 싶습니다.” 세드나는 웃음을 삼키며 탁자에 봉투 하나를 놓았다. 왕도 행정분관에서 발송한 출석 안내서였다. 제목은 ‘E-17 집행 기록 추가 소명 요청’. 소명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불분명한 서식이었다. 수현이 밑줄을 그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소명 요청의 대상은 누구예요?” “집행 후보로 분류된 사람의 권리 확인을 위해 기록 담당자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문서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설명하라는 게 아니군요.”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다행이에요. 피해자한테 네가 왜 피해자가 되었는지 입증하라고 하면 아주 불쾌할 뻔했거든요.” 봉투 안에는 야간 처리센터의 위치도 들어 있었다. 왕도의 북동쪽 외곽, 운하를 끼고 있는 낡은 청사였다. 왕립길드 건물과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서류의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친척쯤 될 듯했다. 수현은 책상 아래에 둔 휴대전화를 꺼냈다. 전원을 켜면 배터리 표시가 순간 빛났다가 꺼졌다. 완전히 방전된 지 오래였다. 어쩌면 돌아갈 길의 증거가 될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종이 누름돌 이상의 일을 못 했다. “이 물건은 왜 매일 확인합니까?” “고향에선 이걸로 길도 찾고 사람도 불렀거든요. 여기선 안 되지만요.” “돌아가면 제일 먼저 뭘 하실 거죠?” “충전부터 해야죠.” 세드나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그녀의 표정을 보다가 웃고 말았다. 이곳 사람들은 얼마나 이상한 질문에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가장 당연해야 할 질문, ‘그 사람은 동의했는가’에는 너무 오래 대답하지 못했다. *** 야간 처리센터의 벽에는 세 개의 종이 걸려 있었다. 작은 종, 중간 종, 큰 종. 안내인은 첫 번째 종이 민원 접수, 두 번째가 부서 이관, 세 번째가 비상 작동 신호라고 설명했다. “E-17 당일에는 세 번 모두 울렸습니까?” 수현의 질문에 안내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종을 울렸다는 기록이 있어야 알지요.” “그 기록을 보러 왔습니다.” “그럼 기록 관리실로 가세요.” “그 기록 관리실은 어디죠?” “저기 종을 지나면 있습니다.” 공무원에게 동선을 묻는 일이 미로 게임이 될 줄은 몰랐다. 수현은 웃음을 참은 채 세드나의 뒤를 따라갔다. 관리실 입구에는 ‘집행 후보는 확정 인원이 아님’이라는 최근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어쩐지 그녀가 여러 번 말했던 문장과 비슷했다. 관리 책임자 이디스는 짙은 남색 조끼를 입은 중년 여자였다. 그는 안내서를 확인한 뒤 수현의 이름을 조용히 읽었다. “이수현. 본인입니다?” “네. 다만 본인의 진술에 앞서 당일 기록의 출처를 보존해 주세요.” “왜 그러죠?” “제가 여기에 도착했다는 결과만 보고 원인이 제 동의라고 추측하지 않기 위해서요.” 이디스가 세드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세드나는 수현의 말을 보충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요청서를 내도록 기다렸다. 그 태도가 수현을 도왔다. 누군가 그녀를 대신해 너무 빨리 말하면, 이 세계의 기록은 금세 그 사람의 권한이 되어 버리곤 했다. “원본은 이곳에 있고, 개인 열람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다만 사건번호와 봉인 상태, 담당자를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이디스는 서랍에서 두꺼운 판자를 꺼냈다. 그 위에 밤별로 당직을 표시한 작은 금속 패가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당일 여섯 번째 야간조의 감독자는 누구입니까?” “기록에는 ‘당직 관리자 공석, 비상 대행 개시’라고 나옵니다.” 수현은 펜을 멈췄다. “사람이 없어서 자동으로 일이 시작된 건가요?” “그렇게 단정하지 마세요. 비상 대행은 담당실 배정만 할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오늘 처음 듣는 경고 중에서 가장 반가운 말이네요.” 관리자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수현은 스스로도 놀랐다. 이제는 왕도 행정 직원들이 먼저 ‘단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 열람 구역에서는 붉은 실로 묶인 두 개의 판이 나왔다. 첫 판에는 E-17, ‘후보 이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둘째 판에는 다섯 자리 작동 코드와 ‘승인 대상 미연결’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후보 이관 뒤에 작동 코드가 생성되었네요.” “그건 아직 연결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코드의 생성과 사용 기록을 분리해서 확인해 주세요.” 