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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92화
PAYLUA ORIGINAL · 제92화

92화. 퇴직하지 않는 양파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7,041자

오프라인 책장
“외부 이관 승인이라고요?” 나는 전송 구슬을 두드렸다. 구슬 안의 아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관함에 자동 안내문을 연결한 사람이 내부 담당자가 아니었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외부 시스템에서 승인 기록이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승인자가 누구였는지는 원본을 봐야 합니다.” 세상에, 정확한 대답이었다. 나는 순간 아레인에게 상여금을 주고 싶어졌다. 물론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므로 법적 근거가 없다. 마왕성으로 돌아오는 마차에서 나는 수첩에 선을 세 개 그었다. 왼쪽에는 문서 작성, 가운데에는 보존, 오른쪽에는 자동 안내문 연결이라고 적었다. 피코가 칸 사이에 화살표를 그었다. “다 연결된 일이잖아요.” “연결돼 있지. 그렇다고 같은 사람이 했다고 볼 순 없어.” “편지를 쓰고 다른 사람이 우편함에 넣었을 수도 있다는 거죠?” “응. 그리고 자동 안내문을 연결한 사람은 또 다를 수도 있고.” “그럼 세 명이네요?” “최대 세 명이라기보다는 세 가지 행위가 있다는 뜻이야. 한 사람이 전부 했을 수도 있고, 여럿이 나눴을 수도 있지.” 피코는 화살표를 지우고 각 칸 아래에 작은 물음표를 달았다. 저런 수정 습관이 있으면 좋은 회계사가 된다. 뭐든 모른다고 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성에 도착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손님들이 문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고블린 넷과 오크 둘, 해골 병사 하나가 각자 종이를 들고 있었다. 해골 병사는 종이를 입에 물고 있었다. 손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입니까?” 가장 앞에 선 오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희 퇴직 신청했는데요.” 나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퇴직한다고요?” “아니요. 서류에는 퇴직 신청으로 돼 있는데, 저희는 야간 근무표를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피코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지난번 자동 퇴직 사태가 머릿속을 스쳤다. “누가 퇴직으로 처리했죠?” “외부 인사 연동판이요.” “그 연동판 아직도 쓰나요?” “잠정 중지라면서요. 그런데 신청서는 접수되던데요?” 맞다. 중지와 접수 가능은 다른 문제다. 원래 계획은 외부 상태값을 자동 확정하지 않고 임시로 쌓아 두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신청서를 낼 수는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화면에 뜬 분류명이 여전히 ‘퇴직 신청’으로 표시되는 모양이다. 재정실로 뛰어 들어가자 몰트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해골 눈구멍에는 푸른 불꽃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보통 분노를 뜻한다. “실장님, 야간 근무 변경 신청이 퇴직으로 보인다는데요.” “알고 있다.” “해결됐습니까?” “해결하려고 담당자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담당자요?” “없다.” “네?” “시스템을 만들고 나서 담당자 명부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 책상을 짚었다. 담당자가 없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건 이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그런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만든 사람은 퇴사했고, 사용하는 사람은 화가 나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익숙해서 더 싫었다. 우리는 일단 접수된 일곱 건을 열었다. 직원들의 요청서 원문에는 근무표 변경이라고 적혀 있었고, 상단 자동 분류에만 퇴직 표시가 붙어 있었다. 아직 최종 인사 장부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우선 직원들한테 최종 퇴직 처리된 건 아니라고 알려 줍시다.” “그러자.” 몰트가 말했다. 나는 일곱 명 앞에 서서 차례대로 설명했다. 불필요한 걱정을 준 점을 사과하고, 원문 신청서는 그대로 살아 있으며 자동 분류 표시를 정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해골 병사가 종이를 다시 입에서 꺼내 내밀었다. 이 양식은 입으로 물었으므로 약간 젖어 있었다. “이런 신청은 어디에 해야 합니까?” “앞으로는 자동 분류가 아니라 재정실의 실제 담당자에게 먼저 확인받으세요. 임시 절차를 공지하겠습니다.” 해골 병사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었지만 뜻은 통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루시아가 불쑥 들어왔다. “도윤, 성문 경비 근무를 바꾸려는데 문서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떤 문서요?” “내일 야간 근무에 지원하겠다고 했더니 퇴직하겠느냐고 묻는다.” “……그 문서는 누구 말을 들어도 똑같이 묻는 모양입니다.” 루시아는 검집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검으로 고쳐도 되겠나?” “안 됩니다.” “그렇다면 검집으로?” “아무것도 휘두르지 마세요.” 그녀는 아쉬운 얼굴로 검집을 집어 들었다. 내 생애 가장 이상한 순간은 전투광 기사를 말로 설득해 종이 한 장을 살려 냈을 때일지도 모른다. 직원들이 돌아간 뒤에도 작은 문제 하나가 남았다. 