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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81화
PAYLUA ORIGINAL · 제81화

81화. 원문은 번역하지 마십시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610자

오프라인 책장
원문 작성 언어가 한국어라고 적힌 서류를 보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감탄이 아니었다. "이거 출력해도 됩니까?" 천계 제7서고의 보존관리관 마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상황에서 복사부터 하시려고요?" "한 번 읽고 감동받은 다음 잊어버리면 조사에 아무 도움이 안 되잖아요." 마리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계에는 기억을 봉인하는 수정 구슬이 있었고, 환한 날개를 가진 공무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서를 복사할 때는 우리 회사 복합기만큼이나 귀찮은 절차가 필요했다. 원본 보존 사유, 열람 당사자, 복제 범위, 보관 장소. 마지막에는 '복사본을 다시 복사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적어야 했다. 세라핀이 그 항목을 읽고 물었다. "복사본을 또 복사하면 문제가 됩니까?" "그게 문제라기보다, 복사한 내용이 언제부터 누구 손에 있었는지 모르게 되는 게 문제죠." "인간은 참 복잡하군요." "천계가 먼저 만든 양식이잖아요." 세라핀은 그 말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천사도 자기 조직의 서류 앞에서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모양이다. 내가 보고 있던 기록은 소환 예비 접수번호 송-4189의 일부였다. 표면에 보이는 문장은 짧았다.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기 전까지, 누구도 귀환을 대신 결정하지 못하게 할 것.] 문제는 글씨가 아니었다. 번역 마법을 끄자 다른 세계의 언어는 대체로 알 수 없는 기호로 보였지만 이 문장은 그대로 읽혔다. 쉼표와 조사까지 자연스러웠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읽을 법한 문장이다. "원본 입력 언어가 한국어라는 사실과 한국 사람이 작성했다는 사실은 다르죠?" 내 질문에 기록사 아우렐이 즉시 답했다. "그렇습니다. 언어를 아는 다른 종족이 입력했을 수도 있고, 해당 언어가 기록 보관 장치에 사전 등록되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 문장 그대로 회의록에 적어 주세요. '한국인 작성'이라고 쓰지 마시고요." 피코가 들고 있던 작은 수첩에 문장을 받아 적었다. 녀석은 한국어를 알지 못했다. 내가 읽어 주면 이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자음과 모음을 구별하는 건 아직 어려웠다. "도윤 님. 이건 마법 문자예요?" "우리 동네에서 쓰는 글자야." "세상에. 도윤 님네 동네에는 서기가 엄청 많겠어요." "그건 아니고 학교에서 배워." 피코는 학교에서 배운다는 말에 진심으로 놀랐다. 여기서는 귀족들이 어린아이에게 글을 가르칠 때도 돈을 받는다. 한국에서 당연했던 일이 이곳에서는 이상한 특권으로 들렸다. 나는 서류를 다시 들여다봤다. 내가 처음 용사로 소환됐을 때 왕궁에는 내 동의를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그 때문에 왕국의 지명수배 정지 여부까지 다투고 있었다. 그런데 소환 전 기록 속 누군가는 그 문제를 예상한 것처럼 당사자 선택권을 보존하라고 적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다. 물론 마음에 든다고 범인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선량해 보이는 문장을 써 놓고 계약을 함정으로 만든 사람이 한둘인가. 서울에서도 사내 복지제도 안내문의 첫 줄은 늘 따뜻했다. 진짜 무서운 내용은 하단의 작은 글씨에 있었다. "이 문장 바로 앞뒤를 볼 수 있습니까?" 마리엘은 봉인된 구역을 가리켰다. "앞쪽에는 예약 접수 대장이 있습니다. 뒷쪽은 제3감리 열람권 승계 구역입니다. 후자는 승인자 확인이 끝나지 않아 열 수 없습니다." "그럼 일단 볼 수 있는 부분만 봅시다. 권한이 없는데 뚫고 들어가면 제가 조사받아야 하니까요." 루시아가 아쉬운 표정으로 성검을 바라봤다. "검이라면 봉인을 자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나중에 '마왕성 직원이 천계 기록실 파손'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나오겠죠." "신문에도 이름이 실리나?" "좋은 이유로 실려 봅시다."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제야 마리엘이 원본 대장의 작은 기호 하나를 짚었다. 접수 시각 아래에 회색 삼각형이 있었다. "이건 무엇을 뜻합니까?" "원본과 사본의 글자 배열이 다를 수 있다는 경고예요. 보존 장치가 바뀔 때 붙는 표시죠." "어디가 다른지 비교할 수 있나요?" "원본과 현행 화면을 함께 띄우면 가능합니다." 좋다. 이건 마법의 세계에서 제일 익숙한 순간이었다. 화면 두 개를 나란히 띄우고 변경사항을 비교하는 일. 내가 업무에서 제일 많이 했던 일 중 하나다. 마리엘이 수정판 두 장을 꺼냈다. 왼쪽에는 봉인 초기의 입력 순서, 오른쪽에는 현재 열람 화면의 배열이 나타났다. 문장 자체는 같았다. 다만 맨 끝의 종결 부호가 달랐다. 왼쪽에는 마침표. 