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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52화
PAYLUA ORIGINAL · 제52화

52화. 폐업한 공방이 정산서를 보냈습니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736자

오프라인 책장
폐업한 회사에서 돈이 나간다. 대한민국이라면 먼저 통장을 확인할 일이다. 이세계에서는 조금 다르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폐업했다고 그 회사의 마법 인장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몰트 실장님은 내 보고서를 읽더니 턱뼈를 만졌다. “제8호 공방이라. 이름은 들어 본 적 있네.” “거래해 보셨습니까?” “없네.” “그런데 왜 아세요?” “삼백 년쯤 전 제7호 공방이 화재를 냈거든. 그때 제8호가 옆에서 소방용 구슬을 팔았다네.” “실장님, 제8호가 열세 해 전에 폐업했다고요.” “아. 그럼 다른 제8호였나 보군.” 천이백 년 산 사람의 기억은 무궁무진했지만 정확한 검색 결과가 아닐 때도 많았다.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오래된 서랍 수천 개가 머릿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다. “일단 사람을 찾읍시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오래된 공방 대표가 아니었다. 마왕성 구매실의 담당 오우거였다. 구매대장을 관리하는 브룩은 키가 내 두 배였고, 두꺼운 손가락으로 작은 서류를 넘길 때마다 종이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제8호 공방? 우리도 최근 주문한 적 없는데.” “그럼 이름은 왜 납품업체 목록에 남아 있습니까?” “옛날 거래처니까.” “폐업 처리 표시가 없네요.” 브룩이 눈썹을 찌푸렸다. “거래처를 지우면 예전 전표가 안 뜬다고 해서….” “지우라는 게 아니라 사용 중지로 바꿔 달라는 겁니다.” “그런 기능도 있어?” “없으면 만들죠.” 브룩은 감동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인간. 너는 왜 이렇게 착한 거냐?” 아니. 기능 하나 추가하자는 말인데 너무 큰 칭찬 아닌가. 피코가 옆에서 웃었다. 나는 구매 장부의 업체명과 실제 계좌를 분리해 조회했다. 제8호 공방과 연결된 마지막 납품은 열세 해 전. 그 뒤로 정규 납품은 없었다. 대신 분기마다 소액의 '인장 유지 관리료'가 잡혀 있었다. “이 금액이 얼마죠?” “한 번에 금화 세 닢.” “어디로 갑니까?” “중립 정산대행.” “누가 승인했어요?” 브룩이 장부를 넘겼다. “자동 이월.” 아. 정말 싫어하는 단어가 나왔다. '자동'이라는 말에는 편리함과 공포가 동시에 들어 있다. 한 번 승인해 놓으면 아무도 보지 않아도 돈이 나간다. 특히 누가 승인했는지 모르는 자동 지급은 멀쩡한 회사에도 기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지난달에도 나갔잖습니까.” “응.” “제8호 공방은 폐업했고요.” “응.” “서비스 제공 확인은요?” “그게….” 브룩은 손등을 긁었다. “검사 장치가 고장 나서 다들 그냥 넘어갔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브룩에게 모든 책임을 씌울 일은 아니다. 정산대행 계약, 자동 이월을 허용한 승인권자, 고장 난 검수 장치의 관리 주체를 각각 확인해야 한다. “미지급으로 바꾸고 신규 이체부터 잠시 보류하겠습니다. 기존 서비스가 계속 제공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걸 지금 하면 수리 구슬이 멈추지 않겠어?” “그게 걱정입니다. 그래서 사용 중인 장치부터 찾아볼 겁니다.” 피코가 손을 들었다. “저희가 제일 먼저 살펴볼 게 있어요.” “뭔데?” “인장 유지 관리료를 받는 중립 정산대행의 이름이요. 청구서에는 글자가 일부 지워졌습니다.” 피코가 양피지를 기울였다. 햇빛을 받자 희미한 글씨가 보였다. [하… 교역 …리단] 천상 교역 관리단일 수도 있다. 다른 조직일 수도 있다. “확정할 순 없네.” “네. 그래서 원본 조회 요청을 넣어 뒀어요.” 훌륭하다. 점심에는 제8호 공방을 마지막으로 감독했던 중립 장인 길드를 찾아갔다. 중립 구역으로 또 출장을 가야 하느냐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길드의 마계 지부가 있었다. 담당자는 작은 고블린 할머니였다. 이름은 셀비. 주름진 얼굴과 달리 목소리가 우렁찼다. “제8호? 거기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오랜만이구먼.” “폐업 당시 문서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왜?” “이름으로 관리료가 청구되고 있어서요.” 셀비는 차를 마시다 기침했다. “아직도?” 그 짧은 반응이 참 의미심장했다. 그러나 놀랐다는 사실만으로 그녀가 무엇을 아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시는 게 있습니까?” “그 공방은 어느 날 장부를 싹 비우고 문을 닫았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직원 하나가 실업 보조금을 신청했지.” “누구죠?” “이름은…” 그녀가 낡은 색인 상자를 뒤졌다. “메르넬. 드워프였어. 내 기억으로는 손이 좋은 장인이었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북부의 종탑 아래에서 장난감 가게를 한다고 들었는데, 아직 하는지는 모르네.” 우리는 연락처를 적었다. 