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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75화
PAYLUA ORIGINAL · 제75화

75화. 엄마의 읽지 못한 문자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128자

오프라인 책장
천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은 후광도 날개도 아니었다. 대기표였다. 제7서고 0층 옆에는 작은 창구가 세 개 있었다. 물품 열람 동의, 원문 열람 범위 확인, 전자 기록 재생 승인. 내가 엄마 문자를 하나 보려면 세 창구를 모두 거쳐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그냥 제 휴대전화입니다.” 나는 첫 번째 직원에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가 보낸 문자고요.”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대기표가 세 장이죠?” “각 창구에서 확인하는 권리가 다르니까요.” 그 말은 맞다. 문제는 줄이 세 개라는 거다. 대한민국 주민센터에서도 번호표 하나로 여러 업무를 보는 세상이 왔는데, 천계에는 여전히 신성한 분업이 살아 있었다. 내가 끙끙거리고 있으니 피코가 대신 대기표를 뽑았다. 숫자 118. “앞에 몇 명이나 있어?” “열일곱 명이요.” “좋네.” “좋아요?” “지구였으면 점심시간 끝나고 다시 오라고 했을지도 몰라.” 천계 직원들의 점심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걸 확인하려고 또 대기표를 뽑고 싶지는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마리엘이 작은 접수실을 빌려줬다. 아우렐은 그곳에서 귀환 계약 원문의 복사 범위를 정리했다. 에브란은 자동 대리동의 기록을 보존할 방법을 검토했다. 루시아는 정말로 할 일이 없어 보였다. “적은 없나?” 그녀가 열 번째로 물었다. “지금 적은 대기 시간이죠.” “그걸 베면 빨라지나?” “안 됩니다.” 나는 이제 그녀가 검을 꺼내기 전에 대답할 수 있게 됐다. 성장이다. 그때 앞쪽 창구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어제 본 수로 기술자 노인이었다. 그는 작고 낡은 지갑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또 보존료를 내라고요?” 직원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다음 갱신 시점이 다가와서요.” “내가 원한 건 돌아갈 문을 확인하는 거라니까!” 나는 노인이 허락하자 그의 안내문을 함께 읽었다. 제목부터 이상했다. [귀환 예정자 보존 대행 기본 요금] 노인이 매번 낸 돈은 귀환 좌표 보존료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대행 기본 요금’이라는 이름으로 청구됐다. 대행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누군가 실제로 좌표를 관리해 주는 걸까, 아니면 신청서만 받아 보관하는 걸까. “이 비용을 받는 기관이 어디죠?” 내가 물었다. 창구 직원은 영수증을 확인했다. “공동 보증 회계소로 되어 있습니다.” 아. 이 이름 또 나온다. 마왕성에서 천계 출장비를 조사할 때도, 검문소의 자동 갱신 수수료를 확인할 때도 등장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동일한 계정이라고 곧장 단정할 수는 없다. 세상에 ‘총무팀’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무실이 수천 개 있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확인할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노인에게 영수증 열 장 중 한 장만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나머지 아홉 장을 품에 넣었다. “왜 다 안 보시오?” “어르신 기록이니까요. 제 사건을 조사한다고 전부 가져갈 권리는 없습니다.”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었다. “희한한 젊은이로군.” “직업이 좀 그렇습니다.” 우리는 직원에게 지급 완료인지 청구 예정인지부터 확인했다. 노인은 오늘 돈을 내지 않았다. 화면에는 새 청구 예정만 표시됐다. 나는 그 차이를 영수증 사본에 적었다. 기존 열 번의 납부와 오늘의 청구는 같은 사실이 아니다. “어르신, 이 금액에 동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서비스가 무엇인지 설명받고 결정하세요.” 노인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럼 그동안 낸 돈은?” “조사해 볼 근거는 있습니다. 다만 환급이 확정된 건 아닙니다.” “자네는 대답이 죄다 그렇게 답답하구만.” “네. 저도 압니다.” 정확한 말은 원래 답답하다. 대신 나중에 배신하지 않는다. 그때 번호표를 기다리던 대열 맨 뒤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분명 어제도 왔습니다! 오늘은 서류가 충분하다고 했잖아요!” 하늘색 옷을 입은 젊은 천사가 창구 직원에게 작은 봉투를 내밀고 있었다. 봉투 속에는 집 주소처럼 생긴 긴 좌표와 빛바랜 초상화가 들어 있었다. 직원은 자꾸 같은 대답만 했다. “보존 당사자 확인서가 필요합니다.” “당사자가 실종됐으니까 대신 보관을 신청하는 거예요!” 나는 다가가려다 멈췄다. 