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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97화
PAYLUA ORIGINAL · 제97화

97화. 유출된 작업표의 이름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202자

오프라인 책장
두 번째 폭우는 첫 번째 폭우보다 덜 무서웠다. 이미 어디가 위험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옛 휴전항 제2공관에 도착했을 때 아레인이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창백했다. 중립 기록관은 밤새 지하 보관실의 물길을 막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휴식부터 권했다. “안 됩니다. 원본 이전 입회가 필요합니다.” “대리 입회자는 없습니까?” “규정상 둘 있습니다.” “그럼 한 명을 부르세요. 담당자가 쓰러지면 기록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망가집니다.” 아레인은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다른 기록관이 왔고, 아레인은 뜨거운 수프를 한 그릇 받아 들었다. 나는 그게 오늘 첫 번째 정상 처리라고 생각했다. 지하 보관실에는 이미 물이 발목까지 들어와 있었다. 루시아가 판자를 받치고 있었고, 도르벤은 통행 가능한 부분을 표시했다. 그는 여전히 마왕성 성벽 수리의 미지급금을 일부 기다리는 중이었지만, 이번에는 중립 공관의 긴급 보수 계약을 별도로 맺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계약 범위와 안전 책임을 확인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도윤, 저 장부는 네가 찾던 것 아니냐?” 루시아가 선반 위를 가리켰다. “맞아요. 하지만 젖지 않게 옮기려면 기록관이 필요해요.” “나는 들기만 하면 되는 거군.” “무게도 확인하고요.” “알았다. 검은 내려놓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가 먼저 검을 내려놓는 날이 오다니.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상자마다 번호를 붙였다. 내용을 열지 않은 채 위치와 봉인 상태만 기록했고, 젖은 상자는 별도로 분류했다. 기록관 둘이 옮긴 전후의 수량을 대조했다. 전송 마법으로 한꺼번에 이동시키면 빠르지만, 물에 젖은 봉인이 손상될 수 있다는 기술자의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만 안전한 창고로 수동 운반했다. 피코가 상자 하나를 놓고 망설였다. “도윤 님, 이건 번호가 지워졌어요.” “지워졌다고 버리면 안 되지.” “그럼 뭐라고 적어요?” “기존 번호 판독 불가. 발견 위치와 시간, 상자 외형을 적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작은 선택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사람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기록이 없기를 바랐다. 상자 이전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 기술자 하나가 나를 불렀다. 옛 보관실의 작은 환기구가 막혀 안쪽 벽에 물기가 맺힌다는 이야기였다. 한쪽 선반에 놓인 문서는 아직 젖지 않았지만 오래 두면 손상될 위험이 있었다. “기술자 판단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급하게 환기 장치를 돌리는 것보다 통풍로를 천천히 열어야 합니다. 갑자기 건조시키면 종이가 뒤틀릴 수도 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말린다고 항상 좋은 건 아니었다. 사람도 밤새 일하고 갑자기 뜨거운 난로 앞에 앉으면 어지러울 수 있지 않은가. 기록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피코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종이도 휴식이 필요해요?” “아마도? 적어도 기술자의 지시를 따라야지.” 도르벤은 옆에서 낡은 배수관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는 이 보관실을 열기 전에 이미 임시 보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예산 서류에는 ‘연말 검토 예정’만 반복해서 적혀 있었다고 했다. “오늘 여기 종이들이 다 젖었으면 복구 비용이 얼마였겠소?” “아직 계산할 수 없습니다. 종이의 가치와 복원 난이도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배수관 고치는 돈보다는 많겠지.”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나는 공관 담당자에게 정식 시설 점검 일정을 요청했다. 긴급 물막이 판자는 임시 조치였고, 반복해서 비가 오면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시설을 고치지 않고 상자만 다른 곳으로 옮기면 결국 문제가 돌아올 것이다. 작업 중에는 처음 보는 고블린 운반인도 있었다. 그는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미끄러질 뻔했다. 