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서쪽 물품 보존소는 채소 시장 뒤편에 있었다. 수현은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양파 냄새와 기름 냄새를 동시에 맡았다. 어떤 세계에 가도 물품 보관을 맡은 사람은 습기와 싸워야 하는 모양이었다.
“미회수 시험물이라고 하면 특별한 물건일 줄 알았는데요.”
세드나는 먼지를 뒤집어쓴 나무상자들을 훑었다. “왕국은 특별한 물건도 결국 창고에 넣어 두니까요.”
보존 담당자인 할맥은 서류 두 장을 요구했다. 하나는 기술서고에서 발행한 열람 신청, 다른 하나는 보존소의 물품 상태 확인서였다. 루세는 손에 든 도구를 펼쳐 보이며 감정 절차가 비파괴 방식임을 설명했다.
“그럼 대체 왜 이 돌 하나를 찾아온 겁니까?” 할맥이 물었다.
“같은 번호가 두 장부에 있는데, 같은 물건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요.” 수현이 말했다.
“확신 못 하는데 여기까지 왔다고요?”
“확신하지 못하니까 왔죠.”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웃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상자는 흰 천으로 감겨 있었다. 한쪽에는 오래된 도장, 다른 쪽에는 뒤늦게 붙인 재포장 표식이 있었다. 할맥은 수현이 먼저 손을 대려 하자 급하게 막았다.
“보존원 외에는 만지면 안 됩니다.”
수현은 곧장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제가 손을 대지 않은 걸 기록해 주세요.”
“그렇게까지요?”
“나중에 제가 만져서 달라졌다고 하면 서로 곤란하잖아요.”
보존 담당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수현이 할 필요 없는 모든 손동작을 먼저 설명해 주었다.
***
드러난 물건은 손톱만 한 유리구슬이었다. 구슬 속에는 아주 작은 푸른 기포가 하나 들어 있었다. 루세는 돋보기로 표면을 살폈다. 가늘게 긁힌 번호가 기술서고의 미회수 시험물 목록과 일치했다. 다만 번호의 마지막 두 자리는 고유 번호가 아니라 제작 연도와 작업자 조를 나타내는 표기일 수 있었다.
“또 같은 번호의 다른 물건일 가능성이군요.” 세드나가 중얼거렸다.
루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형만으로는 같습니다. 표면 손상이 제작 당시 것인지 보존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봐야 해요.”
수현은 창고의 수령 대장을 살폈다. 물건은 옛 제어실 시험이 끝난 뒤 사흘 후 보존소에 들어왔다. 그러나 출발지는 송신실도 수신실도 아닌 ‘재검사실’로 적혀 있었다.
“그럼 실제 전송 목적지에서 발견된 게 아니네요.”
“현재 기록으로는 그렇습니다.” 할맥이 대답했다. “누가 왜 재검사실에 가져왔는지도 이 책만 봐서는 모르겠고요.”
수현은 손바닥을 폈다. 작은 실마리가 큰 희망이 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장부 한 줄이 그 속도를 늦췄다.
“원래 이 물건을 들고 이동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게 특별한 전송 실험은 아닐 수도 있죠.”
할맥은 창고 바닥의 낡은 운송 바퀴를 가리켰다. “사람이 상자를 들고 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수현이 웃었다. “한참 돌아왔네요. 결국 물건은 사람이 날랐을 가능성부터 확인해야겠어요.”
***
조사를 계속하던 중 세드나가 재포장 담당자의 성을 발견했다. ‘소렐.’ 오래된 구형 서식 관리자 에린 소렐과 같은 성이었다. 수현은 순간 등줄기가 곧아졌다.
“같은 가족일까요?”
“현재로서는 모릅니다.” 세드나가 답했다.
“네. 같은 성씨만으로 연결하면 안 되겠죠.”
보존 담당자는 당시 재포장 담당자의 전체 이름이 아니라 작업 조 이름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소렐이라는 글자가 특정 개인의 성인지, 작업장 이름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수현은 보존소 밖으로 나와 차가운 바람을 들이마셨다. 한 사람이 여기저기 나타나 사건의 실을 모두 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자신이 온 뒤 이렇게 많은 서류를 읽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질문을 바꿔야겠네요.” 그녀가 말했다. “누가 가져왔나보다 먼저, 왜 재검사실이 원래 수령지로 적혔나.”
