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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16화
PAYLUA ORIGINAL · 제116화

116화. 세 번째 새벽의 환자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49자

오프라인 책장
카이렌은 자신의 병실 기록을 읽고 싶어 했다. 수현에게는 그 사실이 여전히 낯설었다. 제7원정대가 처음 자신의 몸에 관한 기록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을 때 길드가 보인 반응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전투 기록과 의학적 기록이 섞여 있다는 이유로, 카이렌은 자신의 상태를 설명받는 일조차 쉽게 허락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가 휴가를 낸 뒤 의료심사실을 방문했다. 수현은 동행하겠느냐는 편지를 받았지만 답장을 쓰기 전에 물었다. [제가 있으면 편하신가요, 아니면 혼자 확인하고 싶으신가요?] 카이렌의 답은 간단했다. [제 기록은 제가 먼저 보고 싶습니다. 이후 문제가 생기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현은 편지를 접었다. 오르카가 옆에서 말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영웅이라는 칭호가 누구나 자기 몸을 마음대로 판단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카이렌은 그날 오후 돌아와 의사에게 들은 사실만 요약해 전했다. 과거 그가 의식을 잃었던 기간에 K형 안정 장치가 사용된 기록은 실제로 존재했다. 하지만 그 장치가 카이렌의 몸에 장착됐다는 개인 식별 번호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의식을 잃은 환자와 장치 보급 기록 사이에 하나의 빠진 연결이 있었다. “한 번 장치가 쓰였다는 사실만으로 제가 죽었다 살아났다고 할 수는 없겠죠.” 카이렌이 말했다. “그렇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몸을 맡겼던 사람의 정보가 없다면요.” 카이렌이 손등을 내려다봤다. 흰 고리 흉터는 그대로였다. 그는 이제 상처를 감추지 않고 만져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제가 누군가를 구하려고 했던 건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뒤로 사흘이 없어요.” “잃어버린 기억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 기억을 마음대로 채울 수는 없어요.” 그 말에 카이렌이 고개를 들었다. 잠시 조용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수현 씨가 이곳에 온 뒤로 제일 많이 듣는 말이네요. 누구도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라고요.” “저도 그러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 카이렌이 가져온 추가 자료에는 이상한 항목이 있었다. 밤의 기록이 새벽 두 번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 새벽에는 환자 안정 확인, 두 번째 새벽에는 장치 반납 신청, 세 번째 새벽에는 담당자가 수령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장치 번호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항목에서 달랐다. “그럼 중간에 교체한 건가요?” 수현이 물었다.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단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같은 종류의 장치를 두 개 썼을 수도 있고, 교대 과정에서 다른 번호를 적었을 수도 있다고요.” “오히려 가능성을 잘 말씀해 주셨네요.” 카이렌은 잠시 망설였다. “제 상처가 장치 때문일까요?”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가 답할 수 없어요. 의학적인 문제잖아요. 다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자료 정리를 도와드릴 수는 있어요.” 그녀는 과거 날짜 옆에 물시계와 진동시계의 기록 기준도 적어 보라고 제안했다. 이미 동부 관측소 사건에서 시간 표기가 사람을 얼마나 쉽게 속이는지 보았다. 두 문서에서 같은 '새벽'이라고 쓰여 있어도 같은 순간은 아닐 수 있었다. 카이렌은 수첩을 받아 들었다. “이런 건 누구에게 배운 겁니까?” “사고 보고서가 너무 많이 틀리는 회사들한테요.” “그 회사들은 마물을 상대했나요?” “아뇨. 가끔은 마물보다 무서운 마감 기한을 상대했죠.” 카이렌이 웃었다. 예전에는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전투 준비를 하러 가던 남자였다.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자기 일정에 넣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 카이렌이 의료심사실을 방문한 날, 성역 의사는 그에게 작은 종이 두 장을 내밀었다. 하나는 자신이 직접 볼 수 있는 기본 정보이고, 다른 하나는 별도 전문가 판단이 필요한 봉인 자료 목록이었다. 카이렌은 수현에게 그 사실을 전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저는 제 몸을 지키며 싸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제 몸의 기록을 보는 법은 몰랐습니다.” 수현은 대답하기 전에 그가 직접 확인한 범위를 물었다. 