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마왕성에서 야근할 때와는 다른 이유였다.
서류에 이름이 먼저 올라가 있었다. 내가 소환되기 열하루 전에. 그리고 그 문서를 보낸 전송 묶음은 제4병기창의 송-4189.
숫자는 연결됐다.
그런데 사건이 연결됐다는 뜻은 아니다.
종이에 그럴듯한 선을 이어 그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회계 담당자가 해야 할 일은 선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선에 실제 돈이나 서류가 지나갔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제2공관을 다시 찾았다.
에브란은 여전히 창가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아무래도 이 공관에는 근무시간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어제 그 일곱 명 말입니다.”
내가 묻자 노인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제도 말했지. 이름은 보여 줄 수 없다고.”
“이름을 보여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럼?”
“일곱 명의 기록이 모두 동일한 종류인지 확인하고 싶어요.”
에브란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슨 뜻이지?”
“성검을 들고 방문한 사람과 왕국에서 소환된 사람이 반드시 같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누군가는 검을 잠시 보관했을 수도 있고요.”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일곱 명은 성검 방문자야. 일곱 명이 전부 용사라는 보장은 없어.”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제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역대 용사 일곱 명의 실종'이라고 보고서를 썼다면 큰일 날 뻔했다. 제목은 엄청나게 자극적이겠지만, 그다음 날 정정 보도 때문에 잠을 못 잤겠지.
“분류만 볼 수 있습니까? 성검 소지자, 동행자, 대리 방문자처럼요.”
“그 정도는 가능하네.”
에브란은 책장 아래에서 새 장부를 꺼냈다. 이름과 얼굴 묘사를 두꺼운 천으로 가렸다. 대신 직무 분류만 드러냈다.
성검 소지자 세 명.
성검 운송 책임자 두 명.
원본 열람 대리인 한 명.
분류 미상 한 명.
총 일곱 명.
나는 한 줄씩 적었다.
“성검 소지자 세 명도 전부 왕국 용사입니까?”
“그건 왕국 기록과 대조해야 하네.”
아레인이 곧바로 자기 장부를 펼쳤다. 왕국 소환 기록에 남은 날짜는 세 개 중 둘과 얼추 맞았다. 세 번째는 시대가 달랐다.
“우리 왕국 기록에는 이 시기 용사 소환이 없습니다.”
“그럼 마계 기록에는요?”
몰트가 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었다.
“당시 마계 기록은 전쟁 때문에 분산 보관했네.”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오면 되겠군.”
“어디서요?”
“전쟁터를 파면 나오지 않겠나?”
아니, 고문서를 찾는다고 전쟁터부터 파면 곤란합니다.
“일단 문서 번호부터 찾죠.”
나는 기록 목록을 검토했다. 이상하게도 세 명의 성검 소지자는 전부 같은 종류의 열람 신청을 했다.
[서약의 종료 조건 확인]
종료 조건.
왕국은 내게 마왕을 쓰러뜨리면 보상을 준다고 했지만, 계약 자체가 어떻게 끝나는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전 소지자들도 같은 질문을 한 모양이었다.
“그분들 신청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에브란이 말했다.
“한 건은 열람 완료. 한 건은 자진 철회. 한 건은 보완 요청.”
“돌아가지 못한 건요?”
“그 말은 '귀환 완료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야. 실제로 못 돌아갔다고 단정한 건 아니네.”
아.
어제의 그 무시무시한 말에 이런 함정이 숨어 있었다.
기록이 없다는 것과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다르다. 기록 관리하는 사람들끼리도 저 둘을 혼동하면 세상이 피곤해진다.
나는 에브란을 똑바로 바라봤다.
“어제는 돌아가지 못했다고 하셨잖아요.”
“기록에는 그렇게 쓰여 있네.”
“그럼 오늘부터는 '귀환 여부 미확인'으로 정정해 주세요.”
에브란이 나를 보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참 까다로운 손님이로군.”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맞네. 고치지.”
그는 정말로 붉은 펜을 들고 정정했다. 원본 문구를 지우지는 않고 아래쪽에 주석을 붙였다. 오호. 이런 사람과는 일할 맛이 난다.
그때 피코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도윤 님. 여기 이상한 날짜가 있어요.”
