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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45화
PAYLUA ORIGINAL · 제45화

45화. 폐쇄된 항구에서 걷는 돈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163자

오프라인 책장
옛 통행세 보관소는 낡은 돌탑처럼 생겼다. 입구에는 문도 없었다. 정확히는 문이 있던 자리에 판자 두 장이 엇갈려 세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문이 없다는 사실을 대충 가려 놓은 것이다. “여기서 돈을 걷었다고요?” 피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전에.” 내가 대답했다. “그럼 돈은 어디 보관했는데요?” “그걸 확인하러 온 거야.” 루시아가 판자를 치우려 하자 나는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소유주 확인부터.” “건물이 비어 있는데 소유주가 무슨 상관이냐?” “비어 있는 건물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침입자로 몰리면 출장비보다 변호비가 더 나갑니다.” “변호비?” “왕국에서 또 신성한 의무라고 우기면 그때는 정말 필요할 수도 있죠.” 아레인이 건물 옆 낡은 표지석을 읽었다. 중립 항만 관리위원회 소유였다. 위원회는 해산됐지만 관리 권한이 제2공관으로 넘어갔다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서류로 확인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에브란이 작성한 임시 조사 허가증을 꺼냈다. 서명은 다소 삐뚤었지만 분명히 그 사람 필체였다. “이제 들어갑시다.” 루시아가 판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무렇게나 세워 둔 줄 알았던 판자 뒤에는 작은 잠금장치가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루시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일부러 누가 막아 뒀군.” “그럴 수는 있는데, 당장 불법이라고 단정하지는 맙시다.” “또 증거?” “네.” “증거라는 건 참 지겹구나.” “저도 가끔 그렇습니다.” 문을 열자 묵은 먼지 냄새가 밀려왔다. 안쪽에는 통행세 수납 창구 두 개와 밀랍으로 봉인된 장부 상자가 있었다. 천장 한구석에는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몰트가 그것을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 옛 동료군.” “저 박쥐랑 같이 일하셨어요?” “아니, 비슷한 종족이랑.” 그렇구나. 듣고 보니 전혀 안 궁금해졌다. 장부 상자에는 마지막 인계 날짜가 적혀 있었다. 휴전력으로 143년 전. 상자 아래에는 고약한 문구가 있었다. [분쟁 중 열람 금지 / 공동 보증인 동시 입회 필수] 라델과 몰트가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 둘이면 되는 겁니까?” “그렇게 적혀 있네.” 나는 손을 저었다. “공동 보증인이라는 말이 왕국과 마계 대표를 뜻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레인이 서식 번호를 찾아봤다. 제2공관에서 준 규정집의 부록과 일치했다. 열람 권한은 왕국 대표 한 명과 마계 대표 한 명. 다만 서명 원본을 꺼내려면 후계 보존관의 확인도 필요했다. “에브란 님이 여기까지 오셔야겠네요.” 피코가 말했다. “일단 열 수 있는 범위를 구분하자. 외부 장부 색인은 공동 대표 둘로 열람 가능하다고 돼 있어.” 우리는 색인부터 열었다. 납세자 이름은 일부 가려져 있었지만 통행량과 납부 금액은 읽을 수 있었다. 첫 장에는 오래된 항구의 풍경을 짐작할 만한 숫자가 빼곡했다. 인간 상인, 드워프 광산업자, 마계 약초상, 중립 선박 조합.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나라들도 장부에서는 한 줄씩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이 이상했다. 항구는 강줄기가 마르면서 폐쇄됐다. 그런데 폐쇄 이후에도 '통행 확인 수수료'가 꾸준히 징수되고 있었다. “통행하는 사람이 없는데 돈을 걷었네요?” 피코가 물었다. “그렇게 보여. 다만 통행세 이름이 남아 있을 뿐 다른 관리 비용일 수도 있어.” 나는 계정 항목을 읽었다. [국경 서약 유지비] [전쟁 물자 통행 보증료] [성검 보존 관련 중립 수수료] 마지막 줄에 시선이 멈췄다. 아까 제2공관에서 본 비용 명칭과 닮아 있었다. “이거 같은 비용 아닙니까?” 아레인이 물었다. “유사합니다. 지급 명령서와 날짜를 대조해 봐야 하죠.” 장부에는 수취 계정이 적혀 있었다. [공동 예치 계정 00-성전] 드디어 찾았다. 누군가가 폐쇄된 항구의 이름으로 돈을 걷어 이 봉인 계정에 넣었다. 하지만 숫자에는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연간 총액은 꾸준했는데 통행 보증료를 낸 업체 수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업체가 줄었으면 비용 총액도 줄어드는 게 자연스럽다. 반대로 남은 업체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수증을 찾아야겠네요.” 