오른쪽에는 마침표 다음에 아주 작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거 오타 아닙니까?"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생각한 근거는요?" "대부분의 언어에선 의미 없는 표시니까요." 나는 작은 점을 바라봤다. 한국어 문장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도 맞다. 다만 내가 회사에서 쓰던 결재 문서에선 글 끝에 붙은 문자가 버전 구분이나 첨부 여부 표시일 때가 있었다. 이세계 기록 장치의 경우는 어떨까. "점이 생긴 시점도 확인해 주세요." 아우렐이 판본 대조표를 펼쳤다. 최초 봉인 때는 없었다. 제7서고로 옮길 때도 없었다. 제3감리 통합 처리 이틀 뒤부터 표시됐다. 처음에는 내가 괜히 예민한가 싶었다. 마침표 하나 뒤에 점이 붙었다고 천계를 들쑤실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제7서고의 일반 문서 세 건을 비교해 달라고 했다. 개인 정보가 들어 있지 않은 공개 규정이었다. 마리엘이 원본 수정판을 겹쳐 보였다. 일반 문서에는 인장 위치가 바뀌거나 보관 문구가 추가된 경우가 있었다. 변경된 부분마다 판본 시각과 정정 사유가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내 한국어 원문에서 발견된 작은 점에는 정정 사유가 없었다. "혹시 기록 장치가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임의로 표시를 추가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옛 언어 장치는 글자 사이 간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 기호를 붙입니다." "그럼 어느 장치에서 생겼는지 확인해 주세요." 마리엘은 구슬 두 개를 다시 작동시켰다. 천계 장치에서 문서를 읽으면 작은 점이 나왔고, 옛 중립 공관 판본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같은 자료를 다른 장치에서 읽었는데 결과가 달랐다. 나는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점이 원문에 추가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겠네요. 화면에만 붙는 기호일 수도 있으니까." 아우렐은 책상 옆 기록 칸에 그 내용을 적었다. '원본 변경 미확인, 표시 차이 확인.'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 이렇게 한 줄의 말이 정확해지면 나중에 쓸데없는 오해가 줄어든다. "도윤 님, 뭐가 달라요?" 피코가 물었다. "누군가 종이에 점을 찍은 것과, 종이를 읽는 기계가 점을 보여 준 건 다른 일이야." "그렇구나. 그러면 장치도 검사해야겠네요." "맞아." 피코는 그 말을 적으려다가 펜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튀는 소리가 꽤 컸다. 근처에서 서류를 들고 있던 천사가 우리를 노려봤다. 피코는 황급히 사과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펜을 주워 줬다. 이런 사소한 실수를 볼 때마다 저 녀석이 처음 마왕성에 들어왔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숫자 하나만 틀려도 벌을 받을까 겁을 냈다. 지금은 실수하면 다시 확인하고, 이상한 숫자가 있으면 먼저 질문한다. 많이 달라졌다. 마리엘이 봉인 구역에 접근할 수 있는 직책 목록을 가져왔다. 예상보다 직책이 많았다. 천계 기록사, 중립 공관 보존관, 옛 제3감리인, 기한 만료된 임시 대행자까지 있었다. "만료된 자격도 왜 목록에 남아 있죠?" "기록 추적을 위해서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목록에 남아 있는 것과 지금 권한이 살아 있는 건 구분되겠네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구형 장치에서는 만료 표시를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나는 수첩에 적었다. '유효기간 검사 필요.' 소환 계약보다 장치 호환성 문제가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나는 정말 직장인 체질인 모양이다. 그때 세라핀이 말했다. "서고의 옛 장치를 전부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면 빠르지 않겠습니까?" "원본을 읽을 수 있는 장치가 그 안에만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없애면 오히려 증거가 사라져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새 장치에서 검증한 내용을 먼저 적용하고, 옛 장치는 읽기 전용으로 남기죠. 어느 부서가 어느 자료를 쓰는지도 적고요." 세라핀이 한숨을 쉬었다. "일이 훨씬 많아지는군요." "이상하게도 안전하게 고치는 일이 제일 손이 많이 갑니다." 나는 서울에서 시스템을 바꿀 때마다 왜 이전 버전을 일주일이나 더 켜 두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아주 잘 안다. 새로운 기계가 항상 사람의 사정을 더 잘 아는 건 아니다. 특히 사람의 선택을 결정하는 기계라면 더 그렇다. 그 이틀이 문제였다. 대리번호 0003의 자동 갱신 기록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시기와 겹쳤다. "이 점이 누군가의 암호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원문에 없는 문자가 추가됐다는 사실은 기록해 두죠." 피코가 수첩에 네모를 그렸다. '마침표 뒤의 점. 