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가 사라졌다고요?”
나는 계단에서 피코를 바라봤다.
피코는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정확히는 창고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실종 신고는 했습니까?”
“했죠.”
“수사 결과는요?”
“창고 담당자가 사직했다고 했어요.”
“사직서가 있습니까?”
“없어요.”
“마지막 급여는 지급됐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
아.
드디어 제대로 된 문제가 나왔다.
장부 한 줄이 잘못된 게 아니라 사람 하나가 사라졌는데도 근태 기록이 없다니.
여기가 악의 본거지라는 건 이런 의미였나?
“그 서기 이름은요?”
“베르입니다. 저처럼 작은 임프였어요.”
“가족은요?”
“누나랑 같이 살아요. 누나가 몇 번이나 찾으러 왔는데…….”
피코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나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서 붉은 불빛이 흔들렸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맡은 건 중복 청구 조사이지 실종 사건 수사가 아니니까.
그런데 베르라는 임프가 확인하려던 장부가 지금 내 손에 있다.
우연일까?
가능하다.
하지만 우연인지 확인하지 않고 돌아갈 순 없다.
“피코 씨.”
“네?”
“실장님에게 받은 조사 권한 서류, 챙겼죠?”
“네.”
“그럼 같이 갑시다. 창고 담당자 이름부터 확인하죠.”
피코가 내 뒤에 바짝 붙었다.
“도윤님, 안 무서우세요?”
“무섭습니다.”
“그런데 왜 가세요?”
“제가 안 가면 누가 갈 것 같습니까?”
피코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조사 권한을 받았으면 활용해야죠. 안 쓰면 다음번엔 권한을 안 줍니다.”
역시 직장 생활 7년 차의 사고방식은 무섭다.
***
제17군단 보급 창고는 성 지하 세 층에 있었다.
문 앞에는 쇠사슬과 자물쇠가 여러 겹 감겨 있었다.
그걸 보니까 조금 안심됐다.
적어도 물건을 귀하게 생각하는 부서는 있는 모양이다.
“누구냐!”
문 앞의 오우거가 소리쳤다.
덩치가 아까 성문에서 본 녀석보다 조금 작았다.
그래도 내 두 배는 될 것 같았다.
“재정실 조사입니다.”
피코가 서류를 내밀었다.
오우거는 문서를 한참 바라봤다.
그다음 피코를 바라봤다.
그리고 또 문서를 봤다.
“실장 도장이 맞군.”
와.
이쪽은 읽을 줄 아네.
그러고 보니 내가 마왕성을 너무 선입견으로 판단했다.
마족이라고 모두 글을 못 읽는 건 당연히 아니다.
우리 회사도 직원마다 엑셀 실력이 달랐으니까.
“그런데 인간은 왜 데려왔지?”
“임시 조사 담당자입니다.”
“인간이 우리 물자를 조사한다고?”
오우거가 얼굴을 구겼다.
나는 서류를 가리켰다.
“허가 범위에 현장 확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허가가 있어도 기분 나쁘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뭐?”
“저도 회사 감사 나갈 때마다 그런 말 많이 들었거든요.”
오우거가 어리둥절해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조사를 빨리 끝내려면 협조해 주시는 게 서로 편합니다.”
“흥.”
오우거가 문을 열었다.
철컥.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그런데 안쪽은 예상 밖이었다.
창고가 텅 비어 있었다.
정확히는 식량 상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벽에는 검은 페인트로 구역명이 표시돼 있었다.
건조육 A구역.
보존식 B구역.
곡물 C구역.
A구역의 선반은 먼지만 쌓여 있었다.
나는 피코를 바라봤다.
“건조육 천 상자가 들어왔다고 했죠?”
“네. 장부에는 그렇게 적혀 있어요.”
“여긴 몇 상자 있습니까?”
피코가 선반을 쳐다봤다.
“……없어요.”
오우거가 코웃음 쳤다.
“다 전선으로 보냈지.”
“출고 기록은요?”
“그런 건 보급관이 관리한다.”
“보급관이 누굽니까?”
“제17군단 보급관 그라즈.”
나는 이름을 적었다.
그라즈.
처음 보는 이름인데 벌써 느낌이 좋지 않다.
물론 사람을 이름으로 판단하는 건 나쁜 습관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이름이 '성실'인 사람이 가장 먼저 퇴근하기도 했으니까.
