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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7화
PAYLUA ORIGINAL · 제7화

7화. 마왕님, 이 영수증은 뭡니까?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251자

오프라인 책장
세상에는 참 다양한 야근이 있다. 보고서를 수정하다가 끝나는 야근. 서버가 터져서 밤을 새우는 야근. 그리고 남의 횡령 장부를 조사하다가 살해 위협을 받는 야근. 세 번째는 오늘 처음 경험했다. “그 장부를 내려놔라.” 그라즈 보급관이 폐기실 문을 막아섰다. 뒤에는 무장한 마족 병사 둘이 있었다. 나는 품에 넣었던 장부를 다시 꺼냈다. “재정실에 제출할 자료입니다.” “그건 폐기 대상 문서다.” “아직 폐기 승인이 안 난 것 같은데요.” “내가 승인했다!” 아. 본인이 작성한 장부를 본인이 폐기 승인하는 구조. 익숙하게 끔찍하다. 나는 장부를 단단히 쥐었다. “그렇다면 폐기 승인서를 보여 주십시오.” 그라즈의 눈이 붉어졌다. “인간 주제에 말이 많군.”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피코는 뒤로 물러났고, 베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도 물러났다. 여기서 맞으면 큰일이다. 이세계 병원비가 얼마인지 아직 조사도 못 했다. “저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싸울 수 있지.” 그라즈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일단 시간을 끌자. “그런데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또 뭐냐!” “제가 지금 여기서 죽으면, 조사 기록은 어떻게 됩니까?” 그라즈가 코웃음 쳤다. “사라지겠지.” “그렇군요.” 나는 피코를 돌아봤다. “피코 씨.” “네, 네!” “아까 받은 조사 명령서가 몇 부였죠?” “원본 한 부, 기록용 사본 한 부요.” “실장님께 사본이 전달됐죠?” 피코가 눈을 깜빡였다. “아…… 네!” 좋아. 눈치 있다. 실제로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라즈도 모를 테니까. “제가 죽으면 실장님께서 조사 담당자 사망 건까지 확인하시겠군요.” 그라즈가 움찔했다. “허튼소리.” “아닙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납품 금액과 담당자 성명도 기록했거든요.” 나는 양피지를 흔들었다. “재정실 기록에 남습니다.” 그라즈의 시선이 양피지로 향했다. 그 순간 옆의 병사 하나가 말했다. “보급관님, 그건 좀…….” 오호. 부하 중에는 아직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있네. 그라즈는 이를 악물었다. “좋다. 오늘은 보내 주지. 대신 그 장부는 두고 가라.” “인수증을 써 주시면요.” “뭐?” “누구에게 어떤 자료를 넘겼는지 기록해야 하니까요.” 그라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차. 협상이 잘 풀리다가 직업병이 또 튀어나왔다. 결국 그라즈가 팔을 뻗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나는 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손이 내 목덜미에 닿기 직전. 챙! 허리의 성검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희고 눈부신 빛이 좁은 방을 가득 채웠다. “끄아악!” 그라즈가 눈을 감고 뒤로 물러났다. 사방에서 찬송이 울렸다. 아니, 너! 지금 노래할 때냐고! “조용히!” 나는 검을 붙잡았다. 놀랍게도 노래가 멈췄다. 그라즈는 나를 보고 굳어 있었다. “성…… 성검?” 아. 들켰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회사에서 반납 처리가 안 된 물건입니다.” “용사……!” 보급관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때 멀리서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란이냐!”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문간에 검은 갑옷을 입은 여성이 나타났다. 은빛 머리카락을 높이 묶고, 허리에는 긴 검을 차고 있었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저건 내가 아는 눈빛이다. 회사에서 장애 발생 소식을 들었을 때 개발팀 팀장에게서 보던 눈빛. '누가 터뜨렸는지 몰라도 오늘 집에는 못 간다.' 그런 눈빛이었다. “루시아 기사단장님!” 피코가 거의 울 듯이 외쳤다. 여성이 실내를 훑어봤다. 다친 임프. 장부를 든 인간. 그리고 성검의 빛에 질린 그라즈. 그녀는 성검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검…….” “일단 오해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말했다.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하실 것 같아서요.” 루시아가 피식 웃었다. “재밌는 인간이군.” 그녀는 그라즈를 돌아봤다. “보급관. 