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 취업.
입 밖으로 꺼내 보니 정말 미친 소리다.
지구에서 누군가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면 당장 병원부터 가 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는 마왕성의 구인 광고가 있었다.
그리고 내 뒤편 광장에는 금화 백 닢짜리 수배 공고가 붙어 있었다.
선택지가 두 개다.
왕국에 남아 붙잡히거나, 마왕성에 가서 면접을 보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는 퇴로가 없었다.
물론 후자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곳은 마왕이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숙식은 준다는데…….”
나는 광고문을 다시 읽었다.
[지원 자격: 숫자를 세고 기록할 수 있는 자.]
[우대 사항: 세금, 보급, 계약 관리 경험.]
[전형 절차: 현장 면접.]
이야.
자격요건만 놓고 보면 나를 위한 공고다.
무엇보다 학력 제한이 없다.
경력 7년은 인정해 줄까?
전산 자격증은 이 세계에서 쓸모가 없겠지만, 장부는 다들 쓰는 모양이니까.
나는 여관으로 돌아가 주인에게 광고문을 보여 줬다.
주인은 글을 읽자마자 의자를 걷어찼다.
“마왕성? 미쳤소?”
“그쪽으로 가는 길을 알고 싶습니다.”
“아무도 거길 제 발로 가지 않소!”
“그럼 왕국군은 어떻게 쳐들어갑니까?”
“군대를 끌고 가지!”
“아, 길은 있군요.”
주인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자네는 목숨이 몇 개인가?”
“하나입니다. 그래서 보험 규정이 있는 직장을 찾고 있습니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주인은 결국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서쪽 무역로를 따라가면 검은 고개가 나와. 고개를 넘으면 마계 국경이야. 하지만 사람은 통행이 금지되어 있지.”
“상인들은요?”
“전쟁 전에나 왕래했지. 요즘은 우회로로 밀수를 한다고 들었어.”
“밀수로?”
“그쪽엔 가깝게 가지도 마시오.”
나는 지도를 내려다봤다.
서쪽으로 이틀.
걷는 속도와 식사 시간을 계산하면 이틀 반쯤 걸릴 듯했다.
현재 보유 동화는 열두 닢.
왕도 안에서 하루를 더 버티면 수배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면 오늘 떠나는 수밖에 없다.
“주인장, 감사했습니다.”
“정말 갈 거요?”
“네.”
“자네가 사기꾼이라면 차라리 안심하겠군. 진짜 용사라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나는 웃었다.
“면접 떨어지면 다시 올게요.”
“오지 마시오!”
이상하게도 그 말은 걱정처럼 들렸다.
***
문제는 서쪽 성문이었다.
왕국군 병사 둘이 통행인을 확인하고 있었다.
수배 공고가 벌써 전달됐는지 성문 옆에도 내 얼굴 그림이 붙어 있었다.
다행히 여전히 못생겼다.
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모자는 여관 주인이 빌려준 것이었다.
성검은 낡은 천으로 둘둘 감쌌다.
이래서 남자가 중요한 물건을 들고 다닐 때는 포장이 중요하다.
다만 칼집이 너무 길었다.
누가 봐도 무기였다.
“거기, 멈춰!”
역시나 병사가 나를 불렀다.
“어디로 가는가?”
“서쪽 시장으로 갑니다.”
“직업은?”
“사무직입니다.”
“짐은?”
“개인 소지품입니다.”
병사가 천으로 감싼 검을 가리켰다.
“그건 뭔가?”
아.
좋은 질문이다.
문제는 정답을 말하면 내가 잡힌다는 것.
잠깐 고민할 틈도 없이 입이 먼저 움직였다.
“회사 물품입니다.”
“회사?”
“네. 퇴사 과정에서 반납이 안 돼서요.”
병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럴 만하다.
나도 내 상황을 설명하다 보면 말이 안 된다고 느낀다.
그때 뒤편에서 마차 한 대가 다가왔다.
말 두 마리가 끄는 짐마차였다.
운전석에 앉은 상인이 병사에게 소리쳤다.
“보급창으로 보내는 밀가루요! 늦으면 책임질 거요?”
병사가 짜증을 냈다.
“또 서류가 없나?”
“있소! 그런데 통행세를 세 번이나 냈단 말이오!”
어라?
세 번?
나는 저절로 고개를 돌렸다.
상인은 낡은 영수증 세 장을 흔들었다.
병사는 한 장씩 살펴보더니 말했다.
“날짜가 다르니 각각 유효한 통행료요.”
“날짜만 다르고 같은 검문소라고!”
아.
이거 익숙한데.
중복 청구.
나는 모자를 고쳐 쓰며 다가갔다.
“잠시만요.”
병사가 노려봤다.
“넌 또 뭐냐?”
“서류 좀 볼 수 있을까요?”
“왜?”
“같은 수수료를 세 번 내셨다고 하셔서요.”
상인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날짜와 금액, 검문소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세 장을 나란히 놓았다.
