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심사반 옛 청사는 결혼식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수현은 문 앞에서 열린 꽃장식을 한참 바라봤다. 기록을 찾으러 왔는데 신부와 신랑이 웃고 있었다. 장부를 맡던 창구는 지금 예식 손님들의 외투를 보관하는 방이 됐다고 했다.
“여기서 대체 뭘 찾아야 하죠?”
세드나가 건물 벽면의 표식을 가리켰다. “청사 자체가 아니라 이관 대장을 찾으면 됩니다. 그 대장은 분리 보존됐어요.”
그들은 축하객들 사이를 지나 오래된 관리실로 들어갔다. 문에는 꽃잎이 한 장 붙어 있었다. 관리인은 꺼림칙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조사하러 오신 거예요? 오늘 대관료는 이미 받았는데.”
“대관료 문제가 아닙니다. 시설이 기록물을 인계한 날짜만 확인하려고 왔어요.”
관리인은 안도했다. 그는 서랍에서 오래된 청사 이전표를 꺼냈다. 신랑 신부가 춤출 곳을 마련하기 전, 심사반의 서류는 북쪽 임시 보존실로 갔고, 그중 야간 자동 대행 절차 원본만 별도 봉인됐다고 적혀 있었다.
“결혼식장도 역사가 있네요.” 수현이 말했다.
“그렇죠. 여기서 예전엔 사람들이 싸웠어요.”
“지금도 가끔 그러겠죠.”
관리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
북쪽 임시 보존실은 생각보다 단정했다. 담당자는 젊은 기록원 벨릭이었다. 그는 세드나가 가져온 공문과 신청인의 동의 범위를 꼼꼼히 읽었다. 수현의 이름이 등장하는 현대 사건 서류는 그녀 본인에게만 허용했고, 과거 기관 간 규정은 공개 가능한 조항만 발췌해 보여 주었다.
야간 자동 대행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세 단계가 있었다.
첫째, 접수된 진정서가 담당실을 자동 지정한다.
둘째, 지정된 담당실이 현장 확인 가능 여부를 검토한다.
셋째, 당사자 동의와 안전 조건이 충족됐을 때에만 실제 집행 명령을 낸다.
수현은 세 번째 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그럼 이 세 개가 합쳐져 한 줄로 보이는 일이 생기면…”
“검토가 끝난 것처럼 착각할 수 있죠.” 벨릭이 말했다. “구형 프로그램은 단계마다 별도 도장을 찍었고, 신형 대장은 최종 상태만 크게 보여 줍니다.”
“프로그램이라고요?”
“마력 연산판입니다.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문장을 규칙에 따라 옮기는 장치예요. 전부 자동화된 건 아닙니다.”
수현은 서울의 업무 시스템을 떠올렸다. '접수 완료'와 '처리 완료'를 같은 초록색으로 칠하는 화면. 실무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시스템이 틀리는 것보다, 시스템이 보여 주는 표시를 사람이 확인 없이 믿어 버리는 일이었다.
벨릭은 전산 이관 당시 한 장의 수동 확인표가 별도 보관됐다고 설명했다. 서명란에는 두 사람의 자리가 있었다. 검토 담당과 실행 담당. 그런데 수현 사건에 대한 사본에는 둘 중 하나의 이름이 가려져 있었다.
“누가 가렸나요?”
“개인정보 보호 조치입니다. 당시 봉인 결정이 유효한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수현은 언짢아진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동의 없이 이동을 실행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알아보려면 또 심사를 받아야 했다.
“그 사람의 사생활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 권리도 있잖아요.”
벨릭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건 관련 권리자의 한정 대조 신청이 있습니다. 공개용 목록과는 다른 절차죠.”
세드나가 수현에게 물었다. “신청하시겠어요? 이건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수현은 펜을 들었다. “신청하겠습니다. 누군가를 당장 범인으로 지목하려는 게 아니라 누가 어떤 단계를 처리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
오벨은 과거 서류를 설명하다 말고 수리 중이던 등불을 들어 보였다. 유리는 투명했지만 그 안쪽의 철사에는 검은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이 등불은 왜 안 켜지는지 아십니까?”
수현은 잠시 들여다봤다. “불을 켜는 심지가 끊어졌나요?”
“그건 결과입니다. 심지가 끊어진 이유는 오래된 연료가 쌓였기 때문이죠. 심지를 갈면 불이 켜지겠지만, 연료통을 청소하지 않으면 다시 망가집니다.”
수현은 피식 웃었다. “행정 시스템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거군요.”
“그렇소. 옛날 야간 대행에는 그런 찌꺼기가 있었어요.”
