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서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루시아의 손이 검 손잡이로 갔다.
“기다려요.”
나는 작게 말했다.
제8보존실은 공동조사 장소였고, 우리가 들어온 문은 하나뿐이었다. 문밖에 사람이 서 있다고 곧장 적이라고 단정하면 곤란하다. 실제로 천계에 와서 내가 배운 것은,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고, 친절한 안내문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거기 누구십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닫지 말아 주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문가에는 짧은 머리의 천사가 서 있었다. 커다란 날개를 접고 있었는데, 몸이 떨리고 있었다. 손에는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저는 제7서고 운영지원실의 계약 화면 담당자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유니아라고 소개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나는 주변을 살폈다. 마리엘과 아우렐, 에브란이 모두 있었으니 적어도 비공식적으로 둘만 만나는 상황은 아니었다. 루시아가 문 옆에서 팔짱을 꼈다. 그녀는 사람을 겁주는 데에 최적화된 재능이 있다.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는 공식 조사 장소입니다. 하실 말씀이 증언이라면 보존 절차와 익명 보호 범위를 확인해야 합니다.”
유니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걸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녀는 가방에서 오래된 작업 지시서 사본을 꺼냈다. 나는 받으려다가 멈췄다.
“원본은 어디 있습니까?”
“운영지원실 서버 구슬에 있습니다.”
“사본을 만드신 날짜는요?”
“어젯밤입니다.”
“공식 반출 허가는 받으셨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시작부터 쉽지 않다.
“그럼 지금 이걸 제 손에 주시면 유니아 씨도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봐주셔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또 바뀔 거예요.”
나는 마리엘을 바라봤다. 마리엘은 잠시 생각하다, 원본 기록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비밀 제보를 접수하는 중립 공관의 절차를 제안했다. 에브란도 동의했다. 유니아의 신원은 공개 회의록에서 제외하고, 제출 자료가 정식 기록과 일치하는지 별도 입회하에 확인하기로 했다.
“그럼 제 이름이 보고서에 안 나옵니까?”
유니아가 물었다.
“공개 보고서에는 바로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법정 절차에서 완전한 익명까지 보장할 수 있는지는 확인해야 해요.”
“그런 말을 하는 분은 처음이에요.”
“뭐가요?”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지켜 주겠다고만 했거든요.”
아.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를 안심시키려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도 결국 다른 방식의 거짓말이다.
유니아가 조심스럽게 사본을 책상에 놓았다. 문서에는 장치 화면 변경 요청이 적혀 있었다.
[귀환 신청 화면 간소화]
[변경: 거절 및 보류 기능을 하위 메뉴로 이동]
[사유: 사용자 혼란 감소]
나는 즉시 고개를 들었다.
“하위 메뉴로 이동했다고요? 없앤 게 아니라요?”
“처음 지시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 배포 버전에는 하위 메뉴도 없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오류라고 보고했는데 ‘운영 정책상 의도된 동작’이라는 답이 왔습니다.”
“누가 답했습니까?”
“제3교역 감독관 계정이요.”
또 0003.
나는 종이 위의 작은 글씨를 확인했다. 계정 이름은 같았지만 그 답이 실제 인간에게서 작성됐는지, 자동 규칙에서 생성됐는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그 계정으로 누가 로그인했는지 기록은요?”
“제 권한으로는 못 봅니다.”
“답변 메시지의 전송 경로는?”
“중앙 자동결재 구슬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직접 지시했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네요.”
유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녀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잘못한 사람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오히려 숨을 쉬게 하는 모양이었다.
유니아는 세 번째 문서를 꺼냈다. 변경 전후 화면의 그림이 그려진 시험 기록이었다. 첫 화면에는 ‘귀환 요청’, ‘보류’, ‘거절’이 있었는데, 바뀐 화면에는 ‘귀환 요청’과 ‘자동 처리’만 남았다.
“제가 직접 테스트했어요. 사용자가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처리 완료라고 나왔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동작을 중립 보관소에서 재현했습니다.”
피코가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귀환 계약이잖아요.”