모르는 사람의 사정을 함부로 들여다보는 건 내 취미가 아니다. 하지만 그 천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잠시 뒤 그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아까 창구 서식 확인하던 분입니까?” “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먼저 말씀하실 필요는 없어요.” “동생이 귀환 문을 지나간 뒤 기록이 사라졌습니다. 동생 물건이라도 잃지 않으려고 보관 신청을 하는데, 본인 서명을 가져오래요.” “본인 서명이 어려운 상황에 대한 예외 절차는 확인하셨습니까?” 그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 절차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창구 직원에게 규정집의 특별 보존 조항만 찾아 달라고 했다. 직원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책을 넘기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실종·행방불명 당사자의 물품은 이해관계인이 임시 보호 신청을 할 수 있군요.” “네. 다만 실제 권한 확인은 별도로 필요하겠죠. 그분께 처음부터 모든 자료를 열어 달라는 게 아니니까요.” 직원은 안내문을 고쳤다. 젊은 천사는 봉투를 품에 안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접수됐다는 것과 해결됐다는 건 다릅니다. 접수번호 꼭 챙기세요.” 그는 번호표를 세 번 확인하고 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사람이 누군가의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기다릴 권리’까지 서류 한 장 때문에 빼앗기면 남는 것이 얼마나 적을까. 피코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도윤 님. 도와주고도 표정이 안 좋아요.” “저 사람은 아직 동생을 못 찾았잖아.” “그래도 물건은 지킬 수 있게 됐어요.” “그러게.” 나는 웃으려다 말았다. 피코의 말이 맞았다. 작은 일을 작다고 무시하지 말자. 내가 엄마의 문자를 확인하려는 것도 결국 그 작은 일 중 하나다. 대기 번호가 다시 울렸다. 나도 내 차례로 돌아갔다. 서류를 받던 직원은 아까보다 조금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귀환자 물품 확인이 처음이십니까?” “네. 사실 물품을 보러 오는 날까지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한 사람은 없어요.” 천계에서 처음으로 업무용 문구가 아닌 사람의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대기표 118번이 불렸다. 나는 노인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창구로 갔다. 첫 번째 직원은 내 소유권 확인서를 받았다. 두 번째는 문자 내용 열람을 위해 사생활 보호 동의서를 내밀었다. 세 번째는 전송 시점 이후의 새 통신이 유입된 것은 아니며, 물품에 남아 있던 알림 정보만 표시된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나는 그 문구를 두 번 읽었다. 이게 중요했다. 지금 화면에 엄마 이름이 뜬다고 해서 엄마가 방금 문자를 보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지구를 떠나기 전에 받은 메시지가 보존된 것일 수도 있었다. 잠깐이나마 엄마가 나를 찾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기대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준비되셨습니까?” 마리엘이 물었다. “네.” 그녀는 마법 봉인의 일부를 풀었다. 화면이 잠깐 흔들리더니 작은 글자가 나타났다. [엄마: 늦게까지 일하니? 밥은 꼭 먹고 다녀.] 짧았다. 아주 짧았다. 그런데 그 한 줄이 왜 이렇게 아프지. 나는 웃었다. 웃으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다. 눈가가 이상하게 뜨거워졌다. 피코가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도윤 님, 괜찮으세요?” “응. 밥 먹으래.” “그럼 먹으면 되잖아요.”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의 단순함이 지금은 고마웠다. 지구에서는 엄마 문자에 답장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네’라고 한 글자 보내면 될 일을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다. 그러다 밤이 되면 잊어버리고, 다음 날 아침 또 업무에 쫓겼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한 바쁨이었다. 회사의 계정과목 번호는 다 외우면서 엄마에게 밥 먹었다고 답하는 건 그렇게 어려웠다니. “답장은 안 되겠죠?” 나는 그래도 물었다. 마리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는 보존된 기록을 재생하는 절차라 새로운 메시지를 보낼 경로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화면을 끄지 않고 한 번 더 읽었다. 낯익은 말투. 별것 아닌 걱정.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소중한 글자였다. 