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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46화
PAYLUA ORIGINAL · 제46화

46화. 이름이 담보가 되는 계약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094자

오프라인 책장
돈 대신 이름을 담보로 잡는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나는 세베나라는 임시 관리인에게 물었다. “명단이 보관돼 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이름 자체에 마법적인 효력이 있다는 뜻입니까?” “둘 다일 수 있습니다.” 아. 판타지 세계답게 가장 무서운 대답이 나왔다. 세베나는 가죽 가방에서 작은 열쇠를 꺼냈다. 열쇠에는 서로 다른 세 금속이 이어져 있었다. 은, 검은 철, 그리고 빛이 바랜 푸른 금속. 왕국, 마계, 중립 세 주체를 나타내는 표식이라고 했다. “이걸로 무엇을 여실 수 있습니까?” “서랍 자체는 못 엽니다. 잠금 상태만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럼 열쇠가 아니라 점검용 도구네요.” “맞습니다.” 루시아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열쇠라면 검으로도—” “기사단장님.” “알았다. 자르지 않겠다.” 많이 성장했다.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세베나는 서랍의 봉인에 도구를 갖다 댔다. 작은 빛 세 개가 켜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녹색, 세 번째는 흐릿한 회색이었다. “담보 상태가 유지되고 있네요.” “담보가 유효하다는 뜻입니까?” “아뇨. 장치가 해제 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 계약의 효력은 별도 확인해야 합니다.” 어, 이분도 말을 정확하게 하네. 나는 순간 호감도가 올라갔다. 세베나에게 확인한 것은 세 가지였다. 담보 명단 자체는 개봉할 권한이 없고, 개별 이름에 대한 문의는 소유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며, 계약 종료 사실이 등록되면 담보 장치 해제 절차가 시작된다는 것. “그럼 당사자가 자기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는 있지만 후계 보존관의 입회가 필요합니다.” “에브란 님이요?” “네.” 나는 허공을 바라봤다. 결국 그 노인을 또 데려와야 한다. 이쯤 되면 에브란에게 출장 수당을 지급하는 편이 서로에게 낫겠다. 하지만 무작정 서랍을 여는 대신 장부 외부를 먼저 조사하기로 했다. 외부 기록에도 충분한 정보가 있었다. 담보 등록 건수, 변경 시각, 해제 여부, 관련 수수료. 피코가 숫자를 세었다. “담보 등록이 열여덟 건인데 해제는 열일곱 건이에요.” “그럼 한 건이 남아 있다는 뜻일까?” “그럴 가능성이 크죠?” “날짜를 보자.” 우리는 열여덟 건의 날짜를 늘어놓았다. 열일곱 건은 수년 또는 수십 년 간격으로 열리고 닫혔다. 마지막 한 건만 최근 날짜가 찍혀 있었다. [신규 보증 대상: 외부 권역 당사자 / 상태: 조건부 보존] 나는 심장이 한 번 크게 뛰는 걸 느꼈다. 외부 권역. 내 등록 기록에 적혀 있던 표현이다. “이게 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세베나가 즉시 대답했다. “외부 권역 출신이 한 사람뿐이라는 보장은 없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급한 결론을 막아 주는 동료가 있다는 건 참 든든하다. 그런데 금액을 보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조건부 보존 항목에 연결된 비용은 아직 지급되지 않았다. 장부에는 지급 명령을 받은 것으로 표시돼 있었지만 실제 수취인 쪽에는 기록이 없었다. “미지급인가요?” 피코가 물었다. “지급 명령과 실제 송금이 다를 수 있어. 이 기록은 어느 단계야?” “명령 승인 완료. 정산 대기.” “그럼 돈이 실제로 이동했는지는 모르겠네.” 라델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 국고 장부와 맞춰 봐야 합니다.” “마계 쪽 예치 기록도요.” 몰트가 덧붙였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둘이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큰 사건이었다. 지금은 서로의 장부를 대조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말하고 있다. 회계란 참 아름다운 학문이다. 가끔 사람을 화나게 하지만. 세베나는 담보 명단의 개봉을 미루는 대신 관련 물류 기록을 건넸다. 통행세 보관소에는 돈만 아니라 물건의 보증 서류도 함께 접수됐다. 선적 항목 가운데 익숙한 회사 이름이 있었다. 흑산 상단. 이 상단은 마왕성의 무기 납품과 왕국 제4병기창 수리 계약 양쪽에 이름을 올렸던 업체였다. “상단이 양쪽에 물건을 납품하면 불법입니까?” 