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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43화
PAYLUA ORIGINAL · 제43화

43화. 소환 열하루 전의 접수증

마왕성에 취업했더니 내가 제일 무섭단다 · 6,198자

오프라인 책장
내 이름이 내가 이세계에 도착하기 열하루 전에 접수됐다. 말이 되나? 나는 접수증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름은 틀림없었다. 한도윤. 출신 세계 표기에는 '외부 권역'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도착 날짜는 비어 있었다. “이거 날짜가 틀린 거 아닙니까?” 에브란은 내 질문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걸 먼저 묻는 사람은 드물어.” “보통은 뭐라고 묻는데요?” “누가 자기 이름을 썼느냐고.” 아. 그러고 보니 나도 그게 궁금하다. 하지만 누가 썼는지 묻기 전에 그 기록이 정말 내 것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날짜 체계가 다를 수도 있다. 이세계에 온 뒤 달력부터 다르게 쓰는 나라를 여러 번 봤다. “이 공관은 날짜를 어떻게 계산합니까?” “휴전력.” “왕국력과 차이가 있나요?” “일 년의 시작이 여섯 날 달라.” “그럼 열하루 차이는 설명되지 않네요.” “아직은.” 에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이 노인,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한다. 이 세계에서 정말 희귀한 능력이다. 아레인이 자신의 기록 책을 펼쳤다. “최고기록원에는 한도윤 용사 등록이 소환 당일로 되어 있습니다. 예비 등록 기록은 없어요.” “공관 기록과 대조하려면 항목 정의를 확인해야겠군요.” 내가 말하자 피코가 바로 받아 적었다. [쟁점 1. 공관 예비 등록과 왕국 소환 등록은 같은 행위인가?] [쟁점 2. 두 기록의 날짜 기준이 같은가?] [쟁점 3. 예비 등록 입력자는 누구인가?] “쟁점 4도 있어요.” 피코가 작게 덧붙였다. “도윤 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요.” 맞다. 그게 제일 이상하다. 나는 성검을 내려다봤다. 평소라면 여기서 신성한 글귀가 뜨거나 합창이라도 들려야 하는데 오늘은 조용했다. 이 녀석도 회계회의는 지루한가 보다. “에브란 님, 원본 대신 예비 등록의 접수 경로만 확인할 수 있을까요?” “경로라면?” “사람이 와서 직접 접수했는지, 전송 구슬로 받았는지, 자동으로 생성됐는지요.” 에브란은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서가를 향했다. 오래된 나무판을 세 번 두드리자 책장 일부가 뒤로 밀렸다. 안쪽에는 금속 서랍이 있었다. 루시아가 눈을 빛냈다. “비밀 문인가?” “서류 보관함입니다.” “비밀 서류 보관함이군!” “그렇죠. 여기까진 맞습니다.” 노인은 서랍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수첩에는 수백 년 치 접수 방식이 분류되어 있었다. 이상한 일은 대개 기록으로 남는다. 문제는 그 기록을 누가 읽을 수 있느냐지. “자네 건은 전송 접수야.” “보낸 곳은요?” “기록에 있는 이름은 '공동 감리 대리창구'.” “그럼 대리번호 0003과 관련이 있습니까?” “번호만 같다고 같은 조직은 아니네.” 아, 맞는 말. 나는 쓸데없이 서둘렀다가 혼났다. 몰트가 슬쩍 웃었다. 이 사람은 내가 틀리는 순간을 굉장히 즐기는 모양이다. 천이백 년을 살아도 저런 재미는 남아 있나 보다. “전송 번호는 남아 있습니까?” “남아 있어.” 노인이 수첩을 펼쳤다. [전송 묶음: 송-4189 / 예비 등록 항목 1건] 나는 하마터면 의자에서 일어날 뻔했다. 송-4189. 제4병기창에서 기록이 지워졌다가 찾아낸 그 번호였다. “이거 저희가 조사하던 전송 번호와 같습니다.” 피코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드디어 연결됐어요!” “번호는 연결됐어. 내용까지 연결된 건 아니야.”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상식적으로 송장 번호 하나가 여러 항목을 묶을 수 있다. 누군가가 한 번에 기록을 보냈다면 내 예비 등록과 전쟁 물자 정산 자료가 같은 전송 묶음에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누군가가 나를 소환했다고 결론 낼 수는 없다. “접수한 시각은요?” “휴전력 팔월 스물둘째 날, 정오 직후.” “전송 구슬 원본은 이곳에 있습니까?” 에브란은 고개를 저었다. “수신한 구슬은 이미 반환됐어. 여긴 접수 내용의 대조 부호만 보관하지.” “대조 부호를 볼 수 있습니까?” “그건 가능하지.” 그가 꺼낸 것은 손톱만 한 황동판이었다. 작은 홈 셋과 숫자 넷이 있었다. 피코가 조심스럽게 베껴 적었다. [4189-27 / 재전송 승인 흔적 없음] 왕국 쪽에 남은 것은 송-4189의 재전송 신청, 마계 쪽에 남은 것은 제3서고 수신 흔적, 중립 공관에는 송-4189의 예비 등록 내역. 같은 번호 아래 서로 다른 물품이 오간 셈이다. “이건 총괄 전송 묶음일 수도 있겠네요.” 