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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49화
PAYLUA ORIGINAL · 제49화

49화. 제3감리인의 진짜 업무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94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같은 날짜가 적힌 영수증 세 장을 책상에 늘어놓았다. 내 소환 예비 등록. 성벽 보수 보증료. 흑산 상단의 화물 전송. 셋 다 열하루 전이다. 어쩐지 운명적인 순간처럼 들린다. 하지만 회계 담당자는 우연히 같은 날짜에 찍힌 영수증만으로 운명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월말에는 같은 날짜로 처리되는 거래가 수백 건이다. 처리일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전부 한 사람이 꾸민 음모라고 하면 회계팀 전체가 악당 조직이 된다. “이 날짜가 이 세계에서 특별한 날입니까?” 내가 묻자 라델이 계산을 시작했다. “왕국에서 전시 보증료를 분기 마감하던 날입니다.” 아. 그럼 같은 날 기록이 몰린 게 당연할 수도 있다. “다른 분기에도 전송이 몰립니까?” “그럴 겁니다.” “확인해 주세요. 비교 기준이 필요합니다.” 라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코는 납기별 건수를 정리했고, 아레인은 보증료 관련 규정을 가져왔다. 에브란은 회의장 중앙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오늘 우리가 확보한 사본들이 쌓여 있었다. 회색 경계 특별 열람은 생각보다 정식 회의에 가까웠다. 서가 앞에 왕국 좌석과 마계 좌석이 나뉘어 있었고, 중립 공관의 빈 의자 하나가 가운데 있었다. “세 번째 좌석은 누구 자리입니까?” 내가 묻자 에브란이 말했다. “절차상 제3감리인이 앉는 자리네.” “아직 안 오셨네요.” “현재 권한자가 누군지 확인 중이지.” “그럼 빈 의자로 회의해도 됩니까?” “회의는 가능해. 승인 결정은 못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는 바쁘다고 결재권자가 없는 상태에서 결재를 끝낼 수는 없다. 물론 현실에서는 가끔 끝낸다. 나중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며. 우리는 먼저 흑산 상단의 실제 운송 문서를 살폈다. 방호벽 수리업체가 받은 부품 수량은 오늘 확인한 것과 일치했다. 문제는 발행한 보증료였다. 중립 항만 규정에 따르면 특정 유형의 긴급 보수 물자는 보증료 일부가 면제됐다. 그런데 마을은 그 면제분까지 지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과납 가능액이 얼마입니까?” 피코가 계산했다. “금화 열여덟 닢입니다.” “마을에서 직접 낸 금액은?” “금화 열여덟 닢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면제 대상인데 돈을 전액 걷었다. “이 돈은 누구에게 갔습니까?” “00-성전 계정으로 이동 명령이 나왔습니다. 실제 수취 여부는 아직 확인 중이에요.” 나는 숫자를 보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돈이 움직였다는 명령과 실제 잔액 이동은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돈을 냈다. 당사자들이 기다릴 이유는 없다. “마을 측에 임시 반환을 제안하면 어떻습니까?” 라델이 나를 봤다. “법적 책임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확정된 사실은 있잖아요. 그들이 금화 열여덟 닢을 냈고, 규정상 면제 대상이라는 것.” “그 차액을 누가 부담합니까?” “일단 공동 정산 예비금에서 지급하고, 최종 부담 주체를 나중에 구상하면 되죠.” 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성도 예비금의 일부를 부담할 수 있네. 해당 물품이 우리 영토 방호에도 관련되니까.” 제르칸이 들으면 또 '전하의 위엄은 금화 몇 닢보다 크다'고 외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채석장 치료비 사건 뒤로 마왕은 지급을 미루는 것보다 먼저 지급하고 책임을 따지는 방식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아레인은 임시 지급 조건을 문서에 적었다. 과납 환급의 예비 지급이며 법적 책임 인정과는 별개라는 문구까지 넣었다. “좋습니다. 이건 진행하죠.” 이렇게 작은 성과가 하나 생겼다. 그다음은 성검 관련 기록이었다. 에브란이 단단히 봉인된 접수 목록을 펼쳤다. 당사자 동의 범위에 따라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내 이름이 들어간 항목뿐이었다. [한도윤 / 사전 접수] [소환 등록 / 왕국 재무청 대외 협력 통보] [서약 보관 / 제3감리 상태 확인 대기] 그 아래에는 낯선 표현이 있었다. [권리 행사 보류: 당사자 동의 미확인] 나는 두 번 읽었다. “권리 행사 보류가 무슨 뜻입니까?” 에브란이 설명했다. “이 서류대로라면 어떤 기관이 네게 서약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지 다툼이 있는 상태라는 뜻이지.” “그럼 왕국이 저한테 마왕 토벌하라고 명령하는 것도 보류됩니까?”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없네. 