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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71화
PAYLUA ORIGINAL · 제71화

71화. 귀환 출장도 결재가 필요합니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326자

오프라인 책장
퇴근 직전에 천계 출장 신청서를 작성해 본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만나서 악수하고 싶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다. 출장 목적란에 뭐라고 적으셨습니까? 나는 깃펜을 들고 서류를 내려다봤다. [출장 목적: 천계 제7서고 방문 및 본인 귀환 계약 원문 확인] 문장만 보면 굉장히 멀쩡하다. 그런데 그 아래에 새로운 칸이 나타났다. [귀환 실패 시 복귀 교통편: ______] “이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피코가 내 옆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왕복 표를 끊으시면 되지 않나요?” “천계 가는 배가 어디 있냐고.” “구름 위에 있지 않을까요?” 아. 이 녀석이 이제 농담도 한다. 나는 빈칸에 ‘승인된 경로 확인 후 기재’라고 적었다. 모르는 사실을 아는 척해서 작성하는 게 서류 작업에서 가장 위험하다. 특히 이번 서류는 출장 다녀오다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붙어 있었다. 집이라니. 그 단어를 생각하니 갑자기 서울 원룸의 좁은 싱크대가 떠올랐다. 세탁기가 탈수할 때마다 벽을 두드리던 소리까지. “도윤 님, 혹시 정말 지구로 가시면요?” 피코가 물었다. “응?” “여기 다시 안 오시는 건가요?”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나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 그건 분명하다. 내 통장, 내 가족, 내가 스스로 고른 삶이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 예약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누가 내 이름으로 미리 자리를 잡아 두었다는 사실이 찜찜했다. “아직은 열람하러 가는 거야. 귀환한다고 서명한 적 없어.” “그럼 출장 기간은요?” “그것도 모른다.” 피코가 서류의 빈칸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그래서 가는 거지.” 우리는 출장 신청서를 들고 몰트에게 갔다. 해골 실장은 책상 위에 쌓인 결산 자료를 앞에 놓고 뼈마디로 주판을 튕기고 있었다. 천이백 년 경력자답게 주판알을 움직이는 속도는 경이로웠다. 요즘 피코가 들고 다니는 자동 합산 양피지가 있는데도 굳이 주판을 쓰는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사람이 엑셀 단축키를 외우고도 계산기 버튼을 누르는 것과 비슷하겠지. “실장님, 출장 결재 부탁드립니다.” 몰트가 종이를 받았다. 눈구멍 속 불빛이 한 줄 한 줄 내려갔다. “천계 제7서고? 전례가 없는 출장인데.” “처음이니까 전례가 없겠죠.” “그런 말은 알지만, 비용 규정이 없네.” “규정이 없으니 임시 규정을 만들고 승인받으면 됩니다.” “누가 승인하지?” “마왕님이요.” 몰트는 이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두개골을 문질렀다. “그분이 ‘하늘에 가는 일이라면 하늘만큼 쓰라’고 말씀하실까 걱정이군.” 나도 같은 걱정이다. 우리는 금화 여덟 닢을 상한으로 한 임시 출장 예산을 작성했다. 중립 공관까지의 육로비, 천계 관문 통행 보증료, 열람 수수료, 증빙 보존 비용. 예상치가 없는 항목은 ‘별도 승인’으로 남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항목을 맨 위에 적었다. [출장은 귀환 계약에 대한 자동 승낙이 아니다.] 몰트가 그 문구를 한참 읽었다. “자네는 돌아갈 수도 있는데, 그걸 두려워하나?” “돌아가는 게 무서운 건 아닙니다. 누가 저 대신 돌아가겠다고 정한 게 싫은 거죠.” “그건 다른 문제지.” “네. 아주 다른 문제입니다.” 몰트가 펜을 내려놓고 서명했다. 잠시 후 작게 덧붙였다. “혹시 돌아가게 되면, 이 성의 장부는 누가 보나?” “피코가 있잖습니까.” “그 아이는 아직 실수가 많네.” “실수하는 걸 알고 고치잖아요. 그럼 됩니다.” 몰트의 불꽃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가 서류 맨 아래에 한 줄을 더했다. [업무 인수인계 담당: 피코. 출장 중 회계 원본 무단 반출 금지.] 어이쿠. 마지막 항목에는 나도 찬성이다. 제르칸을 만난 곳은 왕좌실이 아니라 창고 앞이었다. 마왕은 새로 들어온 장화의 굽 높이를 살피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지급할 신발인데 본인 키가 커 보이는지 직접 신어 보고 있었다. 일단 회사 대표가 현장 품질 검사를 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검수 기준이 ‘내 키가 더 커 보이는가’인 건 좀 그렇다. “전하, 출장 승인 부탁드립니다.” “어디로?” “천계요.” “뭐라고?” 마왕의 두 뿔이 동시에 뒤로 젖혀졌다. 아주 드문 표정이다. “적의 본거지에 혼자 들어가겠다고? 본왕의 충직한 직원이?” 