무슨 일이지?” “저 인간이 창고 문서를 훔쳤습니다!” 역시. 자료를 조사하면 도둑이 되는 시스템이다. 나는 즉시 조사 명령서를 펼쳤다. “재정실장 리치 몰트가 서명한 현장 확인 권한입니다.” 루시아는 명령서를 살펴봤다. “도장은 진짜군.” “그런데도 보급관께서 자료 반출을 막으셨습니다.” “그 문서는 군사 기밀이다!” 그라즈가 외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더욱 정식 보관이 필요하겠네요.” 루시아는 검 손잡이를 툭 두드렸다. “재정실로 가라. 너희 모두.” 그라즈가 항의하려 했다. “기사단장님! 저는—” “내 명령이 들리지 않나?” 그라즈의 입이 닫혔다.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좋다. 상위 결재권자가 나타났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반가운 순간 중 하나다. 물론 그 결재권자가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 재정실에 돌아왔을 때 몰트는 서류를 읽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푸른 불꽃이 커졌다. “벌써 돌아왔나?” “상황이 좀 복잡해졌습니다.” 나는 장부와 조사 기록을 내려놓았다. 피코는 베르를 의자에 앉혔다. 몰트가 베르를 보고 놀랐다. “자네, 실종된 서기 아닌가!” “네…….” “어디 있었나?” “폐기실에 숨어 있었습니다.” 몰트의 턱뼈가 딸깍거렸다. “그런 일이…….” “일단 베르 씨 치료부터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했다. “그다음 증언을 받겠습니다.” 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코가 베르를 데리고 나갔다. 그라즈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봤다. 루시아는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나는 자료를 정리했다. “첫 번째. 건조육 납품 청구서 두 건입니다.” 서류 두 장을 놓았다. “둘 다 금화 천 닢씩 지급됐습니다.” “두 번째?” 몰트가 물었다. “실물 인수대장에는 한 번만 입고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나는 베르가 보관하던 장부를 펼쳤다. “세 번째. 그라즈 보급관께서는 두 차례 모두 직접 검수했다고 진술하셨습니다.” 그라즈가 소리쳤다. “전쟁 중에는 기억이 혼동될 수 있다!” “그럼 진술을 정정하셔도 됩니다.” “뭐?” “아까는 둘 다 검수했다고 하셨잖습니까. 지금은 기억이 혼동됐다고 하시네요. 어느 쪽으로 기록할까요?” 그라즈가 이를 갈았다. 나는 펜을 들고 기다렸다. 침묵. 정말이지 펜 하나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화나게 할 수 있다니. 내 재능이 두렵다. “문제는 아직 범인을 단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나는 몰트를 바라봤다. “현재 확인된 건 지급 기록과 실물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입니다.” 몰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마법으로 장부가 잘못 복제됐을 수도 있으니.” “맞습니다. 환불 내역, 운송 기록, 최종 수령 부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 루시아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인간.” “네?” “네 검에서 아까 신성한 빛이 나왔지?” 아. 결국 그 질문이 나온다. “그렇습니다.” “왕국의 용사인가?”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소환은 됐는데, 계약이 안 맞아서 일을 안 하고 있습니다.” 루시아가 눈을 깜빡였다. 몰트도 눈을 깜빡였다. 그라즈는 아예 입을 벌렸다. “……용사가 계약 때문에 마왕을 안 잡는다고?” 루시아가 물었다. “네.” “그럼 왜 마왕성에 왔지?” “채용 공고를 봤습니다.” “뭐?” “재정실 사무직이요. 숙식 제공이라고 되어 있어서요.” 루시아는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인간, 너 미쳤구나!” 아. 또 그 평가다. 이쯤 되면 정신 감정이라도 받아야 하나 싶다. “마왕을 죽이러 온 용사가 마왕성에 취업하겠다고?” “안 죽이러 왔는데요.” “그럼 성검은 왜 들고 있지?” “반납이 안 됩니다.” 루시아가 웃음을 멈췄다. “농담이지?” “한번 가져가 보시겠습니까?” 그녀가 손을 뻗었다. 몰트가 다급히 외쳤다. “기사단장! 함부로 만지면—” 치익! 루시아의 장갑에서 연기가 올랐다. 그녀가 손을 뗐다. “……진짜군.” “네. 정말 곤란합니다.” 그녀의 눈빛이 이상하게 반짝였다. “재밌네. 언젠가 너와 제대로 싸워 보고 싶군.” 아니. 전혀 재미없습니다. 난 검술 경험이 없다고요. 그때였다. 성 전체가 크게 울렸다. 둥! 둥! 둥! 거대한 종소리였다. 몰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문밖에서 전령 임프가 뛰어 들어왔다. “전하께서 재정실 감사를 직접 보고받으시겠답니다!” “전하?” 내가 물었다. 몰트가 대답했다. “마왕 제르칸 폐하시지.” 아. 드디어 사장님 등장이다. 