“출고 기록을 볼 수 있을까요?”
오우거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무실로 가 보게.”
“안내 부탁드립니다.”
“난 경비 중이다.”
“그럼 위치만 알려 주세요.”
“복도 끝 오른쪽.”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피코가 속삭였다.
“도윤님, 저 오우거가 이렇게 협조적인 건 처음 봐요.”
“질문을 하면 답을 해 주는 분이네요.”
“보통은 으르렁대기만 하거든요.”
“그것도 나름대로 업무 압박을 표현하는 방식이겠죠.”
세상이 복잡하다.
***
보급관 사무실에는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잉크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에는 송장, 검수서, 출고서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앉은 마족이 우리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용건이지?”
몸은 인간과 비슷했지만 귀가 뾰족하고 턱 아래로 검은 비늘이 있었다.
“재정실에서 나왔습니다.”
피코가 말했다.
“지난달 건조육 납품 두 건을 확인하려고요.”
마족은 바로 웃었다.
“아, 그건 서류 착오야.”
오.
빠른 답변.
나는 오히려 관심이 생겼다.
“어떤 착오였습니까?”
“같은 계약서가 두 번 올라갔겠지.”
“그럼 환불 처리는 됐습니까?”
그가 잠시 멈췄다.
“환불?”
“대금을 두 번 지급했으니까 한 번은 돌려받아야죠.”
“전쟁 중에는 그런 걸 따질 수 없어.”
이야.
처음 듣는 논리다.
전쟁이 나면 산 물건 값을 두 번 내도 된다는 법은 어디에 있지?
“그럼 두 번째 납품은 실제로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겠지.”
“좋습니다. 그 내용으로 확인서를 작성해 주세요.”
“뭐?”
“서류 착오였다는 사실을요. 재정실에 보고해야 합니다.”
보급관의 얼굴이 굳었다.
“인간 주제에 날 심문하겠다는 건가?”
드디어 나왔다.
신분 공격.
자료가 부족할 때 가장 흔히 나오는 방어 방식이다.
나는 미소를 유지했다.
“심문이 아닙니다. 확인입니다.”
“뭐가 다른데?”
“확인한 내용은 수정할 수 있지만, 심문 기록은 곤란해지거든요.”
보급관은 한동안 나를 노려봤다.
그 뒤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영수증이 필요하다면 찾아보지.”
그가 서랍을 뒤졌다.
한 장, 두 장.
세 번째 서류를 꺼낼 때 그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나는 눈여겨봤다.
두 장의 납품 확인서였다.
날짜는 다르다.
하지만 수령자 서명은 같다.
지난번 면접장에서 본 것처럼 잉크 얼룩까지 같았다.
“실장님, 이거 복제본입니다.”
피코가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건 확정 못 해요.”
그리고 보급관에게 물었다.
“두 번째 서류의 원본을 볼 수 있습니까?”
“그게 원본이다.”
“그러면 수령자께서 직접 서명하셨습니까?”
“그렇다.”
“누구 앞에서요?”
“내 앞에서.”
좋아.
진술은 확보했다.
나는 양피지에 기록했다.
[그라즈: 두 납품서 모두 직접 검수, 수령자 서명 현장 확인 진술.]
그라즈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딴 걸 왜 적지?”
“나중에 기억이 달라질까 봐요.”
그는 나를 노려봤다.
뭔가 더 물으려는데 문 밖에서 소리가 났다.
쿵!
무거운 물건이 떨어진 소리였다.
그라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고 정리 중이군. 오늘 조사는 여기까지다.”
“아직 출고 기록을 못 봤는데요.”
“내일 와.”
“내일 아침까지 보고해야 해서요.”
“그건 네 사정이지!”
그가 책상을 내리쳤다.
피코가 움찔했다.
나는 일부러 한 발 물러났다.
어쨌든 상대가 힘을 쓰면 나는 이길 자신이 없다.
싸움보다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는 서류를 접었다.
“그럼 재정실에 조사 방해 사실까지 보고하겠습니다.”
그라즈가 멈칫했다.
“뭐?”
“실장님께서 현장 확인 권한을 주셨거든요.”
“…….”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피코를 데리고 나왔다.
복도에 나오자 피코가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보고하실 거예요?”
“네.”
“그라즈는 무서운 보급관이에요. 군단장하고도 친하다고요.”
