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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19화
PAYLUA ORIGINAL · 제119화

119화. 실행표의 빈 칸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87자

오프라인 책장
수현은 E-17이라는 번호를 수첩 첫 페이지에 적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몇 달 동안 그녀가 쫓은 것은 이름 없는 그림자였다. 처음엔 메이의 진정서였다. 그다음엔 봉투, 원장, 반송 대장, 경고문. 어디를 가도 담당자가 다르다고 했다. 이제는 실제 집행 단계에 붙은 번호가 하나 생겼다. 하지만 번호가 생겼다고 사람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알고 있었다. 그 번호가 여러 사건에 공통으로 쓰였을 수도 있고, 단지 보존 위치를 가리키는 표식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서둘러 뜻을 정하지 않았다. 제4독립보존고는 비가 그친 이틀 뒤 기록판의 제한적 열람을 허락했다. 수현과 세드나는 보존자의 감독 아래 종이 사본을 펼쳤다. 한쪽에는 절차 이름, 다른 쪽에는 집행 사유와 안전 확인 단계가 적혀 있었다. [절차 E-17: 긴급 현장 확인 배정에 따른 후속 전달] 수현은 서둘러 다음 줄을 읽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칸이 비어 있었다. [현장 확인인 개인 동의: 별도 회신 필요] 회신 번호가 적혀야 할 자리에 잉크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 옆에는 구형 자동 처리 표식이 있었다. '대기 항목은 야간 일괄 이관 대상'이라는 문구가 이어졌다. “이건 집행하라는 뜻인가요?” 수현이 물었다. “아닙니다.” 세드나가 답했다. “적어도 서식에 적힌 의미는 검토 대기 항목을 다음 담당자에게 넘기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실제 집행 기록과 같은 상자에 있죠?” 디아가 말했다. “그건 확인해야 할 질문입니다. 어느 때 누가 합철했는지 아직 모르니까요.” 수현은 머리가 아팠다. 한 칸씩 채우면 답이 나올 것 같다가도, 그 칸의 뜻부터 검증해야 했다. 누군가가 기꺼이 서류를 읽어 준다면 좋겠지만, 남이 내린 결론에 자신의 인생을 맡길 수는 없었다. *** 세드나는 현직 절차 담당자의 의견을 받아 오기로 했다. 담당자는 중년 여성 엘다였다. 그녀는 왕도 남문 행정분관에서 야간 배정 절차를 관리했다. 수현은 면담 전에 자신의 목적을 문서로 전달했다. 자신과 관계없는 사건의 개인정보는 요구하지 않으며, 특정 직원에게 고의 책임을 단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엘다는 처음에는 불편한 얼굴이었다. “나한테 모든 걸 책임지라고 하시려는 거 아니죠?” “그렇게 말씀드릴 근거는 없습니다.” 수현이 답했다. “대신 무슨 단계가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엘다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옛 야간 대행 절차를 설명했다. 당시엔 담당자가 급히 바뀌는 일이 많았다. 진료소에서 사람이 죽어 간다는 연락이 오면, 서기는 신청서를 놓칠까 봐 우선 담당실을 지정했다. 그런데 신형 대장은 그 지정 표시를 큰 글자로 보여 주었다. 다음 담당자는 이미 승인이 된 것처럼 오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 실제 집행을 했다면, 그건 또 다른 기록에 남아야 했어요.” “어떤 기록이요?” “현장 지시판과 안전 확인표요. 둘을 합쳐야 출동 명령이 됩니다.” “당사자 동의가 없으면요?” “원칙상 실행하면 안 됩니다.” 수현은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엘다는 이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일이 몰리면 사람들은 원칙을 어기기보다, 원칙을 이미 누가 지켰겠거니 생각하죠. 저는 그게 더 무서웠어요.” 수현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제 사건에서 누가 동의를 확인했다고 생각한 걸까요?” “기록을 봐야 하겠죠. 제가 추측하면 안 돼요.” 엘다의 답은 기대와 달랐지만 신뢰할 만했다. 그녀는 필요한 열람 절차를 안내했고, 자신이 볼 수 없는 자료에 관해서는 분명히 모른다고 말했다. *** 엘다는 면담이 끝난 뒤 수현을 작은 서고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과거 야간 담당자의 교육자료가 있었다. 이미 공개된 구형 서식이었지만, 일부에는 손글씨 메모가 남아 있었다. “젊을 때 저는 이 문구를 외우느라 밤을 새웠어요.” 그녀는 한 쪽을 펼쳤다. [실행 권한과 기록 관리 권한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을 접수했다고 해서 사람을 이동시킬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 구분은 쉽게 무너졌다. 누군가 서류의 빈칸을 확인하고, 다른 누군가는 마법 장치의 작동을 준비했다. 둘 사이에 책임을 분명히 나누지 않으면 어느 쪽도 최종 확인을 하지 않은 채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엘다는 오래전 사고를 하나 들려주었다. 의료 인력을 급히 파견하라는 명령을 받은 야간 담당자가 서류의 모든 항목이 채워졌다고 생각하고 이동 전령을 보냈다. 