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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70화
PAYLUA ORIGINAL · 제70화

70화. 감사보고서에 신의 이름을 쓰지 마세요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114자

오프라인 책장
내 이름으로 체결된 적 없는 계약이 갱신되고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보통 사람은 화를 낸다. 나도 화가 났다. 다만 우리 회사에서 7년 동안 배운 게 있다면, 화가 날 때일수록 종이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화가 나면 엉뚱한 이름을 기억하고, 종이는 누군가 고치기 전까지 적어도 같은 내용을 보여준다. “한도윤 씨. 진정하시죠.” 라델이 말했다. “저 지금 아주 진정했습니다.” “손에 쥔 펜이 부러질 것 같습니다.” 나는 손을 내려다봤다. 정말로 펜대가 휘어 있었다. “아, 이거 사무용품인데.” 피코가 슬그머니 새 펜을 건넸다. “비품 장부에 적어 둘까요?” “응. 손상 사유는 ‘업무 중 감정 과열’이라고 적어.” 피코는 웃지 않았다. 진지하게 적기 시작했다. 이 녀석, 어느새 나보다 무섭다. 공동 청문회는 아침 일찍 열렸다. 왕국에서는 라델과 아레인, 마계에서는 몰트와 나, 천계에서는 세라핀과 아우렐, 중립 공관에서는 에브란이 참석했다. 루시아는 문 옆에 섰고 피코는 기록을 맡았다. 제르칸은 왕좌 대신 평범한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왜 금박 의자를 안 가져오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오늘은 본왕이 손님이 아니라 당사자라는군.” “누가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맞다. 내가 말했다. 이 회사는 교육 효과가 꽤 좋다. 회의는 중립 보관소의 자동 갱신 시험 결과부터 검토했다. 거절 버튼이 숨겨진 화면, 원래 도면, 직원 진술, 연습 계약의 재현 기록, 대리번호 0003의 자동 처리 기록까지 모두 제출했다. “재현 기록은 확실합니까?” 세라핀이 물었다. “네. 다만 실제 계약 전체에 같은 오류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점을 보고서에 명시합시다.” “물론입니다.” 우리는 보고서 제목부터 정했다. [공동 예비 감사보고서] ‘최종’이라는 말은 넣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수취인과 승인자가 너무 많았다. 나중에 기록이 추가되면 결론이 바뀔 수도 있었다. 조사단이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레인이 손을 들었다. “그러면 책임자를 누구라고 적습니까?” “현재는 못 적습니다.” 루시아가 나를 바라봤다. “그럼 적은 없다는 뜻인가?” “아뇨. 적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제르칸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본왕은 이름을 알아야 혼을 낼 수 있는데.” “전하, 모르는 사람을 혼낼 수는 없잖습니까.” “그건 그렇군.” 그런데 천계 기록사 아우렐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제3교역 감독관의 권한이 신성 계약 체계와 연결되어 있으니, 감사보고서의 책임 주체를 ‘신성 계약 관리자’로 적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왜죠?” “그 표현은 너무 넓습니다. 구체적인 개인이나 조직의 책임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신성하다는 이유로 묶어 쓰면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우렐이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천계의 감독 아래 운영된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부서가 어느 시점에 어떤 권한을 행사했는지 적어야죠. ‘신의 뜻’이라고 쓰는 순간 감사보고서가 기도문이 됩니다.”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아. 말이 조금 세게 나갔나. 나는 아우렐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쓰려던 문구를 다시 읽었다. “그렇군요. 적어도 이 문서에서는 그렇게 쓰지 않는 편이 정확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별일이다. 천계 사람을 상대로 회계 서식 수정을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다니. 서울에서 부장님 보고서 고치는 것보다 훨씬 쉽네. 다음은 피해 방지 조치였다. 우리는 자동 갱신 대상 계약을 전부 취소할 수 없었다. 일부는 실제로 사람들을 보호하는 계약이었고, 일부는 아직 제공 중인 서비스가 있었다. 무조건 중단하면 국경 검문소의 야간 경비나 보급 거점의 안전장치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라델이 물었다. “당사자 통지가 먼저입니다. 