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정실에서 천재를 발견했다.
아니다. 다시 말하자.
천재까지는 아니고, 내가 없으면 슬슬 업무가 굴러갈 정도로 성장한 직원을 발견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서울 회사에서 7년을 일하면서 내가 가장 원했던 건 내가 하루 자리를 비워도 전화가 울리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마왕성에서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생겼다.
“피코. 이번 건 네가 맡아 봐.”
“저요?”
“응. 검문소 운송료 중복 청구 건.”
피코의 작은 뿔이 축 처졌다.
“저 혼자요?”
“몰트 실장님이 결재하고, 나는 필요하면 도울게. 하지만 자료 요청하고 대조하는 건 네가 주도해.”
피코는 서류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임프가 이렇게 긴장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다. 마왕한테 혼났을 때도 저렇게 얼어붙지는 않았는데.
“저 실수하면 어떡해요?”
“그럼 고치면 되지.”
“돈이 사라지면요?”
“돈을 네가 직접 들고 가는 건 아니잖아.”
“보고서가 틀리면요?”
“그래서 검토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
피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정말 제가 해도 돼요?”
“네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 나는 지금 내 이름으로 된 계약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럼 제가 해볼게요.”
결심한 임프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의자를 끌어와 앉고, 문서번호를 적고, 서로 다른 지역의 통행 영수증을 분류했다.
첫 번째 문제는 진짜로 사소했다.
왕국의 검문소에서는 금화 두 닢, 마계의 통행 구역에서는 금화 두 닢, 중립 운송소에서는 금화 네 닢을 청구했다. 같은 화물 한 대에 총 여덟 닢. 그런데 계약상 총 통행료는 여섯 닢이었다.
“금화 두 닢이 더 나갔네요!”
피코가 외쳤다.
“그럴 수도 있지.”
“왜요?”
“추가 경로를 이용했거나, 긴급 보호료가 붙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뭘 해야 해요?”
“계약서를 봐야지.”
피코는 계약서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 뒤 눈을 반짝였다.
“여기요! 같은 구간을 두 번 통과해도 추가 통행료를 청구하지 않는다고 돼 있어요!”
“좋아. 그럼 그다음은?”
“실제로 같은 구간을 두 번 지났는지 확인해야 해요.”
“이야. 정답.”
나는 박수를 쳤다. 피코는 귀까지 빨개졌다. 임프도 귀가 빨개지는구나. 새로운 생물학적 발견이었다.
확인하려면 현장 기록이 필요했다. 문제는 중립 운송소 직원들이 한동안 마왕성에 자료를 보내는 걸 꺼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번 공용 접수번호 사건 뒤로 자신들이 잘못을 뒤집어쓸까 봐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피코는 직접 전송 구슬을 켰다.
“안녕하세요. 마왕성 재정실의 피코입니다.”
상대는 짐꾼 차림의 노인이었다.
“또 조사냐? 지난번에도 다 냈잖아.”
“이번에는 다른 거래예요. 직원분의 개인 근무평가는 조사하지 않겠습니다.”
노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진짜냐?”
“네. 통행 구간 확인 기록만 부탁드려요. 이름은 가려도 됩니다.”
나는 뒤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저 설명을 내가 직접 가르쳐 주긴 했지만, 지금 피코는 자기 말로 하고 있었다.
상대가 기록을 보내왔다. 통행 구슬의 흔적에는 같은 화물이 분명 한 번만 지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정산 장부에는 두 번 통과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됐어요!”
피코가 기뻐했다.
“잠깐.”
나는 화면을 가리켰다.
“구슬 기록이 하루 중간에 끊겼는데?”
피코가 다시 확인했다. 정말로 네 시간의 공백이 있었다. 낡은 장치라 자주 꺼졌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럼 한 번만 지나간 게 아닐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다른 증거를 보자.”
피코는 운송인의 마차 수리 장부, 물품 인수 시간, 반대편 검문소의 출입 기록을 추가로 요청했다. 세 문서가 같은 경로를 가리켰다. 그제야 그는 '중복 청구 가능성 높음'이라고 적었다.
그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다. 확정이라는 말은 아직 아껴 두었으니까.
오후에는 루시아가 재정실에 들렀다.
“뭐 하는 거냐?”
“피코가 감사 중입니다.”
“저 작은 녀석이?”
피코가 고개를 들었다.
“저도 할 수 있어요.”
루시아는 무심코 웃었다.