그런데 실제 수신인은 이미 다른 곳에서 치료 중이었다. 전령은 한밤중에 쓸모없는 왕복을 했고, 정작 긴급한 환자에게 갈 사람은 늦었다. “그때 제일 크게 혼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수현은 잠시 생각했다. “전령이요?” “그렇죠. 왜 잘못된 주소를 확인하지 않았냐고요. 하지만 그 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주소로 성실하게 갔을 뿐이에요.” “그럼 주소를 작성한 담당자는요?” “그 사람도 이전 자료를 그대로 복사했어요. 잘못된 정보가 어디서 처음 생겼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죠.” 수현은 그 이야기가 자신의 사건과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실제 사람의 차원 이동은 단순한 전령의 실수보다 훨씬 큰 문제였다. 그러나 책임을 조사할 때 마지막으로 움직인 사람에게만 죄를 묻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분명했다. *** 수현은 엘다에게 업무 과중에 관해서도 물었다. 자료에 따르면 옛 야간 담당실은 낮의 절반 인력으로 비슷한 양의 신청을 처리했다. 그 시기 휴가 대체 인력이 없었고, 담당자는 교대 시간에도 처리 중인 문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했다. “그게 잘못된 처리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엘다는 고개를 저었다. “원인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은 있죠. 하지만 어느 특정 사건을 설명하려면 그날의 근무 기록과 처리 단계가 있어야 해요.” 수현은 그 신중함이 마음에 들었다. 막연한 연민으로 책임을 지울 수도 없었고, 가혹한 비난으로 제도 문제를 덮을 수도 없었다. 엘다는 최근에 개정된 야간 근무 계획을 보여 주었다. 한 사람의 휴식 시간에는 다른 사람이 접수를 맡고, 그 대체자가 없는 날에는 긴급한 안전 요청만 우선 처리했다. '늦게 처리한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담당자에게 미리 알리는 방식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하면 일을 못한다고 했을 거예요.” “지금은요?” “지금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만 사고가 나면 그 비용을 누가 지는지 조금은 알게 됐죠.” 수현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처음 카이렌에게 두 시간의 휴식을 얻어 주었을 때 그가 말했었다. 원정대가 쉬는 동안 마물이 공격하면 어떡하냐고. 그러나 쉬지 못한 용사가 무너지는 비용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모든 사람이 치르고 있었다. 엘다는 수현에게 서류의 복사 방법을 설명했다. 내용을 공개하면 안 되는 부분은 가리고, 복사본의 출처와 수정 여부를 명시해야 했다. 수현은 그 절차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다른 사람의 기록을 근거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더라도, 그 사람의 비밀을 함부로 드러낼 권리는 없었다. *** 왕도에서 나오는 길에 수현은 작은 게시판을 보았다. 거기에는 제7원정대의 새 교대 운영이 다른 부대의 참고 사례로 소개돼 있었다. 아직 의무 규정도 아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한 사람이 쉬면 모두가 멈춘다는 오래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수현은 게시판 앞에서 잠시 웃었다. 여기에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런 변화일 것이다. 그 변화가 자신 없이도 이어지길 바랐다. 세드나는 심사 기관에 보낼 질의서의 마지막 항목을 확인했다. 수현이 제출한 질문은 세 가지였다. 당시 '집행 후보'라는 단어의 의미, 실제 실행 담당자에게 전달되는 필수 서류, 그리고 당사자 동의를 확인하지 못했을 때 누구에게 중단 권한이 있는지. “이번에는 질문이 줄었네요.” “사실 많이 줄인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은 열 장쯤 됩니다.” 세드나가 웃었다. “열 장을 제출한다고 열 배 빨리 답하지는 않죠.” “알아요. 그래서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묻는 거예요.” 그들은 서류를 제출한 뒤 잠깐 조용히 앉았다. 수현은 처음 이곳에 온 날, 카이렌의 침대 앞에서 마음대로 잠을 깨워도 되는지를 따지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는 작은 질문 하나만 해결해도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질문이 세상을 단숨에 바꾸지는 못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질문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안다. 세드나가 말했다. “당신이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이 기록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대로 남아야죠. 