이디스가 조용히 끄덕였다. 그 뒤편에서 손수레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젊은 직원 한 명이 높은 선반 위의 구형 장부를 혼자 내리려다가 균형을 잃었다. 수현은 저도 모르게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잠깐! 내려놓으세요!” 장부가 기울자 세드나가 서둘러 손수레를 붙잡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젊은 직원은 손바닥을 비볐다. “이 서랍을 오늘 안에 비워야 하거든요.” “혼자 들 수 있는 무게인가요?” “원래 둘이 하는 일인데요. 오후조가 비어서.” 이디스의 얼굴이 굳었다. 수현은 낡은 장부를 봤다. 작동 코드를 확인하러 온 자리에서 지금 직원에게 같은 종류의 무리한 일을 시킬 뻔했다. 기록의 오류는 수십 년 전의 사고만이 아니었다. “자료는 내일 봐도 됩니다. 지금 먼저 해야 하는 건 저분 손을 보는 일 같아요.” “저 때문에 늦어지는 건 싫습니다.” 젊은 직원이 말하자 수현이 대답했다. “저도 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늦어지는 건 싫어요. 하지만 그 이유로 다른 사람 손목을 망가뜨릴 수는 없죠.” 그는 머뭇거리다가 팔에 감긴 천을 풀었다. 손목이 약간 부어 있었다. 이디스는 작업을 중단시키고 두 사람 운반 원칙을 적은 안내판을 다시 내걸었다. 종이 세 개가 달린 곳에서 가장 큰 변화는 지금 들리지 않는 종이었다. 무리한 업무를 멈추게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 그날 서류 작업이 끝난 뒤 수현은 이디스에게 야간 처리센터의 업무 인수인계 방식부터 물었다. 단순히 기록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사흘 전 제4독립보존고에서 본 페른의 다친 손목과 방금 전 장부를 떨어뜨릴 뻔한 직원의 모습이 겹쳤다. “야간조가 비면 어떤 사람이 대신 들어오나요?” “당직표에 대체 인원이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도 정해져 있나요?” 이디스는 대답을 잠시 미뤘다. 그녀의 책상에는 오늘 처리해야 할 소명 요청이 쌓여 있었다. 수현은 그중 자기 이름이 들어간 문서도 보았다. 개인사건의 이익만 챙기고 돌아가면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저녁마다 누군가 제대로 쉬지 못한다면 기록의 빈칸은 계속 생길 것이다. “오늘은 대체 인원 목록이 두 명뿐이에요. 하나는 다른 부서 출장 중이고, 하나는 육아 때문에 야간 근무를 하지 않기로 승인받았습니다.” “그럼 비상 대행이 자동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겠네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 대행은 접수와 분류까지만 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경계가 어딘가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거군요.” 이디스는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당직표 옆에 붙은 작은 종이를 봤다. 비상 대행에 관한 안내였지만 현장 직원은 그 내용을 전부 외우지 못했다고 했다. 바쁜 시간에는 오래된 도장부터 찍는다는 것이다. “저라면 실무자가 실수하지 않도록 접수와 실행을 아예 다른 색으로 표시하겠어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바꿀지는 여기 직원들이 정해야죠.” “예산이 필요하겠죠.” “예산이 없다면 최소한 두 절차가 다르다고 적어 놓는 건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서식 개정안을 만드는 대신 직원의 의견을 모으는 시간을 정했다. 수현은 자신의 사건을 심사하는 곳에 제안을 해도 되는지 고민했지만, 개인의 판정을 조건으로 내건 일이 아니기에 담당자에게 구분해 기록해 달라고 했다. *** 여관으로 돌아와서는 늦게 도착한 편지를 읽었다. 메이는 긴급 보급 문제가 여전히 복잡하지만 원정대에서 이제 본인 확인을 거쳐 물품을 받는다고 적었다. 젠은 휴식 중에 전달 업무를 하지 않는 날을 처음 가졌다고 했다. 카이렌은 서툰 글씨로 ‘대체 근무가 생각보다 잘됩니다’라고 적었다. 수현은 그 문장 밑에 혼자 밑줄을 그었다. 서울에서는 이런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의뢰인이 승소했다는 연락은 종종 왔지만, 출근 시간이 짧아져서 좋다는 소식만 전하려고 편지를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분명 그녀의 계획 밖이었다. 그러나 계획 밖의 사람들까지 전부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수현은 가방에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 묻은 오래된 손자국을 소매로 닦았다. 