루세는 현장을 다시 바라봤다. “그게 원인일 수 있겠군요. 초기 시험에서 원점과 종점의 분류가 다르게 기록됐다면 ‘미회수’라는 표현 자체도 달라져야 해요.”
“그럼 시험이 성공한 게 아니라 기록이 잘못된 건가요?”
“그것도 아직 단정하지 마세요. 기록은 모순되고, 물건은 여기 있습니다. 그 둘을 연결할 증거가 필요한 겁니다.”
***
점심을 먹으러 들른 가게에서 수현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게 주인은 예전에 보존소의 짐꾼으로 일했다. 시험물 상자는 늘 위험하다는 경고가 붙어 있어서 한 사람이 혼자 옮길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비상 상황이면 관리자가 사람 둘을 보내는 대신 한 사람 이름을 두 번 적게 했다는 말이 나왔다.
“서류에 두 명이 있어야 하니까요.” 가게 주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이라고 적은 거군요?”
“일을 빨리 끝내려고 그랬던 때가 있었죠. 난 그 이후에는 그런 일 안 했습니다. 상자를 계단에서 떨어뜨릴 뻔했거든요.”
수현은 그에게 공식 진술을 요청하지 않았다. 먼저 어느 시기인지, 어떤 상자였는지 물었다. 그는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낡은 장갑을 벗어 상처가 난 엄지손가락을 보여 주었다. 끈을 너무 세게 당겨 생긴 흉터라고 했다.
“그런 방식은 안전하지 않았네요.”
“맞아요. 그때 누가 말해 줬으면 좋았을 걸.”
말을 마친 주인은 뜨거운 수프를 가져다주었다. 수현은 그에게 지금도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알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주인은 보존소 관리 책임자에게 이미 오래전에 항의했다고 했다.
“그럼 그 항의 기록이 남아 있겠네요.”
그가 껄껄 웃었다. “그때도 저한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군요.”
***
수현은 보존소 안쪽에 보관된 다른 유리구슬 세 개도 살펴볼 수 있는지 물었다. 물론 직접 만질 생각은 없었다. 할맥은 용도와 소유권을 확인한 뒤 비교용 사진만 보여 주었다. 놀랍게도 그중 두 개는 시험물과 같은 색의 기포를 가지고 있었다.
“기포가 특별한 특징이라는 설명이 조금 약해지네요.”
루세는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 공방에서 같은 원료를 쓰면 비슷한 형태가 나올 수 있어요. 외형을 구별하는 건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고유한 신원이 생기지는 않죠.”
수현은 문득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있듯이 같은 번호를 가진 물건도 여러 개였다. 그런데 서류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둘을 하나로 묶으면 존재하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지급 몫, 에린이라는 두 개의 이름, R-0라는 두 종류의 기록. 지금까지 본 많은 의혹이 그 출발점에서 서로 닮아 있었다.
“혹시 제작 공방 기록을 볼 수 있나요?”
할맥이 웃었다. “그건 공방 쪽 장부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내줄 수는 없지요.”
“그렇겠네요. 그러면 공개 가능한 제작 목록부터 신청하겠습니다.”
루세는 현장에서 비교할 수 있는 기포 크기와 표면 흠집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도 원본은 보존원만 다뤘고, 다른 사람은 확인한 사실을 자신의 이름으로 적었다.
보존소를 나오려는 순간 한 짐꾼이 수레 앞에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자는 두 사람용 운반 표식이 붙어 있는데 옆에 서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수현이 도와주겠다고 나서자 할맥이 손을 들어 막았다.
“오늘 방문객은 운반 업무를 맡을 수 없습니다. 다치면 누가 책임집니까?”
수현이 웃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길을 비켜 드리는 것 정도겠네요.”
“그거면 됩니다.”
할맥은 다른 창고 직원에게 연락했다. 잠시 뒤 사람이 한 명 더 왔고 두 짐꾼은 상자를 함께 들어 올렸다. 큰 소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둘 중 하나가 중심을 놓쳐도 다른 사람이 받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한 사람 이름을 두 번 적을 필요도 없겠군요.” 수현이 혼잣말하자 할맥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그런 짓을 했습니까?”
수현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옛날에 그런 관행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확인하려면 실제 기록을 봐야겠죠. 방금 일은 안전하게 처리된 걸 봤고요.”