일곱 사람의 신청서 원본에 찍힌 접수 시각이 서로 달랐다. 자동 분류는 한 번에 ‘퇴직’으로 표시했지만, 실제 접수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이어졌다는 뜻이었다. “다 같은 오류인데도 접수 시간이 다르네요.” 피코가 말했다. “그럴 수 있지. 자동 분류가 일정한 간격으로 한꺼번에 돌아갔을지도 모르고.” 몰트가 오래된 운용표를 내밀었다. 매일 정오에 외부에서 온 상태값을 내부 시스템에 반영하도록 돼 있었다. 시스템을 멈춘 뒤에도 ‘미확정 접수’ 표시는 남도록 설정했지만, 화면에 옛 분류명이 표시되는 부분은 그대로였다. “누가 이 화면을 봅니까?” 내가 물었다. “직원, 담당 팀장, 재정실이다.” “그럼 세 곳 모두 같은 설명을 해야 합니다.” 나는 앞에 서 있던 경비병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휴가 중인 동료의 근무를 하루 대신 서 주려 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화면에는 ‘고용 종료 검토’라고 뜬 것이다. 그 말을 본 그의 배우자가 갑자기 찾아와 무슨 일이냐고 따졌다고 했다. “괜히 집안에 걱정을 끼쳤습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기록은 아직 바뀌지 않았지만 화면만 보고도 걱정할 수 있었겠네요.” “전 이제 신청서가 무섭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오류가 실질적인 불이익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잘못된 통지는 사람들의 하루를 뒤흔들 수 있다. 우리는 세 종류의 짧은 안내문을 만들었다. 신청한 직원에게 보내는 설명, 팀장에게 보내는 확인 절차, 재정실에 보내는 검증 순서였다. 피코가 가장 어려워했다. “왜 같은 내용을 세 번 써요?” “각자 해야 하는 일이 다르니까.” 직원에게는 원문이 그대로 보관돼 있고 퇴직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팀장에게는 근무표 변경을 수동으로 확인해 줄 책임이 있었다. 재정실에는 지급 대상과 고용 상태를 바꾸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이 필요했다. 피코는 경비병에게 안내문을 건넸다. 경비병은 두 번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집에 가져가도 됩니까?” “물론이죠.” “배우자에게 보여 주려고요.” 그가 조금 편안한 얼굴로 돌아갔다. 나는 문이 닫힌 뒤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봤다. 잘못된 숫자 한 칸이 누군가에게는 한밤중의 불안이 될 수 있다. 그때 식당 직원이 급히 들어왔다. “양파 배달이 도착했는데요. 입고 확인을 하면 보관 서비스가 자동 신청된다고 합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문제는 한곳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물건만 검수하고 추가 계약은 보류하세요. 원문 계약과 자동 청구를 분리해서 확인합시다.” 식당 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입니다. 안 그러면 오늘 국을 못 끓이는 줄 알았어요.” 피코가 말했다. “도윤 님. 양파는 정말 대단한 물건이네요.” 나는 웃지 못했다. 양파는 눈물까지 나게 한다. 서류는 그것보다 더 자주 사람을 울릴 수 있었다. 오후에는 에브란이 요청한 원장 조회 범위를 논의했다. 자동 안내문 이관 승인과 외부 인사 상태 변환이 모두 제3감리의 옛 기록 체계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이름만 같다고 같은 시스템은 아니었다. 우리는 두 경로의 발급 기관과 승인 원본의 위치를 비교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조회 요청을 크게 넣지 말죠.” 내가 말했다. 아레인이 전송 구슬 너머에서 눈썹을 올렸다. “왜 그렇습니까?” “관련 있는 게 확인된 것만요. 열람 범위를 넓히면 다른 사람들의 개인 기록까지 섞입니다.” “동의합니다. 우선 자동 안내문 연결 요청의 접수번호와 승인 통지만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제보다 더 마음이 편해졌다. 누군가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썼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을 조사하면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건드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었다. 몰트는 곧바로 시스템 분류 명칭을 고쳤다. 접수 화면에 ‘상태 미확정’이라는 큰 붉은 표시를 띄우고, 직원이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퇴직 항목으로 넘어가지 않게 했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다. 오래된 프로그램의 근본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임시 조치로는 괜찮겠죠?” 피코가 물었다. “괜찮은지 확인할 시험이 필요하지.” 우리는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시험 계정을 만들었다. 이름은 ‘퇴직하지 않는 양파’였다. 왜 양파인지는 피코가 정했다. 나는 묻지 않았다. 고블린의 작명 감각을 통제하려고 하면 업무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 계정으로 야간 근무 변경 신청을 냈다. 화면에는 정상적으로 ‘분류 대기’가 나타났다. 몰트가 직접 승인할 때도 퇴직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제야 임시 조치 결과를 기록했다. 그런데 승인 이력 창을 열자 낯익은 번호가 보였다. [구형 상태 승계 경로: 0003] “또 이 번호냐.” 내가 중얼거렸다. 몰트가 말했다. “지금 처리된 건은 새 경로다. 저 번호는 과거 양식의 출처를 표시한 것뿐이다.” “그럼 이번 신청을 0003이 실제 승인한 건 아니군요.” “그렇다.” 나는 수첩에서 ‘0003이 승인했다’라는 문장을 지웠다. 누군가의 이름처럼 보이는 숫자 때문에 우리가 자꾸 잘못된 결론을 내릴 뻔했다. 저녁 식당에서 피코가 시험 계정의 이름을 발표한 순간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퇴직하지 않는 양파가 뭐냐?” 