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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74화
PAYLUA ORIGINAL · 제74화

74화. 제7서고에 내 휴대전화가 있었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235자

오프라인 책장
천계 제7서고의 0층은 지상에 없었다. 아니,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는 분명 건물 1층 현관으로 들어왔는데, 0층으로 내려가려면 계단을 세 번 올라가야 했다. 안내 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아주 당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좌표상으로는 아래층입니다.” “그런데 발은 위로 올라가고 있잖아요.” “천계의 공간은 지상과 다르게 접혀 있어서요.” “아, 그렇군요.”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럴듯하게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직장인의 생존 기술이다. 우리 회사 서버실도 계단을 내려가면 2층이라고 부르는 기묘한 구조였으니까. 건물주와 시공사의 논쟁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면 층수는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는 보존위원회의 예비 허가를 받아 본문 중 일부를 먼저 열람하기로 했다. 최종 계약 전체는 정오 심사 이후였지만, 신청자 본인의 신원 확인에 필요한 부분은 제한적으로 볼 수 있었다. 마리엘이 앞장서고 아우렐이 기록을 맡았다. 피코는 내 뒤에서 연신 계단을 세었다. “세 번 올라왔는데 0층이면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건 어디로 가는 거죠?” “그건 가급적 묻지 마.” 왜냐하면 나도 궁금해지니까. 0층의 문은 작았다. 천계니까 황금 대문쯤 있을 줄 알았는데 평범한 회색 철문이었다. 문에는 조그만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귀환 계약 원문 보존실] [음식물 반입 금지] [잉크병 개봉 금지] 세상의 비밀이 숨겨져 있어도 음식 반입 금지는 지켜야 한다. 이것이 문명의 마지막 양심이다. 실내에는 투명한 서랍들이 줄지어 있었다. 서랍마다 다른 세계의 문자가 적힌 봉투가 들어 있었고, 어떤 봉투는 빛을 내고 있었다. 마리엘은 내 신청번호를 입력했다. 서랍 하나가 조용히 열리더니 얇은 봉투를 내밀었다. [등록 대상: 한도윤] [기록 분류: 소환·귀환 연계] [원본 보존: 제7서고]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다. 내 이름이 적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웠다. 이세계에서 누군가 내가 누구인지 묻는 건 익숙해졌지만, 내가 소환되기도 전부터 내 이름이 천계 서고에 있었다는 건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열람 가능 범위는 이 봉투 겉면과 예비 등록 사본입니다.” 마리엘이 설명했다. “원본의 동의 칸은 위원회 승인 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종이를 펼쳤다. 이름. 한도윤. 생년월일. 맞았다. 이전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주소 일부는 흐릿하게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위에 낯익은 단어가 있었다. [동산동 다온빌라 302호] 나는 숨을 삼켰다. 그 집이었다. 좁은 현관, 신발장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 둔 우산, 가끔 변기가 막히던 화장실. 그 지긋지긋한 원룸이 천계 문서에 적혀 있었다. “도윤 님?” 피코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주소를 짚었다. 이상하게도 종이 위의 글자는 내게만 한글로 보였다. 아우렐은 옆에서 다른 문양을 읽고 있었다. 번역 마법 때문인 모양이다. 그럼에도 숫자 302는 그대로였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3층. 짐을 옮길 때마다 계단에서 욕을 했던 바로 그 집. “정확한 주소 확인이 필요합니까?” 마리엘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 주소는 제가 압니다. 다만 어떻게 기록됐는지는 확인해야겠어요.” 문서 한쪽에는 등록 근거가 표시되어 있었다. [거주 좌표 확인: 소환 전송 준비 시스템] [좌표 취득 경로: 지정 보호 정보] [작성자: 비공개] 작성자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제가 동의하지 않은 개인 주소가 여기에 있네요.” “예비 소환 대상 등록 절차에서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죠.” 마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도 이의 신청 대상으로 기록하겠습니다.” 나는 옆 장을 펼쳤다. 지구에서 가져온 물품 목록이었다. [휴대전화 1개] [교통카드 1개] [사원증 1개] [미확인 종이 문서 14장] 뭐? “잠깐만요. 이 목록은 언제 작성됐죠?” “소환 시점의 소지품 조사 기록입니다.” “저 휴대전화는 어디 있습니까?” 