나는 장부 뒤쪽을 넘겼다. 그때 라델이 다가왔다. “도윤 씨, 이건 왕국의 국방 운영과 관련된 비용일 수 있습니다. 공개하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공개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적법하게 징수됐는지 확인하자는 거죠.” “그래도 군사 비밀이 포함돼 있다면?” “군사 비밀은 보호하겠습니다. 대신 비용을 낸 사람에게 왜 내야 했는지 설명할 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라델은 잠시 침묵했다. “……맞습니다.” 요즘 이분과 대화하면 묘하게 보람을 느낀다. 왕국에 처음 소환됐을 때부터 이렇게 말이 통했으면 나는 지금쯤 공무원 급여 수준으로 마왕을 잡으러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상자 바닥에서 작은 봉투를 발견한 건 피코였다. “이거 보세요. 일반 장부랑 종이 재질이 달라요.” 봉투에는 옛 통행소장의 서명이 있었다. 그 옆에 날짜와 반송 표시가 찍혀 있었다. [수수료 이중 징수 이의 신청] 원래는 한 업체에서 비용을 두 번 걷었다며 제출한 진정서였다. 그런데 처리 결과가 '공동 감리 사무소로 이송'이었다. 나는 진정서를 읽었다. 작은 마차 상단의 주인이 통행 보증료를 냈는데, 사흘 뒤 동일한 물량에 대해 제4병기창에서도 별도 보증료를 청구했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화물에 비용이 두 번 붙었군요.” “전쟁 물자면 가능한 일 아닙니까?” 라델이 물었다. “가능한지 규정으로 확인해 봅시다. 보증 대상이 다르면 이중 징수가 아닐 수도 있어요.” 기록을 대조했다. 중립 항구는 국경 통행 위험을 담보했고 제4병기창은 납품 지연 위험을 담보한다고 쓰여 있었다. 대상 위험은 달랐다. 그러나 두 계약의 피해 보상 조건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양쪽 모두 실제 사고가 발생하면 '제3감리인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잠깐. 그럼 돈은 두 군데서 걷었는데, 지급은 한 명의 승인을 기다렸다는 건가? 나는 라델을 바라봤다. “제4병기창에도 이 진정서와 같은 품목이 남아 있습니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본이 있다면요.” “여기 번호가 있어요.” [화물 목록 송-4189 / 검 부품 및 방호 연결대] 피코가 입을 벌렸다. “또 송-4189!” “그러네.” 나는 진정서의 다른 쪽을 살펴봤다. 접수 날짜는 도윤의 예비 등록 시기와 같았다. 같은 날 같은 전송 묶음 아래 여러 종류의 서류가 전달된 셈이다. “누가 한 번에 처리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같은 날 묶였을 수도 있지.” 나는 잉크를 묻혀 대조표를 만들었다. [송-4189: 예비 등록 1건 / 화물 보증료 이의 1건 / 병기창 재전송 기록 1건]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세 항목이었다. 내용이 같은지는 아직 모른다. 장부를 계속 넘기다 보니 항구가 폐쇄된 뒤에도 잔액이 남아 있는 작은 계정들이 보였다. 그 가운데 하나는 '임시 운송인 보호 적립금'이었다. “이건 무엇에 쓰던 돈입니까?” 아레인에게 묻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오래된 표식을 가리켰다. “마차꾼이나 하역 인부가 다치면 치료비를 지급하던 적립금이래요.” “그럼 아직 잔액이 있는 겁니까?” “장부상으로는요.” 나는 숫자를 훑어봤다. 적립금 총액은 금화 백이십 닢, 지급 완료는 구십팔 닢. 남은 금액은 스물두 닢이었다. “돈을 어디에 보관했습니까?” “중립 예치소였어요.” “지금도요?” “그건 확인해 봐야 해요.” 이상하게도 나는 이런 작은 계정을 만나면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전쟁과 관련된 거대한 의혹도 중요하지만, 누군가 다쳤을 때 쓰려고 모은 돈이 행방불명이라면 그 역시 문제다. 우리는 예치소의 현재 주소를 찾아봤다. 표지판에 적힌 주소는 강바닥 한가운데였다.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요.” 피코가 창밖을 가리켰다. “예전에는 배 위에 예치소를 만들었대요.” 아레인이 말했다. “배가 움직이면 장부도 움직이는 겁니까?” “그렇게 된 셈이죠.” 와. 이동식 은행이라니. 한국에서 이동 점포를 본 적은 있어도 강 위에 띄워 놓은 공동 예치소는 처음이다. 그렇다고 낭만을 느낄 상황은 아니었다. 배가 사라졌으면 돈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아레인은 항구 폐쇄 당시 인계서를 찾아냈다. 중립 예치소의 잔액은 공동 감리 사무소로 이전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럼 00-성전으로 갔겠네요?” 피코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어.” 나는 한 줄 더 확인했다. 인계서에는 '임시 운송인 보호 적립금'의 목적을 변경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적립금은 담당 조직이 바뀌어도 원래 목적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그럼 나중에 피해자가 나타나면 신청할 수 있겠군요.” “기록이 남아 있다면요.” 