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 제7서고 깊은 곳에는 의자가 한 개 있었다.
정확히는 의자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한 개만 아무도 앉지 못하게 막혀 있었다. 하얀 천이 씌워져 있고, 등받이에는 작은 금속판이 붙어 있었다.
[귀환 대기 좌석 7번]
[권리자 확인 전 점유 금지]
나는 의자를 한참 바라봤다.
“누군가 여기 앉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갑니까?”
마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출발 의자가 아니라 절차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귀환 문을 열기 전에 당사자가 마지막으로 서류를 읽는 곳이지요.”
“그럼 왜 이렇게 엄숙하게 덮어놨죠?”
“오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요?”
“기록상 83년입니다.”
83년.
한 사람이 태어나서 늙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의자 밑에는 먼지가 없었다. 누군가 계속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유지보수비는 나오겠네요.”
내가 중얼거리자 피코가 메모지를 꺼냈다.
“그것도 조사해 볼까요?”
“지금은 의자 용도를 먼저 확인하자.”
스스로 말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나는 지구의 납기 지옥에서 살아남은 회계 담당자다. 그런데 이제 천계에 와서 의자 하나의 존재 이유를 조사하고 있다. 인간의 경력은 참 기묘하게 이어진다.
마리엘은 옆 벽에 놓인 낡은 안내판을 가리켰다. 판에는 다섯 단계가 적혀 있었다.
[신원 확인]
[출발 세계 확인]
[도착 좌표 확인]
[당사자 귀환 의사 확인]
[귀환 문 활성화]
정상적인 순서였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그럼 제 기록을 여기에 대입하면요?”
마리엘이 각 항목을 확인했다.
신원 확인. 진행 중.
출발 세계. 지구, 대한민국. 일부 확인.
도착 좌표. 미지정.
귀환 의사. 본인 서명 없음.
귀환 문 활성화. 기록 없음.
나는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다행이네요. 당장 어디론가 날아갈 위험은 없는 거군요.”
“현재 확인되는 정보만으로는 그렇습니다.”
“이 의자에 앉아도요?”
“의자만으로는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루시아가 의자를 툭 건드렸다.
“그럼 내가 앉아 봐도 되나?”
“아니요.”
다섯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루시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평범한 의자라면서.”
“권리자 확인 전 점유 금지라고 적혀 있잖아요.”
“그럼 그냥 의자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나?”
그렇다. 세상에는 그냥 의자이면서도 아무나 앉을 수 없는 의자가 있다. 우리 회사 부장님 의자가 그랬다.
보존실 한쪽에서 기다리던 노인이 다가왔다. 어제 귀환 창구에서 만났던 수로 기술자였다. 그는 자신의 권리 보존 신청을 확인하러 왔다가 우리를 본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왔소?”
“어르신도 이 의자를 아십니까?”
노인은 잠시 의자 옆을 바라봤다.
“아오. 안 잊히지. 내가 마지막으로 여기 온 게 오십 년 전쯤인데.”
“오십 년 전에도 비어 있었습니까?”
“비어 있었지. 저 자리는 누구의 것이라고도 하지 않았고.”
마리엘이 노인의 말을 기록하려 하자 내가 먼저 동의를 구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본 것만 말하겠소.”
그는 예전에 귀환 문을 고치는 기술자로 일했었다고 했다. 돌아갈 세계의 좌표를 잃은 뒤에는 수로를 관리하며 생계를 꾸렸다. 당시 그는 일곱 좌석 가운데 하나가 특별 대기 좌석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로 누가 사용했는지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도 자꾸 좌석 유지비가 나왔소. 장치를 켜 본 적도 없는데.”
“영수증은 아직 갖고 계십니까?”
“여태 갖고 있지. 버리면 내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으니까.”
노인은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거기에는 귀환 좌석 유지 수수료와 좌표 보존비가 서로 다른 항목으로 적혀 있었다. 내가 어제 본 영수증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어르신, 이걸 복사해도 됩니까?”
“내가 허락한 범위만.”
“네. 금액과 청구 기관, 날짜만 확인하겠습니다.”
노인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우리가 확인한 건 좌석이 유지 관리 대상이었다는 사실과 수수료 청구 기록이었다. 실제로 그 돈이 어느 부서에 지급됐는지는 몰랐다. 노인도 오래전 일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의 증언을 기록하면서 추정과 직접 목격을 구분했다.
“혹시 어르신은 왜 여기 남으셨습니까?”
피코가 물었다.