아레인이 말했다. “혹은 누군가 예비 등록을 다른 전송에 끼워 넣었거나요.” 라델이 팔짱을 꼈다. “우리 제4병기창 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까?” “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확인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죠.” 라델은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전송 구슬을 찾는 일에는 뜻밖의 장애물이 있었다. 제4병기창에 남아 있는 전송 원본이 왕국 군사 기밀로 분류돼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 군수 감독관 헤른은 전령 구슬을 통해 딱딱한 문구만 보내왔다. [전송 묶음 원본의 외부 반출 불가.] 나는 문구를 읽고 피코에게 물었다. “우리가 언제 반출해 달라고 했지?” “안 했어요. 대조 부호 확인 요청만 보냈는데요.” “그렇지?” “네.” 그럼 명확하다. 상대방이 우리가 하지 않은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나는 새 질의서를 썼다. [당 조사단은 원본 반출을 요구하지 않음. 중립 공관 보유 수신 대조 부호와 제4병기창 발신 대조 부호의 일치 여부에 대한 현장 입회 확인을 요청함.] 물론 헤른이 곧장 수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가'와 '가능' 사이에는 협상할 공간이 있다. 특히 무엇을 거절했는지 분명하게 하면 그 공간은 생각보다 넓어진다. 라델이 답신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피코와 전송 묶음의 구조를 정리했다. “송-4189가 하나의 문서 번호라면 같은 번호가 셋 있는 건 이상하죠?” “그렇지.” “그런데 묶음 번호라면 여러 문서가 들어갈 수 있고.” “맞아.” “그럼 어느 쪽이야?” “형식을 확인해야지.” “역시 확인이네요.” 피코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생각해 보면 이 단어 하나 때문에 이세계에서 꽤나 많은 사람과 싸웠다. 마왕성에 처음 왔을 때 몰트는 군단장이 서명했으면 검수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루시아는 범인을 베고 나면 증거는 필요 없다고 했다. 제르칸은 자기 도장만 있으면 국고를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조금씩 바뀌었다. 피코는 서류를 넘기다가 문득 물었다. “도윤 님은 원래 세계에 돌아가면 뭘 하실 거예요?” 나는 펜을 멈췄다. “글쎄.” “재무팀이요?” “……그건 좀.” 나는 웃었지만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돌아가면 다시 부장님의 '전체적으로 수정'이라는 보고서를 붙잡게 될까? 내 자리가 이미 없어졌다면?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어디로 사라졌다고 생각할까? 왕국은 세상을 구하면 보상을 주겠다고 했다. 귀환을 보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 화가 나서 계약부터 따졌지만, 지금은 가끔 겁이 났다. 돌아갈 방법이 정말 없으면 어떡하지? “가족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피코가 물었다. “보고 싶지.” 나는 대답했다. “그런데 여기도 이제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겼어.” “저도요?” “당연하지.” 피코는 두 귀를 쫑긋 세우더니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인수인계서 써 주세요.”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진짜 잘 배웠다.” 이 녀석은 내가 돌아가는 것보다 업무 인수인계를 먼저 걱정한다. 얼마나 훌륭한 직장인인가. 조금 위험할 정도로. “인수인계는 꼭 해 줄게. 그리고 너도 언젠가 휴가 꼭 써.” “네.” “이번 출장이 끝나면 하루쯤 쉬고.” “하루로 될까요?” “그럼 이틀.” “좋아요!” 우리는 다시 기록을 정리했다. 곧 제4병기창에서 답신이 왔다. 헤른은 원본 반출은 불가하지만 중립 대조 부호의 일치 여부는 왕국 기록관 입회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보세요, 됐잖아요!” 피코가 기뻐했다. “응. 물론 아직 원본 내용은 못 봤지만.” “그래도 한 칸 앞으로 갔잖아요.” 맞는 말이다. 거대한 음모를 하루 만에 밝혀내는 주인공은 멋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늘 '불가'였던 일이 내일 '조건부 가능'으로 바뀌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일 때가 있다. 나는 헤른에게 감사 회신을 보냈다. 그리고 대조 절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세 가지 오류를 적었다. 