루시아가 급히 팔을 붙잡았다. “다쳤나?” “아, 아닙니다.” “미끄럼 방지 신발은 받았느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급히 고용됐는데 장비를 아직 못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현장 계약 담당자에게 확인했다. 안전 장비는 계약에 포함돼 있었다. 지급 명부에는 ‘지급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급 예정이면 아직 안 받은 거군요.” 내가 말하자 담당자가 당황했다. “창고에서 곧 가져오겠습니다.” “그 전에는 위험한 계단 작업에서 빼 주세요.” 운반인은 미안한 얼굴이 됐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못해서가 아닙니다. 신발도 없이 미끄러운 계단에서 일하게 하는 게 문제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안전 장비가 실제로 도착했고 운반인은 다시 일할 수 있었다. 나는 그날의 작업 일지에 ‘안전 장비 지급 확인 후 재투입’이라고 적었다. 피코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도윤 님, 이렇게 하니까 조금 느려지네요.” “응. 대신 다치지 않으면 더 멀리 갈 수 있지.” 나는 물이 고인 계단을 내려다봤다. 실수 하나가 사람의 다리를 다치게 하는 곳에서는, 빠르게 끝내는 것보다 제대로 끝내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오후에는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옮긴 상자 목록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제보였다. 전송 구슬에 ‘한국어 문서와 관련된 비밀 보관함을 수색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누가 어떤 문서를 찾는지도 일부 적혀 있었다. “누가 퍼뜨렸습니까?” 아레인이 물었다. “아직 모르죠. 공개된 정보와 내부 정보가 섞였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소문의 사본을 받아 봤다. 거기에는 내 이름과 마왕성 소속이 있었다. 이미 공식 감사보고서에 공개된 범위였다. 하지만 ‘익명 제보자 유니아’와 연관된 번호로 보이는 숫자도 있었다. 숫자만으로 그녀의 신원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불필요한 위험이었다. “이 목록은 공개 전용이었나요?” “아닙니다. 현장 작업자에게 배포한 작업표에서 일부가 유출된 것 같습니다.” “현장 작업자는 상자를 옮기려면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용 분류까지 알아야 하나요?” 아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작업표를 두 종류로 나눴다. 작업자가 필요한 무게와 위치, 안전 위험만 적힌 표 하나. 기록관이 필요한 봉인 번호와 보관 관계를 적은 표 하나. 누가 무슨 정보를 볼 필요가 있는지 다시 정한 것이다. 루시아는 듣자마자 검을 들었다. “유출한 놈을 잡아오겠다.” “아직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알아내면 잡아오겠다.” “조사는 권한 있는 기관이 해야 합니다.” 루시아는 검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올렸다. 검을 들고 싶은 마음이 어디선가 넘쳐흐르는 사람이다. 그날 저녁, 유니아에게서 짧은 비공개 메시지가 왔다. [저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위험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유니아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천계 사절단 대표 세라핀에게 비공개 안전 확인을 요청했고, 제보 내용과 별개로 그녀의 업무 접근 권한이 갑자기 박탈된 사실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개인 기록을 내게 보내지 말고, 안전 여부만 알려 달라고 덧붙였다. 세라핀의 답장은 신중했다. [안전 확인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인사 조치 내역은 관계자 동의 없이 공유할 수 없습니다.] 그 답장이 마음에 들었다. 제보자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 사람의 모든 정보를 가져오는 건 또 다른 침해니까. 공관 회의실에서는 물에 젖은 원본 목록을 펼쳤다. 송-4189 관련 인계 장부는 다행히 봉인 상태가 유지됐다. 그러나 그 옆의 구형 전산 이관 기록 두 권은 표지가 떨어져 있었다. 복구 담당자는 읽을 수 있는 부분과 복원 추정 부분을 색으로 구분했다. “추정 복원과 원문 확인을 같은 색으로 칠하면 안 됩니다.” 내가 말했다. 복구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란색 펜을 들었다. 우리는 원문 확인은 검정, 복원 추정은 파랑, 판독 보류는 빈칸으로 표시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나중에 어떤 사람이 빈칸을 채우기 시작하면 누구의 판단이 들어갔는지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피코는 구형 장부를 보다가 말했다. “도윤 님, 이건 직원 이름이 없어요.” “부서명만 있네.” “그럼 책임을 못 찾아요?” “책임을 찾아야 하는 게 사람 한 명이라는 법은 없지. 승인 제도를 만든 부서와 실제 처리한 사람을 나눠 봐야 해.” “그럼 일이 더 많아지잖아요.” “맞아.” 피코는 큰 한숨을 쉬었다. 그때 루시아가 어깨를 두드렸다. “둘 다 너무 걱정 마라. 