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좁았다.
위대한 천사의 날개 위에 올라타거나 신성한 빛기둥을 타고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을 상상했다면 유감이다. 실제 관문은 중립 공관 뒤편 창고에 있었다. 포대 자루와 수리용 사다리 사이로 낡은 문 하나가 보였고, 문 위에는 푸른 팻말이 걸려 있었다.
[상행 운송 통로 제4호]
[위험 물품 반입 금지]
[주말 임시 휴무]
하늘에도 주말이 있단다.
“천사들은 쉬는 날이 있습니까?”
내가 묻자 세라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이야. 부럽네.”
“마왕성은 없는가요?”
“있습니다. 요즘 만들고 있어요.”
루시아가 옆에서 콧방귀를 뀌었다.
“본래 전사에게 휴일 따위는 필요 없다.”
“그건 기사님 개인 의견이고요.”
“적이 쉬는 날에 공격하면 어쩌나?”
“교대근무라는 걸 하면 됩니다.”
“교대근무는 적에게도 알려 줘야 하나?”
내가 이분의 근무표부터 다시 짜야겠다.
출발 인원은 나, 피코, 루시아, 중립 공관의 에브란, 그리고 천계 사절단의 세라핀과 기록사 아우렐이었다. 몰트는 마왕성에 남아 업무를 맡았다. 제르칸은 끝까지 자신도 가겠다고 우겼지만, 천계에서 마왕의 공식 방문을 승인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대규모 외교 경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숫자를 보여 드렸다. 마왕은 열 번째 줄에서 조용해졌다.
우리가 관문에 들어가자 안내 관리가 손을 내밀었다.
“출입증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인장이 찍힌 출장 허가서를 건넸다. 관리가 눈을 찌푸렸다.
“출발지 소속이 ‘마왕성 재정실’로 되어 있군요.”
“네.”
“직업이 ‘회계 감사 담당’이고요.”
“네.”
“신성 소환자 식별번호도 있네요.”
“그건 현재 이의 신청 중입니다.”
관리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신분증 사진과 얼굴이 다르다는 듯한 표정이다.
“용사인데 마왕성 직원이십니까?”
“그렇게 된 사정이 좀 깁니다.”
“그럼 출입증의 직군을 어느 쪽으로 적어야 합니까?”
“일단 현재 유효한 고용관계인 마왕성 직원이요. 소환 계약이 성립했는지는 아직 확인 중이고요.”
관리의 펜이 멈췄다.
“천계 출입증에 ‘마왕성’이라고 적으면 상급자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왜요?”
“관행상 그렇습니다.”
아, 또 나왔다.
관행.
이 세상에서 ‘신의 뜻’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나는 세라핀을 바라봤다. 그녀는 출입 규정집을 펼쳐 조항 하나를 찾아냈다. 정전 협약에 따른 공동조사 방문자는 진영에 관계없이 신원 확인 뒤 출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규정에 금지 조항은 없습니다.”
세라핀이 말했다.
“그럼 임시 출입증을 발급하겠습니다.”
관리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규정이 적어도 한 번씩은 일을 한다.
그런데 다음 문제가 있었다.
“그 무기는 무엇입니까?”
성검이었다.
어제까지 나를 번쩍거리게 만들던 이 검이 천계 출입구 앞에서 또 사고를 쳤다. 관리가 칼집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신성 유물 반입 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소환되면서 자동으로 따라왔는데요.”
“그건 별개입니다.”
“혹시 대여 기록도 필요합니까?”
“원래 소유자를 확인해야 합니다.”
좋다. 아주 좋다. 이참에 확인하자.
“원래 소유자는 누굽니까?”
“대성전 관리국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빌린 적이 없는데요.”
“성검이 본인을 선택했을 텐데요?”
“선택한 건 검이지 제가 아닙니다.”
관리가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면 인수증이 없겠군요.”
“맞습니다.”
세라핀이 웃음을 참았다. 아우렐은 진지하게 기록했다.
[물품 인도 방식: 자율 이동]
[인수인계 당사자 서명: 미확인]
나는 그 문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실한 물품 관리의 현장을 천상에서 보게 될 줄이야.
우리는 성검을 봉인 주머니에 넣기로 했다. 안전 검사 결과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계약 권리 확인 대상이므로 자유로운 전시를 금지한다는 조건이었다. 루시아가 아쉬워했다.
“저 검을 뽑으면 멋진데.”
“기념사진 찍으러 온 거 아니에요.”
“한 번만 뽑으면 안 되나?”
“안 됩니다.”
세 번 반복했더니 루시아도 포기했다. 세상에는 검보다 강한 게 있다. 반복 설명이다.
그 직전에 마지막 서류가 하나 더 나왔다.
“동행자의 책임 범위 확인서입니다.”