내가 묻자 라델은 고개를 저었다. “중립 구역 거래는 허용되는 품목이 있습니다.” “그럼 어떤 품목이 금지인가요?” “실제 전투에 사용되는 완제품 무기는 제한됩니다. 수리 부품과 방호 장치는 별도 심사 대상입니다.” 아. 사라진 검 만 자루. 구매 장부에는 검이었는데 실제 현물은 성벽 방호용 연결대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바꾸거나 잘못 적은 일 자체가 문제였고, 또 무기와 방호 부품은 통행 심사 기준이 달랐다. “품목을 잘못 적으면 세금도 달라집니까?” “네. 보증료도 바뀝니다.” 나는 가방에서 27화에 작성한 대조표 사본을 꺼냈다. 제17군단 구매 기록, 흑산 상단 출고 목록, 성벽 방호 연결대 검수 내역. 하나씩 날짜를 맞췄다. 이상한 것이 있었다. 검 만 자루로 신고된 날에는 높은 전시 보증료가 부과됐다. 그런데 수리 부품으로 정정된 날에는 낮은 보증료가 적용됐다. 두 금액 차이가 작은 마차 상단이 감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정정 후 차액을 환급했습니까?” 세베나는 고개를 저었다. “환급 처리 항목은 없습니다.” “그럼 과납금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나는 피코에게 해당 금액만 따로 적으라고 했다. 외부에 공개하면 안 되는 군사 수량은 가리고, 실제 징수액과 환급 내역만 남겼다. 흑산 상단의 보증료 기록을 더 살펴보던 중 나는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름이 같은 업체라고 전부 같은 조직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흑산 상단 제1운송소, 제2운송소, 중립 대리점. 이 세 곳을 같은 회사로 봐도 됩니까?” 세베나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한 상단이었지만 일부 사업권이 분리됐다는 기록이 있어요.” “어디까지 분리됐죠?” “인력과 창고는 따로 관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종 소유자는 확인되지 않았고요.” 아. 이것도 어딘가 익숙하다. 한국에서도 회사 이름은 하나인데 계약 상대방의 법인이 다르거나, 대표는 같아도 실제 소유 지분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 그런 차이를 무시하고 돈을 보내면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그럼 운송장과 세금계산서의 사업자 표식을 대조해 봅시다.” 나는 피코에게 분류표를 부탁했다. 피코는 마법 양피지 위에 세 개의 열을 만들었다. [청구인 / 실제 수령인 / 최종 보증 책임자] 처음에는 전부 흑산 상단이라고 써 있었다. 하지만 서류 뒷면의 작은 문양을 하나씩 확인하니 차이가 있었다. 제1운송소에는 산봉우리 하나, 제2운송소에는 산봉우리 두 개, 중립 대리점에는 산봉우리와 작은 원이 있었다. “이런 것도 구분해야 해요?” 피코가 물었다. “돈은 어느 계좌로 가는지가 중요하니까.” “그럼 이름만 믿으면 안 되겠네요.” “이름은 출발점이고, 계약 주체가 도착점이지.” 뭔가 멋있게 말한 것 같아서 혼자 조금 만족했다. 그런데 곧 문제가 생겼다. 제2운송소와 중립 대리점의 주소가 같았다. 한 건물의 서로 다른 방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부에는 각각 별도 보관료가 청구되어 있었다. “실제 창고 두 곳을 운영했는지 확인해야겠네요.” 세베나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녀는 옛 지적도를 가져왔다. 기록상 창고 두 동이 있었지만 한 동은 이미 붕괴한 상태였다. 언제 붕괴했는지는 모르지만 이후에도 보관료가 청구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붕괴 이후에도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붕괴 날짜와 청구 날짜가 비교돼야 하죠.” “그럼 현장 기록이 필요하군요.” 나는 목록을 만들었다. 운송소 분리 계약, 창고 현황, 시설 붕괴 신고, 보관료 수취 계정, 청구 승인자. 루시아가 땀을 닦으며 들어왔다. 밖에서 주변 경계를 돌고 왔다고 했다. “창고라면 본 적 있다.” “어디서요?” “마을 뒤쪽. 지붕이 내려앉은 곳이 하나 있고 그 옆에 멀쩡한 창고가 있더군.” “직접 확인하셨습니까?” “봤지.” “안에는 들어가셨나요?” “아니.” “잘하셨습니다.” 루시아가 으쓱했다. “이젠 멋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정말 놀라운 변화다. 나중에 인사 평가에 꼭 적어 줘야겠다. 우리는 세베나의 안내로 밖에 나가 창고를 멀리서 살폈다. 붕괴한 건물에는 출입 금지 표식이 붙어 있었다. 옆의 창고에서는 인부들이 평범한 농기구를 내리고 있었다. 그 인부들 중 한 명이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며칠 전에도 흑산에서 사람이 왔어요. 상자보다 종이를 많이 가져오더군요.” “어떤 종이였습니까?” 내 질문에 인부는 손을 내저었다. “저는 글자를 잘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누가 몇 상자를 가져왔는지 기억하십니까?” “세 상자요. 