오벨은 두툼한 노트를 꺼냈다. 그는 특정 사건의 원본이 아니라 교육용으로 만들었던 모의 양식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 가상의 환자 구조 요청을 입력해 보았다. 구조 요청이 접수되면 검토 담당실 지정 도장이 먼저 찍히고, 당사자 의사를 확인하는 칸은 그대로 비어 있었다.
“여기까지는 정상이지요?”
“네.”
“그런데 다음 담당자가 교대를 하면서 위의 초록 도장만 보면 어떻게 되겠소?”
“완료됐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네요.”
오벨은 옆에 또 다른 대장을 펼쳤다. 이번에는 승인 문서였다. 두 장의 종이를 포갰을 때 도장의 위치가 거의 일치했다. 하지만 하나는 '검토 부서 지정'이고 다른 하나는 '집행 조건 확인'이었다.
“글을 읽을 수 있다면 구분했어야 했겠죠.” 수현이 말했다.
“맞소. 하지만 밤새 열두 건을 처리한 서기는 다음 도장만 보고 넘어가기도 했소. 서류를 잘못 만든 사람과 그걸 확인하지 않은 사람 모두 각자 할 몫이 있었지요.”
“그때 잘못을 발견한 사람은 없었나요?”
“있었소. 그래서 경고문이 생긴 거요.”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젊은 시절 야간 근무를 하다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날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 경고문을 만든 사람이요. 당직자들이 쉬어야 한다고도 주장했소. 모두가 안전한 집행을 말하면서 정작 기록을 확인하는 서기들을 밤새워 세웠으니,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논리에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냄새보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끝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기억하세요?”
오벨은 등불 유리를 내려놓았다. “이름을 떠올리긴 어렵소. 하지만 당시 경고문을 새 서식에 옮기던 위원이 있었는데, 이름이 에린이었던 것 같아요.”
수현의 손이 멈췄다. 여러 기록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던 이름이었다.
“에린 소렐인가요?”
“확신하지 못하겠소. 에린이란 이름은 흔했고, 내 기억도 늙었으니까. 원본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제 말을 기록의 사실로 쓰지 말아 주시오.”
수현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증언은 방향을 알려 줄 수 있었지만, 사람의 기억을 다른 사람의 죄를 결정하는 도장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
수현은 오벨이 내민 옛 교육표를 다시 바라봤다. 표에는 원래 서명이 필요한 자리가 두 곳이었다. 그러나 빠르게 처리한 사건에는 두 자리의 도장이 같은 사람이 찍은 듯한 흔적이 있었다.
“그럼 동일한 사람이 두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나요?”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같은 도장으로 보인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란 뜻은 아닙니다. 같은 도장을 공용으로 쓰던 부서도 있었으니까요.”
“그것도 문제네요.”
“그래서 나중에 개인 식별용 표식이 따로 생겼죠.”
수현은 두 번 찍힌 흔적을 바라봤다. 도장 자체는 사람의 의사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어느 책상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보여 줄 뿐이었다. 마법이 있는 세계인데도 기록의 한계는 놀랍도록 익숙했다.
오벨은 두 사람에게 따뜻한 물을 내밀었다. “기록을 고치는 데 필요한 건 똑똑한 한 사람보다 서로 확인하는 두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칸을 채우면 그 사람의 실수도 모든 칸에 들어가요.”
수현은 카이렌을 떠올렸다. 그 역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다 쓰러졌다. 수많은 부서가 있는 행정기관도 결국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영웅의 자리를 맡겨 버리는 습관.
“저희가 찾으려는 건 영웅이 아니에요.”
“그럼 뭘 찾으시나?”
“잘못된 한 단계를 멈출 수 있었던 사람의 기록이요.”
오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는 답을 보태지 않았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침묵이 수현에게는 그럴듯한 추측보다 유익했다.
등불 가게를 나온 두 사람은 오래된 광장에 들렀다. 광장에는 시계를 고치는 가게가 있었다. 수현은 동부 관측소의 두 시간 기준이 떠올라 들어가 보았다. 시계공은 물시계와 진동시계의 오차를 교정할 때 쓰던 작은 추를 보여 주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이라고 적혀 있으면 같은 사건 아닌가요?” 세드나가 물었다.
“아니죠. 기준이 다르면 같은 숫자도 다른 때를 뜻해요. 게다가 누군가 나중에 표기만 고쳐 썼다면 더 복잡해지고요.”