“좋군. 네가 맡은 전투라면 끝까지 해라.”
“서류 전투입니다.”
“서류든 검이든, 상대의 약점을 찾는 게 중요하지.”
“단장님, 감사는 상대의 약점을 찾는 게 아니라 사실을 찾는 거예요.”
피코의 대답에 루시아가 잠시 말문을 잃었다.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이 녀석, 이제 진짜 재정실 직원이다. 칼보다 증거가 중요하다는 말을 전투광 기사단장 앞에서 해내다니. 승진시켜야 하나.
하지만 실수도 했다.
최종 비교표를 만들던 피코가 같은 영수증을 두 번 합산한 것이다. 청구 과다 금액이 금화 두 닢이 아니라 네 닢으로 표시됐다.
“이거 좀 이상한데요.”
피코가 먼저 말했다.
“어디가?”
“돈이 두 배로 불어났어요.”
“혹시 네가 두 번 넣었나?”
그가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얘졌다.
“맞아요.”
“그럼 고치자.”
“죄송합니다.”
“실수 인정했으면 됐어. 이미 확정 결재 나간 것도 아니고.”
피코는 고개를 숙였다. 자꾸만 미안하다고 말해서 나는 일부러 옆에 있던 종이를 들어 보였다.
“나도 지난번에 전송 날짜를 하루 잘못 읽었어. 그러다 하마터면 천계에서 시간여행한 범인을 잡을 뻔했지.”
피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윤 님도 실수하세요?”
“당연하지. 내가 컴퓨터냐?”
그 순간 성검이 옆에서 반짝였다.
[계산 검증 기능: 지원하지 않음]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야.”
피코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내 검과의 싸움까지 회사 업무로 올리면 인사팀에서 난리가 날 테니까.
우리는 합산을 다시 했다. 이번에는 피코 스스로 원본 번호를 대조하고 검토표 아래에 서명했다.
[작성: 피코]
[검토: 한도윤]
[승인: 몰트]
이 세 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적어도 나중에 누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피코의 첫 보고서에는 숫자 말고도 남겨야 할 게 있었다. 중복 통행료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였다.
“화물 주인은 누굽니까?”
내가 묻자 피코가 서류를 다시 뒤졌다.
“왕국 쪽에서는 식량 상인 세르도라고 적혀 있어요. 그런데 운송인 명부에는 마계의 소형 상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둘 다 맞을 수 있지. 물건 주인과 운반한 사람이 다를 수 있으니까.”
피코는 곧바로 통행료 부담 조건을 찾았다. 계약서에는 도착지의 물품 수령인이 기본 운송료를 부담하고, 통과 구간의 특별 보호료는 발주자가 부담한다고 적혀 있었다. 실제로 누가 돈을 낸 건지는 지급 확인서가 필요했다.
“그럼 세르도 상인에게 연락해 볼까요?”
“좋아. 다만 확인할 거래 번호만 보여 줘.”
전송 구슬 속의 세르도는 몹시 지친 얼굴이었다. 그는 가게 창고에 쌓인 식량 자루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돈을 더 내고 싶어서 낸 줄 아십니까? 길이 막히면 저 곡물이 썩습니다.”
“알겠습니다. 추가로 낸 금액과 지급 날짜를 확인해도 될까요?”
피코가 침착하게 물었다.
“여기 있습니다.”
세르도는 도장이 찍힌 영수증을 보여 주었다. 문제의 금화 두 닢을 실제로 납부한 기록이었다. 단순 청구가 아니라 지급까지 이어졌다는 뜻이다.
“그럼 지금 당장 돌려주십시오!”
세르도가 외쳤다.
피코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급 절차를 설명해 보라는 뜻이었다.
“반환 대상 금액으로 등록하겠습니다. 다만 저희가 받은 돈은 아니라서 중립 회계소의 실제 수납 확인이 필요해요. 그동안 세르도 님의 식량 반출이 지연되지 않도록 통행 증빙을 별도로 발급하겠습니다.”
세르도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이번엔 정말 되는 겁니까?”
“결과를 약속할 수는 없지만, 확인한 내용을 문서로 남겨 드리겠습니다.”
상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아무 말 없이 기다리라고만 하진 않는군요.”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묘했다. 회계 서류 한 장이 실제 사람의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금화 두 닢의 값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식량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하루 통행권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통화를 마친 피코는 책상에 기대었다.
“도윤 님. 제가 자꾸 미안해지는 건 이상한가요?”
“왜?”
