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20화
PAYLUA ORIGINAL · 제120화

120화. 돌려보낼 사람의 이름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153자

오프라인 책장
수현은 자신에게서 시작된 서류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보다가 포기했다. 진정서, 현장 확인 배정, 동의 기록 누락, 귀환 의사 접수, 제한 열람 신청, 보존고 접근 허가. 자신이 오지 않았다면 아무도 찾지 않았을 것 같은 문서들이었다. “수현 씨.” 세드나가 불렀다. “오늘은 결론을 보게 될 수도 있어요.” “집에 가는 결론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제4독립보존고에서는 E-17 현장 집행 단계 확인표의 가림 열람이 허가됐다. 법률상 어느 나라 규정을 적용해야 하는지 논쟁할 수는 없었다. 수현의 한국 자격증이 왕도 기관의 공권력으로 바뀐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동 기록을 확인할 권리는 인정받고 있었다. 페른은 전날 손목을 다친 탓에 무거운 상자를 들지 않았다. 대신 기록 번호를 읽었다. 디아는 봉인 실을 확인하고, 두 번째 보존자는 종이를 펼쳤다. 그날 수현이 본 것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한 장의 문서가 아니었다. 집행을 위해 여러 기관이 주고받은 신호 목록이었다. 한쪽에는 민원을 보낸 쪽의 접수 번호, 다른 한쪽에는 현장 확인인이 배정되는 경로가 있었다. 두 줄은 한 번 합쳐졌다가 다시 나뉘었다. 그 사이에 수현의 눈이 멎었다. [당사자 의사 확인: 미수신] 그 아래에는 다른 색 잉크로 적힌 처리 결과가 있었다. [야간 자동 이관: 집행 후보로 이동] “후보라고요?” 세드나가 숨을 들이켰다. “집행 완료가 아니라 후보 명단에 올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실제로 여기 왔잖아요.” 루세가 옆에서 대답했다. “그래서 이 뒤에 어떤 신호가 장치에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표의 다음 장에는 이름이 아닌 식별자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식별자는 제4독립보존고가 갖고 있던 다른 회신 기록과 같은 양식으로 보였다. 디아는 별도의 번호를 대조했다. 두 기록의 보존 시기와 담당 부서가 맞아떨어졌다. 적어도 이 기록이 전혀 관계없는 물건을 임의로 가져다 붙인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은 사건이라는 뜻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관련 보존 묶음이라는 뜻입니다.” 디아가 답했다. “같은 작성자, 같은 실제 발신자를 뜻하지는 않아요.” 수현은 그 차이를 이제 바로 알아들었다. *** 조사실에서는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벨릭은 신형 대장에 남은 '집행 후보'라는 표시가 실제로는 현장 배정이 끝났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엘다는 고개를 저었다. 구형 절차에서 후보 명단은 단순히 다음 담당자에게 심사를 넘긴 상태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럼 누가 실제로 장치를 작동했는지를 알 수 없다는 말씀이군요.” 수현이 말했다. “현재 자료로는 그렇습니다.” 루세가 답했다. “하지만 다음 단계 확인 기록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범위를 좁혔어요.” 그는 시험 절차를 설명했다. 실제 이동을 재현하려는 계획은 아니었다. 장치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에 어떤 기록이 요구되는지 문서로만 비교하는 작업이었다. 사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체 실험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다시 확인했다. 수현은 참여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오늘은 자료 열람 동의만 유효하다고 적었다. 연구자들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장면이었다. *** 오후 심사에 앞서 수현은 메이와 카이렌에게 각각 짧은 편지를 보냈다. 자신이 마지막 기록에 접근하게 됐다는 소식, 그러나 아직 누구를 책임자로 특정하지는 못했다는 소식이었다. 두 사람에게 설명을 해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처음부터 함께 고생한 이들에게 진전을 나누고 싶었다. 메이의 답장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수현 씨, 저희는 잘 지내요. 치료비 심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긴급 약재를 막는 절차는 별도 검토되고 있어요. 수현 씨가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위험한 실험은 하지 마세요.] 수현은 마지막 문장에서 웃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메이에게 위험을 설명했는데, 이제는 메이가 수현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있었다. 카이렌의 편지에는 글씨가 조금 삐뚤었다. 그는 제7원정대의 장기 근무 개선안에 대원들이 직접 의견을 냈다고 했다. 데런은 말 관리의 야간 대기를 분리했고, 젠은 활 훈련 도중 부상한 사람의 복귀 기준을 제안했다. 