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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51화
PAYLUA ORIGINAL · 제51화

51화. 장부에 없는 천상 관리단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664자

오프라인 책장
마왕성에 살다 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놀라게 된다. 예를 들면 마왕이 직접 만든 차를 마셔야 하는 아침이라든가. “한도윤! 원정의 피로가 남았을 터. 본왕이 특별히 차를 준비했다!” 제르칸은 사람 머리만 한 주전자에서 보랏빛 액체를 따랐다. 찻잔 안에서 작은 번개가 튀었다. “전하. 혹시 재료가 뭡니까?” “용암초와 천둥도마뱀의 혀, 그리고 검은 늪의 맑은 이슬!” 맑은 이슬만 빼면 전부 식품이 아닌 것 같은데. “드시기 전에 안전성 검사를 받아 보셨습니까?” “본왕이 마셨다!” “전하와 저는 소화기관이 다릅니다.” “그렇군!” 마왕은 순순히 잔을 거두었다. 처음 만났을 때 같으면 인간이 감히 제 차를 거부하느냐고 호통쳤을 텐데, 이제는 직원 건강 관리 규정을 먼저 떠올린다. 재정실의 작은 승리였다. 물론 그 직후 마왕은 남은 차를 루시아에게 건넸고, 루시아는 원샷했다. 번개가 머리카락 사이로 튀었다. “좋군. 입안이 따끔거리는 맛이야.” “단장님, 쓰러지시면 산업재해 신청부터 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전투인가?” “서류와의 전투죠.” 그날 나는 진짜로 서류와 싸워야 했다. 출장 가방에서 나온 쪽지. '제8호 공방 정산 잔액 확인 요청'. 수취처는 '천상 교역 관리단'. 발행인도 없고 날짜도 없었다. 누군가 일부러 넣었는지, 공관 문서에 끼어 들어왔는지조차 모른다. “이름이 멋집니다.” 피코가 쪽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천상 교역 관리단이라니. 하늘에서 장사하나 봐요.” “그러게. 배송비는 엄청 비싸겠네.” “진짜로 있으면 어떡하죠?” “있으면 사업자등록번호부터 물어보자.” 그런데 이곳에는 대한민국의 사업자등록번호가 없었다. 대신 각 영지에서 발급한 상인 인장과 길드 식별 부호, 중립 구역에서만 통하는 통행권이 있었다. 한 조직이 여러 지역을 오가면 이름도 달라졌다. 회계 담당자에게는 꽤 불친절한 세상이었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건 어머니의 김치찌개와 통합 기업 조회 시스템이다. 순서는 날마다 바뀐다. “몰트 실장님, 하늘에 물건을 파는 공식 조직이 있습니까?” “천계와 거래하는 성직자들은 있다고 들었네.” “거래 내역이 장부에 남습니까?” “남겨야겠지.” “남긴 걸 보신 적은요?” “없네.” 완벽한 답변이었다. 이분의 장점은 모르는 걸 안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이백 년을 일했는데도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심된다. 우리는 이름을 세 갈래로 나누어 조회했다. 왕국의 상인 등록 명부, 마계의 납품업체 장부, 중립 공관의 특수거래 허가 대장. 피코가 왕국 명부부터 펼쳤다. “'천상'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업체가 열셋이에요.” “제법 많네.” “천상 제빵소, 천상 목욕탕, 천상 향신료 상회…” “천상 목욕탕은 뭘 파는데?” “입욕권이요.” “마음은 천국, 가격은 지옥 같은 곳인가 보네.” 피코는 웃었지만 우리 앞에 있는 이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조직은 없었다. 마계 명부에는 '천상 교역'과 비슷한 말을 쓴 수입상 하나가 나왔으나 십오 년 전에 문을 닫았다. 중립 구역 명부는 조회 자체가 제한됐다. 등록 담당자의 허가가 있어야 과거 특수거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신청서를 작성했다. 신분, 열람 목적, 대상 기간, 필요한 항목. 꼭 필요한 범위만 적었다. 남의 계약서를 다 들여다볼 자격이 나에게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니다. “그냥 절대 감사로 알아내면 안 돼요?” 피코가 물었다. “여기서 뭘 감사하라고?” 나는 쪽지를 펼쳤다. 붉은 선도, 경고문도 뜨지 않았다. 기록끼리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야 내 고유 스킬도 반응한다. 종이 한 장을 들고 수상하다고 외치는 기능은 없다. 그건 스킬이 아니라 직감이다. “아무 반응 없는데?” “그럼 정상이라는 뜻인가요?” “아니. 비교할 자료가 없다는 뜻.” 피코는 종이에 '검증 불가'라고 적었다. 아주 훌륭하다. 이 녀석은 이제 내가 틀린 말을 하면 먼저 고칠지도 모른다. 점심 무렵 루시아가 재정실 문을 걷어찼다. 쾅! “적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쪽지를 품에 넣었다. “어디요?” “정문 앞!” “병력은요?” “둘.” “둘이요?” “엄청나게 수상한 둘이다. 흰 로브를 입은 자와 장부를 든 자.” 장부를 들었다는 이유로 적 취급을 받으면 우리 부서는 벌써 전멸이다. 정문에는 실제로 낯선 방문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인간처럼 보이는 흰옷 차림의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을 천으로 가린 소형 마족이었다. 그들 앞에는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마왕성 재정실 한도윤 담당자께 전달품이 있습니다.” 