카이렌은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을 말했다. 북쪽 숲에서 마물의 그림자가 보였고, 바람이 차가웠다. 누군가 다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다음부터는 깨어난 뒤의 냄새와 빛만 기억났다. 그 기억의 빈곳을 지켜보는 일은 답답했다. 누군가 그날 무엇이 있었다고 말해 준다면 당장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일을 그럴듯하게 엮는 건 카이렌이 아니라 소설 속 영웅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제게 지금 있는 증상부터 보자고 했습니다. 가끔 손이 저린 것과 잠을 설칠 때의 통증이요.” “좋은 순서네요.” “저는 과거가 궁금한데요.” “과거를 알아내는 동안 현재의 몸을 망치지 않아야 하니까요.” 카이렌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당연한 말을 듣고도 조금 안심했다는 사실이 스스로 낯설었다. *** 그날 저녁 제7원정대에서 전령이 왔다. 새로 배정된 야간 보급 담당자가 혼자서 창고를 열다가 상자를 떨어뜨렸다는 소식이었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다음에도 그런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절차를 바꿔 달라는 요청이 카이렌에게 왔다. 카이렌은 즉시 돌아가려 했다. 그러다 자신의 휴가가 끝나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젠에게 회신을 보냈다. [부상 여부와 현장 안전 먼저 확인. 당직자는 두 명이 움직이도록 조정. 오늘 결정할 수 없는 예산 사항은 내일 회의에서 검토.] 수현은 전령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직접 가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카이렌이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말을 탔겠죠.” “지금은요?” “제가 없어도 그들이 상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언젠가 제가 정말 쓰러졌을 때도 원정대가 무너지지 않으니까요.” 그 말은 단순한 휴식의 선언이 아니었다. 자신이 과거에 모든 위험을 떠안아야 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하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왕도의 작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카이렌은 한동안 고기만 씹다가 물었다. “수현 씨가 집에 돌아가면, 거기도 저 같은 용사가 있습니까?” “용사는 없어요. 하지만 한 사람이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은 많죠.” “그럼 그곳에도 노무사가 필요하겠군요.” “그래서 제가 일했죠.” 카이렌이 웃었다. “그럼 돌아가셔도 여전히 바쁘겠네요.” 수현은 웃다가 잠시 멈췄다. 서울에서 밀린 업무와 실종 신고가 떠올랐다. 자신이 돌아갈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상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입 밖에 내려고 하니 목이 막혔다. “바쁘더라도 좋겠어요.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카이렌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저도 이제 제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 수현이 걱정한 것은 카이렌의 기억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기록을 읽는 과정에서 다시 죄책감에 짓눌릴까 봐 두려웠다. 다른 사람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사고가 나면 모든 이유를 자기에게서 찾곤 했다. “그 사흘 동안 누군가 다쳤다면요?” 카이렌이 조용히 물었다. “그게 확인됐나요?” “아니요.” “그럼 지금 그 사람의 잘못까지 혼자 떠맡지 마세요. 확인된 일을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아요.” 카이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전투 현장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기 문제를 다룰 때만큼은 시간을 쓰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다려 보겠습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치료도 받고, 쉬기도 하세요.” 카이렌은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에게는 여전히 휴식을 계획표에 넣는 일이 전투 기술보다 어려운 모양이었다. 카이렌이 떠난 뒤, 수현은 원정대의 휴게 기록 견본을 받았다. 거기에는 어떤 대원이 쉬었고 어떤 업무를 대체했는지가 별도로 적혀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체 업무를 맡은 사람의 동의란이었다. 수현은 표를 한참 보다가 웃었다. 처음엔 쉬는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길 때도 의사를 묻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저 없이도 아주 잘할 수 있겠는데요.” 세드나가 말했다. “원래 수현 씨가 모든 걸 대신하려던 건 아니었잖아요.” “맞아요. 근데 가끔은 제가 없으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까 봐 걱정됐죠.” 