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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06화
PAYLUA ORIGINAL · 제106화

106화. 용사의 쉬는 날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58자

오프라인 책장
카이렌의 편지는 생각보다 짧았다. [이번 주에는 아무도 혼자 야간 전령을 맡지 않았습니다. 젠의 발목은 회복 중입니다. 메이는 하루에 두 번 쉬었습니다. 저는 오늘 쉬는 날입니다.] 수현은 마지막 문장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저는 오늘 쉬는 날’이라는 문장 끝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서명 — 카이렌.] “휴가 신청서에 자기 서명을 두 번 하는 사람도 있네요.” 왕도 정산실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른 메이는 수현의 곁에서 편지를 읽고 웃었다. “혹시 모르잖아요. 누가 대신 출근했다고 적을까 봐.” 둘은 한참 웃다가 조용해졌다. 용사가 쉬는 날을 이렇게까지 증명해야 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조금 슬펐다. 수현은 답장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펜을 들었을 때 메이가 먼저 말했다. “저도 이번 주에 병실 담당자를 한 명 더 배정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제 요청이 처음엔 거절됐는데, 환자 기록과 마력 사용량을 제출하니까 다시 심사하겠대요.” “잘했어요. 근데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해서 말하는 거예요?” “아뇨. 그냥 자랑하려고요.” 수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충분히 자랑하셔도 됩니다.” 그날 메이는 길게 웃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이다. *** 며칠 뒤 수현은 제7원정대의 시험 운영 평가회에 참관인으로 초대받았다. 유급 자문 계약은 끝난 상태였다. 수현은 회의 참석 범위와 교통비를 분리해 확인했다. 브레그는 처음엔 번거롭다고 했지만 수현이 '보수 없는 정기 업무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자 결국 초청장 표현을 고쳤다. 왕도 밖의 야영지는 처음 왔을 때보다 조금 넓어 보였다. 실제 크기는 같았다. 다만 치료 천막 앞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의 줄이 두 개로 나뉘었다. 급성 환자는 즉시 진료받고, 부상 경과를 확인하는 사람은 시간을 예약했다. 메이가 하루에 몇 번 마력을 써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카이렌은 흰 셔츠 차림으로 수현을 맞이했다. 손등의 흰 고리 흉터는 그대로였다. 그가 악수하려 손을 내밀다가 잠시 멈췄다. “아직 아프세요?” 수현이 물었다. “가끔요. 의료 기록은 심사 중입니다. 다만 통증이 심할 때는 빠지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쉬는 날이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그런데 평가회는 제가 맡은…….” “회의 참석은 쉬는 날이 아닐 텐데요.” 카이렌이 멈칫했다. 뒤에 있던 젠이 조용히 웃었다. “역시 바로 걸리네요.” 카이렌은 볼을 긁적였다. “아, 오늘은 회의만 출근으로 기록하고 휴식일은 내일로 바꿨습니다.” “그럼 오늘 기록 보여 주세요.” 그가 품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수현은 서명을 확인한 뒤 웃었다. “좋아요. 이제 말로만 쉬는 용사가 아니군요.” *** 평가회에 참석하기 전 수현은 훈련장을 잠깐 둘러보았다. 젠이 한쪽 발목에 붕대를 감은 채 표적 앞에 앉아 있었다. 활을 당기지 않고 병사들에게 손짓으로 표적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해 보였지만 병사들은 그의 지시를 따라 차례대로 움직였다. “직접 쏘지 않아도 훈련이 되네요.” 수현이 말했다. 젠은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는 제가 쏘고 다른 사람은 보는 걸 훈련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각자가 쏘고 저는 위험한 자세를 먼저 잡아내요.” “발목은 괜찮아요?” “아직 뛰면 아파요. 그래서 안 뜁니다.” “그 말을 이렇게 쉽게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젠도 웃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말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수현이 훈련장을 떠나려는데 젠이 덧붙였다. “그런데 훈련 시간은 길어졌어요. 제가 한 번에 끝내던 걸 이제는 병사 넷이 돌아가며 해야 하거든요.” “그것도 기록에 남겼나요?” “네. 그래서 평가회에서 말하려고요. 이 방식이 무조건 빠르고 편하다고 주장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개선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 하나에게 일을 몰아주면 당장은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치면 멈추는 업무라면 효율에 숨은 비용이 있었다. 