돌이켜 보면 서울을 떠나던 날 대체 무슨 일을 하려던 길이었는지 기억이 흐릿했다. 일상의 작은 일들이었다. 냉장고에 반찬을 넣고, 다음 주 사건 기록을 정리하고,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는 일. 그런데 지금은 그런 평범함이 몹시 선명하고 소중했다. “반드시 돌아가야지.” 수현은 혼잣말했다. 그러고는 메이의 편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혼자서만 급해지진 말자.” 그녀는 다음 날 확인할 항목을 줄여 적었다. 불필요한 질문을 줄이면 서류뿐 아니라 사람도 덜 지치게 할 수 있다. 그 생각이 뜻밖에 편안했다. *** 아침 회의가 끝나기 전, 이디스는 젊은 직원들에게 표 하나를 돌렸다. 비상 대행으로 실제 맡게 되는 업무와 맡지 말아야 할 업무를 구분해 적는 표였다. 어느 직원은 분류만 한다고 썼고, 다른 직원은 위험 경고까지 전달한다고 적었다. 서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업무 범위가 조금씩 달랐다. “이렇게 달랐군요.” 이디스는 놀랐다. 수현은 맨 뒤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모두 같은 업무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E-17도 이런 작은 불일치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밤과 이 표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은 아직 없었다. 그녀는 그 차이를 적었다. 한 직원은 오늘 같은 자리에서 자기 의견을 적어도 되는지 세 번이나 물었다. 이디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업무가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은 징계 사유가 아닙니다.” 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작은 승리를 느꼈다. 자기 사건의 서류가 완성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멈출 권리를 알리는 일은 진행 중이었다. *** 저녁이 되자 수현은 첫 번째 종이 적힌 복도에 다시 섰다. 작동 코드는 생성되었지만 사용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길드 측 소환 배정표에는 완료 표시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여기 와 있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셋을 잇는 화살표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디스 씨가 기록 조회를 계속한다고 했어요.” 세드나가 말했다. “네. 오늘은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당신답지 않군요. 언제나 하나라도 더 확인하려 하잖아요.” “오늘 하나는 확인했어요.” “뭘요?” “작동 코드가 만들어졌다고 사람을 데려와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그들은 복도 끝의 창을 열었다. 운하 건너편에서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수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서울에 있었다면 퇴근길 한강 다리를 지나는 차들을 볼 시간이었을까. 그 상상이 약간 아팠다. 이디스가 뒤따라 나왔다. 그녀는 읽을 수 있는 범위의 추가 표지를 가져왔다. “이수현 씨. 보존고에서 가져온 E-17 후보 이관표와 우리 센터의 작동 코드 생성표에는 같은 연결번호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용 장부는 여기 보존 목록에 없습니다.” “그럼 어디 있나요?” “구형 종점 운용실. 하지만 현재 그 방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수현은 손바닥에 적어 둔 번호를 들여다보았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의 낯선 문자가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 익숙함이 집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기를 바랐다. “사용하지 않는 방도 누군가는 관리하겠죠.” “그렇습니다.” “그 사람부터 만나야겠네요.” 세드나가 물었다. “내일입니까?” “네. 오늘은 직원분도 쉬고 우리도 쉬어요.” 그 순간 작은 종이 한 번 울렸다. 새 민원이 들어온 것이었다. 수현은 돌아보지 않았다. 모든 민원을 자기가 처리할 수는 없었다. 특히 자기 자신이 아직 끝나지 않은 민원일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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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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