“우리가 청구한 돈은 아니지만, 그분이 힘들다고 하니까요.”
“이상하지 않아. 다만 네가 책임져야 할 일과 도와줄 수 있는 일을 구분하면 돼.”
“제가 할 수 있는 건요?”
“증거를 제대로 모으고,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확인하는 거지.”
피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첫 감사가 단순히 숫자 두 닢을 찾는 일에서 사람 하나의 하루를 지키는 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세르도에게 발급할 거래 확인서를 작성했다. 원래 물건의 주인과 운송 계약 당사자, 실제 납부자를 따로 적었다. 늦게 반납되는 돈에 대한 임시 이의 신청도 붙였다. 몰트는 서류를 검토하며 말했다.
“네가 신입에게 너무 많은 걸 가르치는 건 아닌가?”
“실장님, 제가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드는 게 목표라니까요.”
“자네가 없으면 본왕이 불안해할 텐데.”
“그건 전하께서 적응하셔야죠.”
몰트는 껄껄 웃었다. 오래 일한 리치가 웃으면 턱뼈가 자꾸 달그락거린다. 요즘은 그 소리마저 정겹다.
피코는 보고서 맨 아래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오늘은 아무도 대신 써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저녁 무렵 공동 보증 회계소에서 답이 왔다. 중복 청구는 인정하되 실제 금화가 송금됐는지는 확인 중이란다.
“이 정도면 감사 완료인가요?”
피코가 물었다.
“아직 아니지. 청구 수정과 환급까지 확인해야지.”
“어휴.”
그가 턱을 괴었다.
“감사는 끝이 없네요.”
“맞아. 그래서 내가 마왕성에 취업했지.”
“그게 무슨 관계예요?”
“왕국은 날 단발성 프로젝트에 넣으려고 했거든. 여긴 정규직이잖아.”
피코는 이해했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답신이 하나 더 왔다. 중복 통행료를 취소하려면 제3교역 감독관의 승인번호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 감독관인데요?”
피코가 소리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게. 없는 사람이 결재해야만 잘못된 돈을 돌려줄 수 있다니.”
피코는 잠시 생각하더니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럼 이렇게 쓰면 안 돼요?”
[승인 주체 확인 불가로 취소 지연. 피해자에게 지연 사실과 임시 보상 절차 안내 요청.]
나는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깔끔했다. 원인을 확정하지 않았고,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도 챙겼다.
“좋아. 그대로 보내.”
피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저, 첫 감사 성공인가요?”
“최종 환급까지 확인하면 성공. 지금은 잘하고 있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조금 어른스러워 보였다.
피코가 퇴근할 때 나는 첫 감사 보고서의 사본을 건넸다. 그 녀석은 종이를 한참 들여다봤다.
“제가 쓴 이름이 여기 남네요.”
“그럼. 네가 직접 했으니까.”
“나중에 잘못된 게 발견되면요?”
“그때는 정정 기록도 네 이름으로 남겠지. 책임은 숨는 게 아니라 설명하는 거야.”
피코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사본을 품에 넣었다. 옛날의 나라면 신입에게 서류를 맡기는 일을 망설였을 것이다. 내가 해버리는 게 더 빠르니까. 그런데 언제까지나 내가 모든 결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이 세계를 떠날지도 모르고, 휴가도 가고 싶다. 진짜로 휴가라는 걸 써보고 싶다.
그날 밤 나는 일기장에 짧게 적었다.
[피코: 작성자 책임 인식, 오류 자진 정정, 독립 자료 요청 가능.]
평가표 같은 문장이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나중에 이 녀석이 실장이 된다면 성 전체 장부가 조금은 덜 무서울 것이다.
그런데 피코가 잠든 뒤 한 통의 전송문이 도착했다.
[취소 요청 접수 처리: 보류]
[보류 이유: 계약 갱신 권한 활성 상태]
[자동 갱신 예정: 이틀 뒤 오전 9시 13분]
또 자동 갱신.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피코에게 나중에 확인하자고 말할 시간은 없었다. 이틀 뒤 오전에 문제의 수수료가 다시 청구될지도 몰랐다.
“몰트 실장님.”
“왜 그러나?”
“이거, 갱신 예정 시각 전에 멈춰야겠습니다.”
몰트가 장부를 받아 들었다.
“피코가 처음으로 잡아낸 문제를 누군가 다시 만들려는 건가?”
“그럴 수도 있죠.”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그 전에 갱신 취소 절차부터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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