일이 많으면 빨리 끝내면 된다.” “기사단장님, 장부를 검으로 베면 끝나는 게 아니에요.” 피코가 말했다. 루시아는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 듯했다. 나는 고블린의 승리를 조용히 축하했다. 정보 유출 조사가 시작되자 작업자들 사이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누군가 기록을 몰래 베껴 갔다느니, 천계에서 제보자 명단을 넘겨 달라고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확인된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소문만으로도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장 책임자와 짧은 자리를 만들었다. “누군가 범인이라고 발표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확인된 건 작업표 일부가 외부에 돌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럼 왜 우리한테 조심하라고 합니까?” 젊은 운반인이 물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한 없이 주고, 그걸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만 하는 건 불공평하니까요. 먼저 우리가 작업표를 고쳐야 합니다.” 나는 실제로 바뀐 표를 보여 줬다. 작업자에게는 무게와 위치, 위험 표시가 남아 있었다. 대신 개인 식별 정보와 민감한 보관 항목은 빠졌다. 현장 책임자는 그 표로도 작업이 가능한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위험 구역 표시는 오히려 더 잘 보입니다.” 도르벤이 말했다. “그건 중요한 개선이네요.” 누군가 유출한 사람이 누구냐고 재차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건 더 큰 피해를 만들 수 있어요.” 모두가 만족한 건 아니었다. 특히 자기 동료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현장에서는 누군가를 무턱대고 몰아세우지 않았다. 작업이 끝난 뒤 루시아가 나를 불렀다. “도윤. 내가 검을 들었다면 좀 더 빨리 조용해졌을 것이다.” “말을 못 하게 만드는 건 해결이 아니에요.” “그래도 싸움은 안 났을 텐데.” “오늘도 안 났잖아요.” 루시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내가 먼저 이야기를 들어 보겠다.” 나는 감동할 뻔했다. 하지만 그녀가 곧 덧붙였다. “끝까지 듣고도 싸우면 그때 검을 뽑겠다.” “……그 부분은 다시 교육받으시죠.” 루시아는 왜 내가 항상 마지막 문장만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웃었다. 전투광 기사를 설득하는 일도 자동 승계 규정을 고치는 일만큼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밤에는 공관의 안전 요금 문제도 다시 확인했다. 긴급 보수 작업자에게 ‘폭우 안전 관리비’라는 새로운 공제가 붙어 있었다. 계약서에 없는 항목이었다. 도르벤은 자기 작업비에서 빠지는 건가 싶어 얼굴이 굳었다. “아직 청구 단계입니다.” 내가 말했다. “빠진 건 아니오?” “현재 명세에는 차감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근거를 확인하고 취소 요청하겠습니다.” 도르벤은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성벽 수리비도 아직 일부 못 받은 사람에게 새 요금이 붙는 건 황당한 일이다. 계약을 맡긴 기관과 요금 청구 기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새벽 가까이 구형 장부의 손상 페이지 하나를 복구했다. 서명란은 젖어서 절반만 보였다. 대신 주석은 남아 있었다. [이전 시스템의 ‘인계 확인’을 ‘대리 동의’로 승계하지 말 것.] 나는 문장을 두 번 읽었다. 피코가 숨죽여 물었다. “누가 이렇게 썼어요?”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위험을 알고 있었네.” 주석 옆에는 지워진 검토 표기가 있었다. 실제 반영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서둘러 범인을 상상하지 않았다. 이건 위험을 알렸다는 기록이지, 누가 무시했는지를 입증한 기록은 아니었다. 대신 종이를 덮으면서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사람의 동의를 지키려는 문장은 한국어 편지에도 있고, 오래된 이관 장부에도 있다. 둘이 같은 사람이 쓴 문장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른 시대, 다른 언어의 사람들이 같은 문제 때문에 멈춰 섰다는 사실은 꽤 중요했다. 그때 아레인에게서 마지막 보고가 왔다. [손상된 기록물 수량 확인. 인계 수량은 일치하나 일부 표지는 재부착 필요. 유출 정보 조사 착수.] 나는 처음으로 그날의 ‘완료’란에 체크했다. 내용의 진실을 밝혀낸 건 아니었다. 단지 기록을 더 잃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것부터 해야 다음에 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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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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