원본의 권한 조항과 왕국 내부 규정을 함께 봐야 하지.” “그렇겠죠.”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납득했다. 세상에 만능 서류 한 장으로 끝나는 분쟁은 별로 없다. 그때 피코가 중요한 걸 발견했다. “도윤 님, 이 장에는 세 번째 서명칸이 없어요.” “뭐?” 우리는 원본을 가까이 봤다. 왕국과 마계의 두 칸은 있었지만 제3감리인의 서명은 비어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예 칸 자체가 인쇄되지 않았다. “규정이 바뀐 건가요?” 아레인이 물었다. 에브란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임시 접수 양식이네. 제3감리인은 내용을 승인하는 사람이 아니야. 당사자의 거절권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역할이지.”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러면 제3의 서명자는 계약을 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계약이 제대로 체결됐는지 확인하는 감리인이라는 말입니까?” “원래 제도의 취지는 그렇네.” 아. 갑자기 많은 것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서명자라고 해서 모두 계약 당사자인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증인이고, 어떤 사람은 보증인이고, 어떤 사람은 결재 절차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그걸 구분하지 않으면 서류가 아니라 미로가 된다. “그렇다면 새벽 세 시의 승인 거절도 설명이 되겠네요.” 몰트가 말했다. “네 본인 동의가 없어서 제3감리 절차가 멈춘 것이지.” “그럴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 보관소 기록이 현재도 법적으로 유효한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에브란이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걸 알아보려고 오늘 모인 거네.” 공동 정산 예비금에서 돈을 먼저 지급하자는 제안이 나오자 회의장은 잠깐 조용해졌다. 이해는 한다. 돈을 주는 순간 책임이 인정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특히 전쟁 중인 두 나라의 재무 담당자가 한자리에 앉아 있다면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임시 지급과 책임 인정은 분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먼저 문서의 제목을 바꿨다. [과납 추정액 임시 반환 합의] “피해자가 이미 낸 돈을 돌려주는 동안 최종 책임을 조사한다는 뜻입니다. 누가 고의로 잘못 걷었는지는 나중에 판단하고요.” 라델은 문서 내용을 읽더니 의문을 제기했다. “최종적으로 과납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 경우 재정산 절차가 필요하겠죠. 다만 피해자가 지금 당장 생계비를 잃어버린 상태인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손해를 감수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군.” “네. 예비금은 원래 그런 불확실성을 감당하려고 잡아 두는 돈이니까요.” 이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건 안다. 한국에서 회사 돈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책임을 확정한 뒤에만 돈을 지급한다면 어떤 경우에는 지급 자체가 너무 늦어 버린다. 세베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민들이 직접 와서 서명해야 합니까?” “대리인 신청도 가능하다고 규정에 있네요. 대신 수령자별 내역은 확인해야 합니다.” “마을 대표가 공동 수령할 수 있을까요?” “가능한지 확인해 주세요. 각 가구 몫이 얼마인지 정리한 목록도 필요합니다.” 그때 루시아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복잡하군. 그냥 가서 돈을 뿌리면 되지 않나?” “그러면 못 받은 사람이 생깁니다.” “누가?” “목소리 큰 사람부터 가져가니까요.” 루시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 전장에서도 그런 일이 있지.” “그러니까 순서와 기준을 만드는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는 줄 서는 사람들을 지키겠다.” “그건 좋네요. 단, 위협하지 말고요.” “알겠다.” 우리는 마을 주민 대표와 지급 방식을 협의했다. 세베나는 주민별 납부 영수증과 가구 목록을 대조하기로 했다. 피코는 전체 금액이 중복 지급되지 않도록 계산표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문제가 발견됐다. 금화 열여덟 닢 중 두 닢은 이미 사망한 주민 명의로 납부돼 있었다. 유족이 상속할 권리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유족에게 지급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피코가 물었다. “가능하겠지만 누구에게 지급할지 확인해야지.”