첫째 날은 동화 열 닢.
둘째 날도 열 닢.
셋째 날도 열 닢.
그런데 날짜 아래에 적힌 통행 허가 기간은 모두 같았다.
[서쪽 무역로 3일 통행 허가.]
와.
정말 뻔뻔하다.
“이건 하루 이용권이 아니라 삼일권인데요?”
상인의 눈이 커졌다.
“그렇지! 내가 그 말을 했소!”
병사가 인상을 썼다.
“서류를 어디서 배웠기에 그런 말을 하나?”
“어디서 배웠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문서에 적힌 내용이 중요하죠.”
나는 허가증을 가리켰다.
“검문소 표준 수수료표가 있습니까?”
“그런 건 왜?”
“없으면 징수 기준을 확인할 수가 없잖아요.”
병사는 잠깐 말이 없었다.
상인은 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기준을 가져오시오!”
아이고.
상인이 생각보다 열혈이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병사는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뒤편 초소로 들어갔다.
나는 상인에게 낮게 말했다.
“저 지금 나가야 하는데요.”
“그럼 내 마차를 타시오.”
“네?”
“서쪽으로 간다면서. 내가 태워 주겠소. 이런 사람이 필요했어.”
호오.
뜻밖의 교통편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잠시 뒤 병사가 돌아왔다.
그리고 어색한 얼굴로 통행료 두 번분을 돌려주었다.
상인은 개선장군처럼 웃었다.
“보았느냐! 세금은 아무렇게나 걷는 게 아니야!”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서둘러 마차 뒤에 올라탔다.
이상하다.
사람을 구한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일을 한 느낌이다.
***
상인의 이름은 보르크였다.
서쪽 마을에 밀가루와 소금을 공급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네는 어느 상단에서 왔나?”
“멀리서 왔습니다.”
“회계 일을 했나 보군.”
“네.”
“그럼 내 장부도 한번 봐 주겠소? 영 찜찜한 게 있어서 말이야.”
나는 웃었다.
“좋습니다. 대신 점심은 제공됩니까?”
보르크가 허허 웃었다.
“물론이지! 빵도 두 개 주겠소.”
조건 좋다.
역시 문서부터 확인하는 사람은 굶어 죽지는 않는다.
나는 짐칸에서 상인의 장부를 펼쳤다.
밀가루 열두 자루.
소금 여섯 상자.
말 사료 네 포대.
어라?
“보르크 씨.”
“왜 그러시오?”
“말 사료를 같은 날 두 번 샀다고 적혀 있는데요?”
“아, 그건 마부가 하나 더 있어서 그런 거요.”
“마부는 한 명인데 말이 두 마리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사료가 네 마리 분량입니다.”
보르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지난달에도 그랬나?”
나는 한 장 더 넘겼다.
역시 네 마리 분량.
그리고 그전 달에도.
“마부가 사료를 빼돌렸을 수도 있습니다.”
보르크가 벌떡 일어나려 했다.
“이놈을 당장—”
“잠깐만요.”
나는 그를 붙잡았다.
“기록만으로 사람을 도둑이라고 단정하면 안 됩니다. 마차 수가 늘었다가 줄었을 수도 있잖아요.”
보르크가 멈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오?”
“원래 구매 영수증이랑 창고 출고 기록을 맞춰 봐야죠. 누가 받아 갔는지도 확인하고요.”
“그런 서류도 필요하단 말이오?”
“돈을 쓸 때는요.”
보르크는 크게 감탄했다.
“자네 우리 상단에 올 생각 없나?”
오.
첫 스카우트 제안이다.
하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지원해 둔 곳이 있어서요.”
“어딘데?”
“마왕성입니다.”
말이 멈추는 줄 알았다.
정확히는 보르크가 고삐를 너무 세게 잡아당겼다.
“뭐라고?”
“마왕성 재정실이요.”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저도 그 질문 많이 받았습니다.”
보르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그쪽 상인들은 의외로 돈을 잘 준다더군.”
“네?”
“전쟁이 나도 계약한 대금은 맞춰 준다는 소문이 있소. 대신 계약을 어기면 무섭게 받아 낸다지.”
아.
그건 좀 마음에 든다.
정확한 정산.
계약 위반에 대한 책임.
인간보다 마족이 더 합리적이면 어떡하지?
내가 알던 판타지 세계관이 무너지고 있었다.
***
해 질 무렵, 우리는 국경에서 하루 거리인 교역 마을에 도착했다.
보르크는 여기서 돌아간다고 했다.
“이 이상은 위험하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나 가져가시오.”
그가 마른 빵 두 개와 작은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장부를 봐 준 값이오.”
나는 물건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사료 문제는 꼭 확인해 보세요.”
“그러겠소. 그리고…….”
보르크가 잠시 망설였다.
“서쪽 고개 아래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소. 수배된 사람은 피하는 게 좋겠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수배된 걸 아세요?”
