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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48화
PAYLUA ORIGINAL · 제48화

48화. 검 대신 성벽을 고칩니다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02자

오프라인 책장
한도윤을 보호해 달라는 신청서가 또 들어왔다. 나 참. 이 세계 사람들은 내 이름만 보면 펜부터 집는 모양이다. “이 신청인 누구입니까?” 나는 제2공관 현관에 모인 일행을 돌아봤다. 피코는 고개를 저었다. 라델도 모른다고 했다. 몰트는 신청인 이름을 읽더니 잠깐 불꽃을 흔들었다. “엘드린…….” “아세요?” “이름은 본 적 있네. 아주 오래전에.” “언제요?” “날짜는 기억이 안 나는군.” “그러면 일단 기억 속 참고인입니다.” 몰트가 두개골을 기울였다. “자네는 사람을 무슨 장부처럼 분류하는군.” “나중에 누가 뭘 말했는지 헷갈리지 않으려는 겁니다.” 신청인 이름 아래에는 소속이 없었다. 직책도 없었다. 대신 '제3감리 후계 권한 관련 이해관계인'이라는 길고 애매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아레인이 신청서의 봉인을 확인했다. “공관 봉인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아요. 누군가 예전 인장 틀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위조입니까?” “아직은 몰라요.” 반가웠다. 이렇게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사람이 늘면 내 업무도 좀 줄어들 텐데. 제2공관 안에서는 에브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신청서를 보자 잠깐 입술을 굳혔다. “이걸 어디서 얻었지?” “문틈으로 들어왔습니다.” “누가 가져왔는지는?” “못 봤습니다.” “그렇군.” 나는 그의 표정을 지켜봤다. 아는 것 같았지만 묻는다고 곧장 답해 줄 분위기는 아니었다. “에브란 님, 신청인에 대해 알려 줄 수 있는 범위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직책이나 실명 공개가 곤란하면 권한 유효 여부만 말씀해 주세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의 권한은 현재 유효하지 않아.” “왜요?” “승계가 완료되지 않았으니까.” “승계 절차가 시작된 적은 있습니까?” “있었지.” “완료되지 않은 이유는요?” “원래 당사자가 서명하지 않았어.” 아. 또 서명이다. 나는 순간 성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 녀석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했다. 잘도 잔다. “원래 당사자가 누구죠?” “그걸 확인하려면 본인 동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해.” “그럼 관련 없는 사람들 기록까지 볼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럴 수도 있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사실 조금 두려웠다.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서류를 찾겠다고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의 계약과 과거까지 무단으로 들여다보면 그건 내가 왕국에 항의하던 것과 다를 게 없잖아. “제 기록과 직접 연결되는 부분만 보겠습니다.” “좋은 선택이군.” 에브란은 작은 서식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최소 열람, 다른 하나는 확대 열람이었다. 최소 열람에는 내 이름이 들어간 문서의 작성 시각과 승인 상태만 포함됐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나는 최소 열람 동의서에 서명했다. 성검이 작게 빛났다. [당사자 권한 확인 중] “얘도 동의서 읽는 법을 배우면 좋겠네요.” 내가 중얼거리자 피코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마당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왕국 측 경호원이 달려들어왔다. “중립 시장에서 마왕성 운송 마차가 가로막혔습니다!” “무슨 이유로요?” “검 부품을 몰래 반출하려 한다고 합니다.” 라델의 얼굴이 굳어졌다. 몰트가 내 쪽을 봤다. “우리가 운송한 건 조사 서류뿐이지 않나?” “그렇죠.” “그럼 누가 우리 이름을 쓴 건가?” “현장을 봐야 알겠습니다.” 우리는 중립 시장으로 향했다. 장터에는 수십 명이 몰려 있었다. 검문관 둘이 작은 마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차에는 흑산 상단의 표식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운전석의 드워프 청년이 우리를 보자 소리쳤다. “저는 허가받고 운송한 겁니다!” “허가서를 보여 주세요.” 그가 서류를 내밀었다. 운송 품목은 성벽 보수 부품, 수량은 나무 상자 스무 개. 그런데 검문관이 제시한 목록에는 '흑철 검 완제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이 문제 아직도 안 끝났네. 나는 두 문서의 발행번호를 대조했다. 같은 거래 묶음인데 문서 종류가 달랐다. 