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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50화
PAYLUA ORIGINAL · 제50화

50화. 출장은 끝났지만 장부는 남았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449자

오프라인 책장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적이 있다.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적. 그리고 오래전에 폐지된 인장으로 결재를 올리는 적. 전자는 루시아가 잘 상대한다. 후자는 내가 상대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전자가 조금 부럽다. 적어도 칼 든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보여 주잖아. 제2공관의 회의실에는 오늘도 서류가 쌓여 있었다. 에브란은 창가에서 차를 마셨고, 라델은 왕국 측 답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레인은 중립 공관의 임시 지급 협정을 두 번 읽고 있었다. “마을 환급금은 오늘 지급될 수 있습니까?” 나는 피코에게 물었다. “네. 양측 예비금에서 절반씩 송금하기로 했어요.” “그럼 지급증 확인하고 마을 대표에게 알려 줘.” “이미 보냈어요.” 오. 우리 서기, 이제 선수를 친다. 금화 열여덟 닢. 거대한 전쟁 경제의 비밀에 비하면 작은 돈이다. 하지만 그 돈을 내느라 겨울 난방비를 줄여야 했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전혀 작은 돈이 아니었다. 나도 안다. 회사에서는 천만 원 단위의 지출을 처리하면서도 퇴근길 버스비 몇 백 원에는 신경을 쓰게 된다. 숫자의 크기는 보는 사람의 자리에서 달라진다. “왕국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라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린 문서는 뜻밖에도 두 장뿐이었다. [공동 조사 임시 중단 명령에 대한 보완 통지] [성검 소지자의 강제 반환 조치: 공동 검증 종료 시까지 보류] 나는 문서를 받아 들고 세 번 읽었다. “강제 반환을 보류한다고요?” “네. 기술적 분리 불가능성이 확인될 때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그럼 군대가 저를 잡으러 오는 일은 없는 겁니까?” “그 명목으로는 없을 겁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왕국에서 쫓겨난 뒤 지명수배 전단을 봤을 때는 내가 살아남을 길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왕국은 강제 반환을 멈추겠다는 서류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미묘한 점이 있었다. “지명수배 취소는 아니네요.” 라델이 고개를 저었다. “그 건은 별도 심사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보류와 취소는 다르니까요.” 아쉬웠지만 적어도 한 발은 나아갔다. 제르칸이 들으면 좋아하겠지. 자기 직원이 더 이상 왕국 유물 절도범 취급을 받지 않는다고. 그때 에브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도윤, 네게 보여 줄 게 있다.” 그는 어제 확보한 복제 인장의 표면을 가리켰다. 금속판 가장자리에는 제작소 표식이 아주 작게 새겨져 있었다. “이걸 확대해 볼 수 있나?” 피코가 작은 렌즈를 꺼냈다. 마법 양피지를 다루는 서기에게 렌즈는 필수품이었다. 장부의 작은 글씨 때문에 시력이 나빠질까 봐 전에 사 줬다. 표식은 어딘가 익숙했다. 내가 보자마자 기억한 건 아니었다. 피코가 자료집에서 비슷한 모양을 찾아냈다. [중립 수리공방 제8호 / 제작자 등록 기호] “제8호 공방이요?” “현재는 없어졌네.” 에브란이 말했다. “언제요?” “열세 해 전.” 또 폐업한 조직이다.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을 조사할 때마다 '오래전에 없어졌다'는 대답을 들으면 이제 웃음부터 나온다. 나중에는 폐업한 가게들만 모아서 회계 장부를 만들고 싶다. “후계 업체는요?” “흑산 상단이 사업권 일부를 인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결국 또 흑산 상단이다. “그럼 상단이 인장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아직은 아니지.” 에브란이 대답했다. “제작 기호는 오래된 금형을 사용했을 때도 남을 수 있네. 누가 제작했고 언제 유통됐는지 확인해야 해.” 좋아. 이 노인과는 정말 말이 잘 통한다. 우리는 사라진 공방의 거래 목록을 추적하기로 했다. 흑산 상단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자체로 범죄는 아니었다. 사업권을 인수했다고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물건의 책임까지 지는 건 아니다. “그럼 이번 출장 보고서는 여기까지인가요?” 피코가 물었다. “아직 한 가지가 남았어.” “뭔데요?” “내 이름이 소환 전에 접수된 이유.” 에브란은 조용히 다른 서류를 꺼냈다. 내 동의를 받아 열람할 수 있는 마지막 기록이라고 했다. [한도윤 / 사전 등록 접수 사유] 그 아래에 단문 하나가 있었다. [분쟁 당사자 식별 전 임시 보존] “분쟁 당사자?” 내가 묻자 에브란이 말했다. “누군가 네가 들어올 계약을 두고 다투고 있었던 거야. 아직 누가 다퉜는지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제가 이세계에 오기 전부터요?” “기록상으로는 그렇네.” 