그가 빙긋 웃었다.
“내 장부를 보면서 돈 한 푼 안 빼돌리려던 사람이 자기 얼굴까지 숨기는 걸 보면 사정이 있겠지.”
어휴.
상인 눈은 무섭네.
“왜 신고 안 하셨습니까?”
“자네가 없었으면 나는 통행세만 계속 냈을 거요.”
보르크는 마차를 돌렸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광고문보다 실제 거래를 보라는 게 내 장사 철학이지.”
나는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봤다.
그 말이 조금 고마웠다.
왕국에서는 용사라고 해서 나를 환영했고, 계약을 묻자 범죄자 취급했다.
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상인은 내가 한 일을 보고 빵을 주었다.
이상한 세계다.
적어도 모두가 이상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
밤에는 산길을 올랐다.
달빛이 희미했다.
길 양쪽에서 이름 모를 짐승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성검을 손에 쥐었다.
“너 혹시 위험하면 알아서 싸워 줄 수 있냐?”
칼날이 은은하게 빛났다.
“대답은 말로 해라.”
조용하다.
참 믿음직스럽다.
한참 걷는데 앞에서 수풀 소리가 났다.
사각.
나는 멈췄다.
사각사각.
무언가 다가온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왕성에 취업하기도 전에 산짐승한테 죽는 건 너무 억울하다.
나는 검을 뽑았다.
촤아앙!
갑자기 하늘에서 찬송이 울렸다.
“아아아아—!”
아니!
지금은 노래할 때가 아니잖아!
수풀에서 나온 것은 커다란 늑대 비슷한 짐승이었다.
짐승은 성검의 빛을 보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나는 검을 앞으로 겨눴다.
“오지 마.”
짐승이 으르렁거렸다.
“나 진짜 칼 못 써.”
무슨 자신 없는 자기소개냐.
그런데 이상하게도 짐승은 내 말보다 성검을 더 무서워했다.
결국 한 걸음, 두 걸음 물러나더니 수풀 속으로 달아났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렸다.
“살았다…….”
성검이 밝게 빛났다.
“그래, 네가 살렸다. 고맙다.”
검에서 짧은 승리의 팡파르가 울렸다.
아이고.
칭찬은 좋아하는구나.
***
다음 날 정오.
검붉은 절벽과 검은 성벽이 나타났다.
성 위에는 박쥐가 날아다녔고, 높은 탑 꼭대기에서는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성벽 아래 해자는 끓어오르는 용암으로 가득했다.
이야.
회사 건물부터 대단하네.
출퇴근 교통비가 많이 들 것 같다.
성문 앞에는 오우거가 서 있었다.
사람 두 명을 겹쳐 놓은 것 같은 덩치였다.
손에는 쇠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오우거가 소리쳤다.
“인간! 죽고 싶어서 왔느냐!”
나는 숨을 한번 고른 뒤 광고문을 펼쳤다.
“아뇨. 면접 보러 왔습니다.”
“뭐?”
“재정실 사무직 채용 공고 보고 왔습니다.”
오우거의 커다란 눈이 광고문을 바라봤다.
그가 종이를 거꾸로 잡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아.
글을 못 읽는구나.
나는 친절하게 종이를 돌려 줬다.
“여기요. 숙식 제공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우거는 얼굴을 붉혔다.
“내가 글자를 몰라서 그러는 줄 아느냐!”
“아닙니다. 종이가 거꾸로 돼 있어서요.”
“흠! 그랬군!”
그는 한동안 공고문을 노려봤다.
그리고 성 안쪽을 향해 외쳤다.
“서기! 서기 나와라!”
작은 임프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인간이 취업을 하러 왔다!”
임프가 나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인간이요?”
“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한도윤입니다. 회계 경력 7년이고요.”
임프의 꼬리가 꼿꼿하게 섰다.
“잠깐만요. 인간이 마왕성에 취업 지원을 한다고요?”
“네. 공고 아직 유효한가요?”
“유효합니다만…….”
임프가 내 허리의 검을 바라봤다.
성검을 감싼 천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저거 혹시…….”
“회사에서 반납 처리가 안 된 물건입니다.”
“……네?”
나는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퇴사 사유는 면접 때 설명하겠습니다.”
임프는 잠깐 얼어붙었다.
그러더니 성 안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재정실장님! 지원자가 왔습니다!”
잠시 후 거대한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사슬이 풀리고 쇠문이 움직였다.
나는 침을 삼켰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마왕의 영역이다.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돌아갈 길도, 돈도, 신분도 없는 지금은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성문 너머에서 임프가 외쳤다.
“지원자님! 면접관께서 기다리십니다!”
나는 성검을 한 번 내려다봤다.
“너, 면접 때는 제발 노래하지 마라.”
칼날이 살짝 반짝였다.
어쩐지 장담할 수 없다는 대답처럼 보였다.
아이고.
첫 출근도 하기 전에 벌써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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