시계공은 오래된 눈금표를 놓고 간단한 예를 들었다. 첫 번째 장치는 밤의 시작을 하루의 첫 시간으로 삼았고, 두 번째 장치는 새벽 첫 종을 기준으로 삼았다. 같은 '셋째 시각'이 실제로는 몇 시간 차이 날 수 있었다.
수현은 오벨의 경고문이 어느 이관판에 먼저 나타났는지 조사할 계획을 수정했다. 문서에 같은 날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날 전달됐다고 적지 않기로 했다.
“오늘 배운 걸 한 문장으로 쓰면 뭐가 될까요?”
세드나가 물었다.
“사람은 날짜를 적지만, 날짜는 사람을 증명해 주지 않는다는 거요.”
시계공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배우셨습니다.”
그날 늦은 오후 세드나는 왕도 심사반에 새 질의서를 제출했다. 과거 서식 승인 과정, 야간 근무 인원, 경고문 전파 날짜를 각각 묻는 질의였다. 수현은 거기에 자신의 사건번호만 적었다. 원래 세계 주소는 여전히 적지 않았다.
그때 광장에 작은 소동이 생겼다. 배달마차의 말이 갑자기 놀라 지나가던 아이가 넘어졌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마부가 화를 내며 아이를 나무랐다.
수현은 달려가지 않았다. 먼저 다친 사람이 있는지 살폈고, 주변에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무릎을 긁혔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마부는 뒤늦게 떨리는 손으로 물을 내밀었다.
“놀라서 그랬어요. 말이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어 두세요.” 수현이 말했다. “지금 누구 탓인지부터 정할 일이 아니에요.”
세드나가 곧장 주변 목격자들을 확인했다. 수현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작은 현장 하나에도 사실과 기억, 추측은 순식간에 뒤섞였다. 몇 달 전 자신의 이동을 설명하는 기록도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아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자 수현은 다시 서류 가방을 들었다. 오벨이 고쳐 준 등불 하나가 서고 출입문에 걸려 있었다. 불은 고르고 안정적으로 탔다.
심지만 갈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번 조사도 누군가의 도장을 지우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됐다. 그 도장을 확인하는 사람이 잠을 자고, 질문할 시간을 얻고, 의심스러운 처리 과정을 중단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날 저녁 벨릭은 면담을 제안했다. 자동 대행의 구형 서식을 직접 다뤘던 사람 한 명이 살아 있고, 지금 왕도 남쪽에서 등불을 수리한다고 했다. 증언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억이므로 원본과 대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수현과 세드나는 등불 가게로 갔다. 주인은 바늘처럼 가는 쇠막대를 들고 있었다. 이름은 오벨. 그는 현직을 떠난 지 오래였지만 '야간 자동 대행'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그 시스템이 아직도 사람을 괴롭힙니까?”
수현은 자신의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벨은 옛날에 종이가 부족해 검토 담당의 도장과 배정 담당의 도장을 같은 칸에 찍던 관행을 이야기했다.
“원래는 그러면 안 됐어요. 그런데 밤에는 사람이 적고 사고 신고는 밀렸죠. 누가 병실에서 기다린다고 하면 담당자들은 서류가 빨리 가는 편을 택했습니다.”
“누군가를 보호하려다가 다른 사람의 의사를 놓쳤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오벨의 대답은 수현이 바라던 확답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감사했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과거 전체를 미화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 그때 누가 실제 집행 명령을 냈는지도 기억하나요?”
“일반 규칙은 알아요. 특정 날의 사람 이름은 기록을 봐야 합니다.”
그가 낡은 책상에서 대장을 꺼냈다. 표지에는 [당직 변경·대행 사유]라고 쓰여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다른 색 잉크로 짧은 경고가 남아 있었다.
[현장 확인인 배정은 집행 명령이 아니다. 부재 중이라는 이유로 제3자 동의란을 채우지 말 것.]
수현은 문장을 읽고 목이 메었다. 누군가 오래전 같은 말을 적어 두었다. 그럼에도 그 말은 길을 따라 전달되지 못했다.
오벨이 말했다. “제가 쓴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 이런 경고가 나왔던 건 기억해요.”
“누가 썼을까요?”
“당직 변경표 뒷장에 서명이 있었을 겁니다. 그 뒷장을 심사반이 가져갔어요.”
가게에서 나오는 길, 수현은 꽃집 앞에서 멈췄다. 결혼식장으로 바뀐 옛 청사에서 신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됐다. 어떤 오래된 행정 사고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일이 멈추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도 언젠가 그런 평범한 날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했다. 친구와 식사를 하고, 휴대폰 배터리가 닳아도 충전하면 되는 날. 그날을 맞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업무가 많아서 생긴 일'로 닫아 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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