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에서 지구로 돌아가는 문에도 이용료가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아니, 다들 농담이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 하나를 다른 세계로 불러 놓고 돌아갈 때 돈을 받는다면 그건 교통 서비스가 아니라 인질극에 가깝지 않은가.
그런데 제7서고의 운영 명세서에는 실제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귀환 문 열람 준비금: 금화 2닢]
[귀환 권리 보존료: 금화 1닢]
[출입 기록 인증료: 금화 1닢]
[고위험 차원 이동 보증료: 금화 5닢]
모두 합하면 아홉 닢이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가격표였다. 인터넷에서 저렴한 항공권을 찾았더니 결제 단계에서 공항세, 유류할증료, 수하물 비용, 좌석 지정료가 차례로 붙는 그런 방식 말이다. 다만 항공권은 결제하지 않으면 안 타면 된다. 이쪽은 집에 돌아갈 선택권 자체가 걸려 있었다.
“실제 귀환을 신청한 것도 아닌데 이 금액이 발생합니까?”
내가 물었다.
마리엘이 표 아래쪽을 가리켰다.
“오늘 시점에는 ‘예상 청구’입니다. 실제 납부 의무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아직 돈이 빠져나간 건 아니고요.”
“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다. 청구서가 나온 것과 돈이 빠져나간 건 다른 문제니까. 나는 마왕성에서 그 차이 하나로 수백 닢의 허위 지급을 막았다.
그런데 숫자보다 더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고위험 차원 이동 보증료.
“위험을 보장한다면 어디까지 보장하죠?”
“이동 실패 시 좌표 복구와 임시 보호 제공을 위한 계정입니다.”
“지급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마리엘은 보관 기록을 확인했다.
“이 구획에서는 실제 보장 지급 내역을 바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 수입 원장과 지급 원장을 대조해야겠네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하루가 행복하다. 물론 그 행복을 위해 내가 천계까지 와야 했다는 게 문제다.
우리는 먼저 비용의 법적 근거를 확인했다. 오래된 제3감리 규정에는 심사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위험 보증료를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조항은 보이지 않았다. 운영 지침에는 있었다. 그런데 운영 지침의 승인 기관이 문제였다.
[제3교역 감독관]
또 너냐.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자격번호가 천계 구석구석에서 잘도 일한다. 인사기록에는 사람이 없는데 승인란에는 도장이 찍히는 세상. 기묘하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이 수수료를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우렐이 고개를 저었다.
“현행 지침 승인 로그에서는 자격번호만 보입니다.”
“원문 승인 문서는요?”
“예전 서고 분리 때 옮겨졌을 수 있습니다.”
“어디로요?”
“제8보존실이요.”
아, 숫자 8.
마왕성의 제8호 공방에 이어 천계에서도 제8보존실이 나온다. 번호가 같다고 연관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에는 8이라는 숫자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일단 같은 조직의 이관 기록을 확인할 이유는 됐다.
우리는 보존실 출입 신청을 했다. 담당자는 서명을 받았고, 추가 열람 비용을 요구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열람 자체는 무료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복사 비용은 따로 있습니다.”
“그건 실제 복사한 장수에 따라 내겠습니다.”
“네.”
확실한 서비스에 확실한 비용을 내는 건 문제없다. 문제는 제공됐는지도 모르는 서비스에 계속 돈을 걷는 구조다.
제8보존실은 작고 어두웠다. 천계라고 다 환할 줄 알았는데, 여기에는 빛바랜 상자와 녹슨 잠금장치가 가득했다. 관리인 한 명이 촛불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들어오자 깜짝 놀라 일어났다.
“고객이 왔군요!”
“방문자는 거의 없습니까?”
“지난달에 한 분 오셨고, 그전에는 반년쯤 비어 있었죠.”
“열람료는 받으십니까?”
“예전에는 받았는데 지금은 안 받습니다.”
“그럼 유지비는요?”
“정기적으로 청구됩니다.”
어라.
나는 관리인에게 실제 지급 내역과 청구 명세를 구분해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평소에 보던 서류라며 흔쾌히 가져왔다. 지출 항목 중 일부는 실제 촛불과 방습 설비 유지비였다. 관리인은 물품 구매 영수증도 제시했다. 그건 정상적인 서비스였다.
하지만 다른 항목이 있었다.
[귀환 좌석 사전 점유 방지 관리비]
“이건 뭘 하는 비용입니까?”