셀비는 먼저 퇴직자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으라고 당부했다. 공방이 사라진 일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별개니까. 길드를 나서자 루시아가 못마땅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너무 조용한 사건 아니냐?” “뭘 기대하셨어요?” “장인 길드장과의 일대일 결투.” “서류 열람하러 왔는데 왜 싸웁니까.” “오래된 원한 같은 것이 있을 줄 알았다.” “원한은 있을 수도 있죠. 다만 원한이랑 지급증은 서로 다른 겁니다.” 그녀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결투하기 전에 지급증을 확인하겠다.” 그 정도면 진전이다. 북부 종탑 아래 장난감 가게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무로 만든 새가 날아다니고 조그만 병정 인형들이 서로 인사를 했다. 진열대 한구석에는 무릎이 흔들리는 장난감 마왕도 있었다. “그거 우리 전하 닮았는데요.” 피코가 속삭였다. “너무 닮았지.” 인형의 버튼을 누르니 팔을 번쩍 들었다. “본왕에게 경의를 표하라!” 나는 재빨리 버튼을 끄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루시아는 다른 인형을 구경 중이었다. 이걸 마왕에게 들키면 장난감 가게가 갑자기 왕실 납품업체가 될지도 모른다. 가게 안쪽에서 작은 드워프 노인이 나왔다. “무엇을 찾소?” “메르넬 장인님이십니까?” “그렇소.” 나는 재정실 소속 신분증과 문의서를 내밀었다. 장인은 그걸 보더니 미간을 좁혔다. “왜 옛 공방 이야기를 꺼내는 거요?” “공방 명의의 정기 청구가 아직 남아 있어서요. 관련 기록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손이 멈췄다. “또 돈을 요구한다고?” “정확히는 정산대행에서 자동으로 청구합니다. 누가 돈을 받았는지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가게 문에 '잠시 쉬는 중'이라는 팻말을 걸었다. “들어오시오.” 뒤쪽 작업실은 작은 기계와 목재 냄새로 가득했다. 낡은 탁자 위에는 여러 인장 틀과 작은 태엽이 놓여 있었다. 메르넬은 자리에 앉아 손가락을 폈다. 오른손 검지 끝이 짧았다. “그날 이후로 큰 금형은 못 만지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기계가 멈췄다고 해서 손을 넣었지. 그런데 다음 순간 다시 움직였소.” 그는 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누가 다시 켰는지는 몰라. 분명한 건 안전장치가 풀려 있었다는 거요. 그리고 회사는 그 사고를 개인 부주의라고 적었지.” 루시아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검으로 싸우는 건 좋아하지만 부상자의 이야기를 가볍게 듣는 사람은 아니다. “보상은 받으셨습니까?” “한 달치 급료.” “장해에 대한 지급은요?” “없었소.” 또 시작이다. 이 세상에서 보험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왕궁에서의 첫 상담이 떠오른다. 중요한 일을 맡기면서 다치면 알아서 하라는 사람들. “그 자료도 확인해도 될까요? 동의하시면 별도 사건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메르넬은 나를 한참 바라봤다. “왜 그런 걸 묻소?” “그 사고가 업무 중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해 준 사람은 오랜만이오.”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한 게 없는데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서류를 보기 전에 메르넬은 오래된 찻잔 두 개를 가져왔다. 하나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이건 내가 직접 만든 물건이오.” 그는 손잡이 없는 잔을 내 앞에 놓았다. “왜 손잡이가 없습니까?” “그거 붙이다가 나중에 떨어졌지. 불편하지만 차는 마실 수 있소.” “새로 붙이시면 되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오래된 걸 버리고 새로 만드는 게 항상 답은 아니더군. 불편한 게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해.” 나는 잔을 들었다. 뜨거워서 곧바로 내려놓았다. “지금은 아주 불편한데요.” 메르넬이 껄껄 웃었다. “그렇지? 그러니까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겠지.” 이분도 은근히 교육열이 강하다. 다만 대학에서 회계학을 배우며 받았던 강의보다 지금 찻잔 하나로 배운 내용이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장인은 작업대 옆벽에 걸린 사진 구슬을 켰다. 오래전 제8호 공방의 모습이 나타났다. 장인 열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었고, 뒤에는 새로 만든 인장 기계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세상 어디나 단체 사진은 비슷하다. “저분들이 당시 직원입니까?” “그렇소. 둘은 다른 영지로 옮겼고 셋은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는 소식을 모르오.” “공방이 갑자기 문을 닫은 이유는요?” 메르넬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주문이 끊긴 게 아니었소. 