안내 관리가 여섯 장을 내밀었다. 나는 맨 위의 굵은 글씨부터 읽었다.
[동행자의 부주의로 발생한 모든 손해는 대표 방문자가 배상한다.]
대표 방문자라면 나였다.
“모든 손해요?”
“예. 포괄적으로 처리하는 서식입니다.”
“피코가 계단에서 넘어져도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루시아가 검을 뽑아서 난간을 자르면요?”
“그건 대표 방문자의 관리 책임이…….”
루시아가 눈을 반짝였다.
“이곳 난간은 잘 잘리나?”
“기사님, 지금 아주 중요한 이야기 중이에요.”
나는 안내 관리에게 원본 규정의 손해배상 조항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관리가 책장을 넘기는 동안 피코는 자신이 넘어졌을 때 얼마를 물어야 하느냐고 귓속말했다. 나는 네가 넘어지는 것부터 막겠다고 답했다. 루시아는 자꾸 난간을 보았다. 정말이지 팀 구성이 대단하다.
원본에는 대표 방문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시설을 훼손했을 때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었다. 이걸 ‘모든 손해’라고 줄여 놓으면 편하긴 하겠지. 작성하는 사람이.
“이 부분은 원문대로 써 주세요. 대표 방문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따른 손해라고요.”
“기존 양식은 수정이 어려운데요.”
“수정한 서식을 별첨으로 붙여도 됩니다. 창구에 부과할 일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분쟁이 줄어드는 겁니다.”
관리의 눈빛이 약간 달라졌다. 세라핀이 별첨 가능한 근거를 찾자 그는 곧바로 표준 문구를 수정해 왔다.
“다른 방문자에게도 이 문구를 쓰게 됩니까?”
“예. 앞으로는 이렇게 받겠습니다.”
나는 피코를 돌아봤다.
“잘 봐 둬. 조항 하나 제대로 읽으면 한 사람이 아니라 다음에 오는 사람들까지 덜 고생한다.”
“그럼 제 이름으로도 남겨 둘까요?”
“왜?”
“제가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아이고. 이 녀석은 아직 자신이 얼마나 유용한 직원인지 모른다.
바깥에서는 하늘빛 바람이 문틈으로 흘러들었다. 신성한 세계로 가기 전에 처리한 일이 손해배상 책임 제한이라니. 장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종류의 장엄함이 좋았다. 누가 잘못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가장 약한 사람에게 책임을 몰아주지 않는 것. 그게 내겐 축복보다 더 확실한 기적이었다.
관리에게 별첨 사본 두 부를 받고 나서야 우리는 통로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관문이 열렸다.
문 안쪽은 햇빛으로 가득했다. 하얀 돌계단이 구름 사이로 이어졌고, 멀리 금빛 건물들이 떠 있었다. 깃털 같은 빛 조각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여기까지는 정말 판타지였다.
나는 무의식중에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달았다. 비 온 뒤 숲 냄새와 새벽 공기가 함께 섞인 듯했다. 발밑 구름이 푹신하게 느껴져 발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떨어지지는 않겠죠?”
“바닥은 견고한 신성 석재입니다.”
아우렐이 설명했다.
“구름처럼 보이는 건 장식이고요.”
나는 발로 툭 쳐봤다. 단단했다. 역시 천계도 외관 마감에 돈을 많이 쓰는구나.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오래가지 않았다. 계단 끝에 도착하자 거대한 대기 줄이 나타났다. 흰 로브를 입은 천사와 날개 달린 관리들이 서류철을 들고 늘어서 있었다. 벽에는 네 개의 창구가 있었다.
[일반 방문]
[공문 수령]
[직원 출근]
[귀환 예정자]
마지막 창구가 내 눈을 붙잡았다.
귀환 예정자.
내 예약에도 적혀 있던 말이다.
“저쪽으로 가면 됩니까?”
세라핀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공동조사 방문자 창구에서 신원을 등록해야 합니다.”
“그런 창구는 안 보이는데요.”
“오늘은 임시로 열릴 겁니다.”
임시.
아주 익숙한 단어다. 책임자가 없을 때 등장하는 마법 같은 말이다.
우리가 임시 창구를 기다리는 동안, 바로 옆 귀환 예정자 창구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머리가 새하얗게 센 작은 종족의 노인이 담당 직원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겠다는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다니까!”
“예약 상태에는 ‘동의 대기’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는 거지, 동의한 건 아니잖아!”
“화면에는 그렇게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금까지 우리가 조사한 자동 갱신 문제와 너무 비슷했다.
나는 세라핀에게 속삭였다.
“저분 이야기를 조금 들어 봐도 됩니까?”
“오늘 방문 목적은 제7서고 열람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제 예약도 똑같은 창구에 걸려 있을 수 있어서요.”