숫자는 같아도 다른 문서일 수 있고, 발신 당시와 수신 당시 형식이 바뀌었을 수 있으며, 중간 보정 과정에서 고유 번호가 재사용됐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적고 나니 피코가 감탄했다. “도윤 님, 전송번호 하나로 이렇게 많은 경우가 나와요?” “세상일은 숫자 하나로 안 끝나는 법이지.” “그래서 전 회계가 재미있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걸 재미있다고 하면 나중에 큰일 나는데.” “이미 도윤 님 밑에서 일하잖아요.” 아.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에브란은 우리가 전송 기록을 베껴 적는 동안 차를 내왔다. 잔에서 민트와 흙 냄새가 섞인 향이 올라왔다. 검은색 액체라 망설였는데 맛은 의외로 괜찮았다. “차값은 얼마입니까?” 내가 묻자 에브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손님에게 차값을 받는 공관이 어디 있나?” “출장비 증빙 때문에요.” “그냥 접대비라고 써.” “그러면 공관에 부당한 접대 수수료가 나간 줄 알고 오해받습니다.” “……고생 많군.” 마음에 와닿는 위로였다. 잠시 후 에브란이 한 장의 얇은 종이를 가져왔다. 예비 등록에 딸린 메모라고 했다. 그런데 메모는 절반만 남아 있었다. 바깥쪽이 마치 불에 타거나 찢긴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대상자 접촉 전 / 소환 경로 확인 필요] [등록 목적: 당사자 보호를 위한 ……] 당사자 보호?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날 보호한다고 했지? 왕국은 내게 목숨 걸고 마왕을 잡으라고 했다. 무료로. 그게 보호라면 세상에 위험한 말이 얼마나 많은 걸까. “혹시 이 문구 전체를 복원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는 안 돼. 원래 전송된 쪽에 남아 있을 거야.” “제4병기창이군요.” “가능성은 있지.” 피코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또 돌아가야 하네요.” “그러게. 출장 한번에 끝내면 좋겠는데.” 나는 메모를 다시 읽었다. 보호를 위한 무엇. 저 말이 선의였다고 해도, 왜 나한테 설명하지 않은 걸까? 동의도 없이 등록해 놓고 뒤늦게 '당신을 보호하려고 그랬다'고 말하면 그게 통하는 건가? 한국에서 회계감사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회사에 도움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정말 좋은 의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의도는 증빙을 대체하지 않는다. “에브란 님, 이 예비 등록을 취소할 수 있습니까?” 노인이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묻자 그가 오래된 책을 가리켰다. “취소 방법은 있어. 다만 당사자가 신청할 권리부터 확인해야 해.” “저 이름이 제 이름인데도요?” “그 이름을 누가 적었는지 아직 모르잖나.” 아. 정말 귀찮지만 맞는 말이다. 그때 몰트가 낮게 중얼거렸다. “도윤, 여기 날짜를 보게.” 그가 왕국 소환 문서와 중립 접수 문서를 나란히 놓았다. “왕국 서식에는 소환 날짜가 있지만 소환 준비 개시일은 없네.” “그렇네요.” “그럼 준비 개시일이 열하루 전일 수도 있지 않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소환 준비. 즉, 왕국이 나를 부르기 전에 누군가가 이미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왕국 사제들은 신의 선택이라고 했는데, 신의 선택에 앞서 행정 사전 접수가 있었다니. “그럼 준비한 주체가 누군지 찾아야겠네요.” 나는 기록을 접었다. 그때 성검이 반짝였다. [소환 대상 사전 등록: 확인됨] [등록 승인자: 비공개] 나는 검을 향해 속삭였다. “야. 너 이걸 알고 있었어?” 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늘 그렇다. 정작 중요한 질문에만 묵비권을 행사한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다. 누군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고, 내가 오기 전에 이미 접수했다. 이건 단순한 우연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열하루 전에 이름을 접수한 사람이 정말 내 동의까지 대신했다면? 그 사람은 누굴 믿고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어디를 가도 남의 이름으로 결재하는 사람이 문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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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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