“맞아. 결과가 훨씬 무거울 수 있지.”
나는 시험 환경을 물었다. 유니아의 시험 기록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빈 연습 계약으로 진행됐고, 실제 귀환 문이 열린 적은 없었다. 이 점을 확인하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누군가 시험 때문에 다른 세계로 날아가 버렸다면 조사 범위가 아예 달라진다.
“그런데 왜 어제 밤에야 사본을 만드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유니아는 한참 침묵했다.
“제 동료가 다른 부서로 옮겨졌어요. 변경 기록을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던 사람이었는데요.”
“강제 발령이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공식 인사 발령에는 본인 요청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가기 전날까지 남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펜을 멈췄다.
정황은 수상하지만 그것만으로 강제 이동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 개인 사정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공식 문서와 다른 합의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분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성함을 지금 적지 맙시다.”
그녀가 건네준 기록에는 아주 작은 차이가 있었다. 같은 권한 번호라도 응답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이 문서는 새벽 두 시에 승인됐고, 저건 세 시 십칠 분에 승인됐네요.”
“그게 이상한가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동 처리라면 어떤 조건으로 승인 시간이 달라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유니아는 자신이 맡던 구슬의 작업표를 펼쳤다. 어느 날은 자정을 넘기면 승인 일괄 작업이 시작됐고, 어느 날은 방문자 등록이 끝나기도 전에 응답이 나갔다고 했다.
“상급자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만 들었어요.”
“상급자가 프로그램을 만든 건 아닐 수도 있죠.”
“네. 하지만 담당 부서가 어디인지도 알려 주지 않았어요.”
나는 한동안 기록을 바라봤다. 천계의 구슬도 우리 회사 전산 시스템과 닮았다. 오류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사원인데, 바꿀 권한은 멀리 있는 부서가 가지고 있고, 그 부서는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유니아 씨, 여기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뭡니까?”
그녀는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처벌받지 않는 거요.”
가슴이 조금 철렁했다.
“문제를 고치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라요?”
“고치고 싶죠. 그런데 먼저 제가 쫓겨나지 않아야 하잖아요.”
나는 말이 막혔다. 그게 맞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일을 한다는 사람이 정작 제 자리 하나 지킬 수 없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증거를 제출하는 방식부터 함께 정합시다. 원본은 제7서고에 두고, 확인 가능한 부분만 공동 조사단으로 보내요. 어떤 기록을 누가 제공했는지는 필요한 범위에서만 남기고요.”
“그렇게 하면 안전할까요?”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중립 공관의 직원 보호 절차도 같이 요청하려고요.”
피코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기록 보존 담당하겠습니다.”
“네가?”
“전에 검문소 조사도 했잖아요. 증거를 보관하는 방법은 압니다.”
순간 조금 뭉클했다. 이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도 겁내던 임프였다. 이제 누군가의 기록을 지키겠다고 먼저 나선다.
“좋아. 대신 네가 혼자 책임지지는 마. 내가 검토할게.”
피코가 활짝 웃었다. 유니아도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우리는 기록의 사본을 두 벌 만들었다. 하나는 천계 보관실, 하나는 중립 공관의 봉인함. 누군가 한쪽을 지워도 다른 한쪽에서 변경을 비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우렐은 서류 겉면에 일련번호를 붙였다.
사본을 봉인하던 아우렐이 유니아에게 작은 설명서를 건넸다. 자료를 제출한 뒤 어떤 통지를 받는지, 심사가 끝나지 않았을 때 누구에게 문의할 수 있는지 적힌 종이였다.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유니아가 속삭였다.
“있어야 할 안내입니다.”
아우렐이 답했다.
나는 종이 아래쪽의 ‘최소한의 보복 방지’라는 문구를 유심히 읽었다. 시행 책임자가 하나가 아니었다. 중립 공관, 천계 보존관리실, 공동 감사단 세 조직으로 나뉘어 있었다.
“좋습니다. 누가 혼자서 이 기록을 지우거나 제출자를 불러낼 수 없겠네요.”