성검이 빛난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이 물건도 내 기분을 알아차리는 걸까 싶었다가, 곧바로 생각을 고쳤다. 성검은 계약 보존 기록의 불일치에 반응한다고 했지, 내 감정 상담사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왜 빛나?” 작게 물었다. 검은 답하지 않았다. “도윤 님, 검하고 이야기하면 대답해요?” 피코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가끔 마음대로 빛나지. 말은 안 해.” “그럼 저하고 비슷하네요.” “뭐가?” “도윤 님이 길게 설명하면 저도 가끔 이해 못 하고 고개만 끄덕여요.” 나는 피코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이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니 화낼 수도 없었다. “그래. 앞으로는 모르면 물어봐.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게 제일 위험해.” “그럼 한 가지만 더요.” “응.” “도윤 님 엄마는 도윤 님이 여기 있는 걸 아세요?” 웃음이 멈췄다. “몰라.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걱정하겠네요.” “그러겠지.” 나는 주머니 속 서고 열람증을 만졌다. 엄마에게 대답 하나 보내지 못한 날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밀려왔다. 회사에서는 돈 한 닢의 오차를 놓치지 않았는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약속은 ‘나중에’라는 칸에 넣어 두었다. “여기서 답장을 보낼 방법이 없다면, 적어도 돌아가서 뭐라고 말할지 기억해 두려고.”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적어 줄까요?” “아니. 그건 내가 직접 적을게.” 나는 빈 종이에 짧게 썼다. [엄마, 늦게 연락해서 미안해. 밥은 먹었어. 돌아가면 먼저 전화할게.] 종이를 접었다. 보낼 수 없는 편지였다. 그래도 마음속에만 쌓아 두는 것보다는 조금 나았다. “왜 저한테는 안 보여 줘요?” “너는 회계팀 직원이니까. 개인 편지는 열람 권한이 없어.” 피코는 아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계에서 가족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으면서도 개인정보 권한을 설명한다. 진짜 못 말리는 직업병이다. 성검이 옆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귀환 관련 본인 의사 확인 필요] “알고 있어.”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알아.” 문자 열람을 마치자 마리엘이 물었다. “이 물품을 반출하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소유권은 확인됐지만 물품은 아직 소환 관련 증거이기도 했다. 이걸 내가 가져가 버리면 소환 시점의 물품 목록과 실제 보관 경로를 검증하기 어려워질 수 있었다. “지금은 여기 보존해 주세요. 대신 제가 확인한 사본과 보존증을 받고 싶습니다.” “가능합니다.” “그리고 배터리는 충전하지 말아 주세요. 상태 변경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마리엘이 내 요청을 적었다. 피코는 옆에서 감탄한 얼굴이었다. “도윤 님은 휴대전화를 보고도 장부부터 생각하시네요.”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진짜로 갖고 가고 싶었어.” “그런데 왜 안 가져가요?” “나중에 내가 이 물건을 어떻게 되찾았는지, 누가 보관했는지 확인하려면 지금은 두는 편이 나으니까.” “그렇구나.” 피코는 잠깐 침묵했다. “그래도 언젠가 가져가세요.” “그래야지.” 서고 복도를 나오는데 세라핀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존위원회의 정오 심사가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는 제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대신 내 소환·귀환 계약 원문의 핵심 조항을 열람할 수 있게 됐다. “서명란도요?” 내가 물었다. “네. 다만 일부 제삼자 정보는 가려집니다.” 좋다. 드디어 가장 중요한 칸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세라핀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열람권 승인은 났지만, 원문이 보관된 봉인실에는 현재 사용 중인 귀환 문과 연결된 좌석이 하나 남아 있다고 합니다.” “좌석이요?” “예. 오래전부터 비어 있는 의자입니다.” 왜 하필 의자가 등장하지. “누가 앉아야 하는데요?” 세라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작은 열쇠 모양의 표식을 내밀었다. [제7서고 심층 열람 승인] 천계에 와서 문서를 보려고 했더니 이제 의자까지 확인해야 한다. 이쯤 되면 하늘에도 사무실은 있되 담당자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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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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