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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102화
PAYLUA ORIGINAL · 제102화

102화. 사람과 종이의 반대 방향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043자

오프라인 책장
그다음 날 아침, 아르덴은 네 사람을 불렀다. 한 명이 늘었다. 새로 온 여자는 공동기술서고 안전담당자인 파르마였다. 그녀는 수현의 이름을 들은 뒤 종이부터 내밀었다. 이름 아래에는 신청인의 자격이나 직업을 적는 칸이 없었고, 대신 ‘시험 참여 의사’라는 칸이 있었다. “저는 시험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읽는 동안에도 시험 참여 동의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인서예요.” 수현이 한참 그 문장을 보았다. “이런 서식은 어디 가서 파나요?” “왜요?” “서울에 가져가고 싶어서요.” 여자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명 칸을 가리켰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적어도 책은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럼 읽어 보고 필요하면 질문하겠습니다. 실험 의사는 별도 문서로 남길게요.” 파르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신청인이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다른 종이를 꺼냈다. 거기에는 기술서에 적힌 ‘전송’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있었다. [전송: 송신지에서 수신지로 관찰 가능한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 물질의 동일성 이전은 별도 검증 대상이다.] “그럼 서류가 ‘돌아왔다’는 건 실제 서류가 움직였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맞습니다. 읽을 수 있는 문양만 돌아올 수도 있고, 수신 장치가 같은 내용을 다시 새겨 낼 수도 있죠.” 수현은 고개를 숙였다. 이것은 문자 시험에서 늘 마주친 문제였다. 종이를 옮기는 것과 종이에 적힌 내용을 다른 종이에 복제하는 것은 달랐다. 기록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그 차이가 중요했다. 원본이 있어야 하는 업무에는 사본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많았다. “그럼 사람을 보내는 문제는 더 어렵겠군요.” 파르마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은 원본과 사본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수현은 그 답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 안전 검토 제1권 첫머리에는 평범한 문장이 있었다. [첫 번째 위험은 장치의 고장이 아니라, 관찰자의 성공 판단이다.] 수현이 그 문장을 읽자 루세가 작은 숨을 내쉬었다. “초기 연구자들이 이 문제로 많이 싸웠습니다. 왼쪽 방의 돌이 사라졌고 오른쪽 방의 돌이 나타났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돌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둘 다 원래 있었는데 한쪽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수신기가 모양만 만든 것일 수도 있죠.” “그럼 표시를 새기면 되지 않아요?” “고유 표시도 복제될 수 있습니다. 그 표시를 만드는 과정까지 기록해야 해요.” 세드나는 곧장 서류를 폈다. “발신 시점, 봉인 방식, 운반자, 수신 담당자, 각 시점에 누가 무엇을 직접 봤는지까지요?” 루세가 웃었다. “계약관리실이 기술실보다 빨리 이해하네요.” “우리는 사람을 믿지 않아서 종이를 쓰는 게 아닙니다. 누가 책임을 졌는지 나중에라도 알기 위해 쓰죠.” 수현은 자신이 한국에서 노동 사건을 맡을 때도 비슷했다고 생각했다. 사실관계를 묻는 일은 누군가의 선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착각하고, 지치고,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잘못 기억한다. 그런데 선의만으로 이미 벌어진 손실을 메울 수는 없다. 열람실 한구석에서 파르마는 오래된 사고 사례를 읽어 주었다. 시험 당시 출발점에는 유리구슬 하나가, 도착점에는 그와 똑같은 색과 무게의 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기록원은 처음엔 ‘전송 성공’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일주일 뒤 창고에서 원래 제작된 구슬이 두 개였다는 사실이 나왔다. “결국 실패였나요?” 수현이 물었다. “전송 성공이라는 결론을 지웠습니다. 실패라고 확정한 것도 아니고요. 성공을 증명할 자료가 부족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듣자 수현은 조금 웃었다. “기술자들이라 더 화를 냈겠네요.” “엄청났다고 합니다. 보고서 제목도 바뀌었죠.” “뭐라고요?” “‘두 번째 구슬은 어디서 왔는가’에서 ‘우리는 첫 번째 구슬을 제대로 세었는가’로요.” 세드나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 점심 무렵 수현은 검토서의 한쪽 표에서 낯선 항목을 발견했다. [귀환 목적지 인증: 수신측 거주 기록과 송신측 주장의 독립 대조가 필요하다.] “거주 기록이요?” 