회신이 없다는 이유로 동의했다고 처리하지 않고, 실제 피해가 발생한 건 임시 보호 계정에서 지원해야죠.” “그 돈은 누가 부담합니까?” “임시로 각 측이 동의한 한도 내에서 부담하고, 최종 귀속은 조사 뒤 정하겠습니다.” 제르칸이 손을 들었다. “본왕은 병사들의 식량과 치료비를 먼저 보장하겠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전하. 오늘은 말씀을 아주 잘하시네요.” “본왕은 원래 잘한다!” “네. 그 점도 회의록에 남겨 드리겠습니다.” 피코가 진짜로 적으려 해서 급히 말렸다. 개인적 칭찬까지 공식 문서에 넣었다가는 보고서가 오백 장이 된다. 천계는 자체 관문 장치에 대한 점검과 미승인 청구 일시 보류를 약속했다. 왕국은 기존 지명수배 조치의 법적 근거를 별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중립 공관은 제3감리 보존 기록의 원본 보호를 맡았다. 나는 각자의 책임을 따로 적었다. 나중에 누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몰라 또 싸우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회의 중간에 피코가 손을 들었다. “저도 질문해도 돼요?” “물론이지.” “사람이 응답하지 않았는데 동의했다고 적힌 계약은 어떻게 찾아요?” 에브란이 답했다. “옛 계약 원장과 자동 갱신 목록을 비교해야 합니다.” “그럼 누군가 원장을 바꾸면요?” “그래서 사본을 여러 기관에서 보관하는 거죠.” “그럼 서로 다른 사본이 나오면요?” 나는 웃었다. “그때는 그 불일치 자체가 증거야.”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답보다 질문을 잘했다. 좋은 감사 담당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오후에는 내 개인 계약 기록을 다시 열람했다. 소환 열하루 전 예비 등록, 열이틀 전 예약된 편지, 미확정 계약 원문. 여기에 어제 발견된 ‘무응답 대리 동의’ 처리 기록이 더해졌다. “제가 응답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있습니까?” 에브란에게 물었다. “있습니다. 적어도 이 시점의 원장에는 본인 서명이 없습니다.” “그럼 왜 갱신됐죠?” “공용 대리번호가 동의로 처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번호의 실제 사용자는 아직 모르는 거고요.” “그렇습니다.” 나는 서류를 펼쳤다. 마음속에서 화가 다시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럼 제 계약은 지금 효력이 있습니까?” 에브란은 잠깐 침묵했다. “그 질문에는 아직 답하기 어렵습니다. 유효하다고도, 완전히 무효라고도 확정할 자료가 부족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본인 서명이 없다는 사실과 대리 동의 이의를 공식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우리는 내 이의 신청서를 접수했다. 신청일, 범위, 확인된 사실, 확인되지 않은 부분. 정확하게 적었다. 피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윤 님, 좀 억울하시죠?” “많이.” “그래도 조금은 좋아졌잖아요.” “뭐가?” “처음엔 아무도 도윤 님 말을 안 들어 줬는데, 지금은 다 같이 기록하고 있잖아요.” 나는 피코를 바라봤다. 그 말이 맞았다. 왕궁에서는 질문을 한다는 이유로 내쫓겼고, 이제는 왕국과 마계, 천계가 같은 탁자에서 내 계약의 빈칸을 확인하고 있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생긴 건 아니다. 마왕이 대단히 선한 사람으로 바뀐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 내 이름을 대신 적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문제라고 인정했다. 잠깐 쉬는 시간에 세라핀이 따로 나를 불렀다. 그녀는 회의실 끝 창가에 서서 마왕성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나무 사이로 작은 임프들이 뛰어다녔다. “한도윤 씨는 천계가 이번 일의 책임자라고 생각합니까?” “아직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천계에서 보낸 사절단을 의심하고 계시죠.” “공식 문서를 확인하는 것과 사람을 의심하는 건 조금 다릅니다.” 세라핀은 잠깐 나를 바라봤다. “우리 조직에도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규정을 바꾸려면 절차가 필요합니다.” “절차가 있다는 건 이해합니다. 문제는 절차 때문에 사람이 피해를 입을 때죠.” “그 점도 이해합니다.” 나는 창밖을 봤다. 마왕성 정원에 새로 마련한 병사 휴게 의자가 보였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병사들은 쉴 자리가 없어 창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작은 변화가 생겼다. 누군가 그 필요를 확인했고, 예산을 배정했고, 의자를 설치했다. “작은 것부터 바꾸면 됩니다.” 내가 말했다. “휴식 의자 하나도 바로 생긴 건 아니거든요.” 세라핀은 미소 지었다. “천계에도 휴식 의자가 필요하겠군요.” “공무원 출장비는 있는데 의자가 없으면 곤란하죠.” 