이제 그 비용이 기록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훈련장 뒤편에서는 데런이 말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그 옆의 청년 전령은 긴장을 풀지 못한 채 고삐를 잡았다. 데런은 전령에게 말 먹이를 주는 순서와 쉬는 동안 다른 사람이 확인해야 할 항목을 하나씩 설명했다. “가르치는 동안은 일을 못 하는데 괜찮으세요?” 수현이 물었다. “당장은 귀찮죠. 그래도 내가 쉬는 날에도 말이 밥은 먹어야 하니까.” 전령이 낮게 웃었다. 데런은 그에게 설명한 시간을 훈련 업무로 기록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경험 많은 사람이 후배를 가르치는 시간을 '남아서 도와준 시간'으로 처리했지만, 지금은 공식적인 교육 일정이었다. 그 작은 변화가 수현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도 노동이 들어간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다시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게 된다. 메이가 있는 천막을 지나며 수현은 처치대 위에 새로운 표지를 보았다. [치유사 휴식 — 긴급 환자는 다른 담당에게 먼저 접수.] 옆에는 실제로 연락할 수 있는 대체 담당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현은 미소 지었다. “이건 누가 만들었어요?” “제가요.” 메이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저만 찾았는데, 다른 치유사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 드려야 했어요.” “저한테 허락받지 않고요?” “이젠 그럴 필요 없잖아요.” 수현은 크게 웃었다. “맞습니다. 아주 잘하셨어요.” 천막 바깥으로 나오자 카이렌은 잠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 없이도 원정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보였다. “제가 쉬는 동안에도 다들 할 일을 하고 있군요.” “그게 조직이라는 거죠.” 수현이 대답했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하면 멋있게 보일 수는 있지만, 쉬는 순간 세상이 멈추잖아요.” 카이렌은 조용히 웃었다. “예전에는 그게 영웅의 자격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제가 없어도 사람들이 안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수현은 그 대답이 어떤 전공 서적보다 훌륭한 조직 운영의 정의라고 생각했다. *** 평가회는 전쟁 이야기보다 부엌 이야기로 시작됐다. 데런이 제일 먼저 말을 꺼냈다. 전령의 야간 교대가 생기면서 말 먹이를 주는 시간이 뒤섞였다는 것이다. 전에는 말을 돌보는 사람이 밤새 깨서 전령까지 맡았다. 이제는 전령이 잠드는 동안 따로 마구간을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요?” 브레그가 물었다. “말 담당을 별도 업무로 적어야 합니다. 저희가 전령을 줄이는 동안 말들까지 줄일 수는 없잖습니까.” 수현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데런은 진지했다. 말은 사료를 먹어야 하고, 전령은 쉬어야 하며, 둘 다 누군가에게 배정되는 일이었다. 오르카도 손을 들었다. “부상자 복귀 기준을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실무 책임자가 '얼마나 괜찮냐'고 묻는 것보다 진료받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젠은 “전령이 쓰러지기 전에 다른 전령이 부를 수 있는 경보를 만들자”고 말했다. 카이렌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레그는 처음엔 회의 시간이 너무 길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수현이 침묵하는 동안 대원들이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자신이 없는 동안 업무가 멈추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이걸로 출정이 느려지면 어떻게 할 건가?” 브레그가 물었다. 데런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출정 전에 누가 책임을 맡는지 정하면 오히려 빨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모자라면 늦는다고 기록해야죠.” “정말 늦어졌다고 쓰면 누가 책임지는데?” 카이렌이 말했다. “그건 지휘 책임자가 판단해야 합니다. 부상자가 대신 사과하게 하지 않고요.” 수현은 종이에 적힌 문장을 바라봤다. 제7원정대가 변하고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지휘 체계가 무너지지 않게 계속 조정해야 했고, 왕립길드 전체의 규칙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번 말해 준 원칙을 스스로 사용하고 있었다. *** 회의가 끝난 뒤 수현과 카이렌은 진료 천막 뒤편을 걸었다. 멀리 나무 울타리 너머로 경계 근무 중인 병사들이 보였다. 