저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남은 책임도 우리가 계속 확인해야겠네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7원정대가 그녀 없이도 움직이게 된 것처럼, 이 조사도 언젠가는 그녀가 없어도 계속돼야 했다. 마지막으로 엘다는 작은 문서함에서 중단 요청서 견본을 꺼냈다. 구형 양식의 제목은 [이의 없음]이었다. 처리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이의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만 적는 문서였다. 그러나 최신 양식에는 제목이 바뀌어 있었다. [이의 제기 기회 제공 및 실제 의사 확인] 수현은 두 표제를 나란히 보았다. “이의가 없다는 사실과 이의를 낼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은 다르네요.” “맞아요.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니죠.” 수현은 종이를 접으려다가 멈췄다. 자신이 이곳에 온 첫날부터 찾고 있던 문장이었다. 의사를 묻지 않은 사람에게서 이의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의를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 엘다가 물었다. “그럼 당신은 지금 무엇을 원하는 거죠? 책임자를 찾는 것입니까, 아니면 돌아가는 것입니까?” 수현은 바로 대답했다. “둘 다요. 다만 어느 하나가 먼저 끝나야 다른 하나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엘다는 한참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답입니다. 저도 그랬어야 했어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수현은 묻지 않았다. 엘다의 지난 시절에도 말하지 못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수현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는 아니었다. 복도로 나왔을 때 세드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수현에게 물었다. “면담은 어땠나요?” “원하는 이름을 듣지는 못했어요. 대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조금 더 분명해졌죠.” 세드나가 미소 지었다. “이제 정말 사건 담당자 같네요.” “공식 담당자는 아니에요. 저는 아직 자기 사건 당사자예요.” “그 점이 가장 중요하죠.” 왕도 행정분관은 수현의 소환 이의 처리 상태를 다시 검토했다. 이미 사전 동의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판단은 유지됐다. 이번에는 단순히 '잘못된 배정 가능성'만 적는 대신, 집행 단계 확인표를 별도 조사한다는 절차가 추가됐다. 수현은 최종 결정서가 아니라 진행 통지를 받았다.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나기도 했다. 자신은 돌려보내 달라고 수없이 요청했고, 그 사이 서울에서는 어떤 시간이 흐르는지 알 수도 없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죠?” 담당자는 답하지 못했다. 다만 다음 정기 통지 날짜를 알려 주었다. 수현은 책상 위의 신청서를 바라봤다. 상대가 할 수 없는 답을 억지로 요구하는 건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정해 주지 않는 기다림을 계속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럼 지금 확인 가능한 일정과,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을 나눠 적어 주세요. 다음 통지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도요.”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 한 장을 더 만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세드나가 물었다. “화가 나세요?” “많이요.” “표정은 차분한데요.” “서류에 화내면 서류가 대신 집에 보내 주나요?” 세드나가 웃었다. “안 보내 주겠죠.” “그래서 아직 참는 겁니다.” 수현도 웃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울고 싶었다. 이 세계에서 배운 가장 큰 기술은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비용이 아니었다. 그녀가 여기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서울의 사람들은 그녀가 실종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기 전 작은 수첩을 열었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이동은 잘못됐다. 그러나 누가 실행했는지 확인되기 전까지 아무나 책임자로 지목하지 않는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책임을 밝히는 일과 나를 돌아가게 하는 일은 함께 진행돼야 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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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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