세드나가 고개를 저었다. “제도는 한 사람이 지켜 주는 게 아니라 현장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남습니다.” 그 말이 수현에게 오래 남았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떠나는 일인 동시에, 여기의 사람들이 자기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수현은 자기 수첩에 [돌아갈 이유]와 [여기서 남기고 싶은 것]을 나눠 적었다. 첫 번째 칸에는 가족과 친구, 일상과 사무실을 썼다. 두 번째 칸에는 메이의 치료비 심사, 카이렌의 휴식, 라비엔의 선택, 그리고 아직 이름을 모르는 기록실 직원들의 안전을 적었다. 그녀는 두 칸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여기에 마음을 주었다고 해서 원래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카이렌은 다음 날 의사에게 받은 안내대로 자신의 손등 흉터를 기록했다. 크기와 색, 통증의 변화, 잠을 설친 날을 정리했다. 그는 그것을 수현에게 전부 보여 주지 않았다. 수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사생활은 친밀한 관계일수록 함부로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의사는 K형 장치 자체가 이 세계에서 여러 의료 상황에 쓰인다는 점도 설명했다. 장치가 사용됐다는 기록이 곧 소생을 뜻하지는 않았다. 카이렌이 의식을 잃었을 때 장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려면 사용자의 식별번호와 실제 간호 기록을 함께 확인해야 했다. “아직도 답이 없네요.” 카이렌이 말했다. “하지만 모르는 내용은 더 정확하게 알게 됐잖아요.” 카이렌은 수현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진실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처럼 단숨에 얻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질문을 하나씩 늘리는 일이었다. 제7원정대로 돌아가기 전 그는 메이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의 의료기록을 이유로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급한 일이 있더라도 누구도 대신 동의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메이는 답장으로 자신도 같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수현은 두 사람의 편지를 읽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녀를 통해서만 이어질 필요는 없었다. 복귀하는 마차가 멀어질 때 수현은 오래전 제7원정대 천막의 모습을 떠올렸다. 카이렌은 잠깐 자는 것조차 허락받아야 했고, 메이는 치료비 고리 때문에 손을 떨었다. 이제 그들은 여전히 불완전한 제도 안에서 자신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상은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바뀌는 방향을 다른 사람이 대신 정해 주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카이렌은 제7원정대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서 모든 결정을 떠안지 않았다. 휴가 중인 자신에게 전령을 보내지 말라고 다시 확인했고, 복귀 첫날에는 심한 훈련을 배정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젠이 대신 운영할 수 있는 사무가 있었고 데런은 말 관리 일정을 맡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가 맡지 않아도 됩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말이네요.” 카이렌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용사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용사라서 해야죠. 당신이 쓰러지면 더 많은 사람이 위험해지잖아요.” 그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밤 자신이 보낼 전령의 이름과 휴식 시간을 확인했다. 누군가가 쉬는 시간을 지키는 일이 그의 다음 전투 준비가 됐다. 카이렌이 떠난 뒤 수현은 남겨진 봉투를 정리했다. 그 안에는 의료기록 사본이 없었다. 카이렌은 자신의 정보 가운데 수현에게 필요한 요약만 전달했다. 예전의 수현이라면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답답했을지도 몰랐다. 지금은 달랐다. 그녀가 지키고 싶은 것은 기록에 접근하는 권한 자체가 아니라, 기록의 주인이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였다. 다음 날 아침 세드나가 소식을 전했다. 제4독립보존고에서 W-12에 관한 절차 기록의 가림 열람을 허가했다는 것이었다. 단, 원본 전체를 열어 보지는 못하고 당사자 식별 항목은 그대로 봉인한다는 조건이었다. 수현은 수첩을 펼쳤다. 누가 사람을 이동시켰는지, 누가 부재 중인 사람의 동의를 대신했는지.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작은 길이 하나 더 열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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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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