흰옷 남자가 말했다. “누구에게서요?” “전달만 의뢰받았습니다.” “의뢰한 사람 이름은?” “보안상 공개할 수 없습니다.” “수령 확인서는?” “여기 있습니다.” 그가 내민 양피지에는 수취인이 '한도윤'으로 적혀 있었다. 내용물은 '정산 열람 키'. 발송인은 공란이었다.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누가 보낸지도 모르고, 무엇인지도 검수하지 않았으니까요.” 상대가 곤란해했다. “거부하시면 운송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누가 내죠?” “수취인이요.” “그런 조건에 동의한 적 없는데요.” “보통은 다들 받으십니다.” 아, 아주 익숙하다. 배송비까지 떠넘기는 방식은 세계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구나. 나는 상자에 손대지 않은 채 봉인 문양만 보았다. 원 세 개와 세로줄 하나. 제8호 공방에서 확보한 복제 인장의 무늬와 비슷했다. 다만 똑같다고 말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옆에서 피코가 길이를 재고, 루시아가 두 방문자의 이동을 막지 않는 거리에서 서 있었다. “상자를 열지 않고도 외부 검수가 가능합니까?” 내가 묻자 소형 마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밀봉 기록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운송 기록 담당자라며 명패를 보여 줬다. 이름은 니브. 흰옷 남자는 단순 운송인이라고 했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두 사람 모두 발송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피코가 가져온 검사 구슬에 봉인 표식을 비췄다. 구슬에는 제작 순서만 나타났다. 봉인 재료는 삼 년 전 생산품, 상자는 이틀 전에 접수. 제8호 공방이 열세 해 전에 폐업했다는 기록과는 맞지 않았다. “새 봉인에 옛 무늬를 쓸 수도 있겠죠.” 내가 말했다. 니브가 한숨을 쉬었다. “제가 아는 것도 거기까지입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이 한 일을 확인하면 되니까.” 운송인이 수상한 상자를 가져왔다고 해서 곧바로 공범이 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택배 기사님에게 배송 상품의 제조 비리를 따져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먼저 말릴 것이다. 흰옷 남자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반송한다면 여기 서명해 주십시오.” 봉투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웃음이 나왔다. [수취 거부에 따른 위험 부담 승계 동의] “아니, 제가 안 받겠다는 건데 왜 위험을 넘겨받아요?” “규정이 그렇습니다.” “어느 조직 규정이죠?” 남자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수취 거부 사실만 적은 별도 확인서를 작성했다. 발송인 미상, 내용물 미검수, 봉인 상태 이상 없음. 운송인은 그 문서에 서명했고 수수료는 발송인에게 청구해 달라는 요구도 접수했다. 상자는 중립 검수소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루시아는 조금 아쉬운 얼굴이었다.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 “네. 배송 사고는 검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나도 택배를 보내 볼까?” “무엇을요?” “왕국 장군에게 결투 신청장.” “그건 보내지 마세요.” 성으로 돌아오는 길, 니브가 나를 불렀다. “담당자님. 아까 상자를 접수할 때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뭔데요?” “운송료를 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같은 상자에 두 번 결제가 들어왔어요.” 이중 결제. 드디어 숫자가 나왔다. “두 결제의 명의는요?” “첫 번째는 공란. 두 번째는…”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명세표를 접었다. “제가 여기서 공개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중립 검수소에 증빙을 남겨 주세요. 공개 범위부터 확인하고요.” 니브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저녁이 되자 피코가 중립 검수소에서 보낸 접수 확인서를 가져왔다. 상자는 반송 상태로 보관됐고, 두 번째 운송료 납부 명의는 조회 제한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신 납부 계정의 끝 네 자리만 보였다. [...0003] 나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기이하게도 세상은 내가 이 번호를 잊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도윤 님. 대리번호 0003이죠?” “끝 네 자리가 같을 뿐이야. 같은 계정이라는 보장은 없어.” “그렇겠죠.” 피코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그런데 확인해 볼 가치는 있죠?” 나는 웃었다. “당연하지.” 그보다 먼저 확인할 게 있었다. 정체를 모르는 상자가 왜 하필 내 앞으로 온 걸까. 마왕성 재정실에 들어오는 우편은 원래 한 곳으로 모인다. 포장 상태를 확인하고,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 뒤 서기가 기록을 남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이런 절차가 없었다고 한다. 