아우렐이 기록을 확인했다. “전송 과정에서 전자기기 보존 구획으로 분리된 것으로 보입니다.” “보존 구획요?” “여기에 기록된 물품이 실제로 도착했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아, 좋다. 아주 좋은 단서다. 하지만 또 머리가 아프다. 소환될 때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가 사라진 건 알았다. 프린터 앞에서 정신을 잃고 눈을 떴을 때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것까지 이세계 소환의 대가인 줄 알았다. “그 보존 구획은 열람할 수 있습니까?” “물품 소유자가 본인임을 확인하면 가능합니다.” “그럼 지금 제 신원 확인하러 온 김에 신청하죠.” 마리엘은 접수서를 건넸다. 나는 거기에 휴대전화 색상과 케이스 모양을 적었다. 검은색. 액정 오른쪽 위에 금이 갔다. 케이스 뒷면에는 식당 쿠폰이 끼워져 있었다. 그 쿠폰은 아마 이미 유효 기간이 지났겠지. 한국에 돌아가면 그 식당부터 가고 싶었는데, 이제 쿠폰부터 확인해야 하나. 서류를 쓰다 말고 웃음이 났다. “왜 웃으세요?” 피코가 물었다. “그냥. 내가 이세계에 와서 가장 먼저 되찾고 싶은 물건이 휴대전화일 줄은 몰랐어.” “그 안에 중요한 마법이 있나요?” “마법보다 무서운 게 있지. 카드 결제 문자.” 피코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녀석이다. 위원회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보존실 옆 작은 열람대를 사용했다. 그곳에는 다른 소환자들의 자료도 있었지만 이름은 모두 가려져 있었다. 나는 남의 기록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내 동의 없는 계약 때문에 화가 나 있는 사람이 남의 개인 정보를 훔쳐본다면 좀 우습지 않은가. 대신 내 문서의 표시를 하나씩 정리했다. 작성 날짜, 시스템 번호, 원본 위치, 복사본의 일치 여부. 내가 확인한 건 지구 주소가 적힌 사실과 물품 목록의 존재였다. 그 주소를 누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아직 모른다. 휴대전화가 실제로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중요한 건 그 빈칸들이었다. 한참 후 마리엘이 물품 보존 창구에서 회신을 받았다. “한도윤 씨. 분리 기록과 일치하는 물품 구획이 확인됐습니다.” 심장이 뛰었다. “그럼 제 휴대전화가 있습니까?” “봉인 상자를 확인하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먼저 하나 알려 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그녀가 작은 표를 내밀었다. [물품 보존 번호: 지구-302-14] [최초 등록: 소환 시점] [최근 열람 시도: 소환 이전] “소환 이전이라고요?” “네.” 나는 종이를 다시 봤다. 소환되기도 전에 내 휴대전화 보관 상자를 열어 보려고 했다고?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 시간 기록이 틀렸을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기관의 날짜 기준을 잘못 변환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확인할 가치는 충분했다. “열람 시도자의 이름은요?” “권한 정보가 누락됐습니다. 원본 로그를 확인해야 합니다.” 봉인실 문턱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우리를 막았다. 하늘색 작업복을 입은 중년 관리인이었다. 양손에는 먼지떨이와 작은 열쇠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잠깐만요. 보존실 바닥에 맨발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맨발 아닌데요?” “저희 구획에서 지급한 덧신을 착용하셔야 합니다.” 그가 덧신 여섯 켤레를 꺼냈다. 그런데 다섯 켤레만 맞고 마지막 한 켤레는 무슨 드래곤 발에 맞춰 만든 것처럼 거대했다. 루시아가 그걸 신겠다고 손을 뻗었다. “안 됩니다. 넘어지면 장치에 부딪힙니다.” “난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지는 사람도 넘어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말해요.” 피코가 피식 웃었다. 루시아는 나를 노려봤다. 괜찮다. 검은 봉인 주머니에 있다. 관리인은 물품의 보관 원리를 설명했다. 소환 순간 가져온 물건은 원래 세계와 이세계의 물질 성질이 다를 수 있어서 함부로 마법을 걸 수 없단다. 휴대전화에 충전 마법을 잘못 넣으면 알림보다 먼저 폭발이 울릴 수도 있다고. “그럼 상태 기록만 확인하는 게 안전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원본 표면은 손대지 말고 유리 너머로 확인하십시오.” 우리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이번에는 동의와 거절 칸이 따로 있었다. 마리엘이 직접 서식을 고쳤다고 했다. “개선이 빠르시네요.” “작은 건 제 권한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바꾸면 됩니다.” 관리인이 내 눈을 살폈다. “돌아갈 물건을 찾으셨다는데, 괜찮으십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멀쩡할 리가 있나. 막연히 추억이라고 부르던 서울의 생활이 구체적인 물건의 목록으로 나타났다. 교통카드, 사원증, 휴대전화. 그 셋을 합치면 출근길이 된다. “괜찮진 않습니다. 그래도 봐야죠.” 관리인은 고개만 끄덕였다. 