노인이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돌아갈 길을 못 찾았으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먹고사는 삶까지 가짜가 되는 건 아니지.”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도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마왕성에서 만나고, 함께 일하고, 웃고 화냈던 시간이 모두 가짜는 아니다. 지구의 내 방이 진짜라면 마왕성 재정실의 책상도 이제는 진짜다. 서로 다른 두 삶이 한 사람 안에 들어와 버렸다.
피코가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도윤 님은 돌아가면 제일 먼저 뭐 할 거예요?”
“밥 먹을 거야.”
“여기서도 드시잖아요.”
“엄마랑.”
좌석 기록을 읽는 동안 작은 소동이 있었다. 제7서고의 청소 담당자가 우리 일행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온 것이다.
“그 의자, 덮개를 벗기셨습니까?”
“아직 안 벗겼습니다.”
“휴, 다행이네요. 오늘 정기 관리비 검수 날이라서요.”
그는 손수레에 청소 도구와 비용 명세서를 싣고 있었다. 나는 명세서 첫 줄을 보고 멈췄다.
[대기 좌석 공기 정화 비용: 금화 1닢]
공기 정화?
“여기 공기가 더럽습니까?”
“아닙니다. 천계 최고 등급 공기인데요.”
“그럼 뭘 정화합니까?”
“의자 주변의 공기를요.”
대답은 완벽하게 순환했다.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공기를 정화한다. 이것보다 명쾌한 설명도 드물겠다.
“실제로 정화 작업을 하셨다는 기록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청소 담당자는 수첩을 펼쳤다. 지난달 작업 시간, 담당자 서명, 사용한 정화 가루의 양이 적혀 있었다. 놀랍게도 정말로 작업을 했다.
“그럼 비용 자체는 허위가 아니겠군요.”
“그런데 왜 문제냐?”
루시아가 물었다.
“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가 문제죠. 사용하지도 않는 대기 좌석을 위해 매달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마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은 정당하게 수행됐지만 발주 목적과 승인권은 별개라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이 직원분이 일했는데 돈을 못 받으면 안 되죠. 그렇다고 필요 없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 시키는 게 맞는 건 아니잖아요.”
청소 담당자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제 급여가 끊깁니까?”
“아직 그런 결정은 없습니다. 계약을 바꾸더라도 다른 작업으로 재배치할 방법부터 찾아야죠.”
그는 표정이 조금 풀렸다. 나는 괜히 그의 수첩을 다시 봤다. 날짜마다 글씨가 조금 달랐다. 오래 일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기록이었다. 누군가 허술하게 만든 제도 때문에 성실한 직원이 먼저 쫓겨나는 건 지구에서도 많이 봤다.
“여기 서고의 다른 보존품도 관리하십니까?”
“예. 환풍구와 봉인함도 제가 맡습니다.”
“그럼 실제 필요한 작업량을 따로 정리해 주세요. 업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기준을 다시 잡는 겁니다.”
그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피코는 내 옆에서 ‘업무 재배치 검토’라는 문구를 꼼꼼하게 적었다.
좌석 하나를 추적하다가 청소 노동자의 고용 안정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왕성 입사 지원서의 희망 직무에 ‘전 세계 잡무 처리 담당’이라고 써둘 걸 그랬다.
그 후 우리는 대기 좌석의 관리 기록을 실제 날짜 순으로 다시 배열했다. 같은 달에 두 번 청구된 항목이 있었다. 한 건은 청소 작업, 다른 한 건은 좌석 보존 의식이었다. 그런데 보존 의식의 확인란은 비어 있었다.
“이건 작업했다는 자료가 있습니까?”
마리엘이 기록을 확인했다.
“현재 사본에는 없습니다.”
“그럼 지급됐는지도 아직 모르는 거네요.”
“맞습니다.”
나는 세 가지 칸을 그렸다. 확인된 작업, 청구만 된 작업, 확인이 필요한 승인. 검은색 잉크와 붉은색 잉크를 구분해 썼다.
피코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냥 사기라고 적으면 안 돼요?”
“사기면 사기라고 적어야지. 그런데 증거가 부족한데 쓰면 진짜 사기꾼이 그걸 핑계로 빠져나갈 수 있어.”
“아, 맞다.”
“그리고 성실히 일한 청소 담당자도 억울해지고.”
피코가 서류를 다시 받아 적었다. 이 녀석의 귀가 조금 붉어졌다. 실수한 걸 부끄러워하는 모양인데, 질문을 했다는 건 잘한 일이다. 묻지 않고 단정하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좌석 위의 하얀 천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빈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 의자를 기다리는 사람의 이름이 누구였든, 적어도 그 이름을 빌려 돈을 만들거나 동의를 꾸며서는 안 된다.