오르카는 방패 기사에게 후방 보조 업무를 배정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고 있었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도 모두가 자기 일을 했습니다. 예전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현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제7원정대는 여전히 마물과 싸워야 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위험을 감당하는 방법은 바뀌고 있었다. *** 심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원본 기록을 한 번 더 대조했다. 기술자는 사람을 이동시킬 수 있는 장치의 작동 조건을 설명하는 대신, 당시 명령을 받아들인 서식의 구조를 보여 주었다. 장치 자체의 핵심 부품은 안전상 봉인돼 있었고 작동 시험은 허용되지 않았다. 수현은 도표에 적힌 화살표를 바라봤다. 접수, 검토, 배정, 집행 후보, 실제 집행. 다섯 개의 칸 사이에 굵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문제는 집행 후보와 실제 집행 사이를 넘는 조건이었다. 그 칸에 들어가야 할 승인 자료가 무엇인지 분명히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여긴 왜 화살표가 실선이죠?” 수현이 물었다. 루세가 설명했다.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다음 단계로 자동 이관되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조건인지 서식의 별도 부록을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어요.” “그 부록은요?” “지금은 보존고에서 확인 중입니다. 남아 있지 않다면 실제 작동 원리를 단정해서는 안 돼요.” 수현은 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마지막 한 장이 문제였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그 장이 없다고 해서 남이 채운 답을 믿지 않았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동의 확인란이 비었다는 사실은 인정됩니다. 하지만 서류만으로는 실제 이동이 이루어진 방식을 확정할 수 없군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기록해 주세요. 제가 이동된 건 사실이고, 기록에 동의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확인한 자료만으로 실제 기술 과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요.” 심사위원은 그녀의 요청을 적었다. *** 새 서류의 종이 끝에는 작은 여백이 남아 있었다. 수현은 거기에 무엇인가 더 쓰려다가 멈췄다. 필요한 뜻은 이미 충분히 적혀 있었다. 아무리 길게 설명해도 아직 모르는 사실을 채울 수는 없었다. 그녀는 펜 뚜껑을 닫았다. 이번에는 빈칸을 남겨 두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수현이 새 귀환 의사 신청서를 작성할 때 세드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확인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앞으로 요구받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정보를 왜 요구하는지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수신점에 주소부터 보내지는 않을 거예요.” “서류만 잘 쓰면 집에 돌아갈 거라고 믿는 건 아니죠?” 수현은 웃었다. “그런 기계가 있다면 제가 제일 먼저 시험해 보고 싶겠지만, 지금까지 본 걸로는 아니에요.” 그녀는 신청서 끝에 덧붙였다. [이동 경로가 검증되기 전까지 신체 이동 시험에 동의하지 않음.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제한적 문서 열람 및 안전한 정보 통신 검증은 목적과 범위를 설명받고 별도로 판단함.] 세드나는 문구를 확인하고 서명란을 가리켰다. 수현은 자기 이름을 적었다. 누군가 오래전에 대신 적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그 이름을,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적었다. 원정대의 용사가 쉬어도 되는지 묻던 날부터 여기까지 참 많은 일을 해 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는 모른다. 다만 다음 단계는 이제 수현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묻는 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날 저녁 수현은 제4독립보존고의 작은 마당에서 디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창고 지붕은 보수가 시작됐고, 배수로에는 새 덮개가 씌워졌다. 젖었던 기록은 아직 건조실에서 보호되고 있었다. “드디어 뭔가 얻으셨군요.” 디아가 말했다. “네. 제게 허락을 묻지 않은 절차가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인됐어요.” “그래서 만족하세요?” 수현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느끼면서도, 아직 서울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만족보다는… 이제 어디를 봐야 할지 조금 알겠어요.” 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창고 뒤편 우물을 가리켰다. “저 우물은 물이 다 말랐다고 막았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 큰비가 왔을 때 지하에서 물이 다시 차올랐어요. 