나는 그 말을 잠시 곱씹었다. 왕국은 천 년에 한 번 나타나는 용사라고 했다. 신의 선택이라며 축하했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무슨 일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미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어떤 계약에 포함될지를 놓고 다투고 있었다는 건가. “제3감리인이 그래서 동의를 확인하려 한 겁니까?” “그랬을 가능성이 있어.” “그럼 그 사람이 적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것도 아직은 모르지.” 또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이만큼 확인된 것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을 구분했으니까. 귀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한 가지 규칙을 세웠다. 확인된 사실은 첫 장에 적고, 가능성은 두 번째 장에 적는다. 누군가의 기억과 추측은 세 번째 장에 넣는다. 그리고 여기에 속하지 않는 개인적인 감정은 따로 일기에 적는다. 그렇게 분류하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질 때마다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음모처럼 보인다. 피코는 옆에서 보고서 목차를 읽었다. “왕국의 강제 회수 보류, 중립 보증료 과납 가능성, 예비 소환 등록, 복제 인장 발견……. 정말 많이 했네요.” “많이 한 것 같긴 한데 끝난 건 별로 없지.” “그게 꼭 나쁜 건가요?” 나는 녀석을 바라봤다. “왜?” “시작하기 전에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잖아요. 지금은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아요.” 아.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해결됐다는 도장만 찍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실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만으로도 다음 사람이 훨씬 편해진다. 우리 회사에서 그걸 깨닫는 데 칠 년이나 걸렸다. “그럼 네가 이번 보고서의 미확인 사항 목록을 만들어 줘.” “제가요?” “응. 너라면 잘할 것 같아.” 피코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펜을 들었다. 첫 번째는 송-4189 원본의 구성과 전송 지시자. 두 번째는 대리번호 0003의 현재 사용 주체. 세 번째는 중립 제8호 공방의 인장 제작 이력. 네 번째는 내 사전 등록과 성검 서약의 실제 법적 관계. 다섯 번째는 00-성전 계정으로 실제 돈이 이동했는지 여부였다. “여섯 번째도 있어요.” “뭔데?” “도윤 님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 나는 펜을 놓았다. 피코는 계속 적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돌아가기 전에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 “그건 감사 보고서 항목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중요하잖아요.” 나는 웃었다. “맞네.” 그래서 일곱 번째 항목은 보고서가 아니라 내 개인 수첩에 옮겼다.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아직 모르겠다. 돌아가고 싶은지, 여기 남고 싶은지. 가족이 보고 싶은 마음과 마왕성 사람들이 걱정되는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를 잡아당겼다. 그때 몰트가 보고서 문장 하나를 지적했다. “여기 '제3감리인이 등록을 거절했다'고 쓰여 있군.” “문제 있습니까?” “실제 거절 주체가 자동 장치일 가능성도 있네. 제3감리 권한에 의한 거절로 써야 하지 않겠나?” 나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렇네. 누군가 직접 거절한 것인지 시스템이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반려한 것인지 아직 모른다. “수정하겠습니다.” 몰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이백 년 근속한 실장님이 이제는 나보다 표현에 더 엄격해졌다. 참 뿌듯하면서도 약간 억울하다. “제가 가르친 걸로 저를 혼내시는군요.” “좋은 직원은 상사를 성장시키지.” “그걸 이렇게 써먹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웃었다. 보고서에는 마을 주민과 채석장 작업자에게 실제로 지급한 금액도 구분했다. 채석장 치료비와 안전 공제액 일부는 앞선 조사에서 이미 지급했다. 이번 휴전항 마을의 과납 반환은 별도 사건이었다. 서로 다른 피해를 한 문장으로 뭉뚱그리면 나중에 누가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게 된다. 피코가 색인 표를 만들었다. [북부 채석장: 일부 지급 완료 / 잔여액 조사 중] [휴전항 방호벽 마을: 임시 반환 지급 확인] [성검 관련 금전 보증: 수취 여부 미확인] 나는 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보기 좋다.” 피코가 어깨를 폈다. “제가 만들었어요.” “알고 있어. 이름도 적어 둬.” “네!” 그 뒤 우리는 제르칸에게 올릴 요약 보고서를 만들었다. 마왕이 원하는 건 대개 세 가지다. 적을 이겼는지, 국고를 아꼈는지, 자기가 멋지게 보였는지. 