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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1화
PAYLUA ORIGINAL · 제61화

61화. 천계에서 오신 분,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81자

오프라인 책장
천계에서 손님이 온단다. 보통 이런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날개 달린 천사?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후광? 아니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신성한 축복? 나는 접대비가 먼저 떠올랐다. 사절단이 몇 명인지도 모른다.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왕 제르칸은 벌써 대연회장에 금칠을 새로 하라고 명령해 놓았다. “전하. 연회장 금칠 비용은 어느 계정으로 처리하실 겁니까?” “외교 친선 비용이지!” “상대가 진짜 외교 사절인지 아직 확인도 안 됐습니다.” “천계라지 않느냐!” “그건 편지에 적힌 발신인이고요. 누가 자기 편지에 '나는 진짜 천사다'라고 쓰면 다 믿으십니까?” 제르칸의 커다란 뿔이 잠시 멈췄다. 그가 생각에 잠길 때마다 이상하게 뿔부터 움직임이 사라졌다. “그러면 확인하면 되겠군!” “그렇죠.” “루시아! 오면 날개를 뽑아 진위를 확인하라!” “그건 신체검사도 아니고 고문입니다.” 루시아는 이미 칼집을 잡고 있었다. 어쩌면 이 성에서 외교 문제보다 더 급한 것은 직원 대상 상식 교육일지도 모른다. 나는 금칠 지시서를 회수했다. 대신 대연회장의 먼지를 닦고, 의자를 세고, 손님용 물컵 여섯 개를 준비하도록 했다. 물컵이 여섯 개인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가 방문 인원을 밝히지 않았으니까. 일단 여섯 개를 준비하고 부족하면 추가하면 된다. 우리 회사 시절 부장님이었다면 참석자가 셋인데 의자를 삼백 개 빌렸을 것이다. 정식 방문 요청서는 두 통이었다. 하나는 '천상 교역 관리단'. 다른 하나는 '천계 공동 사절단'. 두 문서 모두 봉인 계정 `00-성전` 열람을 요구했다. 그런데 작성자가 달랐고, 수신 방식도 달랐다. 전자는 중립 공관의 운송편, 후자는 국경 검문소를 통해 들어왔다. “둘이 같은 조직일까요?” 피코가 문서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모른다.” “같이 온다고 적혀 있잖아요.” “같이 오겠다는 건 약속이지, 신분증은 아니지.”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도 이제는 속사정이 아닌 확인 가능한 사실부터 적는다. 기특했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회계팀의 희망이 되어버린 임프라니. 물론 실제 나이는 잘 모른다. 임프는 키가 작아서 연령을 짐작하기 어렵다. 우리는 왕국 재무관 라델과 공동 회신을 작성했다. 방문은 허용한다. 다만 참석자 명단, 소속 증빙, 계정 열람을 신청할 권한을 보여 주는 수권 문서, 열람 범위, 원본 반출 계획을 도착 전 제출할 것. 신원 확인이 끝나기 전에는 손님 대접만 할 뿐 봉인 기록은 열지 않는다. “이렇게 쓰면 화내지 않을까요?” 피코가 물었다. “화내면 더 좋지. 화났다는 이유로 계약서를 안 내는 업체는 걸러야 하거든.” “천계가 우리 성을 공격하면요?” “그건 외교실에서 처리할 일이지. 재정실이 회계 문서 열어주면서 전쟁까지 막아야 해?” 사실 조금 겁났다. 신들까지 장부에 손을 댄다면 그다음에 오는 건 무엇일까. 전 우주 공인회계사 협회? 생각만 해도 야근이 늘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오후에는 몰트 실장과 보관 절차를 점검했다. `00-성전`이라는 문자열이 등장한 건 예전부터였다. 처음엔 봉인 계정의 이름이었고, 지난달에는 분쟁 예방 적립금 상위 귀속란에도 나타났다. 하지만 글자가 같다고 같은 곳으로 돈이 들어갔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금고에 '내 통장'이라고 적었다고 정말 그의 통장이 되는 건 아니니까. “실장님, 계정의 실제 지급 기록은 어디까지 확인됐죠?” “분쟁 적립금에서 중간 보증 회계소로 넘어간 내역 일부. 그다음은 봉인되어 있네.” “그래서 열람할 필요는 있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부분만.” 몰트의 눈구멍에서 푸른 불빛이 조용히 흔들렸다. 열두 세기를 산 해골에게 개인정보 보호를 설명하고 있다니. 이 정도면 내 경력도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는 열람 전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누가 신청했고, 어떤 법적 근거를 냈으며, 누구의 권리를 건드리는지, 어느 시간에 어느 부분을 봤는지. 피코는 서명을 세 번 확인할 수 있도록 서식까지 만들었다. “용사님, 방문자는 반드시 서약해야 하나요?” “비밀 유지 서약은 받아야지.” “거절하면요?” “자료를 못 보여주는 거지. 방문을 못 하게 하는 건 아니고.” 