해골병사가 창문으로 편지를 던져 넣으면 그게 배송 완료였다고 하니, 여기선 택배가 아니라 투석에 가까웠다. “피코. 오늘 상자 기록은 정문 출입대장에 남았지?” “네. 운송인이 머물렀던 시간도 적혀 있어요.” “누가 상자를 직접 만졌는지도?” “경비병 둘이 포장 밑면을 확인했습니다. 열지는 않았고요.” “잘했네. 그분들한테 추가 근무 수당 필요 없는지도 물어봐.” 피코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웃었다. “도윤 님은 꼭 마지막에 월급 이야기를 하세요.” “마지막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는 게 좋지.” 나는 출입대장을 펼쳤다. 기사단 경비대의 글씨는 제각각이었다. 오우거 경비병은 이름 대신 손도장을 찍었고, 해골병사는 뼈 모양 서명으로 끝냈다. 누가 봐도 정신없는 서류였지만 이상하게 정감이 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지키는 성이다. 그런데 상자가 정문에 도착한 시간보다 일찍 재정실로 사전 배송 통지가 왔다는 기록이 있었다. 보통 택배라면 문제없다. 운송장을 먼저 보내기도 하니까. 다만 통지서의 발신지는 '천상 교역 관리단'이 아니었다. [중립 회계 보관 구역 / 출처 미확정] “회계 보관 구역?” 몰트가 미간이 있을 법한 자리를 찌푸렸다. “거긴 정기 보고서 복제본을 임시로 두는 곳이네.” “누구나 접근할 수 있습니까?” “전쟁 전에는 그랬지. 지금은 왕국과 마계가 각자 열쇠 하나씩 가져야 열 수 있을 걸세.” “그럼 둘 다 열쇠가 필요하다는 뜻이네요.” “원칙상.” 원칙상이라는 말이 이렇게 불안할 줄이야. 우리는 보관 구역에 연락해 오늘 봉인된 화물 접수 명단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오늘 배송 요청은 없었다. 대신 어제 늦은 밤 누군가 일반 문서 접수 번호를 화물 전달용으로 전환하려 했고, 권한 부족으로 반려됐다는 기록이 있었다. “실패한 거면 상자는 어떻게 왔죠?” 피코가 물었다. “다른 경로를 쓴 걸 수도 있고, 처음부터 별개인 상자일 수도 있지.” 나는 표시를 두 개 했다. 하나는 일반 문서 접수 변환 시도, 다른 하나는 실제 화물 상자 도착. 두 사건은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 옆에서 루시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누가 우리 성 앞까지 찾아왔는지도 모른다는 거군.” “운송인은 확인됐죠. 실제 발송인이 미상인 겁니다.” “나는 이런 게 싫다. 싸울 상대가 없다.” “그럼 오늘은 상대가 아니라 증거를 지키시면 됩니다.” “증거가 도망가기라도 하나?” “가끔은 도망갑니다. 누가 태워 버리거나 다른 창고로 옮기거든요.” 루시아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럼 내가 증거를 지키겠다.” “좋습니다. 다만 증거도 베시면 안 됩니다.” 내가 엄중하게 말하자 그녀는 검집을 슬쩍 등 뒤로 숨겼다. 밤이 깊어지자 재정실은 조용해졌다. 박쥐가 천장에서 졸고 있었고 피코는 남은 장부의 합계를 맞추고 있었다. 나는 상자의 봉인 사진을 한 장 더 들여다봤다. 분명 수상하다. 그러나 아직은 발송인이 누구인지도, 내용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물건이다. 한국에서 회계감사를 할 때 가장 힘든 순간은 잘못을 발견한 순간이 아니었다. 잘못인지 아닌지 결론을 못 내린 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결과를 원한다. 그런데 결과를 얻으려면 때로는 기다려야 한다. 나는 기록 표 맨 위에 썼다. [배송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배송품 안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음. 쓰고 나니 조금 멋있다. 나중에 명언집을 낼까. 피코가 뒤에서 읽더니 말했다. “도윤 님. 누가 안 받은 물건에 동의했다고 생각하겠어요?” 아.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이 세계에서 살다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을 어렵게 하게 된다. 그날 업무 일지의 제목은 이렇게 정했다. [천상 교역 관리단: 실재 여부 미확인. 발송인 없는 상자: 수취 거부. 중복 운송료: 원본 조회 요청.]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았다. 다행히 그건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었다. 문제는 퇴근 직전 도착한 회신이었다. [제8호 공방 폐업 후에도 명의 사용에 따른 정산 청구가 매년 발생함. 청구 중지 신청 접수 이력 없음.] 열세 해 전에 문을 닫은 공방. 그 이름으로 누군가는 아직도 돈을 청구하고 있었다. 나는 피코를 불렀다. “내일 일정 하나 잡자.” “어디로요?” “폐업한 회사의 회계 담당자를 만나러.” 피코가 눈을 크게 떴다. “그분이 살아 계시면요?” “살아 계시면 좋지.” “돌아가셨으면요?” 마왕성에는 리치가 있다. 오히려 그쪽은 전화번호만 있으면 쉽게 찾을 것 같기도 했다. “그때는 실장님 인맥을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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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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