그녀가 웃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우리 사이의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곧이어 에브란이 우리를 불렀다. 중립 공관에서 첫 번째 계약자 통지가 실제로 발송됐다는 확인서가 도착했다. 확인되지 않은 계약을 취소했다고 과장하지 않고, 해당 당사자에게 자신의 기록을 열람하고 이의를 제기할 기회를 알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한 사람은 자기 선택을 직접 할 수 있게 된 거군요.” 피코가 말했다. “응. 아직 서류가 끝난 건 아니지만.” “좋은 시작 같아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회의에서 세상을 구하지는 못했다. 마왕을 쓰러뜨린 것도 아니고 신의 음모를 밝혀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계약서에 빈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 사람이 그 빈칸을 직접 채울 수 있도록 했다. 회계 담당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이런 것들이다. 보고서를 인쇄하기 전에는 비용도 계산했다. 조사단의 숙박비와 중립 보관소 전송료, 증인에게 지급할 교통비가 있었다. 이 비용을 나중에 누가 부담할지 합의하지 않으면 사건이 끝난 뒤 새로운 분쟁이 시작된다. 세라핀은 천계 방문 인원의 비용을 자체 부담하겠다고 했다. 제르칸은 마왕성 회의실 운영비를 승인했고, 라델은 왕국 조사관의 이동비를 별도 장부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천하의 마왕과 천사가 영수증 한 장씩 나눠 갖는 날이 오네요.” 내가 말하자 제르칸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 모든 것이 본왕의 위엄 덕분이지!” “영수증은 위엄으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전하.” 저녁이 되자 예비 감사보고서가 완성됐다. 첫 번째 결론. 권리자 무응답을 동의로 처리하는 자동 갱신 동작이 시험 계약에서 재현됐다. 두 번째 결론. 실제 계약에 대한 영향 범위와 승인 주체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세 번째 결론. 필수 물자·안전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는 범위에서 잘못된 청구를 보류하고 당사자에게 통지한다. 네 번째 결론. `00-성전`의 세부 구획과 실제 수취인을 구분해 조사한다. 다섯 번째 결론. 한도윤의 소환 계약에는 본인 동의 기록이 현재 확인되지 않으며, 대리 동의의 법적 효력은 미확정이다. 나는 마지막 줄에 서명했다. [작성: 한도윤] [공동 검토: 왕국·마계·천계·중립 공관] 세라핀은 조용히 내게 말했다. “오늘은 저희 쪽에서도 배운 것이 많습니다.” “저도요. 천계 공무원이 출장비를 받는다는 사실은 평생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다음엔 그 얘기만은 빼 주세요.” “그건 제 직업적 양심상 어렵습니다.” 우리는 악수했다. 성검은 조용했다. 오랜만에 아무 경고도 뜨지 않는 저녁이었다. 그런데 퇴근하려고 보고서 사본을 정리하던 순간, 피코가 이상한 기록 하나를 발견했다. “도윤 님. 여기 열람 예약이 하나 남아 있어요.” “누구 건데?” “도윤 님 이름이에요.” “또?” 나는 지친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열람 예약자: 한도윤] [예약 사유: 최종 계약 확인] [예약 일시: 미도래] [작성 시각: 소환 이전] “예약한 적 없는데.”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어요.” 피코가 맨 아래 작은 글씨를 가리켰다. [예약 장소: 천계 제7서고] [방문자 신분: 귀환 예정자] 나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귀환 예정자. 그동안 나는 돌아갈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누군가는 내가 돌아갈 것처럼 미리 서류를 만들어 놓았다. 제르칸은 멀리서 부하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고, 몰트는 벌써 다음 달 결산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루시아는 훈련장에 나갔다. 마왕성의 하루는 평소처럼 흘러갔다. 나만 그 종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돌아갈 수 있다고? 좋아. 그건 정말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지? 나는 펜을 집어 들었다. “피코.” “네.” “출장 신청서 양식 좀 가져와.” “또 출장 가세요?” “응.” 나는 천천히 웃었다. “이번엔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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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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