충직한 직원. 계약하고 근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 호칭이 붙었다. 왕국에서는 무급으로 목숨을 걸라더니 마왕성에서는 입사 후 적지에 출장 보내기 싫단다.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혼자 안 갑니다. 공동 입회 방식으로 가겠습니다.” “호위는?” “루시아 기사님이 지원할 겁니다.” 문제는 루시아가 이미 창고 문 뒤에 숨어 듣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천계에 간다고?” 그녀가 튀어나왔다. “전투가 벌어질 수 있겠군!” “전투가 벌어지면 출장비가 부족합니다.” “그걸 걱정한다고?” “아니요. 목숨도 걱정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협의해야죠.” 루시아는 실망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곧 호위 동의서를 받아 갔다. 서명이 평소보다 길었다. 검을 들 수 있는 장소가 늘어난다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제르칸은 서류를 읽다가 귀환 가능성 부분에서 멈췄다. “한도윤.” “네.” “네가 돌아갈 문을 발견한다면, 본왕은 막지 않겠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네 의사와 관계없이 문을 열려 한다면 본왕의 허락도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마왕이 이렇게 정상적인 소리를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전하. 그 말씀은 회의록에 꼭 남기겠습니다.” “왜?” “나중에 마음 바뀌셨다고 하실까 봐요.” “이놈이!” 역시 평소의 마왕으로 돌아왔다. 안심이다. 결재가 떨어졌다고 바로 출발할 수는 없었다. 우리 회사 시절 출장을 가려면 출장 품의, 지출 품의, 교통편 신청, 복귀 보고까지 네 가지 종이가 필요했다. 이곳은 그보다 더했다. 국경을 통과하는 신분이 용사인지 마왕성 직원인지, 왕국에서 발행한 지명수배가 아직 유효한지부터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왕국 소속 용사로 적겠습니다.” 왕국 파견 창구의 관리가 말했다. “안 됩니다.” “왜죠? 성검을 들고 계시잖습니까.” “그 검을 들었다고 제가 왕국 소속이 되는 건 아니죠.” “국왕 폐하의 소환에 응하신 분 아닙니까?” “응한 적 없습니다. 확인 중인 계약이잖아요.” 그는 한참 고민하다 신분란에 이렇게 적었다. [기타] “저 인간입니다.” “기타라고 해도 인간이라는 뜻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와. 부장님이 들으면 좋아하겠네. 직원의 소속을 모르겠으면 ‘기타’에 넣으면 된다니.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옛 지명수배 문서가 관문 전산 구슬에 살아 있었다. 왕국 측 라델이 재검토를 약속했지만 취소 절차가 완료된 건 아니었다. 우리가 서류를 들이밀자 관리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규정상 체포 대상입니다.” “출장 허가도 왕국 공동 서명이 있잖아요.” “그것과 수배 상태는 별도입니다.” 이쯤 되면 왕국 행정은 사람을 잡는 데에는 자동화가 잘되어 있고, 풀어 주는 데에는 수동 처리를 고집하는 모양이다. 나는 라델에게 전송문을 보냈다. 그는 수배를 무효라고 단정하지 않고, 적어도 공동조사 기간의 이동 허가와 불법 구금 방지 보증을 문서로 보내왔다. 문서에는 담당 관리의 이름과 만료 시각이 분명했다. “이걸 등록하시면 됩니까?” 관리의 어깨가 내려갔다. “예. 여기까지는 처리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수배 취소는 별도로 계속 진행해 주세요. 이동 허가가 취소 명령은 아니니까요.” “그걸 직접 구분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기록을 제대로 나눠야 담당자도 산다. 창구를 나서는데 피코가 내게 작은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도윤 님. 세르도 상인에게 중복으로 받은 통행료 있잖아요.” “응. 두 닢.” “중립 창구에서 한 닢은 환급 준비금으로 승인했는데, 나머지 한 닢은 원래 징수처가 확인되지 않았대요.” “그럼 환급됐다고 적으면 안 되겠네.” “네. 그래서 보관증을 따로 받아 뒀어요.” 나를 가르치던 제자에게 가끔 되배우는 순간이 있다. 옛날에는 피코가 아무 계산이나 대충 맞으면 맞다고 했는데, 이제는 승인된 금액과 실제 지급액을 구분한다. 감동적이다. 물론 이 감동을 말로 하면 녀석이 우쭐해져서 점심 계산을 대신 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잘했다. 실제 상인 손에 들어간 뒤에만 완료라고 적자.” “네!” 피코가 활짝 웃었다. 나는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 왜 이렇게 잡다한 일을 신경 쓰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진짜로 천계 제7서고에 도착하면 더 큰 사건을 만나겠지. 하지만 내 출장 때문에 생긴 공백을 핑계로 작은 피해자들의 일이 묻혀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금화 한 닢은 왕국의 큰 예산표에서는 보이지 않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다음 주 식량값일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웃었다. 