운송장은 실제 부품을 가리키고, 국경 경보문은 무기를 가리켰다. “상자를 열어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묻자 검문관이 머뭇거렸다. “군사 보안 품목입니다.” “그럼 공동 검수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입회해야죠.” 라델과 몰트가 앞으로 나섰다. 루시아는 그들 뒤에 섰다. 괜히 검부터 뽑을까 봐 나도 옆에 붙었다. “검은 안 뽑겠습니다.” 루시아가 먼저 말했다. 좋아. 이제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선수를 친다. 상자를 열자 검이 아니라 휘어진 철제 연결대가 나왔다. 일부에는 둥근 방호판 고정 홈이 있었다. 앞서 북부 채석장 조사에서 확인했던 물품과 같은 종류였다. “불법 무기 아닙니까?” 검문관이 물었다. “전투에 전용할 수 있는지는 기술 감정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바로 불법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내가 답했다. 드워프 청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것 때문에 이틀째 묶여 있었어요. 고객이 대금 지급을 안 하겠답니다.” “누구한테 납품하는 물건입니까?” “회색 경계 서쪽 방호벽입니다.” “방호벽 수리요?” “네. 수리하지 않으면 겨울에 돌이 무너집니다.” 나는 마차를 다시 봤다. 군사 비밀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던 건 사람이 사는 마을의 방호벽 부품이었다. “납품처에 긴급 필요 확인서를 받아 주실 수 있습니까?” 드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가져오겠습니다.” 우리는 검문관과 임시 조건을 합의했다. 운송 물품은 봉인 상태로 방호벽까지 이동하고, 공동 검수인이 현장에서 수령 수량을 확인한다. 불법성 판단은 따로 조사하되 안전상 긴급한 수리는 막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검문관은 마지막까지 불만스러워했다. “왕국과 마계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나는 대답했다. “돌이 무너지는 데는 국적이 없으니까요.” 루시아가 크게 웃었다. “좋군! 그 말은 마음에 든다!” 우리 일행은 마차를 따라 방호벽으로 갔다. 바람이 강한 비탈에 낡은 돌벽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어린아이 둘이 벽 아래에서 놀고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수리공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레인이 현장 사진 대신 그림 기록을 남겼다. 이 세계에는 사진기가 없지만 기록관의 스케치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피코는 수량을 세었다. 스무 상자, 각 상자 열 개씩의 연결대. 일부는 크기가 달랐다. “검 이백 자루는 아니네요.” 피코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지.” 나는 나무 상자를 쓰다듬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납품했으면 오해가 없었을 텐데.” “오해만 있었던 걸까요?” 아레인이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장부를 잘못 적은 건 누군가의 실수일 수도 있고, 의도적인 금액 조정일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건 그 과정에서 실제 납품업체와 주민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검수가 끝나갈 무렵, 마을 대표가 우리를 찾아왔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돈을 얼마나 더 내야 합니까?” “왜 돈을 더 내세요?” “매번 공동 보증료가 붙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죠.” 나는 멈칫했다. “누가 걷었습니까?” 대표가 낡은 영수증을 꺼냈다. [방호벽 보수 보증금 / 수납 대리: 0003] 나는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이 번호가 또 나왔다. 신의 계약을 지키는 번호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비에도 손을 뻗고 있었다. 수리 현장에서는 서류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실이 몇 가지 더 드러났다. 방호벽을 수리하는 드워프들은 연결대가 전부 같은 모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둥근 홈이 있었고, 어떤 것은 세모난 홈이 있었다. 서류에는 모두 '표준형'이라고 적혀 있었다. “규격이 다른데 괜찮습니까?” 내가 묻자 현장 책임자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습니다. 벽의 오래된 구간에는 둥근 홈이 필요하고, 새로 보강한 구간에는 세모난 홈이 필요해요. 섞어 쓰면 고정이 헐거워질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상자는 잘못 왔군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 수량을 세는 중입니다.” 아. 