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계에 도착하기 전에 내가 먼저 출근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원래는 기뻐해야 할까? 나 대신 일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니까. 서울에서도 누군가 내 이름으로 회의 참석하고 보고서까지 작성해 줬다면 아마 감사했을 것이다. 물론 월급까지 대신 받아 갔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업무가 아니라 귀환이었다.
누군가 내 이름으로 귀환 절차를 처리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튀어나왔다. 이미 지구로 돌아간 내가 따로 있다는 뜻인가? 그럼 집에 있는 냉장고는 누가 열고 있는 거지? 내가 두 명이 된 건가? 여기서 만약 하나가 사라지면 보험금은 어떻게 되나?
잠깐.
마지막 생각은 정말 직업병이다.
“일단 ‘처리 완료’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출입증 창구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완료로 보이긴 합니다만, 세부 기록을 열람하려면 상위 권한이 필요합니다.”
“그럼 상위 권한자를 부르시면 되죠.”
“지금 담당자가 회의 중입니다.”
“언제 끝납니까?”
“정해진 시간이 없습니다.”
하늘에 와도 회의는 끝나지 않는구나.
나는 분노 대신 접수번호를 요청했다. 직원은 내 출입 카드의 이력을 인쇄하려 했지만 프린터 비슷한 수정 구슬에서 회색 종이만 쏟아졌다. 그는 당황해서 장치를 두드렸다. 나는 말렸다.
“원본 상태를 건드리지 마세요. 화면 사진이나 현재 시각을 기록할 수 있습니까?”
“기록 구슬에 복제할 수 있습니다.”
“좋아요. 현재 화면과 발급 시각, 조회자 권한을 함께 남겨 주세요.”
이런 사소한 절차가 중요하다. 나중에 누군가 ‘그런 화면이 나온 적 없다’고 하면 다툴 증거가 있어야 한다. 당사자 확인 없이 귀환 완료 처리라니. 저런 시스템이 있다면 사람은 정말로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서류상으로는 집에 도착해 버릴 수 있다.
“도윤 님.”
피코가 내 소매를 잡았다.
“한 번 입장했다고 뜨는 거지, 귀환했다고 뜨는 건 아니잖아요?”
“맞아.”
나는 피코를 바라봤다. 아주 좋은 지적이었다.
“아까 직원이 말한 건 방문 기록이야. 내가 직접 확인한 건 ‘예약 처리 완료’고. 두 항목이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피코는 안도한 얼굴이었다.
“그럼 도윤 님이 두 명인 건 아직 아니네요.”
“그런 가능성은 웬만하면 생각하지 말아 주렴.”
그렇지 않아도 무섭다.
세라핀이 담당자의 상위 책임자를 요청하자 하얀 장갑을 낀 여성이 내려왔다. 은빛 머리를 뒤로 묶고 커다란 안경을 썼다. 어깨에는 작은 책 모양의 휘장이 달려 있었다.
“제7서고 보존관리관 마리엘입니다.”
그녀는 목례했다.
“한도윤 씨의 이전 예약 이력에 관한 이의 신청을 접수했습니다.”
“빠르시네요.”
“열람 예약에 오기 전에 이미 서류가 일곱 장이나 올라왔습니다.”
“일곱 장이요?”
“예. 오늘 제출하신 것도 포함해서요.”
내 얼굴이 굳었다.
“오늘 처음 제출했는데요.”
“그렇다면 처음 여섯 장의 제출자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좋다. 적어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마리엘은 우리를 서고 접수실로 데려갔다. 문 안에는 긴 책장과 커다란 수정벽이 있었다. 수정벽에서는 여러 날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방문 이력을 보니 내 이름 옆에 다른 형식의 번호들이 붙어 있었다.
[송-4189]
[대리번호 0003]
[귀환 신청 예약]
[예비 방문 기록]
“이 넷은 서로 같은 기록입니까?”
내가 물었다.
“현재 화면에서는 연결돼 있습니다. 하지만 생성 기관이 다릅니다.”
마리엘이 대답했다.
“송-4189는 소환 전송 묶음, 0003은 대리 권한 식별자, 귀환 예약은 제7서고 접수, 예비 방문은 관문 시스템 기록입니다.”