아르덴은 그 항목이 연구소 내부 물품 반납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이나 장비는 어느 창고에서 출발했는지 기록이 있어야 돌아갈 곳도 정할 수 있었다. 뒤에 붙은 주석에는 먼 지역의 서고 사이 회신을 다룬 사례가 있었다. “이걸 제 주소 확인에도 적용할 수 있나요?” “직접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파르마가 답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신측에서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있느냐입니다. 아가씨가 서울이라는 곳에 살았다고 말씀하셔도, 우리가 그 주소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할 방법은 아직 모르니까요.” “주소를 먼저 보내면 어떻습니까?” 세드나가 물었다.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누군가가 받는다면 제가 어디서 살았는지 알려 주는 셈이에요. 그리고 잘못된 경로에 보내 놓고 그 답이 왔다고 믿을 수도 있죠.” 파르마는 그 말에 맞춰 신청서의 개인정보 항목을 지웠다. “그럼 당사자 주소를 쓰지 않는 방식으로 검증값을 만들어야겠네요.” 루세가 종이에 세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한 칸에는 장치에서 새로 만든 무작위 표식, 다른 칸에는 독립 수신 장치의 확인, 마지막 칸에는 누가 어떤 종이를 보았는지 적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시험 담당자가 모르는 내용을 답으로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죠. 물론 그것만으로 다른 세계라는 건 아닙니다.” 수현은 동그라미를 손으로 짚었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답을 받았다는 것과 어디서 왔는지는 나눌 수 있겠네요.” “정확합니다.” 그날 오후 그녀는 새로 받은 자료에 ‘기술 검토를 돕는 상담인’이라고 적힌 직함을 발견했다. 기쁜 마음에 필기를 하려다가 손을 멈췄다. 왕국에서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업무는 아니었다. 여기 온 목적을 듣고 기록원이 임의로 적은 표현이었다. “이거 바꿔 주세요.” “어떻게요?” “‘사건 당사자, 제한적 열람 허가’로요. 누가 보더라도 저한테 실험을 지시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고 오해하지 않도록요.” 서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직함을 고쳤다. 수현은 직함이 조금 초라해진 것 같다가도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 서고 직원들이 오후 차를 가져왔을 때 수현은 책의 주석 하나를 더 발견했다. 시험 참가자에게 위험을 알리는 문구는 있었지만,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방식은 적혀 있지 않았다. 동의서에 서명하면 모든 사실을 안 것으로 본다는 구형 규정이었다. “이걸 읽었다고 이해한 건 아닐 수도 있잖아요.” 파르마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떻게 확인하는 게 좋을까요?” 수현은 자기 앞에 놓인 역방향 검토서의 표를 가리켰다. “저부터 해 볼게요. 저는 오늘 이 책을 열람했습니다. 책은 신호 전송과 물품 이동의 가설을 다루지만 사람 이동은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당장 실험에 참여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제가 다른 실험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그때 다시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 설명받은 내용을 끝까지 유효한 동의로 사용하면 안 되겠죠.” 루세는 감탄한 듯 고개를 들었다. “사실 장치를 만드는 쪽에서는 장치마다 승인서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행정은 종종 한 장으로 묶으려고 합니다.” “한 장이면 편하긴 하죠.” “그래서 사고가 납니다.” 파르마는 새 양식을 제안했다. 참가자에게 설명을 받은 내용을 자기 말로 적어 달라고 요청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는 기술자가 별도로 답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수현은 모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은 구두로 설명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확인받을 수 있어야 했다. “서명을 못 하는 사람이면요?” 세드나가 물었다. “입회인과 함께 동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는지 이 왕국 규정에 따라 검토해야죠. 글씨를 못 쓴다고 의사까지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때 서고의 젊은 서기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기술서에는 시험 참가자가 원하면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철회한 다음 받은 물품을 돌려줘야 한다는 문장도 있어요. 비용을 내야 한다는 뜻입니까?” 수현은 그 질문이 귀에 걸렸다. 