크기는 작았어요.” 우리는 그 진술을 참고 자료로 남겼다. 진술만으로 훔쳤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창고가 합법적으로 보관 업무를 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물건이 드나들 수 있다. 인부는 내 펜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돈이 맞게 쓰였는지 확인합니다.” “그럼 제 밀린 품삯도 찾아줄 수 있습니까?” 나는 그를 바라봤다. “무슨 품삯인데요?” 그는 창고 보수 작업을 닷새 했는데 이틀 치만 받았다고 했다. 계약 상대는 흑산 상단이 아니라 중립 대리점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다. “계약서나 작업 확인표가 있습니까?” “제 주머니에 쪽지가 하나 있긴 합니다.” 그는 접힌 종이를 꺼냈다. 작업 날짜와 감독자 서명이 남아 있었다. “좋습니다. 이건 복사해도 될까요? 원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인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피코에게 작업 확인서를 별도로 접수하라고 했다. 이 일이 성검이나 천계와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언제 돈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인부가 물었다. “확답은 못 드립니다. 대신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는지부터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한때 나도 회사에서 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야근 수당을 묻는 일이 왜 그리 눈치 보였는지. 지금은 사람들에게 받아야 할 돈이 왜 안 오는지 설명하는 쪽에 서 있다. 그 차이를 잊지 말아야겠다. 세베나는 작업 확인서와 운송 내역을 묶어 별도 조사 항목으로 등록했다. 나는 인부의 이름이 외부 보고서에 노출되지 않도록 표시했다. “왜 가리세요?” 피코가 물었다. “돈을 청구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되니까.” “임프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급여를 물어봤다가 다음 달 근무표에서 빠진 친구가요.” 나는 피코를 바라봤다. 언젠가는 그 친구의 이야기도 들어야겠다. 지금은 우리가 이 작은 서류 하나라도 제대로 지키는 게 먼저였다. 그때 마당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거기 멈춰!” 루시아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담장을 넘고 있었다. 루시아가 달려가려던 순간 세베나가 소리쳤다. “저 사람! 보관소 관리부 직원입니다!” “그럼 왜 도망가죠?” 아레인이 물었다. 세베나가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까 저 사람이 들고 있던 가방이…….” 나는 곧바로 출입대장을 확인했다. 오후 한 시에 관리부 직원 한 명이 서명했고, 반출 물품에는 '빈 기록철'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창구 옆의 보관 목록에는 같은 번호의 기록철이 실제로 가득 차 있다고 적혀 있었다. “기사단장님! 그 사람 잡되 물건 훼손하지 마세요!” 루시아가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알겠다! 검은 안 쓴다!” 잠시 후 그녀가 남자를 양팔에 끼고 돌아왔다. 남자는 사색이 됐고, 가방은 멀쩡했다. 말 그대로 안전하게 체포한 셈이다. “검 안 썼다.” 루시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잘하셨어요.” 나는 가방부터 봉인했다. 아직 도난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소속 확인, 반출 허가, 물품 목록을 대조해야 했다. 관리부 직원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저는 지시받은 것뿐입니다!” 아. 너무 익숙한 첫마디다. 누가 지시했냐고 물으면 늘 그렇다. 그는 구겨진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송-4189 관련 서류 긴급 반출 / 요청 부서: 대리창구 0003] 나는 쪽지를 바라봤다. 드디어 숫자만 있던 대리번호가 실제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누군지는 여전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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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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