“결국 하나의 사람이 직접 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네 가지 서로 다른 기록을 한 줄로 보여주는 화면이 문제일 수도 있었다. 사용자는 하나의 사건처럼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시스템의 수치를 모아 놓은 것일 뿐이다. 서울에서 개발팀과 회계팀이 같은 고객 번호를 다르게 쓰다가 장부가 꼬인 일이 생각났다. 그때 부장님은 프로그램이 이상하다고 했고, 개발팀은 데이터가 이상하다고 했다. 결국 양쪽이 모두 조금씩 이상했다.
“접수 여섯 건의 제출자가 누구인지 볼 수 있습니까?”
“일부만요. 원문은 법정 열람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마리엘은 기본 메타정보를 보여줬다. 도윤의 실물 방문 서명은 보이지 않았다. 두 건은 중립 전송망에서 자동으로 생성됐고, 세 건은 보존 기한 연장 요청의 파생 문서였다. 마지막 한 건은 누가 제출했는지 조회 권한이 없었다.
“그 마지막 게 문제네요.”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보존 권한이 다른 문서일 수도 있거든요.”
이 여자는 말을 참 조심스럽게 한다.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우선 제가 직접 방문했는지만 확인할 수 있겠네요.”
“관문에는 신체 확인 서명이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건 있습니까?”
마리엘은 화면을 열었다. 손바닥 모양의 빈 그림이 떴다.
[현장 신체 확인: 미등록]
“없군요.”
“네.”
“그럼 왜 ‘방문 완료’라고 표시됐죠?”
“옛 화면에서 예비 방문 기록을 실제 방문으로 합산하는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은 있고 원인은 아직 확인하지 않았고요.”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마음에 드는 대답이다. 어설픈 확신을 주는 사람보다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말해 주는 사람이 훨씬 믿음직하다.
그때 루시아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성검 봉인 주머니를 툭 쳤다.
“이 검이 진짜 한도윤인지 확인해 주면 되잖아.”
“검이 어떻게 제 신분을 확인해요?”
“널 따라다니니까.”
“우리 회사 복사기도 늘 제 옆에 있었는데 그걸로 제 신분증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아우렐이 피식 웃었다. 루시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마리엘은 무기 자체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성검 연결 기록이 보조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니, 고민이라는 말을 쓰면 멋있지만 실제로는 생각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누군가 이미 내 신원을 도용했을지도 모르는데 성검 정보를 더 제공하면 도리어 위험할 수 있었다.
“보조 자료의 범위부터 정합시다. 실물 봉인 상태만 확인하고 계약 내부 기록은 열지 않는 걸로요.”
마리엘은 서류를 수정했다.
그다음 우리는 귀환 예정자 등록의 정의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예약 시스템에서 ‘귀환 예정자’는 실제 귀환이 확정된 사람만 의미하지 않았다. 돌아갈 권리가 있을 수 있어 심사가 필요한 사람도 그 명칭으로 분류됐다.
“그럼 저번에 그 노인분도 귀환 예정자겠네요.”
내가 묻자 마리엘이 대답했다.
“사실상 그렇습니다. 다만 본인이 그 표현을 원하지 않으면 기록에 별도의 명칭을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런 기능이 있었어요?”
“있습니다.”
“그럼 안내문에는 왜 안 적혀 있습니까?”
마리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건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참 친절한 표정으로 잔인한 화면을 운영한다. 그게 더 무섭다. 누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들 자기 앞의 작은 업무를 성실하게 처리하다 보니 전체 흐름이 어떻게 보이는지 놓친다. 마왕성에서 본 일과 다르지 않다.
나는 입장 이력 정정을 신청했다. ‘방문 완료’를 일단 지우자는 게 아니었다. 기존 기록을 보존한 채 ‘실물 방문 확인 없음’이라는 주석을 달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지워 버리면 누가 언제 왜 그 기록을 만들었는지 추적할 수 없으니까.
“그럼 지금 제 신분은요?”
“공동조사 방문자입니다.”
마리엘이 새 출입증을 내밀었다.
[한도윤 / 마왕성 재정실 / 제7서고 제한 열람]
뒤쪽에는 빨간 글씨가 작게 들어 있었다.
[기존 귀환 예약의 효력: 다툼 중]
마침내 카드가 정확해졌다. 이렇게 간단한 설명 하나를 얻으려고 하늘까지 올라와야 했다니.
“원문 열람은 언제 가능합니까?”
“내일 정오에 보존위원회가 열립니다. 거기서 신청 범위를 확정하면 본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은요?”