이 사람도 현장에서 정확하게 말하는구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마차에 실린 연결대를 종류별로 분류했다. 둥근 홈 백이십 개, 세모난 홈 여든 개. 필요 수량은 둥근 홈 백 개, 세모난 홈 백 개였다. “남는 건 둥근 홈 스무 개, 부족한 건 세모난 홈 스무 개네요.” 피코가 계산했다. “맞아.” “그럼 부족한 것만 다시 받으면 되겠네요.” “업체가 보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긴급한 구간부터 작업하도록 하자.” 검문관은 여전히 곤란한 얼굴이었다. “군사 보안 물자를 마구 옮길 수는 없습니다.” “마구 옮기자는 게 아닙니다. 수량과 규격을 기록하고 공동 봉인해서 부족한 것만 운송하자는 거죠.” 아레인이 대조표를 작성했다. 라델은 왕국 승인번호를 넣었고 몰트는 마계 보관번호를 적었다. 전에는 두 나라가 같은 문서에 사인하기까지 하루가 걸렸다. 지금은 작은 표 하나를 만드는 데 십 분이면 됐다. “이런 걸 평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피코가 조용히 물었다. “글쎄. 적어도 오늘은 벽 하나가 더 튼튼해지겠지.” “그거면 좋은 거네요.” 나는 피코를 바라봤다. “응. 그거면 오늘은 좋은 날이지.” 수리공 중 한 명이 다가왔다. 나이 든 드워프였다. 수염 끝이 돌가루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회계 담당이라고 했소?” “네.” “그럼 우리 공사비도 봐 줄 수 있겠소?” 아. 또 일이 늘었다. 하지만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직접 물어 왔으니까. 그는 지급 명세서를 꺼냈다. 원래는 철제 연결대 설치비와 위험 지역 작업 수당이 함께 지급돼야 했다. 그런데 명세서에는 설치비만 있었다. “위험 수당은 언제 주기로 했습니까?” “공사가 끝나면 준다더군.” “계약서에는요?”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계약서를 받지 못했소.” 나는 마른웃음을 지었다. 이 세계는 정말이지 신성한 운명과 구두 약속으로 굴러가는 곳이다. “그럼 작업 의뢰서라도 있을 겁니다. 발주처에 확인해 보죠.” 우리는 마을 대표에게 의뢰서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서류를 보니 위험 지역 작업 수당은 공사 종료일로부터 일주일 안에 지급한다고 적혀 있었다.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계약상 지급기일은 오지 않았다. “아직 체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드워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못 받는다는 뜻이오?” “아뇨.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언제 받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남겨 두자는 거죠.” 그에게 의뢰서 사본을 건넸다. 그는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공사 끝난 뒤에 꼭 확인하세요. 늦어지면 마을 대표와 함께 정산 요청서를 보내고요.” “알겠소.” 그는 서류를 품에 넣고 다시 돌벽으로 올라갔다. 루시아가 옆에서 말했다. “오늘은 참 많이도 일하는군.” “제가요?” “아니, 저들이.” 그녀가 수리공들을 바라봤다. “검도 안 들고 돌을 묶는 일이 이렇게 중요할 줄 몰랐다.” “성벽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검을 들어도 소용없잖아요.”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기사단장이 검 말고 다른 물건의 가치를 이해하는 걸 보니 사람은 역시 배우면서 변한다. 그날 저녁, 마을 대표가 수리공들의 식사를 마련했다. 우리 일행도 초대받았다. 라델은 왕국 사람과 오크 수리공이 같은 탁자에 앉는 걸 처음 보는 사람처럼 놀란 얼굴이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전쟁이 시작된 뒤로 이런 장면을 오래 못 봤습니다.” “그럼 오늘은 좀 보세요. 음식 식기 전에.” 라델은 어색하게 웃었다. 피코는 마을 아이들에게 낡은 계산 구슬 사용법을 알려 줬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반짝이는 숫자로 바꾸는 놀이를 하며 좋아했다. 나는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우리가 쫓는 건 거대한 계약의 진실이지만, 그 계약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이런 사람들이겠지. 그때쯤에는 숫자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사람들을 가리키는 숫자로. 그때 피코가 낮게 속삭였다. “도윤 님. 이 영수증 날짜 좀 보세요.” 발급일은 내 소환 열하루 전. 같은 날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그날 이렇게 많은 계약이 한꺼번에 움직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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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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