그가 가리킨 것은 자진 철회된 신청서였다. 기록상 신청인은 열람 동의를 철회한 바로 다음 날 성검을 반납했다. 그런데 그 후에도 성검 관련 비용이 넉 달 동안 청구돼 있었다.
“어디 비용인데?”
“중립 보존료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성검 반납 후에도 보존료가 청구됐다.
물론 보존료는 공간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라 반납 이후 정산이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넉 달은 길었다.
“누가 냈어?”
“수취인 칸이 가려져 있어요.”
에브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기록은 방문자의 개인정보와 연결돼 있네.”
“금액과 지급 주체의 조직 유형만 알려 주세요. 개인 이름은 필요 없습니다.”
그는 다시 서류를 뒤졌다. 오래된 장부가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지급 주체는 공동 감리 사무소. 비용 명목은 '계약 잔여 상태 관리'.”
계약 잔여 상태 관리.
그 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끝난 계약을 관리한다는 겁니까?”
“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계약이겠지.”
몰트가 말했다.
나는 메모했다. 이게 '서약이 무조건 끝나지 않는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보존료는 사무적인 잔여 수수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종료 조건을 확인하러 왔던 사람들에게 같은 비용이 반복됐다는 점은 더 살펴볼 가치가 있었다.
방문자 기록을 분류하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름이 아니라 신청 사유였다.
'서약 종료 조건 문의.'
'소지자 변경 확인.'
'대리 열람 취소.'
세 가지 모두 계약이 끝나거나 옮겨지는 순간에 관한 내용이었다.
“왜 시작하는 서류보다 끝내는 서류가 많습니까?”
내가 묻자 에브란은 웃었다.
“시작할 때는 다들 기뻐하거든. 끝낼 때야 조건을 읽지.”
듣고 보니 씁쓸했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회사에 입사할 때는 연봉 통지서 숫자만 보다가, 퇴사할 때가 되어서야 비밀유지 조항과 경업금지 약정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사직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계약서를 여러 번 다시 읽었다.
“혹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종료가 거절된 사례도 있나요?”
에브란은 천천히 손가락을 접었다.
“있었지.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 같은 건 아니야. 어떤 사람은 남겨 둔 물건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본인이 취소를 철회했어.”
“서약이 영원히 유지됐다는 증거는 아니군요.”
“그렇지.”
그는 창틀에 걸린 오래된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모래가 조용히 흘렀다. 굳이 시간을 재는 이유가 뭔가 싶었는데, 문서 열람 시간이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십 분만 더 볼 수 있네.”
“왜요?”
“일반 목록 열람의 기본 시간은 한 시간이라서.”
“연장 신청은요?”
“가능하지.”
“신청서 주세요.”
에브란은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오면 서류가 늘어나는군.”
“제가 오기 전에도 있었던 문제인데요.”
“그렇긴 해.”
우리는 한 차례 연장 승인을 받았다. 라델이 비용을 물었다.
“추가 열람료는 없습니까?”
“없어.”
“정말입니까?”
“중립 공관은 기본 열람권을 보장하지. 다만 원본 복제는 별도 비용이야.”
“그럼 복제하지 않겠습니다.”
라델이 즉시 말했다.
나는 그를 돌아봤다.
“필요하면 복제해야죠.”
“비용을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자료를 놓칠 만큼 아끼면 더 큰 돈이 나갑니다.”
라델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어렵군요.”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이분은 내가 가르친 것을 꽤 열심히 실천한다. 문제는 종종 너무 열심히 해서 극단으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정보가 없는 요약본만 복제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피코는 자기 이름을 문서 첫 장에 적으려다 멈칫했다.
“제가 작성자라고 써도 돼요?”
“당연하지. 네가 작성했잖아.”
“임프라서 그런 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나는 피코를 바라봤다.
“그런 규칙 누가 만들었는데?”
“옛날 서식에는 하급 마족 서명란이 따로 없었거든요.”
“그럼 서식을 고치면 되지.”
그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웃었다.
“맞네요.”
몰트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 서식은 내가 만들었을 수도 있네.”
“언제요?”
“한 칠백 년 전에.”