피코는 잠시 조용해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응. 그러면 좋겠다.”
말이 끝나자 서고 안쪽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열람 시간이 됐다는 신호였다. 마리엘은 보존위원회에서 허용한 범위의 소환 계약 원문을 준비했다. 문서는 생각보다 얇았다. 그리고 아주 깨끗했다. 천 년 된 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쩡했다.
“원문 자체는 최근 출력된 보존본입니다. 원본 기록과 일치 여부는 별도 검증합니다.”
마리엘이 먼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구분이다. 예쁜 종이 한 장이 있다고 그 안의 내용까지 진실이 되는 건 아니다.
첫 번째 장에는 신성 소환 계약의 목적이 있었다.
[목적: 마왕 토벌 후보의 소환 및 귀환 권리 보존]
후보.
좌석 번호를 찾는 동안 작은 수정 시계가 세 번 울렸다. 관리 교대 시각이었다. 마리엘은 다음 담당자가 오면 기록을 다시 이어 보자고 했다.
“교대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원문 보존물은 반드시 두 명이 함께 관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좋은 규칙이네요.”
나는 피코와 서류를 다시 정리했다. 쉬는 시간이 생기자 루시아는 의자의 다리를 한 번 두드려 봤다. 텅, 하고 소리가 났다.
“평범한 의자인데.”
“의자만으로 귀환하지 않는다잖아요.”
“그럼 뭘 해야 하나?”
“우선 누구의 선택으로 문이 열리는지 확인해야죠.”
루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에게 문을 여는 법은 언제나 단순했다. 부순다. 혹은 더 세게 부순다. 하지만 돌아가는 문을 부쉈다가 집으로 가지 못하면 어떡할 생각일까.
나는 의자에 붙은 작은 손잡이를 보았다. 오래된 가죽이 닳아 있었다. 누군가 만졌다는 뜻일까. 아니면 관리 과정에서 마모된 걸까. 경험이 없으니 함부로 판단할 수 없었다.
교대 담당자가 도착하자 우리는 원문 규정을 다시 펼쳤다. 그가 읽어 준 예전 주석에는 권리자가 도착지를 확인하지 못하면 귀환 대기를 취소하지 않은 채 유보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주석이 왜 현재 안내문에는 없죠?”
“편의를 위해 짧게 줄였다고 들었습니다.”
“줄여서는 안 되는 부분이네요.”
마리엘은 그대로 기록했다. 도착지를 모르는데도 선택하라고 강요받는 건 선택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단어에서 눈이 멈췄다.
“저를 처음부터 확정된 용사가 아니라 후보라고 등록했네요.”
아우렐이 원본 판본을 확인했다.
“예비 단계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왕국에서는 저를 확정된 용사라고 했거든요.”
“왕국 소환 의식의 선언문과 이 계약의 체결 단계가 다른 것 같습니다.”
말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는 됐다. ‘프로젝트 후보’로 등록해 놓고 실제 발령은 이미 났다고 주장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두 번째 장에는 권리 목록이 있었다. 소환된 사람은 거주 안전, 적정한 물자 제공, 선택에 따른 귀환 심사, 원문 열람권을 보장받는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중 귀환 심사 항목을 다시 읽었다.
[당사자가 자유로운 의사로 귀환을 요청할 수 있다. 당사자의 동의가 확인되지 않으면 귀환을 집행하지 않는다.]
와.
정상적인 문장이다.
이제야 만났다.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취급하는 계약 문구다.
“이 조항은 누구나 적용받습니까?”
“유효한 대상이라면 원칙적으로요.”
마리엘이 말했다.
“그럼 저는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네요.”
“네.”
다음 장에는 계약 발효 요건이 있었다. 서명, 본인 확인, 수권 기관 확인. 그런데 내 사본에는 여전히 본인 서명란이 비어 있었다. 그 아래에 작은 글씨가 하나 붙어 있었다.
[응답 부재 시 보존 조치 유지. 집행 동의로 간주하지 않음.]
나는 손가락으로 그 문장을 짚었다.
“찾았다.”
피코가 내 어깨 너머로 들여다봤다.
“뭘요?”
“거절 버튼이 원래부터 있었다는 증거.”
그때 마리엘의 수정 구슬이 짧게 울렸다. 원본 보존본과 현재 운영 화면을 대조한 결과였다.
[원문 규정과 운영 문구 불일치 발견]
[운영 화면: 미응답 시 귀환 예약 자동 확정]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역시.
의자만 83년 동안 비어 있었던 게 아니네.
사용자 의사까지 텅 비운 채 절차만 돌리고 있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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