해석 보류.'라고 적힌 번역문이었다. "도윤 님, 점 하나가 그렇게 중요해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확인하는 거야. 중요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확인하면 늦거든." 내가 말을 끝냈을 때 벽 한쪽에서 종이 울렸다. 점심시간 알림이었다. 천계에서도 점심은 먹어야 한다. 신성한 존재가 사는 곳이라고 식사 시간이 없진 않았다. 다만 식당 앞의 팻말이 기가 막혔다. [고귀한 방문객 전용 급식] [일반 방문객은 별도 창구 이용] 나를 포함한 마왕성 일행은 일반 방문객이었다. 세라핀이 고귀한 방문객 식권을 건넸으나 나는 받지 않았다. "왜요?" "공식 업무로 왔으면 같은 기준으로 지급해야죠. 우리가 공짜 밥을 받으면 나중에 접대받았다는 소리 나올 수도 있습니다." "구름빵 두 개 때문에 이해충돌이 생긴다고요?" "서울에서도 커피 한 잔 때문에 팀장들이 난리를 치곤 했습니다." 세라핀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도 정확히 이해한 적은 없다. 중요한 건 괜한 시비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 식당으로 가려는 우리 앞에 천계 공무원 한 명이 나타났다. 하얀 제복에 은빛 사원증을 단 사내였다. "한도윤 씨를 찾고 있었습니다." "누구시죠?" "제7서고 언어 보존 담당, 엘리온입니다. 한국어 문장 열람 신청이 접수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나는 멈칫했다. "한국어를 아세요?" "읽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 문서의 분류 코드를 압니다." 그는 내게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천계 공용어가 아니라 이상한 기호 네 개가 적혀 있었다. 아우렐이 옆에서 해석했다. [표기 보존 요청. 원문과 해석문 분리] "왜 이런 요청이 필요하죠?" 엘리온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이 문서는 처음부터 번역해서는 안 되는 기록으로 지정돼 있었습니다." "누가 지정했습니까?" "신청인 항목이 가려져 있습니다. 대신 예외 사유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만 보여 주세요." 그가 펼친 종이에는 딱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사자 본인 확인 전에는 뜻을 풀지 말 것.] 나는 천천히 종이를 접었다. 소환되기도 전에 내 귀환 선택권을 남겨 둔 사람. 그 사람은 나중에 내가 원문을 읽을 수 있게 일부러 번역을 막아 둔 것 같다. 하지만 왜 그런 번거로운 방식을 썼을까. "엘리온 씨. 그분이 저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등록 신청인이 '원문을 읽는 사람에게 질문을 먼저 하라'는 절차를 남겼다는 사실은 전해 드릴 수 있습니다." "무슨 질문이죠?" 그는 머뭇거리더니 아주 천천히 말했다. "질문은 봉인돼 있습니다. 다만 열람 자격은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본인 확인을 거쳐야 합니다." 나는 웃음이 났다. 이세계에 와서 그렇게 많이 보던 빈칸이 또 나왔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중요한 내용을 전부 봉인하고, 덜 중요한 경고문은 잘 보이게 만들어 놓는 걸까. "그러면 확인 절차를 밟죠." "오늘은 어렵습니다. 담당자 세 명이 모두 다른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아. 천계에도 회의 때문에 업무가 밀리는구나. 나는 식당 쪽을 가리켰다. "그럼 밥부터 먹을까요?" 엘리온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 기록을 보고 식사가 가능하십니까?" "가능해야죠. 안 먹으면 머리가 안 돌아갑니다." 피코가 밝게 끼어들었다. "도윤 님은 배고프면 숫자를 더 무섭게 봐요." 루시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빈속의 도윤은 마왕도 피한다." 나는 둘을 노려봤다. 그럴듯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면 동료 사이가 나빠질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반박할 증거가 없었다. 식당 입구에서 나는 새 신청서를 받았다. 담당 직원은 본인 확인 절차를 시작하려면 '원문 읽기 시험'의 참관인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시험 문구는 뭡니까?" "당사자 본인에게만 공개됩니다." "아, 예." "다만 시험에 실패하면 다시 신청하는 데 한 달이 필요합니다." "그건 너무 긴데요. 이의신청 경로는요?" 직원은 눈을 깜박였다. 그건 자기 업무가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천계를 떠나기 전에 적어도 두 가지는 해야겠다. 누군가 한국어로 남긴 말을 확인하는 일. 그리고 이 서고의 민원 안내서를 사람 말처럼 고치는 일.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이 업무 계획을 두 개나 늘렸다. 불길한 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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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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