세라핀은 잠깐 고민하다 노인에게 정중히 물었다. 그가 허락하자 우리는 창구 옆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노인은 백 년 전 천계의 경계 수로를 보수하러 온 기술자였다. 일을 마치고 고향 차원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밟았지만, 그 사이 고향의 좌표 기록이 변경돼 문을 열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그가 원한 것은 귀환 신청을 취소하는 게 아니었다.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권리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번씩 창구에 오면 무슨 승인 대기라고만 떠요. 내가 동의도 안 한 날짜로 다시 예약되고.”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낡은 영수증을 내밀었다.
[귀환 권리 보존 갱신 수수료: 매 10년 금화 1닢]
열 번의 영수증이었다. 숫자를 보니 속이 좋지 않았다.
“실제 보존 서비스를 받으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몰라요. 돌아갈 문은 하나도 안 열렸으니까.”
“수수료를 냈다는 사실과 서비스가 제공됐다는 사실은 구분해서 확인해야겠네요.”
그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젊은 양반은 뭐 하는 사람이오?”
“회계 담당자입니다.”
“천사도 아닌데?”
“네. 마왕성에서 일합니다.”
노인은 잠시 말이 없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천국에 와서 마왕성 직원한테 상담받을 줄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어르신.
노인은 내게 작은 손수건 하나를 보여 주었다. 낡은 파란 천이었다.
“이건 고향에서 가져온 마지막 물건이오. 백 년 동안 문지르다 보니 색이 거의 없어졌지.”
“소중하겠네요.”
“소중하지. 하지만 나는 물건을 지켜 달라고만 온 게 아니라, 언젠가 돌아갈 수 있는 날에 내 의사를 다시 물어 달라고 온 것이오.”
그 말은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이 노인이 원하는 것은 특별 대우가 아니었다. 기다릴 권리였다.
“그런데 손수건 보관료는 따로 안 내셔도 됩니까?”
내가 묻자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내가 목에 걸고 다니니까 안 내지. 남에게 맡겼으면 얼마를 받았을지 모르겠군.”
대기실에 걸린 요금표를 다시 보니 실제로 ‘개인 소지품 자율 보관’ 항목에는 요금이 없었다. 그런데 창구에서 받은 안내문에는 그 선택지가 빠져 있었다. 노인은 수수료를 덜 내려다가 귀환 예약까지 취소될까 봐 여러 번 물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에는 소지품 보관 여부와 귀환 권리 보존 여부를 구분해서 안내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그걸 부탁해도 되겠소?”
“확답은 못 드립니다만 요청은 할 수 있죠.”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개인 정보를 적지 않고 요금 안내의 차이만 기록했다. 서로 다른 계약을 하나처럼 보이게 만드는 안내문은 위험하다. 우리 회사 시절에도 그런 안내문 때문에 고객들이 몇 달씩 항의 전화를 걸었다. 전화받는 직원은 아무 죄도 없는데 욕만 먹었다.
피코가 말했다.
“이제야 왜 도윤 님이 글씨를 끝까지 읽는지 알겠어요.”
“아직 멀었어. 작은 글씨를 읽는다고 다 아는 건 아니거든. 무슨 뜻인지 물어봐야 해.”
나는 그의 접수번호를 되돌려 주었다. 누군가의 백 년을 숫자 한 줄로 줄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서류 접수번호만 받아 적었다. 동의 없이 개인 기록을 복사하거나 노인의 사정을 내 사건에 함부로 끼워 넣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귀환 예정자 창구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확인할 참고 사례로 남겨 두었다.
드디어 임시 공동조사 창구가 열렸다. 우리 일행은 차례대로 출입증을 받았다. 루시아의 직업란에는 ‘마계 기사단 호위’라고 적혔다. 피코는 ‘재정실 기록 보조’, 에브란은 ‘중립 공관 감리 보존관’이었다.
내 차례가 왔다.
담당 직원은 마왕성 재정실 인장을 확인하고 새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에는 내 이름과 얼굴, 방문 목적, 유효 기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방문자: 한도윤]
[소속: 마왕성 재정실]
[신분: 공동 감사 방문자]
좋아. 제대로 됐네.
그런데 직원이 카드를 뒤집는 순간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화면이 두 번째 정보를 불러왔다.
[기존 등록 신분: 귀환 예정자]
[예약 상태: 처리 완료]
나는 출입증을 받지 않았다.
“잠깐만요.”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처리 완료라뇨? 저는 지금 처음 왔는데요.”
그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이상하네요. 방문 기록에는 이미 한 번 입장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세라핀을 돌아봤다. 그녀도 처음 보는 기록이라는 얼굴이었다.
하늘이 맑았다. 멀리서는 종이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출입증 한 장 때문에 갑자기 발밑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내 이름으로 이미 천계에 들어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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