“자료 준비를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정해진 방문자 휴게실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휴게실.
천계의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마리엘과 함께 첫 번째 대조를 마친 뒤에는 제7서고 자체의 출입 규칙도 살펴봤다. 피코가 놓치기 쉬운 질문을 꺼냈기 때문이다.
“방문 기록에 이름이 있으면 안 들어온 사람도 들어온 게 되나요?”
“지금 확인 중인 문제가 바로 그거지.”
“그럼 근무 기록에도 그런 일이 있어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 질문은 생각보다 깊었다.
천계 출입대장의 원본에는 실제 문을 통과한 기록, 서류 접수를 완료한 기록, 방문 일정을 확정한 기록이 별개의 칸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안내 창구의 요약 화면에서는 세 가지를 전부 ‘방문 완료’로 표시했다.
“이 화면 만든 분을 만나고 싶은데요.”
마리엘이 난처하게 웃었다.
“담당 부서가 바뀐 지 오래입니다.”
“그럼 현재 유지보수 담당자는요?”
“서고 전산관리실입니다.”
“전산관리실은 어디죠?”
“어…… 4층에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
좋지 않은 과거형이다.
결국 우리는 복도 끝에서 작은 전산실을 찾아냈다. 문에는 ‘통합 정보 개선사업 완료’라는 금빛 명패가 걸려 있었다. 안에는 낡은 수정 구슬 셋과 혼자 허둥대는 천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통합 화면의 기록 용어를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천사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고장 신고입니까? 현재 정상 작동 중입니다.”
“고장이라기보다 표시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요. 방문 예약을 방문 완료로 표시하는 건 어느 규정에 근거합니까?”
“그, 그건 예전 개선사업에서 정해진 공통 코드입니다.”
“원문 코드는요?”
천사는 수정 구슬을 두드렸다. 낡은 글자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ENTRY_DONE`.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출입 완료일 수도 있고 처리 완료일 수도 있네요.”
“맞습니다. 번역할 때 통일했습니다.”
“통일하면 안 되는 걸 통일했네요.”
그 천사가 한숨을 쉬었다.
“저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정 요청서를 올릴 때마다 사업 종료라서 신규 예산이 필요하다고…….”
아, 그렇구나.
여기도 유지보수 계약이 끝났구나.
나는 엉뚱한 사람을 잡고 따질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직원이 원흉은 아닐 수 있다. 그는 되레 수정 요청서 네 장을 서랍에서 꺼냈다. 모두 ‘검토 후 반영’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 서류는 원본 그대로 보관하고 계세요. 제 조사에는 사본만 필요합니다.”
“정말 바뀔까요?”
“확답은 못 드려요. 다만 누가 이미 문제를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되네요.”
그가 어깨를 내렸다. 긴장이 풀린 얼굴이었다.
돌아 나오면서 피코가 말했다.
“잘못된 화면 때문에 한도윤 님이 먼저 들어온 것처럼 보인 걸 수도 있네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11일 전의 예약 자체는 남아 있어. 번역 문제가 그 예약까지 설명해 주지는 못해.”
“그러니까 하나를 풀었다고 전부 해결한 건 아니군요.”
“정답.”
마왕성 회계실에서 막내를 데리고 천계 전산실까지 견학을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피코에게는 최고의 현장교육이겠지만, 내 출장비 정산서는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복도를 따라 휴게실로 갔다. 햇살이 내려앉은 긴 벤치가 있었고, 작은 분수에서는 따뜻한 물이 흘렀다. 피코는 과자 상자에 눈을 빼앗겼다. 루시아는 창문으로 훈련장을 찾았다.
나는 조용히 앉아 출입증을 다시 뒤집어 봤다.
귀환 예정자라는 말은 듣기 좋았다.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돌아갈 문을 여는 건 여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때 마리엘이 돌아와 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한도윤 씨. 추가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뭡니까?”
“예비 방문 기록이 만든 게이트의 주소입니다.”
나는 종이를 받았다.
[귀환 심사 창구: 제7서고 0층]
[도착지: 미지정]
[예약자: 한도윤]
“도착지가 없다니요?”
“이 기록대로라면 누군가 귀환 절차를 예약했지만 실제로 어느 세계로 보낼지는 지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집으로 가는 표를 끊었는데 도착지가 비어 있다고?
아이고. 이거 진짜로 편도인지 왕복인지부터 확인해야겠다.
제7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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