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서류까지 필요한가요?” “서류 때문에 못 받는 일이 생기면 안 되지만, 서류 없이 엉뚱한 사람이 가져가도 안 되니까.” 이건 참 마음이 무거운 문제였다. 우리는 유족 확인서를 간소화했다. 마을 대표의 확인과 가족 관계를 아는 이웃 두 명의 서명으로 수령할 수 있게 했다. 고대 왕국의 호적을 찾아오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라델이 문서를 보더니 말했다. “왕국 재정 규정에 이런 예외가 있습니까?” “기존 규정에 신분 확인을 위한 대체 증명이 가능합니다. 그걸 활용하는 거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규정을 어기는 게 아니라 규정의 목적에 맞춰 쓰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왕궁에서 나를 추방했던 재무관이 이제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일도 꽤 재미있다. 그날 오후, 주민들의 임시 반환 대상과 금액을 확정했다. 실제 송금은 예비금 관리자의 확인을 거쳐 다음 날 처리하기로 했다. 나는 아직 지급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서에 분명하게 적었다. [임시 반환 합의: 완료] [실제 지급: 승인 대기] 이 둘을 헷갈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피코가 물었다. “도윤 님, 승인만 됐는데도 주민들은 좋아하실까요?” “모르지. 돈이 들어와야 좋아할 수도 있어.” “그렇죠.” “그래도 언제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 조금 안심할 수는 있을 거야.” 나는 서류를 접었다. 수백 년 전의 계약 때문에 오늘 누군가가 억울한 돈을 내고 있다면, 적어도 우리가 그걸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나중에 누군가 이 장부를 열었을 때 알아볼 수 있도록. 승인된 임시 지급 합의서에는 작은 조건을 하나 더 붙였다. [조사 진행을 이유로 주민의 필수 수리 작업을 지연시키지 않는다.] “이 문구까지 필요합니까?” 아레인이 물었다. “네. 돈은 돌려주면서 벽 수리는 막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라델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서명란에 두 사람이 직접 펜을 대는 걸 확인했다. 이름을 대신 쓰는 사람은 없었다. 마왕성과 왕국 모두 자기 의사로 이 문구에 동의했다. 이상하게 그 광경이 마음에 남았다. 내가 왕궁에서 처음 만났던 사람들도 이렇게 물어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은 이 계약에 동의합니까?'라고. 서류가 끝나자 피코가 손뼉을 쳤다. “이제 정말 지급만 남았네요.” “응. 그때까지는 진행 중이야.” 나는 서류에 완료 도장을 찍지 않았다. 그 순간 바깥에서 세베나가 들어왔다. “중립 보관소의 예전 인장 틀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작은 금속판을 탁자에 올렸다. 그 위에는 원 세 개와 세로줄이 새겨져 있었다. 레쿠스가 보여 줬던 공동 감리 대리인 명패와 닮아 있었다. “이게 대리번호 0003의 인장입니까?” 피코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금속판을 살폈다. 뒷면에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권한 위임 불가 / 기록 보존 전용] “위임 불가?”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대리번호라고 불리는 0003. 그런데 이 금속판은 권한 위임을 금지하고 있었다. 누군가 제3감리의 이름을 빌려 서류를 움직였지만, 정작 그 권한은 남에게 넘길 수 없다는 뜻일까. 에브란은 인장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그 틀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데.” “왜요?” “그건 오래전에 회수한 물건이야.” 그가 금속판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게다가 회수한 뒤에는 반드시 균열 표시를 남겼지. 여기에도 있어야 해.” 우리는 가장자리를 살폈다. 균열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럼 이것은 회수된 원본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복제품일 가능성이 있겠네요.” 에브란이 대답했다. “그렇지.” 우리는 마침내 사라진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 하나를 확보했다. 누군가 만들었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그리고 그걸 이용해 지시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아. 이제부터는 장부뿐 아니라 인장 제작비도 뒤져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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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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