내가 물었다.
“모릅니다.”
“관리인이신데요?”
“저희는 좌석에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렇다. 관리인이 관리하지 못하는 관리비다. 아주 매력적인 사업 모델이네.
관리인이 보여준 작업일지는 구석이 닳아 있었다. 날짜마다 손으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두었는데, 내가 아는 회계 장부와는 달랐다.
“이 동그라미는 무슨 뜻입니까?”
“그날 문을 열었다는 뜻입니다.”
“세 개는요?”
“세 번 열었죠.”
“지난달에는 딱 한 번이네요.”
“그렇습니다.”
나는 비용 청구서를 옆에 놓았다. 지난달 문 개방 수수료는 열두 번으로 계산돼 있었다.
“열두 번 열었다고 되어 있는데요.”
“그럴 리가. 제가 매일 열쇠를 가지고 다닙니다. 한 번 열었어요.”
“다른 담당자가 열었을 가능성은?”
그는 열쇠 고리를 흔들었다.
“정식으로는 제 열쇠밖에 없습니다. 비상 열쇠는 제7서고 봉인함에 있고요.”
“좋습니다. 비상 열쇠 출납기록도 확인하겠습니다.”
관리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말했다.
“그런데 제가 문을 한 번 열었다는 이유로 수수료가 열두 번 청구됐다면, 나머지 열한 번은 누가 돈을 가져간 겁니까?”
“돈이 실제로 나갔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청구 횟수와 지급 횟수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복잡하군요.”
“저도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어요.”
마왕성에서는 검 만 자루가 사라졌고, 천계에서는 문 열한 번이 사라졌다. 규모만 다르지 장부 뒤에 있는 사람이 곤란해지는 건 똑같았다.
서고에서 가져온 비상 열쇠 출납장에는 지난달 사용 기록이 없었다. 봉인은 훼손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두 기록을 함께 사진처럼 복제해 봉인했다. 누가 실제로 문을 열었는지 확정하지 못해도, 적어도 어느 기록끼리 충돌하는지 보여 줄 수 있었다.
피코가 한참 구슬을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도윤 님. 여기 ‘기본 유지 횟수’라고도 적혀 있어요.”
“보자.”
작은 글씨가 있었다.
[물리 개방 여부와 무관하게 월 최소 처리 횟수 12회 적용]
아이고.
열두 번 열었다는 게 아니라 열두 번 분의 값을 받는다는 소리였구나.
“그럼 관리인 말이 틀린 건 아니네요.”
“그렇지. 관리인은 한 번 열었고, 시스템은 열두 번을 청구했어.”
“왜 그렇게 만들었죠?”
“그걸 만든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계약서의 부속 조항을 찾았다. 무인 시설 유지와 갑작스러운 귀환문 사용에 대비해 매달 기본 열두 회분을 선납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계약 체결 당시의 위험 평가표는 누락되어 있었다. 언제부터 실제 사용량보다 기본 횟수가 과하게 높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나는 관리인을 탓하기보다 검토 대상을 나눴다. 첫째, 기본 수수료를 정할 권한이 있었는가. 둘째, 선납금이 정확히 어디에 보관됐는가. 셋째, 사용하지 않은 분량이 적립 또는 환급되는가.
세라핀이 내 정리표를 보고 말했다.
“자칫하면 천계 전체의 귀환문 유지 계약을 다시 보게 되겠군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오늘은 이 방의 수수료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루시아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전체를 한 번에 뒤집으면 빠르지 않나?”
“그러다가 귀환문이 닫히면 누가 책임져요?”
루시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문이 닫히면 검으로 열면 되지.”
“아, 진짜.”
나는 이 세계의 최정예 기사에게 보존 시설의 문을 함부로 자르지 말아 달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오늘도 인생의 난이도는 최상이다.
다시 기록을 살피던 피코가 묘한 표시를 찾았다. ‘실제 사용량 정산’이라는 항목은 지난 여러 달 동안 공란인데, ‘기본 선납금 징수’에는 규칙적인 도장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용 실적을 보지 않고 금액부터 가져가는 데 매우 성실했다.
그 성실함을 다른 데 썼더라면 천계의 회계 장부가 이 모양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관리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옛날부터 붙어 있어서 그냥 납부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요?”
“공동 보증 회계소요.”
나는 그 이름을 또 적었다. 피코는 내 표정을 보고 이미 준비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 님, 같은 이름이라도 실제 계정이 같은지 확인해야죠?”