주문은 많았지. 그런데 제작비보다 검사비가 더 들기 시작했어.” “검사비요?” “새로운 인증 제도가 들어오면서 매번 허가를 받아야 했지. 시험을 통과하려면 같은 도면을 세 번 제출해야 했고, 도면을 보관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냈어.” 그는 손가락으로 작은 나무 상자를 두드렸다. “사장님은 결국 공방을 팔아도 빚을 못 갚겠다고 하더군. 마지막에는 기술자를 내보내고 회계 서류만 남았소.” “그 당시 직원들 급여는 지급됐습니까?” “마지막 두 달은 절반만.” 나는 별도의 표를 만들었다. 고용 승계, 미지급 급여, 산재 기록. 공방 인장 사건을 조사하러 왔다고 해서 당시 직원들이 잃은 돈을 무시할 이유는 없었다. 메르넬은 내가 그 항목을 적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것도 조사하오?”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요. 다만 임금 지급 책임까지 곧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사업권 인수 계약을 봐야 하니까요.” “흑산 상단 말이오?” “그 이름이 나옵니까?” “공방이 닫힌 뒤 기계 일부를 사 간 곳이지. 돈을 많이 준다고 했는데 나중엔 폐기품 값밖에 안 쳐 줬다더군.” 나는 메르넬의 말 옆에 '증언'이라고 적었다. 직접 거래에 참석한 사람이 아니라면 금액은 따로 확인해야 한다. “혹시 그때의 계약서가 있습니까?” “사본은 있소. 다만 내 것이 아니라 사장님이 보관하던 거라 공개해도 되는지 모르겠군.” “그럼 소유자나 적법한 보관인부터 확인하죠.” 메르넬이 잠시 말이 없더니 웃었다. “자네는 답을 빨리 내고 싶은 마음이 없나?” “많습니다.” “그런데 왜 매번 멈추는 거요?” “빨리 낸 틀린 답은 남의 돈과 시간을 더 많이 쓰게 하니까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 검지가 짧아진 까닭에 찻잔을 잡는 자세가 조금 특이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늘 사건에서 가장 비싼 비용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잃어버린 금화는 다시 벌 수 있다. 잃어버린 손가락은 그렇지 않다. 가게 밖에서는 아이들이 장난감 마왕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거 내가 먼저 봤어!” “아니야, 내가 먼저!” 메르넬이 창밖을 보고 말했다. “가끔은 저 아이들한테 더 많이 배우오. 저렇게 싸우다가도 해가 지면 서로 장난감을 빌려주거든.” “우리 전하께서도 배우시면 좋겠네요.” “마왕이?” “네. 망토를 한 번만 빌려주셔도 예산이 줄 텐데.” 장인은 크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제8호 공방의 오래된 비극 속에서 웃음이 나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장인은 서랍에서 폐업 당시 서류 묶음을 꺼냈다. 마지막 근무 명단, 금형 폐기 확인서, 그리고 인장 유지 계약 해지 요청서였다. 해지 요청서는 정확히 열세 해 전 발송됐다. “그런데 왜 청구가 계속 나갑니까?” 메르넬이 물었다. “그걸 찾으러 왔습니다.” 나는 해지 요청서에 찍힌 접수 번호를 확인했다. [중립 정산 접수: 0003-8] 피코가 나를 봤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접수 번호 앞자리만 같다고 같은 지시자라고 볼 수는 없어.” “하지만 확인은 해야죠.” “당연하지.” 이번에는 피코가 먼저 웃었다. 그때 메르넬이 책상 밑에서 나무 상자 하나를 꺼냈다. “이건 폐기 확인서를 받을 때 함께 챙겨 뒀소. 회사가 문을 닫을 때 다들 이것까지 없애자고 했지만, 내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 버릴 수가 없었지.” 그가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금속제 인장 틀 절반이 들어 있었다. 균열 표시가 정확히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요?” “길드에 넘겼소.” “이게 원본입니까?” “내가 제작한 물건인 건 맞소. 다만 등록 원본 전체가 여기 있는지는 장부와 대조해야 하오.” 좋아. 경력 있는 장인은 말도 정확하다. 우리는 사진 구슬로 물건을 기록하고 소유권을 확인한 뒤 사본만 받았다. 그가 원본을 맡기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메르넬이 문을 닫으며 낮게 말했다. “제8호 공방이 마지막으로 만든 건 공식 인장이 아니었소.” “그럼 뭔데요?” “인장이 아직 유효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덧씌움 장치였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걸 누가 주문했죠?” 장인은 고개를 저었다. “주문서에는 이름이 없었소. 대신 사용처가 적혀 있었지.” 그가 낡은 종이의 한 줄을 짚었다. [미종결 계약의 정기 갱신 업무용.] 폐업한 업체에 돈이 나가는 이유를 찾으러 왔더니, 끝나지 않은 계약을 자동으로 살아 있게 만드는 장치를 만났다. 이 세계에서 죽은 계약은 왜 이렇게 끈질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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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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