할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수레가 창고를 빠져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날 오후 수현은 공방에 공개 목록 열람을 신청했다. 서류를 접수하던 직원은 동일 번호를 묻는 사람이 드물다며 작은 카드 한 장을 건넸다. 카드에는 제작자 조가 여럿일 수 있고, 개별 구슬의 고유 식별은 별도 기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럼 시험물 목록에 있던 숫자도 생산된 시기의 공통 번호일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제작 방법이 바뀐 시점에 번호를 다시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수현은 자료를 받고 그 자리에서 나오는 날짜를 확인했다. 보존소에서 본 구슬 하나가 대단한 비밀을 품고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 구슬이 수백 개 중 하나였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바깥은 어느새 저녁이었다. 보존소 앞의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있었다. 수현은 작은 구슬을 찾으러 온 하루가 허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쉽게 지나쳤던 질문을 제대로 묻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루세가 작은 공방 하나를 가리켰다. 창가에는 유리구슬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수현은 그중 푸른 기포가 들어 있는 구슬을 보았다. 아까 보존소에서 본 것과 놀랄 만큼 닮았다.
“여기서도 그런 구슬을 만드는군요.”
공방 주인은 손님을 맞아 작은 제작판을 보여 주었다. 비슷한 구슬을 만들려면 유리가 식는 순간 바늘 끝으로 공기를 넣으면 된다고 했다. 손기술이 익숙해지면 거의 같은 크기로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럼 똑같은 걸 두 개 만들 수도 있어요?”
“멀리서 보면 똑같죠.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달라요.”
주인은 구슬 둘을 빛 앞에 들었다. 수현이 보기에 거의 같았지만 루세는 기포 주위의 미세한 선이 다르다고 했다. 반면 공방의 새 견습생은 전혀 다른 물건이라고 확신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달랐다.
수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구슬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기록도 있나요?”
“큰 주문이면 있지요. 작은 건 그날그날 팔아 버립니다.”
“그럼 기록이 없는 구슬은 아무리 특별해 보여도 출처를 확정하기 어렵겠네요.”
공방 주인은 웃었다. “맞아요. 가끔 손님이 오래된 보물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여기서 작년에 판 구슬이더군요.”
수현도 웃었다. 보존소의 유리구슬이 정말 오래된 시험물이라 해도 그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사람의 기대는 물건의 출처를 대신하지 못했다.
루세가 물었다. “그래도 이 공방에 온 것이 헛걸음은 아니었겠군요?”
“네. 적어도 뭘 더 확인해야 하는지 알았으니까요.”
주인은 작은 구슬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수현은 정중히 사양하고 가격을 치렀다. 자기 것이 된 구슬을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원본과 사본을 설명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건 이동 성공의 증거는 아니지만,” 수현이 말했다. “기념품으로는 충분하네요.”
***
그날 밤 루세의 서면 소견서가 도착했다.
[유리구슬 표면 번호는 옛 시험 목록과 외관상 일치. 재검사실을 거쳐 보존소에 입고됐다는 사실 확인. 송신점 이탈과 수신점 도착 사이의 연속된 관찰기록이 없어 동일 물체의 전송 성공이라고 볼 수 없음.]
수현은 문장 끝에 작은 표시를 했다. 처음엔 실망스러웠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아무 성과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잘못된 성공 판정 하나를 바로잡은 것이 앞으로의 위험한 시도를 줄일 수 있었다.
세드나가 책상 건너편에서 물었다. “수현 씨는 오늘 뭘 얻었다고 생각하세요?”
“구슬 하나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증명하지 못했는지는 알았어요.”
“그게 충분합니까?”
수현은 잠시 생각했다. “오늘은요.”
그녀가 서명을 하려는 순간 새 문서가 미끄러져 왔다. 보존소가 오랜 운송 대장에 한 사람을 두 번 적던 관행을 재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작은 유리구슬을 찾으러 갔다가 그 구슬을 나르던 사람들의 기록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서 아래에 누군가 낯익은 문구를 적어 놓았다.
[이동 실적은 완료, 귀환 대상은 미확인.]
수현은 입술을 눌렀다. 그 표현은 자신의 소환 기록에서도 보았던 말이었다. 같은 사건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부서가 ‘귀환 대상 미확인’을 어떤 뜻으로 썼는지 알아볼 가치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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