“정답.”
“그리고 청구만 있었는지 지급도 있었는지도요.”
“만점.”
피코가 웃었다. 루시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회계 담당자들이 서로 칭찬하면 이렇게 무섭지?”
“정상적인 행동을 해서요.”
“전투에서 적을 베면 칭찬받는 것과 비슷한가?”
“네. 저희 적은 근거 없는 숫자입니다.”
우리는 관리인이 보유한 입금 확인서를 확인했다. 일부 수수료는 실제로 공동 보증 회계소로 송금됐다. 하지만 최종 수취인이나 사용처는 그 회계소의 원장을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보고서에 따로 적었다.
[확인: 제8보존실 일부 관리비 송금 완료]
[미확인: 실제 서비스 제공 및 최종 사용처]
“그럼 이 돈은 훔친 겁니까?”
루시아가 물었다.
“그건 아직 몰라요. 적절한 보증금 계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설명을 못 하지?”
“그래서 조사해야죠.”
루시아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검 한 자루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은 그녀에게 너무 불친절하다.
우리는 옛 지침 승인 문서를 찾기 시작했다. 낡은 상자 세 개를 열자 먼지가 피어올랐다. 피코가 재채기를 했고, 나는 종이를 천천히 넘겼다. 그러다 상자 안쪽에서 예전 승인 도면이 나왔다. 서명란에는 제3교역 감독관의 직인이 있었지만, 그 아래 아주 작은 설명이 있었다.
[권리자 보호 비용은 당사자에게 부과하지 않는다.]
나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아우렐의 얼굴이 굳었다.
“현행 지침과 정반대군요.”
“그렇죠.”
“옛 규정이 지금도 유효한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래도 왜 문구가 바뀌었는지 추적할 수는 있겠죠.”
우리는 원본을 봉인하고 사본을 만들었다. 관리인은 자신이 보관하던 자료가 이런 의미가 있는 줄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원본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셨잖아요. 그게 지금 제일 중요합니다.”
그는 안도한 얼굴로 웃었다.
보존실을 나서려는 순간, 구석에서 무언가 굴러 떨어졌다. 작은 금속판이었다. 표면에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제7서고 귀환 좌석 운영 변경 승인]
[변경 요청자: 비공개]
[비용 대리 징수: 0003]
나는 금속판을 집어 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마리엘을 불렀다. 발견 위치와 시간을 먼저 기록해야 했다.
“이번에도 0003이네요.”
피코가 속삭였다.
“응.”
나는 금속판을 바라봤다.
이 번호가 사람을 대신해 동의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돈을 청구하는 권한까지 가져갔다면 이야기가 훨씬 복잡해진다.
조사를 끝내려는데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루시아가 문을 돌아봤다. 나는 종이 위에 검은 잉크로 그 시각을 적었다. 누구든 나중에 들어와서 그 순간을 다르게 말할 수 있으니까.
“문밖에 사람 있습니까?”
루시아가 낮게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이 문을 열면 되나?”
“아직은요. 저쪽 복도도 공용 시설이잖아요.”
그 말이 끝나자 발소리가 잠시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멀어지는 소리였다. 피코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무서웠어요.”
“나도.”
“도윤 님도요?”
“당연하지. 칼 들고 싸우는 건 내 전문이 아니잖아.”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무서워하는 걸 숨긴다고 용기가 되는 건 아니다. 무섭더라도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하는 게 그나마 내가 배운 생존 방법이었다.
“오늘 발견한 건 원본 승인 기록의 소재와 `0003` 번호가 계속 쓰였다는 정황뿐이야. 누가 방 밖에 있었다는 이유로 범인을 만들어서는 안 돼.”
루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문밖에서 대기한다. 네가 부르면 들어오겠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자리를 옮긴 뒤 나는 자료 봉투의 봉인을 다시 확인했다. 침을 삼키기 어려웠다. 천계는 아름다웠지만, 이상하게 중요한 기록이 있는 방으로 갈수록 어두워졌다.
피코가 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도윤 님. 여기는 마왕성보다 더 무서워요.”
“왜?”
“마왕님은 화나면 소리라도 지르시잖아요. 여기는 누가 화났는지 모르겠어요.”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러네.”
나는 문 쪽을 바라봤다. 누가 잘못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건 아무도 책임질 일이 없다고 믿는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마지막 서류를 봉인했다.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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