“그럼 더더욱 기록을 남겨야죠.”
피코는 한참 나를 바라봤다.
“도윤님은 정말 이상해요.”
그런 말, 오늘만 세 번째다.
***
재정실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폐기 서류 보관실]
문틈으로 누런 종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피코 씨, 이곳은 뭡니까?”
“오래된 서류를 모아 두는 곳이에요.”
“폐기 전 검토는 누가 합니까?”
“그라즈 쪽에서 요청하면 그냥 넣어 둬요.”
오호.
폐기 권한까지 현업 부서가 가지고 있네.
통제 구조가 아주 훌륭하다.
반어법이다.
나는 문을 열어 보려고 했다.
잠겼다.
“열쇠는요?”
피코가 주머니를 뒤졌다.
“공용 열쇠가…….”
달그락.
“여기 있어요.”
역시.
감사 조직에 공용 열쇠가 있다면 써야지.
문이 열렸다.
먼지가 훅 밀려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잉크와 눅눅한 종이, 그리고 오랫동안 환기를 안 한 공간 특유의 냄새.
서류 더미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나는 성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누구 있습니까?”
사각.
서류가 흔들렸다.
피코가 내 뒤로 숨었다.
“도윤님…….”
“괜찮아요. 일단 뒤로 가세요.”
나는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안쪽에서 쉰 목소리가 들렸다.
“문…… 닫아 주세요.”
어?
말을 한다.
“누구십니까?”
“들키면…… 또 잡혀갑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까이 갔다.
서류 더미 뒤에 작은 임프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눈은 푹 꺼져 있었다.
피코가 비명을 질렀다.
“베르!”
임프가 고개를 들었다.
“피…… 코?”
오.
실종된 서기가 여기 있었다.
적어도 살아 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베르는 떨리는 손으로 낡은 장부 한 권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거…… 이거 없애면 안 돼요.”
“무슨 장부인데요?”
베르는 나를 경계했다.
“인간……?”
“재정실 조사 담당자입니다. 지금은 임시직이고요.”
이 와중에 그 설명이 꼭 필요했나 싶다.
하지만 베르는 내 말보다 피코를 믿는 듯했다.
피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베르는 장부를 내밀었다.
[제17군단 실물 보급 인수대장]
좋다.
드디어 원본에 가까운 자료가 나왔다.
나는 첫 장을 펼쳤다.
건조육 500상자.
입고일 하나.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
두 번째 납품 기록이 없다.
그런데 다음 쪽에는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건조육 500상자 출고. 수령 부대: 미확인.]
입고 한 번.
출고 한 번.
돈은 두 번 지급.
하지만 실제로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나는 장부를 덮었다.
나는 건조육 상자의 출고란에 적힌 필체를 유심히 살폈다. 받았다는 사람 이름은 없고, 전달했다는 사람의 도장만 있었다.
원래 그런 기록이 가장 위험하다.
누구에게 건넸는지 모르면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이상한 건 책임질 사람이 없어지는 속도보다 돈이 사라지는 속도가 늘 빠르다는 사실이다.
“베르 씨, 이걸 확인하다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베르가 입술을 떨었다.
“그라즈 보급관이…….”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쿵. 쿵.
아까 우리를 쫓아냈던 그라즈의 목소리가 울렸다.
“폐기실 문이 왜 열려 있지?”
피코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나는 성검을 바라봤다.
칼날에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처음 보는 글자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장부 대조 가능. 불일치 항목: 1건.]
어라?
이건 또 뭐야.
[고유 스킬 '절대 감사'의 흔적을 감지했습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아니, 잠깐.
회계 담당자에게 고유 스킬이 생긴다고?
이게 무슨 이세계 인사평가 시스템이야?
그라즈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나는 장부를 품에 넣었다.
자료 하나 때문에 위험을 감수한다는 게 우습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장부를 잃으면 베르가 왜 쫓겼는지조차 증명하지 못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잘못된 기록을 다시 고쳐 쓸 사람은 바로 그것을 숨기려던 사람일 테고.
“피코 씨. 베르 씨를 데리고 뒤쪽 문으로 나가세요.”
“뒤쪽 문이 없는데요?”
…….
아.
그렇구나.
회사 안전관리까지 엉망이네.
그라즈가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들!”
이제 진짜 야근이 위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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