“그렇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의도와 실제 운영은 다를 수 있으니 접수 확인서도 발급해 주세요.”
유니아가 웃었다. 이번에는 조금 진짜 웃음 같았다.
피코도 뿌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봉투 번호를 두 번 읽게 했다. 처음에는 세 번째 숫자를 잘못 불렀다. 피코가 재빨리 다시 확인했다.
“실수했어요.”
“잘 발견했네.”
“혼나지 않아요?”
“수정하면 되지. 못 봤다고 우기는 게 더 문제야.”
유니아가 그 대화를 듣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그가 일하던 곳에서는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조차 위험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루시아가 신중하게 물었다.
“나는 뭘 하면 되나?”
“문 앞을 지켜 주세요. 누가 방해하는지도 확인하고.”
“좋다.”
“검은 뽑지 마시고.”
“……좋다.”
두 번째 대답에는 분명 불만이 섞여 있었다.
유니아는 갑자기 기억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전에 비슷한 자료를 확인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제 동료요. 그 사람도 ‘실제 동의한 사람의 기록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어요.”
나는 그녀가 서랍에서 꺼낸 종이를 보았다. 발령 명령서 일부였다. 원본 번호는 남아 있었지만 본인의 희망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걸로 강제로 전출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직요. 다만 본인 요청이라고 표시된 절차와 실제 증언이 다르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니아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더 확실한 말을 해 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약속은 나중에 더 큰 배신이 된다.
“그분이 동의하시면 직접 만나고 싶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강제로 찾지 않을 거고요.”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
루시아가 문틈으로 복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누군가가 거기에 서 있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유니아가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이상합니다. 하지만 이상한 이야기와 입증된 사실은 달라요.”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 일행은 제출된 자료를 별도 봉인하고, 제7서고 내부 감사 창구에도 보존 요청을 보내기로 했다. 다만 누가 내용을 조회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자동결재 계정이 감시 중인 곳에 그대로 올리면 제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었다.
마리엘은 중립 공관의 보존 구슬을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에브란은 공동 참관인들의 서명만으로 봉인을 구성했고, 유니아의 실명은 별도 봉투에 보관했다. 아우렐은 천계 기록사로서 원본 확인 요청 문서를 작성했다.
“이걸로 안전해집니까?”
유니아가 물었다.
“안전 조치를 한 겁니다. 그래도 혹시 불이익이 생기면 연락할 창구를 따로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루시아가 다가왔다.
“누가 괴롭히면 나를 불러라.”
“기사님.”
내가 말했다.
“검부터 꺼내시면 더 위험해질 수 있어요.”
“그럼 그냥 서 있겠다.”
“그건 좋습니다.”
솔직히 그녀가 서 있기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우리는 보존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유니아는 다른 길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한참 바라봤다.
서울 회사에서도 내부 문제를 발견한 직원들은 종종 혼자가 됐다. 감사팀에 알려야 할지, 팀장에게 먼저 말해야 할지, 증거를 복사하면 보안 규정을 어기는 건 아닐지 고민하다 결국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았다. 유니아도 그저 자기 업무를 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화면 하나가 사람의 선택권을 없애는 걸 보고 더는 참지 못한 거겠지.
“도윤 님.”
피코가 불렀다.
“왜?”
“그 천사분이 틀릴 수도 있잖아요.”
“당연하지.”
“그래도 조사해요?”
“응.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으니까.”
피코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그러면 그분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적고, 맞았으면 맞았다고 적는 거네요.”
“그렇지.”
“좋아요.”
나도 좋았다. 적어도 저 녀석은 사람을 먼저 미워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날 저녁 제7서고의 공식 회신이 도착했다. 제8보존실 변경 승인 기록은 원본 존재가 확인됐고, 중앙 자동결재 구슬의 접근 로그 보존이 승인됐다.
그런데 마지막 줄이 이상했다.
[원본 접근권 승인자: 제3교역 감독관]
[승인 시각: 금일 오전]
오늘 오전?
우리가 아직 제8보존실을 조사하기도 전이었다.
누가 우리가 보려 할 자료를 미리 열어 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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