피코가 활짝 웃었다. 바로 그런 구분이다. 거절권을 지킨다고 해서 누구든 영원히 문밖에 세워 놓으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비용표의 승인 칸을 확인했다. 준비 물품에는 이미 지급된 항목과 아직 예정에 불과한 항목이 섞여 있었다. 피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정이랑 지급은 왜 따로 적어요?” “돈을 쓴다고 말한 것과 실제 쓴 건 다르니까.” “그럼 제가 주문만 했던 과자는요?” “예정이지.” “마왕님께서 이미 한 상자를 드셨는데요.” “그럼 소비까지 했네. 지급 확인부터 하자.” 피코는 황급히 주방으로 달려갔다. 외교보다 과자 관리가 급한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왕국에서 문서 꾸러미가 도착했다. 라델은 참석 예정자 네 사람의 이름을 적어 보냈다. 맨 위에는 '세라핀, 천계 공동 사절단 대표'. 그 아래로 기록 담당자와 호위 담당자, 그리고 이름 대신 직위만 적힌 '제3감리 참관인'이 있었다. “명단에 이름이 비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직접 확인하러 오겠다고 했소.” 라델은 피곤한 얼굴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국인 마왕성에 와서 서류를 같이 보는 일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겠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업무 범위를 과소평가하며 산다. “참관인은 왜 익명입니까?” “그게 문제요. 왕국 쪽 원본에도 이름이 없소. 다만 참관 직책의 오래된 인장 번호가 찍혀 있지.” “대리번호 0003이요?” 라델이 눈을 들었다. “아니오. 세 자리 숫자가 아니오. 공관의 창설 연도와 관리 좌석 번호가 적힌 다른 표기요.” 나는 한숨을 돌렸다. 문서에 숫자 3이 나왔다고 전부 같은 음모로 연결할 수는 없다. 숫자 3에게는 죄가 없다. 바로 그때 성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신성 계약 접근 요청이 감지되었습니다.] 또 시작이군. 이 문구는 내 눈에만 보인다. 피코도 몰트도 검의 상태창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검이 거짓말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독립된 증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왜 그래?” 루시아가 물었다. “검이 일하자고 그러네요.” “좋은 검이다.” “주말에도 일하면 좋은 직원입니까?” 루시아는 잠깐 생각했다. “본인이 원하면.”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성도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 손님이 오기 전 확인할 건 신분증뿐이 아니었다. 이동 동선, 입회자, 경비와 자료 열람 장소까지 정해야 했다. 마왕성은 소설에서 보면 웅장한 성이지만, 실무적으로 보면 복잡한 공공기관이나 다름없었다. 창고와 병영과 감옥이 한 건물에 있었고, 복도마다 이름이 다른 출입 통제 장치가 붙어 있었다. “천계 사절단을 어디로 안내하지?” 루시아가 물었다. “제3회의실이요.” “대연회장이 더 크다.” “서류를 보는데 그렇게 큰 방이 필요합니까?” “전하께서 대연회장을 보여 주고 싶어 하신다.” “그럼 회의 끝나고 견학을 시켜 드리죠. 개인 사무실까지 다 보여 줄 건 아니잖아요.” 루시아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검을 뽑기 전에 한 번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좋은 변화다. 물론 생각 끝에 검을 뽑을 때도 있지만. 제3회의실에는 창문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정원 쪽, 하나는 오래된 종탑 쪽이었다. 몰트는 정원 쪽 창문을 봉쇄하자고 했다. 천계 측이 원격 열람 주문을 사용하면 바깥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럼 양쪽 다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가능하네.” “그러면 회의실이 감옥이 됩니다.” 나는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열람 대상 문서는 중앙에, 입회 기록은 양옆에 놓고, 원격 전송을 막는 차폐막은 서류 테이블에만 설치한다. 사람까지 답답하게 가둬 놓을 필요는 없다. 우리 회사 회의실도 창문이 없었는데, 거기에 갇혀 세 시간씩 보고받는 건 거의 형벌이었다. 피코는 좌석표를 보다가 물었다. “천계 사절단이 왕국 재무관님하고 마주 앉으면 싸우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자리를 떨어뜨릴까요?” “좌석만 멀어져도 같은 문서를 보게 되면 결국 대화해야 해. 대신 누가 언제 발언했는지 기록하자.” 피코는 빈 종이 위에 작은 칸을 만들었다. [발언자 / 확인 자료 / 이의 제기 / 후속 조치] “이거면 될까요?” “좋네. 