이번에는 첫째는 해당 없음, 둘째는 일부 성공, 셋째는 아직 모름이었다. “셋째를 왜 쓰세요?” 피코가 물었다. “전하께서 꼭 물어보시거든.” “그럼 어떻게 대답하실 건데요?” “이번 일은 왕국과 마계가 싸우지 않고 같이 조사한 일이니까 전하의 위엄이 높아졌다고 해 보려고.” “그건 정말인가요?” “외교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증빙은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 이 녀석에게 농담하기도 어려워졌네. 결국 셋째 항목은 삭제했다. 마왕의 위엄은 언젠가 정식 지표로 만들든지 해야겠다. 어차피 그런 지표를 만들면 전하가 매일 수치를 확인하실 테니 안 만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 우리는 마왕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아레인은 왕국 기록을 봉인했고, 몰트는 마계 서류를 따로 묶었다. 루시아는 검집을 닦았다. 검을 한 번도 뽑지 못했다며 몹시 억울해했지만, 이번 출장은 사람을 베지 않고도 성공적으로 끝난 셈이다. 출발하기 전 세베나가 우리를 찾아왔다. “방호벽 마을 대표가 전해 달라더군요.” 그녀는 작은 천 주머니를 내밀었다. 안에는 구운 견과와 말린 과일이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드시라고요.” “이런 건 받으면 안 될 수도 있는데…….” “선물 기록은 남겨 두었습니다. 금액도 아주 적어요.” 아. 여기도 이제 서류를 잘 쓰는군. 나는 웃으며 주머니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마차가 움직이고 강이 사라진 옛 항구를 지나자, 성검이 미세하게 빛났다. [임시 보호 상태: 확인] [당사자 동의 없는 강제 이행: 심사 보류] 나는 검을 내려다봤다. “야. 이것도 일단 보류라는 거지?” 대답은 없었다. “그러면 좋다. 서로 확실해질 때까지 멋대로 계약 진행하지 말자.” 빛이 잠깐 잦아들었다. 마차가 마왕성에 가까워질수록 길가의 풍경이 바뀌었다. 인간 상인의 마차는 줄어들고 해골병사와 오우거 짐꾼이 늘었다. 한때는 그 얼굴들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익숙했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는 숙식 제공이라는 문구 하나만 믿고 왔다. 그때 나는 마왕성 문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만 걱정했지, 수십 명의 급여와 치료비를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변한 건 성 안의 장부뿐이 아니었다. 내가 사람을 보는 눈도 조금은 변했다. 아니, 사람과 마족을 보는 눈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 웃었다. 별일이다. 마왕성에 취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속감이 생겼다니. 월급이 제때 들어오는 조직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 마왕성으로 돌아오자 제르칸이 직접 성문에 나와 있었다. 붉은 망토가 과하게 펄럭였고 뒤에서는 해골병사들이 의장대처럼 줄을 맞춰 섰다. “한도윤! 성과가 있었느냐?” “있었습니다.” “전쟁을 막았느냐?”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적의 음모를 밝혔느냐?” “그것도 일부만요.” “그럼 무엇을 했느냐!” 나는 가방을 들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과납 보증료를 돌려줬고, 성검 강제 반환을 보류시켰고, 제 이름으로 만들어진 서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마왕이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흐뭇하게 웃었다. “좋다. 백성을 지키고 직원도 지켰구나.” 나는 멈칫했다. 이분이 가끔 이런 말을 해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날 밤 재정실로 돌아온 나는 출장비를 정산했다. 피코의 식대, 루시아의 추가 식사비, 마차 수리비, 공관 서류 발급비. 영수증 하나하나에 목적을 적었다. 그러다 출장 가방 바닥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내가 넣은 적 없는 종이였다. [제8호 공방 정산 잔액 확인 요청] [수취처: 천상 교역 관리단] 천상. 처음 보는 이름이지만 어째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종이를 불빛에 비춰 봤다. 발행 시각과 서명은 없었다. 종이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했다. 왕국과 마계만 뒤져서는 이 장부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것. 나는 펜을 들었다. “자, 이제 이 업체부터 조회해 봅시다.” 그때 천장에서 누군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위를 올려다봤다. 박쥐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실장님, 저 박쥐는 경비대 소속입니까?” “아니네. 왜?” “그럼 방문자 명단에 좀 적어 주세요.” 계약서 없는 방문자는 이제 질색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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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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