“그럼 실장님께 개정 요청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문득 깨달았다. 수백 년 된 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래된 규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아무도 그 규칙을 바꿀 수 없다고 믿게 되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공관 창밖으로 마른 강바닥이 보였다. 옛날에는 이곳을 통해 양쪽 나라의 배가 오갔다고 했다. 이제는 배도 강도 없지만, 그때 만든 기록은 여전히 사람들을 묶고 있었다.
“에브란 님.”
“왜 그러지?”
“이 서약이 끝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종료와 귀환은 다른 절차야.”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종료 조건을 확인하지 않고 귀환 방법을 찾으면 누가 네 이동을 가로막는지도 알 수 없겠지.”
나는 그 말을 메모했다.
내게 필요한 건 화려한 성검 기술이 아니라 순서였다. 무엇에 묶여 있는지 확인하고, 끝내는 방법을 찾고, 그다음에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다.
물론 중간에 마왕성에서 해고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도윤 님.”
피코가 말했다.
“돌아가실 때 정말 가실 거예요?”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지.”
“그래도 언젠가는요?”
나는 잠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게 먼저야.”
그제야 피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때 루시아가 심각한 얼굴로 찾아왔다.
“도윤. 문제다.”
“습격이라도 받았습니까?”
“우리 마차가 없어졌다.”
뭐라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순간 머릿속에서 출장비 예산과 왕국 증거 구슬 보관 상태가 동시에 떠올랐다.
“어디까지 확인했습니까?”
“마당에 없더군.”
“마부한테 물어보셨습니까?”
“마부?”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마차는 뒷마당에 있었다. 마부가 바퀴 하나를 떼어 정비하고 있었다.
“고장 나서 옮겨 놨습니다.”
마부가 말했다.
루시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랬군.”
“단장님.”
“왜?”
“사람을 베기 전에 확인할 게 하나 더 늘었네요. 마차를 찾을 때도 담당자부터 확인하기.”
그녀가 쑥스러운 듯 헛기침했다.
“내가 검을 뽑지는 않았잖나.”
작은 발전이다.
우리는 방문자 목록을 원래 위치에 되돌려 놓았다. 에브란이 문서가 들어 있던 서랍을 닫기 전에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보관함 번호가 바뀐 적은 없습니까?”
“세 번 바뀌었네. 화재가 한 번 있었고, 건물을 옮긴 적도 있었지.”
“그럼 과거 문서 번호와 현재 문서 번호의 대응표가 필요하겠네요.”
“있네.”
그는 얇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피코가 받아 적는 동안 나는 오래된 규칙 하나가 새로운 규칙으로 바뀔 때 기록을 잘 남겨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이름을 바꾸는 일은 쉽다. 그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권리를 그대로 옮기는 일이 어렵다.
그날 오후 에브란은 내게 중립 보존료 관련 서식의 사본을 주었다. 원본은 남겨 두고 사본에 열람 범위와 비공개 항목을 명시했다.
“이걸 가지고 가면 되는 겁니까?”
“그걸로는 부족해.”
“뭐가 더 필요한데요?”
“계정 00-성전과 연결되는지 확인하려면 지급 명령서가 있어야 하지.”
“그 명령서는 어디 있습니까?”
에브란은 창밖으로 마을 끝을 가리켰다.
“옛 통행세 보관소.”
그곳에는 허물어진 돌탑이 하나 있었다. 내가 지나올 때는 폐건물인 줄 알았다.
“거기에 사람이 있습니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아, 제발.”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이상하다. 원본을 찾으러 왔는데 원본은 항상 다음 건물에 있다고 한다. 완전히 중세 판타지판 서류 발급 릴레이다.
에브란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한 가지는 기억하게. 과거의 성검 소지자가 자기 서약을 끝내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같은 운명을 겪었다고 생각하지 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다른 사람의 기록이 내 미래를 결정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과거 사람들도 종료 조건을 묻고 있었고, 그 뒤에 알 수 없는 관리 비용이 남았다.
그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나는 사본을 가방에 넣었다.
기분이 묘했다.
용사의 성검을 들고 고대 유적을 탐험하러 온 줄 알았는데, 나를 기다리는 건 통행세 보관소의 낡은 장부다.
아마 이 세계의 신들은 서류 정리하는 걸 정말 싫어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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