괜히 위로하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게 조금 고마웠다. 상자가 열리기까지 우리는 기록의 시각도 확인했다. 소환 당시 보관 기록과 첫 봉인 검사 날짜가 같지 않았다. 최초 봉인일 다음 날 누군가 목록만 확인한 이력이 있었다. 마리엘은 그것이 정기 검수인지 다른 목적의 열람인지 아직 모른다고 했다. “검수 담당자 이름은 남았습니까?” “직무 번호만 있습니다. 당시에는 개인정보를 줄이려는 규칙이 있어서요.” “이름을 가린 이유는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접근 목적은 남겨야죠.” “맞습니다. 그 부분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접근 기록을 별도의 봉투에 넣어 원본과 함께 보존하도록 했다. 사라진 기록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기록까지 누군가 편하게 지워 버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보존함 앞에 섰다. 두꺼운 유리와 여러 겹의 봉인이 내 소지품을 가리고 있었다. 익숙한 물건을 만나기 직전인데, 마지막 문턱이 이렇게 높을 줄이야. 마리엘이 봉인 절차서를 건네주었다. 이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상자를 열 차례였다. 우리는 보호 입회하에 봉인 상자를 열기로 했다. 루시아가 문 앞을 지켰고, 아우렐은 열람 과정을 기록했다. 나는 직접 봉인을 뜯지 않았다. 나중에 증거 보존 문제가 생길까 봐서였다. 상자 안에는 낯익은 검은 물건이 있었다. 액정 오른쪽 위의 금. 닳은 케이스. 그리고 뒷면에 끼워진 노란색 쿠폰. 내 휴대전화였다. “정말 제 거예요.”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마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 소유로 잠정 확인하겠습니다. 실제 반출은 별도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서류도 중요하지만 그 물건을 지금 만지고 싶었다. 분명히 내 손에서 떨어졌던 현실의 마지막 조각이니까. 그때 화면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배터리가 남아 있을 리 없는데도 휴대전화에 글자가 떠올랐다. [미전달 알림 1건] 나는 숨도 쉬지 못했다. 화면 아래에 익숙한 발신자 이름이 나타났다. [엄마] “…….” 왜 이런 순간에.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화면의 글자는 그대로였다. 메시지 내용은 열리지 않았다. 봉인된 장치라 외부 전달 목록만 표시된다는 설명이었다. “열어 볼 수 있습니까?” 마리엘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개인 사생활 정보라 본인의 확인 동의를 별도로 받아야 합니다.”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었다. 머리카락이 조금 길었고 눈 밑에는 그늘이 생겼다. 그런데 유리 아래에 누워 있는 휴대전화는 똑같았다.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들고 있었던 그 모서리, 그 흠집. “저 액정의 흠집, 제가 낸 겁니다.” 피코가 유리 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요?” “지하철에서 졸다가 떨어뜨렸어.” “지하철은 뭔데요?” “땅 밑으로 다니는 커다란 마차라고 생각하면 돼.” “오우거가 끌어요?” “아니, 전기로 움직이지.” 피코는 전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질문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아준 모양이다. 마리엘이 물었다. “소지품 외형 확인 사실도 기재할까요?” “네. 다만 소유자 기억에 따른 특징이라고 구분해 주세요. 제가 안다고 해서 기록 검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요.”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렸다. 이렇게까지 증거를 따지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유리 상자 앞에서 울고 싶은 마음을 겨우 붙잡고서 할 말이 ‘특징 확인 기록’이라니. 아우렐은 조용히 펜을 움직였다. 루시아는 내 옆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누구도 빨리 정신 차리라거나 별것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 덕분에 나는 잠시 더 휴대전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 화면은 꺼져 있었지만, 그 안에는 내가 떠나온 삶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여기까지 와서 엄마 문자 하나를 보려면 동의서부터 써야 한다니.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 절차다. “주세요.” 나는 펜을 집었다. “이번에는 정말 제가 서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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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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