사람들이 '우물이 살아났다'고 했죠.” “정말 살아난 건가요?” “아니요. 지하 배수로가 막혀 물이 역류한 겁니다.” 수현이 웃었다. “여기선 모든 기적에 점검표가 있네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디아의 말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기록을 지키는 사람은 귀환 기술을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근거로 믿고 움직이는지 확인해 줄 수 있었다. 수현은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자 수현은 홀로 여관에 돌아왔다. 그녀는 빈 종이에 서울에서 할 일을 적었다. 실종 기간 동안 사무실은 어떻게 됐을까. 휴대폰은 켜질까. 가족과 친구는 자신을 어떻게 찾았을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잠시 뒤 그녀는 종이를 뒤집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세계의 일을 미리 결론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확실한 한 문장을 썼다. [나는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고 약속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근거를 요구하겠다.] 작은 등불 아래에서 그 문장이 흔들렸다. 수현은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내일은 다시 질문을 시작할 것이다. 그 질문의 대상이 기계일지 사람일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 이름을 지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후에 세드나는 왕립길드에서 온 별도 통지서를 가져왔다. 수현의 소환 이의는 실행 단계 확인 절차에 들어갔고, 앞으로 결과를 정기적으로 통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더 중요한 문장은 그 아래에 있었다. [민원 신청인의 요청 및 행정상 담당실 배정은 제3자의 이동 동의로 간주할 수 없음. 유사 절차의 자동 완료 표기 재검토를 권고함.] 수현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자신의 소환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오류가 다른 사람에게 반복되지 않도록 점검하는 절차는 시작됐다. “조금은 앞으로 나아갔네요.” “네.” 세드나가 답했다. “다만 귀환은 여전히 별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된 이동을 인정하는 것과 안전하게 돌려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갖추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때 디아가 작은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이건 오늘 처음 발견된 건 아닙니다. 상자 외피에서 분리해 보관하던 부속 안내예요. 내용 열람 권한을 확인하니 신청인에게 안내할 수 있는 범위가 있네요.” 수현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안에는 오래된 경고 문구와 함께 수신자 확인란이 있었다. [돌려보내는 경로 확인 시, 먼저 돌아갈 사람에게 의사를 묻는다.] 그 문장 아래에 사람 이름을 적는 빈칸이 있었다. 빈칸 위에는 누군가가 작게 연필로 표시해 둔 질문이 보였다. [현재 현장 확인인: 식별 정보 대조 필요] 수현은 그 빈칸에 자기 이름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곧 손을 멈췄다. 과거의 빈칸을 현재의 의사로 대신 채우면, 그녀가 바로잡으려는 잘못을 반복하는 셈이었다. “제가 새 신청서를 쓰면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과거 원본에 적는 게 아니라 현재 귀환 의사를 다시 확인하는 기록을 따로 만들어야 해요.” 수현은 새 종이를 받았다. 자기 이름과 귀환을 원한다는 사실을 적었다. 상세 주소는 적지 않았다. 아직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안전하게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지막 서명을 하자 세드나는 종이를 접어 별도 접수봉투에 넣었다. “이제 다음 단계입니다.” “어떤 단계죠?” “당신의 원래 세계 주소를 받기 전에, 그 세계가 정말 확인 가능한 수신점인지 검증하는 단계요.” 수현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성벽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세상이 조금 붉게 보였다. 아직 집에 돌아가는 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문을 열기 전에 누가 들어가고 나갈지를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날 수현은 일기 맨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내가 받은 건 귀환 허가증이 아니다. 내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다음에는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지 확인할 차례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20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2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