나는 무심코 넥타이를 고쳐 매려 했다.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이 세계에 올 때 회사 셔츠 그대로 왔지만 넥타이는 프린터 앞에서 어디론가 사라졌던 모양이다. 아쉽네. 첫 임원 보고인데 복장이 영 아니다. *** 마왕 제르칸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검은 뿔, 붉은 망토, 갑옷에 달린 거대한 어깨 장식. 그를 따라온 그림자만으로 방이 어두워졌다. 분명히 입구에 들어섰을 뿐인데 천장까지 낮아진 것 같았다. “몰트!” “예, 전하!” “내 군단의 장부에 문제가 생겼다 들었다.” “그렇습니다.” “어떤 놈이 감히 본왕의 돈을 훔쳤단 말이냐!” 제르칸이 포효했다. 창문이 흔들렸다. 내 귀도 울렸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최소한 횡령을 싫어하는 사장이군. “인간!” 마왕이 나를 가리켰다. “네놈이 그 숫자쟁이냐!” 숫자쟁이라. 호칭은 별로지만 업무는 정확하게 파악했네. “한도윤입니다.” “네가 내 군단을 의심했다지?” “군단 전체를 의심한 건 아닙니다.” 나는 장부를 펼쳤다. “금화 천 닢의 지급 내역과 실물 기록이 달라서 확인 중입니다.” “천 닢?” 마왕이 눈을 부릅떴다. “그 돈이면 성벽 하나를 고칠 수 있다!” 나는 순간 속으로 환호했다. 오. 비용 감각이 있는 사장이다. 마왕이 서류를 집었다. 한참 읽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 서류는 왜 두 장이지?” 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걸 확인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마왕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가 낮게 물었다. “범인이 누구냐?” “아직 모릅니다.” “뭐?” “확인된 사실과 의심되는 부분을 구분해야 합니다.” 마왕의 눈이 더욱 붉어졌다. “감히 본왕 앞에서 모른다고 말하는가!” 나는 침을 삼켰다. 무섭다. 아주 무섭다. 하지만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야 한다. 거짓 보고를 한 다음 문제가 터지면 더 큰일이 나니까. “전하.” 나는 종이를 한 장 더 꺼냈다. “범인을 찾으시려면 이 문서를 승인해 주십시오.” “뭔데?” [제17군단 보급 기록 보전 및 특별 감사 요청서] 마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감사?” “네. 실물, 계약, 지급 기록을 함께 확인하겠습니다.” “얼마나 걸리지?” “사흘을 요청드립니다.” “하루 안에 끝내라!” 아. 역시 사장님은 사장님이다. “그러면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이틀!” “중간 보고는 이틀 안에, 최종 보고는 사흘 안에 하겠습니다.” 마왕이 잠시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웃었다. 무섭게 웃었다. “좋다. 사흘을 주지.”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루시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전하, 이 인간은 왕국의 용사입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마왕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웃었다. 아이고. 그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하려고 했는데. “용사?” 제르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놈이…… 나를 죽이러 왔단 말이냐?”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아닙니다.” “그럼 왜 왔지?” 나는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취업하려고 왔습니다.” 정적. 몰트의 턱뼈가 바닥에 떨어졌다. 루시아는 다시 웃기 시작했다. 마왕 제르칸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우리 성에…… 빈자리가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정실 사무직이요.” “흠.” 마왕은 팔짱을 꼈다. “그럼 채용 여부는 감사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 오. 실무 평가 기반 채용이라. 나쁘지 않다. “알겠습니다.” “대신.” 마왕이 몸을 숙였다. 커다란 그림자가 내 얼굴을 덮었다. “사흘 뒤에도 금화 천 닢의 행방을 못 찾으면…….” 나는 침을 삼켰다. “못 찾으면요?” “네놈이 전액 변상하라.” ……. 뭐라고요? 아니, 잠깐. 나는 일하러 온 사람이지 보증을 서러 온 사람이 아닌데? 이 회사도 이상한 조항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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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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