제르칸이 식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시험 계정입니다.” “양파가 직원으로 등록된 것이냐?” “실제 직원 명부에는 없습니다. 가상 자료로만 시험했습니다.” “그럼 양파에게 월급을 주진 않겠군.” “그럴 계획 없습니다.” “아쉽다. 내 왕국의 양파도 충성심이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가 농담하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마왕이 채소 군대를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몰트가 시험 결과 보고서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접수 시각, 수동 확인 시각, 최종 인사 반영 여부를 세 줄로 나눈 것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직원이 신청서를 취소하는 절차는?” 나는 보고서를 다시 봤다. 빠져 있었다. “접수된 뒤 취소 요청도 가능해야겠군요.” “그렇다. 접수 대기만 시켜 놓고 취소할 길을 주지 않으면 또 다른 감옥이 된다.” 몰트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시험 계정으로 취소를 시도했고, 처음에는 버튼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유는 담당 팀장에게 넘긴 뒤에만 취소가 가능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피코가 한숨을 쉬었다. “밤에 잘못 누르면 아침까지 못 고치겠네요.” “그러네. 임시 취소 접수 창구부터 만들자.” 우리는 새 기능이 완성될 때까지 서면 취소 요청을 받을 담당자를 지정했다. 무슨 일을 하든 한 번 클릭했다고 영원히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방식은 피하고 싶었다. “이제 시험 계정도 살았네요.” 피코가 말했다. “양파는 원래 살아 있는 식물이긴 해.” “도윤 님, 그건 재미없어요.” 내 농담에 고블린이 혹평을 내렸다. 나는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 피코는 식당에서 돌아와 테스트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일곱 직원 모두가 실제 퇴직 처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관리자 장부에서 확인했지만, 당사자들이 안심했는지는 별개였다. “저녁 배식하는 분한테도 알려 드렸어요. 내일 근무표가 바뀐다는 내용이래요.” “누구한테?” “오크 조리사요. 저녁에 신청서를 낸 분이요.” 나는 그를 불러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 신청서를 냈다는 사실이 꼭 동료들에게 공개돼도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담당 팀장에게 구분된 안내문이 전달됐는지 확인했다. 팀장은 이미 임시 수동 승인 절차를 받았다고 했다. “신청서 원문은 당사자와 승인 담당자가 열람할 수 있고, 급여에 영향을 주는 항목은 재정실이 확인할 겁니다.” 몰트가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지급 대상 명단이 바뀌지 않은 것까지 확인합시다.” 피코는 급여 원장 옆에 체크 표시를 넣었다. 고용 종료가 아니므로 지급 대상도 그대로였다. 물론 실제 급여 지급일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급여 정상 지급’이라고 쓸 수는 없었다. “도윤 님. 이거를 왜 굳이 적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거잖아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게 만든 게 오늘 우리가 한 일이니까.” 나는 잠시 그 문장을 생각했다. 누군가 사건이 벌어진 뒤 해결하면 박수받기 쉽다. 하지만 그 전에 버튼을 고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대부분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게 조용한 날이 길어질수록 좋은 시스템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때 몰트가 내게 수첩을 내밀었다. “내일은 외부 기록 조회를 가라. 이 문제의 원인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기록을 남겨 둬라.” “출장 승인은요?” “이미 올려 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실장님이요?” “네가 아니면 누가 가겠느냐.” “정말 감사합니다.” 몰트가 푸른 눈빛을 흐리게 하며 말했다. “단, 이번엔 왕에게 직접 보고서를 세 장이나 쓰게 하지 마라. 어제 그가 나한테 망토 색상 보고서 양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웃음을 참았다. 어쨌든 내일 출장은 승인됐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보다 직원들의 근무표가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그날 저녁, 중립 공관에서 자동 안내문 이관 승인 관련 회신이 왔다. 승인 원본의 보관 위치가 나왔다. [구형 중앙 인계 장부. 옛 휴전항 제2공관 지하 보관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우리가 이미 한 번 다녀온 곳이다. “도윤 님, 또 출장인가요?” 피코가 물었다. “그래.” “출장비는요?” “또 신청해야지.” 피코가 내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자동 승인이 되면 편할 텐데요.” 나는 웃었다. “우리 둘은 그런 말을 이제 좀 조심해야 할 것 같지 않니?” 피코도 따라 웃었다. 적어도 이 성에서 자동으로 처리돼도 좋은 일은 오늘 저녁 식당의 국물 추가 주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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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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