특히 후속 조치 칸.” “왜요?” “말만 해놓고 나중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막을 수 있으니까.” 왕궁에 처음 소환됐을 때 누군가 이런 표를 만들어 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국왕이 세상을 구하라고 말했을 때 옆에 '수행 기간 미정, 임금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나를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던 사람들이 조금은 민망해했을지도 모른다. 저녁 식사 후에는 방문객 보험과 응급 치료 문제를 확인했다. 마왕성에는 오우거용 치료소와 기사단용 치료실이 있었지만 인간이나 천계 사절을 위한 일반 치료 절차는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나도 처음 왔을 때 알았다면 놀랐을 문제였다. “누가 다치면 누가 책임집니까?” 내 질문에 제르칸은 가슴을 쾅 쳤다. “본왕이 책임진다!” “좋습니다. 그럼 책임의 범위를 문서로 정합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전하께서 진짜로 책임지시려면요.” 그는 곧장 시종장을 불렀다. 방문객의 안전사고가 나면 우선 치료를 제공하고, 과실과 비용은 조사 후 판단한다는 간단한 규칙을 만들었다. 대단한 법률이 아니었다. 다쳤는데 누가 잘못했는지 먼저 싸우느라 치료가 늦어지는 일을 막자는 것이다. 작은 규칙 하나를 정했을 뿐인데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천계 사절단이 정말 천사라면 다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인간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안전 규칙을 생략하고 싶지 않았다. 강한 사람이라고 피해를 볼 권리까지 없는 건 아니니까. 피코가 정리한 비용표를 보고 웃음이 났다. 물컵 여섯 개, 작은 과자 두 접시, 차 세 종류, 치료실 비상 대기 인원 두 명. 금칠 비용은 영. 마왕성의 위대한 외교가 생각보다 소박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도윤 님.” 피코가 물었다. “진짜 천사가 오면 소원을 빌 거예요?” “응.” “뭔데요?” “내가 이름 쓰지 않은 서류에는 내 이름을 넣지 말아 달라고.” 피코는 잠깐 웃더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 임프에게도 그게 왜 중요한지 조금은 전해진 모양이었다. 밤이 깊자 성문 초소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천계에서 보냈다는 전령이 혼자 도착했단다. 우리가 기다리는 사절단보다 먼저 찾아온 것이었다. 피코는 우편 전령이 도착했다는 통지를 회의 접수대장에 적었다. 정식 사절단 명단에는 없는 방문자라, 우선 초소에서 서류만 접수하고 개인 통행은 별도 확인하도록 했다. 마왕성의 문은 크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열어 두는 건 아니다. 전령은 날개가 없었다. 금빛 갑옷도 없었다. 회색 망토에 진흙 묻은 장화를 신은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편지를 건네려다가 멈칫했다. “무엇을 확인하십니까?” “받는 사람 이름을요.” “한도윤 씨 앞으로 되어 있습니다.” 편지 봉투에는 내 이름이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성명 옆에 작은 표식 하나가 더 있었다. '최초 접수 예정자'. “이거 누가 쓴 겁니까?” 전령이 말했다. “전 모릅니다. 다만 봉투를 열어도 된다는 허가가 있어야 해서요.” “누구 허가요?” “편지의 수신인 말입니다.” 아. 드디어 누군가 수신인에게 먼저 물어본다. 그것만으로도 묘하게 반가웠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봉투 안에 무엇이 있는지보다, 봉투에 적힌 표현이 더 신경 쓰였다. 내가 이세계에 오기 열하루 전부터 등록됐던 그 이름. 송-4189와 함께 보관된 그 기록. 그것이 정말 내 소환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일까. “전령님. 접수 기록부터 보여주시겠어요?” 그녀는 잠시 나를 보더니 망토 속에서 작은 영수증을 꺼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취인 한도윤. 발송 예약: 소환 열이틀 전. 실제 발송: 오늘. 발송 지시자: 공란.] 나는 영수증을 다시 읽었다. 열하루도 아니고 열이틀 전. 내가 회사에서 야근하며 프린터와 싸우기보다 먼저, 누군가 이 편지를 보내려고 예약해 놓았다는 말이었다. 이건 접대비로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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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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