아레인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신청 기한은 있습니까?” “피해 발생 후 백 년이라고 되어 있어요.” 나는 펜을 멈췄다. 백 년. 장수종이 사는 세상에서는 백 년이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다. 몰트는 천이백 년을 살았고, 엘프들은 수백 년을 산다고 들었다. 반대로 인간인 운송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 “유족도 신청할 수 있나요?” “네. 증빙을 갖추면요.” 나는 그 조항에 표시했다. 그동안 우리가 찾아낸 거래가 전부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권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 보관소 바깥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여기 옛날 돈 많은 데야?” 낡은 가방을 멘 아이 하나가 어머니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여자는 보관소를 보더니 웃었다. “돈은커녕 먼지만 남았겠지.” 나는 문득 그들에게 물어 보고 싶어졌다. 이 마을에서는 옛 항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실례합니다. 옛 통행소가 언제 문을 닫았는지 기억하십니까?” 여자는 나를 살펴봤다. 왕국과 마계 사람이 한데 모여 있으니 경계하는 눈치였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까지는 배가 왔다고 들었어요. 그 뒤로는 여기서 서류 받는 사람만 가끔 보였고요.” “최근에도요?” “몇 달 전에 낯선 사람이 세금 영수증을 떼어 갔어요.” 나는 곧바로 메모했다. “혹시 이름을 아십니까?” “아뇨. 얼굴도 잘 못 봤어요. 다만 자꾸 세 개의 원이 그려진 쪽지를 보여 주더라고요.” 세 개의 원. 우리 기록과 비슷했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나요?” “영수증이 없으면 보험금을 못 준다고 했어요.”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항구가 없어졌는데 무슨 보험금인지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더 들으려 했지만 그녀는 서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대신 조사단 연락처를 적은 종이를 건넸다. 피코가 물었다. “정말 범인이었을까요?” “모르지. 실제 보험금 신청을 도우러 왔을 수도 있어.” “하지만 표식이 같잖아요.” “표식은 복제할 수 있거든.” 나는 다시 보관소로 돌아왔다. 이제 조사해야 할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보증료 이중 징수, 운송인 보호 적립금 잔액, 오래된 표식을 들고 다니는 사람. 문제는 다 따로 시작된 거래라는 점이었다. 묶여 있다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별도 건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장부에 남은 돈은 누군가의 밥값이나 약값이었을 테니까. 나는 합산 결과를 다시 계산했다. 자동 합산되는 양피지가 있어도 입력을 잘못하면 결과는 틀린다. 그래서 피코와 서로 다른 순서로 금액을 더했다. “같아요.” “그럼 계산 오류 가능성은 조금 줄었네.”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고요?” “맞아. 원래 금액이 잘못 적혔을 수 있으니까.”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을 보는 눈이 정말 좋아졌다. 그때 바깥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그 상자, 건드리면 안 됩니다!” 낯선 여성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낡은 관복에 가죽 가방을 멘 채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밤새 달린 사람처럼 먼지가 묻어 있었다. “누구십니까?” “옛 통행세 보관소 임시 관리인, 세베나입니다.” 그녀는 아레인의 서명을 확인하자 겨우 숨을 돌렸다. “다행이네요. 공식 조사단이 맞군요.” “그럼 왜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세베나가 상자 안쪽을 가리켰다. “서랍 바닥에 손대지 마세요. 거기엔 아직 유효한 담보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담보 물건이요?” “돈이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떤 계약의 당사자 이름입니다.” 나는 장부를 내려다봤다. 계정 00-성전. 이건 정말 돈만 보관하는 계정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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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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