카이렌은 자신의 흰 고리 흉터를 살짝 문질렀다. “수현 씨, 그날 사흘 동안 제가 무엇을 했는지 끝까지 알아야 할까요?” “그건 카이렌 씨가 선택하셔야 할 문제예요.” “알게 되면 제가 용사가 아니었을 수도 있잖습니까.” 수현은 그를 바라봤다. 처음 만난 날 피투성이로 잠들어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그가 무슨 영웅인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열이 있고 피를 흘리고 쉬어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모르는 사흘이 카이렌 씨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지킨 시간까지 지우진 않아요.” “하지만 중요한 걸 잊었다면…….” “그렇다면 조금씩 확인할 수 있겠죠. 단, 아무리 궁금해도 본인 기록을 볼지 결정하는 건 본인입니다.” 카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론 제가 이미 살다가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이라면 어쩌나 싶기도 합니다.” “그건 현재 자료로는 확인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제가 옆에서 ‘그랬을 거다’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수현 씨는 정말 듣고 싶은 말은 안 해 주시는군요.” “그럴듯한 말만 듣고 마음 놓았다가 나중에 다칠 수 있잖아요.” 그가 잠깐 웃었다. “그럼 이번에는 기록이 답하게 해 보겠습니다.” *** 원정대에서 돌아가는 마차에 오르기 전 수현은 브레그와 잠깐 마주쳤다. 감독관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자네가 출정을 방해하려고 온 줄 알았지.” “그렇게 보일 수 있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출정을 준비하는 시간이 오히려 줄어들었어. 물건이 없는 줄 모르고 출발했다가 돌아오는 일이 적어졌거든.”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처음부터 더 잘 관리하실 수 있겠네요.” “그렇지. 다만 병사가 더 필요하다는 보고서는 아직 왕도에 묶여 있어.” “그 부분도 사실대로 기록하셔야죠. 모자란 인원을 다른 사람의 추가 노동으로 가려 버리면 결정을 하는 사람은 문제를 모를 테니까요.” 브레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감사를 표현하지 않았다. 수현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중요한 건 카이렌이 다음번에도 자기 몸을 혹사하지 않고 출정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마차가 움직이자 브레그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출근부를 검사하겠다고 미리 통보하고 와!” 수현이 창밖으로 답했다. “점검 일정을 미리 잡으시면 됩니다!” 데런이 고삐를 잡은 채 웃었다. 왕립길드의 감독관과 한국 노무사 사이에 오가는 농담이 이제는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 수현이 왕도로 돌아가기 전 메이가 손목 고리를 보여 주었다. 금속에 적힌 금액 중 예비 적립금은 빠져 있었다. 그러나 잔여 치료비 표시는 살아 있었고, 강제 징수 보류 문구도 그대로였다. “이거 보세요. 숫자가 줄었어요.” “네. 하지만 남은 금액이 곧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죠.” “알아요. 그래서 남은 것들도 확인할 거예요. 이번엔 제가 질문 목록을 만들었어요.” 메이가 건넨 종이에는 회복용 마석 사용 일시, 실제 지급 부서, 긴급 진료 승인자, 개인 부담 근거라는 네 칸이 있었다. 수현은 그걸 보고 아무 말 없이 미소 지었다. “이제 제가 일자리를 잃겠는데요?” “수현 씨가 돌아가면 저희가 다 해내야 하니까요.” 수현은 순간 대답할 말을 잃었다. 카이렌은 그녀가 왕도로 다시 떠나는 마차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꼭 돌아가십시오. 우리 때문에 남아 계시지 마시고요.” 그 말은 격려처럼 들렸지만, 수현에게는 허락에 더 가까웠다. 자신이 떠나도 괜찮다는 허락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출근부부터 보겠습니다.” “그 말이 제일 무섭습니다.” 마차가 출발하자 메이와 젠이 웃었다. 수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쉬지 못했던 야영지였다. 이제는 자신이 없어도 서로에게 쉬어도 된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밤, 그녀가 받은 연락은 서고에서 온 것이었다. [역방향 시험물 제2차 동일성 판독 결과: 시험물보다 보존 담당자의 서명이 먼저 이동했다는 기록 발견.] 수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사람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서명이 먼저 움직였다니. 다시 이야기가 문서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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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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