자신이 처음 읽은 카이렌의 계약서에도 비슷한 구조가 있었다. 복지처럼 보이는 지급을 나중에 빚으로 바꿔 놓는 문장. “우선 그 물품이 개인이 가져가라고 준 것인지, 시험 중에 쓰라고 빌려준 것인지부터 나눠야 합니다. 돌려줘야 하는 일과 비용을 내야 하는 일도 같지 않고요.” 서기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세는 옛 시험의 물품 목록을 가져왔다. 여기에는 개인 지급과 시설 대여가 같은 항목으로 적혀 있었다. 파르마는 이를 분리하는 보충 설명서를 만들기로 했다. “이걸 잘못 적으면 나중에 시험에서 빠진 사람이 빚을 질 수도 있겠네요.” 수현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렇죠. 그리고 그런 사람이 다시는 중단 요청을 못 하게 될 수도 있고요.” 이야기가 깊어지자 어느덧 찻물이 식었다. 수현은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웃었다. 처음에는 서울로 돌아가는 비밀이 적혀 있을까 기대했던 책이었다. 지금은 서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문제가 더 많이 보였다. “혹시 아쉽습니까?” 파르마가 물었다. “조금요. 그런데 기계가 언젠가 작동하더라도 지금 이 문장들을 정리해 놓으면 누군가 덜 다치겠죠.” 파르마는 그 대답을 들은 뒤 차가운 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다음 회의 때 정식으로 개정안을 올리겠습니다.” 수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모든 변화가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었다. 기술자가 안전을 말하고, 기록원이 동의를 구분하고, 참가자가 스스로 중단할 수 있으면 그 정도로도 커다란 진전이었다. *** 수현은 서고를 떠나기 전 파르마에게 새 양식 한 장을 부탁했다. 동의서의 내용을 설명한 뒤 참가자가 질문을 적을 수 있는 빈칸이 필요했다. 파르마는 처음에는 별도의 문의 양식이 이미 있다고 했지만, 수현은 그 양식이 다른 부서에 보관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질문이 동의서와 떨어지면, 나중에 답을 들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그럼 질문과 답변을 같이 보관하겠습니다.” 파르마는 서류 아래에 짧은 문장을 추가했다. [답변을 받았다는 사실은 질문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다.] 수현은 그 문장을 읽고 웃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문장이지만, 자신이 여기 오게 된 사건에도 없었던 보호 장치였다. 두 사람은 다음날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서고 직원이 그 문장을 실제 업무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문서가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 해 질 무렵, 서고에서는 짧은 안전 회의를 열었다. 아르덴은 모든 열람자에게 각자의 중단 권한을 묻는 질문을 했다. 루세는 장치 작동을 멈출 권한을 요구했다. 파르마는 근무자가 어지럼증이나 통증을 호소할 때 추가 이유 없이 현장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드나는 원본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으면 보존담당자가 자료 제공을 즉시 중단할 권한이 있다고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수현의 차례가 왔다. “저는 제 몸에 관련된 어떤 시험도 제게 다시 묻지 않고 진행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원합니다.” “당연합니다.” 아르덴이 말했다. “그리고 중단한 이유를 증명하라고 나중에 책임을 묻지 말아 주세요.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 사람이 중단했다면 그 자체가 충분한 이유였으면 합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파르마가 펜을 들었다. “그 조건을 서면에 넣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도록요.” 회의가 끝나자 세드나는 피곤한 얼굴로 의자에 기대었다. “오늘도 아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군요.” 수현은 조용히 웃었다. “그래도 아무도 위험한 데로 보내지지 않았잖아요.” 서고를 나서는 길, 그녀는 원래 세계에서 쓰던 말을 떠올렸다. ‘검증된 경로로 반환.’ 회사 서류에는 쉬운 말이었다. 여기서는 한 사람의 삶을 걸어야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르덴이 남긴 각주 하나가 수현의 눈에 들어왔다. [미회수 시험물의 식별자 중 한 건은 이후 전혀 다른 보존 기관의 장부에서 발견되었다. 동일성 검사는 시행하지 못했다.] 수현은 그 번호를 베껴 적었다. 이제 처음으로 책에 적힌 기술이 현실의 다른 문서와 만나려 하고 있었다. 다만 두 기록이 같은 물건을 가리키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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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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