정말 이상하다. 지구에서 나는 회계 담당자였을 뿐인데, 이세계에서는 사람들의 통행료를 돌려받는 문제까지 신경 쓰고 있다. 월급을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문득 왕국 시절 마지막 급여명세서를 떠올렸다. 지구의 내 마지막 월급은 제대로 들어왔을까. 카드 결제일은 지났을 텐데. 냉장고에 넣어 둔 우유는 이미 상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천계로 가는 신청서의 첫 장을 펼쳤다. '귀환'이라는 두 글자는 언제 봐도 무거웠다. 그냥 목적지 하나 추가되는 출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가려는 나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 세계의 서류도 좀 알아줬으면 했다. 우리는 제르칸의 인장이 찍힌 출장 결재서를 들고 중립 공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천계의 세라핀과 기록사 아우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제7서고 열람 예약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확인해 주었다. 다만 예약에는 이상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귀환 예정자 열람: 보증인 입회 필수] “보증인요?” 내가 되물었다. “귀환하면 제가 빚을 갚지 않고 도망갈까 봐요?” 아우렐은 진지하게 설명했다. “원래 보증인은 귀환자의 채무를 대신 지는 사람이 아니라, 귀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었음을 확인하는 참관자입니다.” “그럼 이름이 좀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오래된 용어라서요.” 역사와 전통은 가끔 그냥 오래된 오류를 멋있게 부르는 말이다. 나는 규정을 꼼꼼히 읽었다. 보증인은 어느 진영 소속이어도 됐다. 다만 귀환 계약의 이익을 직접 받는 기관의 직원은 단독 보증인이 될 수 없었다. 좋은 조항이다. 적어도 누군가 직원 하나 세워 놓고 ‘본인이 동의했습니다’라고 우길 수는 없으니까. “그럼 보증인은 피코와 에브란 두 분으로 요청하겠습니다.” 피코가 깜짝 놀랐다. “저요?” “너, 내가 하기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키면 뭐라고 할 거야?” “안 한다고 해야죠.” “그걸 써 주면 돼.” 에브란은 오래된 제3감리 규정을 확인한 뒤 입회를 수락했다. 피코도 잠시 생각하다 서명했다. 그런데 자기 이름 옆에 ‘신원 확인 보조’라고 적고 싶다고 했다. “왜?” “저 아직 보증을 혼자 할 만큼 잘 모르니까요.” “그걸 아는 사람이 오히려 제격이지.” 그날 저녁, 우리는 출장 관련 서류를 전부 복사해 각 기관에 나눠 보관했다. 원본은 중립 공관에 남기고 나는 열람 요청서와 필요한 인증만 챙겼다. 성검을 가져가야 하는지는 아직 논의 중이었다. 천계의 신성 물품이니 반입이 허용된다는 의견과 분쟁 대상 계약과 연결된 물품이므로 별도 봉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나는 검을 쓰다듬었다. “너, 천계 가면 얌전히 있어라.” [계약 원문 확인 권장] 문구가 떠올랐다. “그래. 네가 그렇다니 더 불안하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는 피코가 만들어 놓은 작은 종이 뭉치가 있었다. [출장 점검 목록] 안전 확인. 열람 범위 확인. 귀환 권리 확인. 복귀 연락망 확인. 비용 영수증 확인.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도윤 님이 마음대로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도록 확인.]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피코가 글씨를 작게 써 놓은 탓에 마지막 줄만 유난히 비뚤어져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잣말했다. “적어도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귀환은 안 할 거니까.” 그때 중립 공관에서 전송문이 도착했다. 제7서고가 제출한 출장자 신원 확인 회신이었다. [방문자: 한도윤] [열람 목적: 최종 계약 확인] [보증인: 별도 검증] [기존 예약 상태: 귀환 승인 대기] 귀환 승인 대기? 나는 신청서를 다시 펼쳤다. 내가 제출한 건 열람 요청이었다. 귀환 승인 신청은 한 적이 없다. 종이 아래에는 빨간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주의: 열람일 도래 시 미응답 처리 규칙 적용] 아이고. 하늘에 가기도 전에 또 거절 버튼이 사라질 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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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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